FOCUS 과학

제 2120 호/2014-05-05

모기와의 전쟁이 매년 빨라지는 이유

별들조차도 더위에 지쳐 조는 듯한 나른한 여름밤. 하지만 그 꿀맛 같은 단잠을 깨우기에는 그리 큰 소리가 필요하지 않다. 그저 모기 소리 정도면 된다. 귓전에 울리는 앵앵대는 모기 소리에도 계속 잠을 잘 수 있을 만큼 신경이 무딘 사람은 별로 없다. 심지어 모기 소리보다 10만 배나 큰 기찻길 소음 속에서도 숙면을 취할 수 있는 사람일지라도 모기 소리는 참기 힘들 정도다.

이처럼 사람들은 기찻길 소음보다 모기 소리를 더 싫어한다. 엄밀히 말하자면 싫은 것은 모기 소리가 아니라, 모기 그 자체이다. 모기에게 물리면 벌겋게 부어오르고 가려울 뿐 아니라, 운이 없다면 꽤 심각한 질병에 걸릴 가능성도 있다. 작은 고추가 맵다는 속담처럼 모기는 작지만 그들이 옮기는 질병은 결코 가볍지 않은 경우가 많다.

일반적인 모기들이 가벼운 가려움증과 발진 등을 일으키는데 그치지만, 작은빨간집모기(일본뇌염), 중국얼룩날개모기(말라리아), 아에데스 알보픽투스(뎅기열) 같은 모기들은 그 정도로 만족하지 못한다. 이 밖에도 모기는 황열이나 웨스트나일열과 같은 질병도 모기에 물려 전염된다.

모기가 옮기는 질환이 사람에게 끼치는 해악이 얼마나 큰지는 말라리아만 보더라도 알 수 있다. 해마다 전 세계에서 약 500만명이 말라리아에 걸리며 이 중에서 100~200만명이 사망한다. 이는 이전에 비해서 많이 줄어든 수치이기는 하지만, 여전히 제 3세계의 5세 미만 어린이들의 사망과 청력 손실의 주요 원인은 말라리아임에 틀림없다.

우리나라의 경우 모기는 뇌염의 주된 원인으로 지목됐다. 실제로 1960년대까지는 연간 300~900명이 모기가 옮기는 일본 뇌염으로 사망했다. 이보다 더 많은 수의 사람들이 뇌염이 남긴 후유증으로 평생을 고생하곤 했었다. 비록 1970년대 이후에는 백신의 보급으로 발병률이 급격히 떨어지긴 했지만, 여전히 모기는 우리에게 말라리아 원충과 뇌염 바이러스가 혼합된 질병이 폭탄처럼 인식되고 있다.

모기에 대한 인식이 ‘질병 폭탄’인 만큼 인류는 오랜 세월 모기를 박멸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해 왔다. 모기장을 둘러치고 모깃불을 피우고 모기의 애벌레인 장구벌레가 서식하는 물웅덩이를 없애 모기를 박멸하려고 했다. 그리고 말라리아 치료제와 황열 백신과 뇌염 백신을 개발하는 적극적인 대처법도 등장했다. 또한, DDT를 비롯한 각종 살충제를 개발해 모기를 박멸하는 과격한 방법까지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은 모두 동원했지만, 아직 모기의 박멸까지는 길이 멀다.

심지어 최근 들어서는 그나마 모기로부터 안전한 시기였던 겨울마저도 더 이상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보고까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실제로 일본뇌염을 옮기는 작은 빨간집모기의 경우, 지난 2000년에는 5월 3일에서야 처음으로 발견됐었다. 하지만 매년 하루씩 발견 시기가 단축되어 2013년에는 4월 18일에 최초 발견이 보고되었을 정도로 출현 시기가 앞당겨지고 있다. 심지어 추위가 한창인 11월~12월에도 모기가 관찰되었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로 최근 모기의 출현 시기는 더 빠르고 더 길어지고 있다.

곤충류에 속하는 모기는 기온이 평균 섭씨 14~41도 사이에서만 성충으로 활동할 수 있다. 모기의 활동시기가 빨라지고 길어진 것은 그만큼 기온과 환경이 따뜻하고 온화하게 변화했다는 뜻이다. 실제로 학자들은 모기의 등장 시기가 더 빨라진 것에는 온실 효과의 증가로 인한 기후 변화 때문이라는 설이 지배적이다. 온실 효과로 인한 기온 상승으로 봄이 오는 시기가 빨라졌고, 이에 맞추어 모기의 활동 시기도 빨라졌다는 것이다.

모기만이 아니다. 실제로 기상청의 관측에 따르면 개나리와 진달래, 벚꽃 같은 대표적인 봄꽃들의 개화 시기 역시도 지난 30년 전에 비해 6~8일 정도 앞당겨졌다고 한다. 온실가스의 증가로 인한 기온 상승은 기온이 오르는 봄의 시작을 앞당겼고, 그 결과 봄의 전령사들도 이전보다 빨리 찾아오는 셈이다.

덩달아 초대받지 않은 불청객 모기 역시도 바삐 오는 봄을 따라 날갯짓을 서두르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전 지구적인 기온 상승은 모기의 출현 시기를 앞당겼을 뿐 아니라, 모기의 서식지까지도 넓히는 이중 효과를 가져왔다. 일반적으로 말라리아를 일으키는 모기들은 주로 열대 지역에 서식하기에 오래 전부터 아프리카는 말라리아 때문에 많은 피해를 받았다. 그렇지만, 아프리카 내에서도 해발 1,624m인 케냐의 나이로비, 1,479m인 짐바브웨의 하라레 같이 고위도 지역은 서늘한 기온 덕분에 모기가 서식하지 못하는 ‘말라리아 안전지대’에 속했다.

그런데 최근 들어 아프리카 고지대 역시 말라리아로부터 ‘안전’하지 못하게 됐다. 기후 변화로 인해 이 곳 고산 지대들의 기온이 올라가자 모기 역시도 따라 올라왔기 때문이다. 실제로 질병학자들은 기후변화를 이 같은 모기 서식지 확대 현상의 가장 유력한 용의자로 의심하고 있다.

또한 모기가 사라지는 시기가 늦춰지는 것 역시도 바뀐 생활 환경과 관계가 있다. 사람들의 생활 방식이 도시화되고 조밀화 되면서 아파트의 보급이 늘어난 것이 모기에게는 호재(好材)로 작용했다는 것이다. 아파트에는 물탱크와 온수 탱크 같은 저수 시설과 지하 주차장의 배수구처럼 겨울에도 외부에 비해 기온이 따뜻하고 얼지 않는 ‘물웅덩이’가 늘 존재한다. 이곳에서 성충 상태로 겨울을 나는 모기들도 생겨나는 실정이다.

특히나 날개에 힘이 약해 높은 곳은 올라가지 못하는 모기들에게 고층 아파트의 엘리베이터는 그들의 날개를 대신해 더 높은 곳의 먹잇감(?)에게 데려다주는 로켓이 되고 있다. 인간의 편의를 위해 만들어낸 아파트 시설들이 모기와의 전쟁에 있어서는 오히려 적군인 모기에게 이롭게 이용되고 있다니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다.

길기만 했던 겨울이 끝나고 완연한 봄이 찾아왔다. 두꺼운 겨울옷을 벗어던지고 햇살의 따뜻함을 즐길 수 있는 시기가 온 것은 반가운 일이지만, 봄날과 함께 찾아온 불청객 모기와의 귀찮은 전투가 이제 또 시작되려 하고 있다. 이제 사람들은 기존의 다양한 모기 방제 장치들에 더해 기존의 살충제보다는 생태계와 환경에 악영향을 덜 미치는 방법들을 다양하게 연구하고 있다.

하지만 인간보다 훨씬 이전인 2억 년 전부터 지구상에서 성공적으로 살아온 모기들을 완전히 내몰기 위해서는 앞으로도 꽤 오랫동안의 노력이 필요할 듯 보인다. 올해도 찾아올 모기와의 전쟁에서 부디 무사하시길!

글 : 이은희 과학칼럼니스트 

출처 : 과학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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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095 호/2014-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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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비, 제대로 알고 극복하자!

배는 고픈데 이상하게 속은 꽉 찬 느낌이다. 빵빵한 아랫배의 불편함은 여자라면 한 번 쯤 느껴봤을 변비의 대표적인 증상이다. 환자도 꾸준히 늘고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자료에 따르면 변비 환자는 매년 평균 8%씩 증가해, 2012년 62만 명을 넘어섰다.

변비는 보통 3일에 한 번 이하로 변을 보는 경우를 기준으로 한다. 하지만 건강한 사람도 하루 3번에서 일주일에 3번까지 배변 습관이 다양하다. 횟수보다 변을 볼 때 변이 굳거나 잘 나오지 않아 고통스럽다면 변비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변비 때문에 병원을 찾는 경우는 많지 않다. 대부분 약을 먹거나 민간요법을 통해 해결하려고 하기 때문에 정확한 정보보다 ‘~카더라’ 식의 오해도 적지 않다.

■ 스트레스 때문에 변비에 걸렸다? 스트레스성 변비도 있다

‘스트레스성입니다’라는 말을 듣고 진료실을 나설 때만큼 병원비가 아까 울 때가 없다. 하지만 스트레스 때문에 병이 생긴다는 말은 사실이다. 변비도 그 중 하나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교감 신경이 활성화되면서 소화기관은 운동을 멈춘다. 긴장하거나 잔소리를 들으면 소화가 잘 안 되는 이유다. 잦은 소화 불량은 변비로 이어지는데 변비 뿐 아니라 설사도 잦아진다면 과민성 장증후군을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

다이어트도 변비의 원인이다. 대변이 만들어질 만큼 음식과 수분의 섭취가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외에도 대장이나 직장, 항문의 운동 능력에 이상이 있거나 다른 질환을 치료하기 위해 먹는 약, 당뇨병이나 뇌혈관 질환 등의 증상 중 하나로 생기기도 한다.

변비는 원인이 다양한 탓에 과거부터 오해도 많았다. 1920년대 서양에서는 사람이 서서 다니기 때문에 중력으로 장이 꼬여 변비가 생긴다고 여겨 장을 전부 잘라내기도 했다. 또 장이 길면 대변이 장내 머무는 시간이 길어져 수분 흡수가 많아지기 때문에 변비가 잘 생긴다는 설이 있기도 했다. 하지만 실제 신장이 2m인 사람과 137cm인 여자, 142cm인 남자의 대장 통과 시간을 검사한 결과, 차이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 건강 보조 식품이 변비를 일으킨다? 철분제와 칼슘제를 조심하자

변비로 고생한 적이 없던 사람도 임신 후 변비가 생겼다는 말을 많이 한다. 임신을 하면 호르몬인 프로게스테론이 높아진다. 이 호르몬이 위장 입구의 평활근의 힘을 떨어뜨려 장운동을 약하게 하는 게 주원인이지만 임신 중 먹는 철분제도 장운동을 억제한다.폐경기 골다공증 예방을 위해 먹는 칼슘제도 변비를 일으키기도 한다.

■ 피부 트러블은 숙변의 독 때문이다? 장에 문제가 생기면 뾰루지가 난다

고대 이집트인들도 같은 오해를 했다. 기원전 16세기 이집트의 의학서적인 에베르스 파피루스에도 대변이 정체하면 장내 살고 있는 균이 독성 물질을 분비하는 균으로 변한다고 적혀 있다.

실제로도 변비가 해소되면 뾰루지도 자연스럽게 사라진다. 하지만 오래된 변에서 독성물질이 검출된 적은 없다. 전문가들은 “변비 뿐 아니라 배탈이나 소화가 잘 안될 때도 피부 트러블이 생긴다”라며 “독성물질 때문이라기보다 장이 부분적으로 막히면서 소화와 흡수 작용에 문제가 생겨 나타나는 증상”이라고 설명했다.

■ 변비약은 계속 먹어도 괜찮다? 변비약이 만성 변비 만든다

변비 해소를 위해 가장 흔하게 찾는 것이 약이다. 하지만 변비약도 그 역할에 따라 팽창성, 삼투성, 자극성으로 나눈다. 시중에서 유통되는 변비약의 대부분은 자극성이다. 작용기전이 정확하게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복용하면 위나 소장에서 분해되지 않고 대장의 근육 신경을 자극해 배변을 유도하는 방식이다. 효과는 빠르지만 계속해서 먹을 경우 대장 내 수분이 손실되고 장운동이 둔해지는 무력증이 생겨 오히려 만성 변비를 유발할 수 있다.

팽창성은 약에 포함된 식이 섬유가 부풀면서 변의 부피를 늘린다. 커진 변은 장벽을 벽을 자극해 배변을 유도한다. 식이섬유를 이용하기 때문에 먹고 난 뒤 배에 가스가 찬 느낌은 들 수 있지만 부작용이 적고 변비 초기 환자에게 효과가 있다. 삼투성은 대장 내의 수분 함량을 높여 변을 묽게 만들어 쉽게 배변할 수 있게 돕는다.

■ 식이섬유가 적어서 변비에 걸렸다? 식이섬유 너무 많이 먹어도 탈

일반적으로 변비가 있는 사람은 섬유소를 적게 먹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변비 환자와 그렇지 않은 사람의 식이섬유소 섭취량을 비교해본 결과 큰 차이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식이섬유가 변비 해소에 효과가 없다는 의미는 아니다. 대장 내에서 수분과 결합해 대변의 양을 늘려주고 장운동을 돕는다. 대표적인 식품이 도정이 덜 된 곡류(현미, 통밀)나, 콩, 야채의 줄기, 껍질째 먹는 과일이다.

섭취량은 조금씩 늘리는 것이 좋다. 갑자기 양을 늘리면 배에 가스가 차면서 부글거림이 나타날 수 있다. 특히 콩과 브로콜리는 가스를 많이 만든다. 유산균이 많다는 요구르트도 마찬가지이다. 유제품이기 때문에 많이 먹을 경우 속이 불편하다고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여행지 같이 낯선 곳이나 긴장을 한 상황에서 변비가 생기는 긴장성(스트레스성)변비 환자는 오히려 식이섬유를 피하는 것이 좋다. 긴장성 변비는 늘 장이 수축돼 있기 때문에 많은 양의 식이섬유를 섭취할 경우 오히려 설사를 할 수 있다.

■ 바나나가 변비엔 최고? 변비엔 바나나보다 시금치!

반점이 있는 잘 익은 바나나는 변비에 도움이 된다. 하지만 식이섬유의 양보다 올리고당이 많아서다. 올리고당이 유산균 등 장내 유익균들의 훌륭한 먹이가 돼주기 때문. 하지만 덜 익은 바나나는 오히려 독이 된다. 녹차나 단감에도 들어있는 ‘타닌’ 성분 때문인데 대변의 수분을 빨아들여 변을 딱딱하게 하고 장을 수축시킨다. 또 철분과 결합해 몸 밖으로 배설되기 때문에 빈혈 환자는 특히 피하는 것이 좋다.

오히려 식이섬유가 많은 음식은 100g을 기준으로 말린 표고버섯(55.5g), 시금치(33g), 미역(21g) 등으로 바나나에 비해 4배에서 9배까지 많다. 변비 해소를 위해서는 물도 하루 1.5~2L정도 마시고 적당한 운동과 함께 규칙적인 배변 습관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사실 변비는 불편하긴 하지만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하지만 만성으로 갈 경우 치질이나 염증성 장질환, 드물지만 대장암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전문가들은 “변비를 병으로 인식하지 않고 방치하는 경우가 많은데 오래 참을 경우 치질이나 장폐색, 직장 궤양에서 대장암까지 더 큰 병을 만들 수 있다”고 강조했다.

글 : 이화영 과학칼럼니스트

 

 

 

 

 

 

 

출처 : 과학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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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4-04 18:4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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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4-04 23:3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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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089 호/2014-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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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yword로 읽는 과학] 좀비가전, 냉장고 문이 저절로 스르륵?!

이런 냉장고 어떤가? 양손에 반찬통이라 문 열기가 어려우면 알아서 척척 문을 열어주는 냉장고. 김치면 김치, 회면 회. 넣은 칸마다 음식에 따라 온도를 맞춰서 바꿔주는 냉장고. 20세기까지 냉장고는 그저 음식을 상하지 않게 보관하는 장소에 불과했다. 하지만 냉장고가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은 점점 많아지고 있다.

냉장고는 점점 더 똑똑해져서 보관된 식자재의 유통 기한을 관리하고, 지금 보관한 재료로 만들 수 있는 요리를 알려준다. 앞으로 냉장고는 산지에서 출하되는 제철 채소를 말해주고, 요리 이름을 입력하면 필요한 재료를 인근의 어느 상점에서 가장 싸게 살 수 있는지 검색해줄 것이다. 아니, 계획된 식단에 필요한 재료를 스스로 상점에 주문하고, 결제하는 구매 대행 기능을 갖출 수도 있을 것이다. 식이 요법이 필요한 사람이 먹어서는 안 되는 식품을 꺼낸다면 알람을 울리는 기능도 상상해볼 수 있다.

아마 가까운 미래에 냉장고는 우리들의 영양사이자 식품 구매 대행자가 될 테고, 귀찮은 내부 청소는 내장된 로봇이 알아서 처리하는 능력자가 될 게 틀림없다. 이 모두는 냉장고가 스마트, 그러니까 똑똑해지게 된 덕분인데, 그 비결은 ‘인터넷’이다.

하지만 냉장고가 인터넷에 연결된 이 장밋빛 미래에는 그늘 역시 만만치 않다. 알아서 문 열어주고 온도 맞춰줄 줄 아는 냉장고는 반대로 언제든 제멋대로 문을 여닫고, 작동을 멈춰버리는 악동이 될 수 있으니까 말이다. 소위 ‘어둠의 세력’이 냉장고로 할 수 있는 일을 따져보자.

나와 내 냉장고 정보가 유출되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지금 먹는 마요네즈에는 첨가물이 많으니 자사 제품으로 바꾸라며, 내 냉장고 속 정보를 훤히 다 알고 보내는 기막힌 스팸이 폭주할지 모른다. 그러나 스팸 메일은 애교다. 냉장고를 해킹해서, 설정 온도를 제멋대로 바꾸거나 고장을 낼 수도 있고, 작동을 아예 멈추게 할 수도 있다. 특정 기관과 기업의 업무를 마비시키는 디도스 공격에 내 냉장고가 쓰일 수도 있다.

더 나아가 공격적인 테러리스트들이 냉장고 자체를 원격 폭탄으로 사용하리란 끔찍한 상상도 해볼 수 있다. 이 쯤 되면 인터넷으로 세상에 연결된 냉장고는 미래 사회를 그린 SF 영화의 주인공이 되고도 남을 지경이다.

‘사물 인터넷(IoT • Internet of Things, 생활 속 사물들을 유무선 네트워크로 연결해 정보를 공유하는 환경)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보안에 대한 우려도 함께 커지고 있다. 사물 인터넷 기기는 지난해 87억 개에서 2020년에는 500억 개로 늘어날 전망이다. 세계적인 통신 장비 업체 시스코의 존 챔버스 회장은 사물 인터넷 시장의 규모가 19조 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우리 정부 역시 현재 2조 3천억 원인 국내 사물 인터넷의 시장이 2년 뒤 4조 8천억 원으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하며 앞으로 이를 경제 성장의 동력으로 삼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아마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거의 모든 물건과 기기가 사람을 통하지 않고 서로 연결되고 정보를 공유하는 세상이 곧 도래할 것이다.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2002)’에서 봤던 것처럼 길 가의 광고판마저 나에게 인사를 할 날이 온다는 얘기다.

그런데 이 사물 인터넷은 태생적으로 보안에 취약하다. 스마트 가전을 내세우지만 TV나 냉장고에는 그 흔한 ID나 비밀번호도 없다. 사물 인터넷 기기들은 대개 운영 체제(OS)를 갖추고 있지만 제품 자체에 보안 기능이 없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해커들의 표적이 되기 쉽다.

또 무선 인터넷을 기반으로 하는 기기가 많다는 것도 문제다. 유선과 달리 무선은 IP 차단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접근을 차단하고 좀비화된 기기를 추적하는데 어려움이 있다. 사용 빈도가 낮은 기기나 방치된 기기가 범죄의 도구로 쓰일 경우 피해가 발생해도 제 때에 알고 대처하기 어렵다는 문제도 있다. 기존의 보안 방식은 PC와 같은 전통적인 인터넷 환경에 맞춰 있어 사물 인터넷 기기에 적용하기 어렵고, 아직까지 사물 인터넷과 관련된 보안 표준과 규제가 없는 상황이다.

TV나 냉장고가 해커들의 공격 대상이 될지 모른다는 건 공상이 아니다. 지난 1월 미국의 보안 업체 프루프포인트는 TV나 냉장고와 같은 가정 내 가전을 이용한 사이버 공격 사례를 공개했다. 이들의 발표에 의하면 2013년 12월 23일부터 2014년 1월 6일까지 약 보름간 악성 이메일 75만 건이 발송되었다고 한다.

국내 보안 업체들은 이미 몇 해 전 가정용 오디오나 프린터가 악성 코드에 감염돼 오작동 하는 모습을 시연해 보였다. TV를 해킹하면 시청자의 사생활을 몰래 촬영해 인터넷으로 생중계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스마트TV의 홈쇼핑 방송을 해킹해 시청자가 주문하면 돈이 해커에게 입금되도록 하는 방식의 새로운 피싱이 나타날 수도 있다.

자동차를 해킹하면 달리는 속도나 방향을 해커가 조작해 사고를 유발할 수 있다. 고작 20 달러짜리 회로 기판 하나를 자동차에 연결하면 가능하다. 의료 기기 해킹은 치명적이다. 모바일 전문 보안 업체 룩아웃은 당뇨병 환자에게 인슐린을 주입하는 인슐린 펌프가 해킹에 취약하다고 경고한 바 있다.

영화나 드라마 속에서 테러리스트들은 항공기를 해킹해 경로를 바꾸고 미사일을 엉뚱한 곳에 떨어뜨리게 만든다. 그저 영화 속에서만 있는 일이라고 안심할 수 없다. 온갖 사물이 서로 연결되어 인간의 의지와 상관없이 작동하게 될 때 엘리베이터는 언제든 생명을 위협할 테니까. 보안을 위해 설치한 디지털 도어록이나 CCTV가 도리어 도둑에게 제 발로 문을 열어주고 증거를 지워버릴 수 있다.

사물 인터넷이 만개한 뒤에는 늦다. 해커들의 천국이 되지 않으려면 지금 서둘러야 한다.

※좀비 가전 : 해커들이 PC를 해킹해 악성 코드나 바이러스를 심은 뒤 ‘좀비 PC’를 만들어 조종하는 것처럼 해커의 공격에 감염되어 각종 스팸 메일이나 악성코드를 유포하는 스마트 가전 기기.

글 : 이소영 과학 칼럼니스트

 

출처 : 과학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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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085 호/2014-03-17

[MATH] 트로이 전쟁과 원주율

국제 수학자대회가 2014년 서울에서 개최됩니다. 이를 기념해 과학향기에서는 올 한 해 동안 매월 1편씩 [MATH]라는 주제로 우리생활 속 다양한 수학을 소개하는 코너를 마련했습니다. 기초과학의 꽃이라 불리는 수학이 우리 생활에서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또 우리 주변에 얼마나 많은 수학 원리들이 존재하는지를 이야기로 꾸며 매월 셋째 주 월요일에 서비스할 예정입니다. 과학향기 독자 분들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19세기 말, 하인리히 슐리만(1822.1.6~1890.12.26, 독일의 고대 연구가)이 터키에서 트로이 유적지를 발굴할 때까지 트로이 전쟁은 신화로 여겨졌다. 트로이 전쟁은 여신의 질투를 받은 미녀 헬레나를 둘러싸고 벌어진 고대 서양과 동양 사이의 최초의 세계 대전이다. 아킬레스와 아가멤논과 같은 신과 인간의 중간에 위치한 영웅들의 대결이 실제로 벌어진 역사였던 것이다.

영화 ‘트로이’는 지금으로부터 32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그리스 전역을 통치하길 원하는 미케네의 왕인 아가멤논과 데살리와의 전투 장면으로 시작된다. 아가멤논은 데살리의 왕에게 살육을 원치 않으니 양쪽의 장수끼리 싸워 이기는 쪽이 전쟁에서 이기는 것으로 하자고 제안한다. 데살리에서는 거구의 보아그리우스가 나오고 아가멤논 쪽에서는 아킬레스가 나온다.

그 결과 아킬레스는 단칼에 상대 장군을 죽이고 전쟁에서 쉽게 승리로 이끈다. 이 장면은 트로이 전쟁의 주인공이 아킬레스라는 것을 암시하는 것이고, 신화에 따르면 트로이 전쟁은 세상에 너무 많아진 영웅을 한꺼번에 제거하고 아킬레스의 영광을 위하여 제우스가 치밀하게 만든 결과였다.

얼마 뒤, 지중해의 명실상부한 통치자가 되고 싶은 아가멤논은 그리스 연합군을 이끌고 트로이를 공격하기 위해 출발한다. 그리스 연합군 장군인 아킬레스도 전쟁에 참여하게 되고, 트로이의 왕자인 헥토르도 그리스와의 전쟁이 피할 수 없음을 알고 전쟁 준비를 한다.

아킬레스의 군대가 트로이 군대와 맞서 싸워서 드디어 트로이 해안에 상륙한다. 성 안으로 후퇴한 트로이군은 전쟁에 대한 회의를 연다. 여러 내용이 오가는 가운데 전쟁을 유발시킨 트로이 왕자 파리스는 이것은 국가 간의 전쟁이 아니라 두 남자 간의 문제이고 자신 때문에 트로이 사람들이 죽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한다. 그리고 헬레나의 소유권을 놓고 메넬라오스와 결투를 하겠다고 말한다.

다음 날 아침, 성 앞에서 그리스 군을 기다리고 있던 헥토르와 파리스는 전차를 타고 등장하는 아가멤논과 메넬라오스와 담판을 벌인다. 그들이 타고 있는 전차는 바퀴가 두 개 달린 것이었다. 여기서 잠깐, 인간은 언제부터 바퀴가 달린 것을 탔을까?

트로이 전쟁과 원주율


■ 바퀴의 기원

지금부터 바퀴와 관련된 내용을 알아보자. 지금부터 약 6천 년 전에 고대 메소포타미아 사람들이 처음으로 바퀴라는 대단한 것을 발명했다. 처음에 이것은 딱딱한 나무판을 잘라내어 가운데에 구멍을 뚫어 회전축을 끼운 단순한 것이었으나 점차 3조각의 판자를 금속 띠 판으로 연결시켜 사용했다. 그 후 바퀴의 활용이 많아지며 바빌로니아와 아시리아 사람들은 그것들을 이용하여 짐마차나 전쟁에서의 전차(戰車)를 만들었다. BC 2000년경에는 판으로 된 바퀴를 개량하여 오늘날과 같이 가벼운 살을 가진 바퀴(spoked wheel)가 등장했다.

그림.나무판자를 금속 띠 판으로 연결시켜 짜 맞춘 바퀴
바퀴의 기원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그중에서 가장 설득력 있는 것은 굴림대의 불편함을 해결하기 위하여 연구한 끝에 바퀴가 탄생되었다는 것이다. 굴림대는 무거운 짐을 옮길 때 그 밑에 넣고 굴리는 통나무로, 짐이 이동하면 뒤에 남는 불편함과 통나무이기 때문에 무겁다는 불리한 점이 있다. 이를 개량하려고 막대 같은 굴대(차축)의 양쪽 끝에 원판을 붙이는 착상을 하여 바퀴를 만들게 된 것으로 여겨진다.

그 후 바퀴의 무게를 줄이기 위한 메소포타미아 사람들의 노력으로 살을 가진 바퀴가 발명되었고, 기원전 1600년경에 이집트에 전파되며 유럽 전역에 퍼졌다고 한다. 중국에서도 기원전 1300년경에 살이 있는 바퀴가 달린 전차에 관한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바퀴는 훨씬 전부터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에서도 아주 오래전부터 바퀴가 사용되었음을 말해주는 유물이 발굴되기도 했다.

■ 원주율의 역사

원에 관한 성질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원주율이다. 메소포타미아 사람들의 바퀴와 도르래에 관한 관심은 기하학적으로 원을 공부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원에 관한 지식은 그들보다는 이집트 사람들이 더 많았다. 메소포타미아 사람들은 원의 둘레를 지름의 3배라고 생각한 반면, 이집트 사람들은 원의 둘레를 지름의 3.14배라고 생각했다.

한편 고대 그리스에서는 지름과 원의 둘레에 대한 이 비율은 3.1416에 가깝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원주율 π는 3.1415926535로 시작하여 끝없이 계속되는 무리수이다. π는 원이나 구에서 찾을 수 있는 특별한 값으로 그리스 최고의 철학자인 아리스토텔레스는 원과 구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다.

“원과 구, 이것들만큼 신성한 것에 어울리는 형태는 없다. 그러기에 신은 태양이나 달, 그 밖의 별들, 그리고 우주 전체를 구 모양으로 만들었고, 태양과 달 그리고 모든 별들이 원을 그리면서 지구둘레를 돌도록 하였던 것이다.”

원은 한 평면 위의 한 정점(원의 중심)에서 일정한 거리(반지름)에 있는 점들의 집합이다. 따라서 원은 반지름의 길이에 따라 크기만 달라질 뿐 모양은 모두 똑같다. 그리고 원의 둘레의 길이는 반지름의 길이에 따라 정해진다. 특히 원 둘레 길이와 지름은 원의 크기와 상관없이 일정한 비를 이루는데, 이 값을 원주율이라고 하고 기호 π로 나타낸다. 이 기호는 ‘둘레’를 뜻하는 그리스어 ‘περιμετροζ’의 머리글자로 18세기 스위스의 수학자 오일러(Leonhard Euler, 1707.4.15~1783.9.18)가 처음 사용했다.

반지름의 길이가 주어졌을 때 원 둘레 길이와 원주율 π를 구하려는 노력은 아주 오래전부터 있어왔다. 아르키메데스도 π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그 값을 정확하게 구하기 위하여 많은 노력을 했다. 당시에는 원 둘레 길이를 직접 측정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아르키메데스는 원에 내접하고 외접하는 정다각형을 이용하여 원의 둘레의 길이를 구했다.

즉, (내접하는 정n각형의 둘레의 길이) < (원의 둘레) < (외접하는 정n각형의 둘레의 길이) 이므로 원의 둘레 길이의 근삿값을 구할 수 있었다.

위 그림은 반지름의 길이가 1인 원에 내접하고 외접하는 정사각형을 그린 것이다. 먼저 외접하는 큰 사각형의 둘레의 길이는 OI가 1이므로 다음과 같다.
(□ABCD의 둘레의 길이) = 2 X 4 = 8
내접하는 정사각형의 둘레의 길이를 구하기 위하여 EF의 길이를 구하면 된다. 그런데 △OEF는 OE = OF = 1인 직각 이등변 삼각형이므로 피타고라스의 정리에 의하여 다음과 같이 EF의 길이를 구할 수 있다.
EF = √1²+1² = √2
그러므로 내접하는 정사각형인 □EFGH의 둘레의 길이는 다음과 같다.
(□EFGH의 둘레의 길이) = √2 X 4 ≈ 1.4 X 4 = 5.6
따라서 원의 둘레는 5.6보다는 크고 8보다는 작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반지름의 길이가 1인 원의 둘레는 π의 두 배이므로 π는 2.8보다 크고 4보다 작다고 할 수 있다.

위 그림과 같이 정8각형을 원에 외접하고 내접하게 그리면 조금 더 참값에 가까운 π의 근삿값을 구할 수 있다. 아르키메데스는 이와 같은 방법으로 정96각형을 이용하여 원의 넓이와 둘레의 길이를 구했고, 원주율 π의 근삿값을 3.1408… < π <3.1428… 라고 했다. 아르키메데스의 이런 노력 때문에 오늘날 π를 ‘아르키메데스의 수’라고도 부른다.

수학자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좀 더 정확한 π의 값을 구하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다. 그리고 그런 수학자들 가운데 어떤 이들은 원주율을 기념하기 위하여 3월 14일을 ‘파이 데이(π day)’라고 이름 붙였다. 특히 미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π-Club’이라는 모임에서는 π=3.1415926…로부터 3월 14일 오후 1시 59분 26초에 모여 π모양의 파이를 먹으며 이 날을 축하한다. 그리고 π값 외우기, π에 나타나는 숫자에서 생일 찾아내기 같은 게임과 원과 관련된 놀이기구의 길이, 넓이, 부피 구하기와 같은 퀴즈 대회를 연다.

2005년 10월 20일에 일본 도쿄대학교의 야수마사(Yasumasa Kanada)는 컴퓨터를 601시간 56분 사용하여 π의 값을 소수점 1조2411억 자리까지 얻었다. 이 숫자는 어느 정도일까? 보통 우리가 컴퓨터를 이용하여 문서를 편집할 때 사용하는 A4용지에 맞게 쓴다고 생각해 보자. 그러면 한 줄에 모두 82개의 숫자를 쓸 수 있고, 모두 41줄을 쓸 수 있으므로 A4 용지 한 장에는 3,362개의 숫자를 쓸 수 있다. 결국 야수마사가 얻은 π의 값을 쓰기 위해서는 모두 369,155,265장의 종이가 필요하다. 실로 엄청난 숫자이다. 

한편 영화 ‘트로이 전쟁’은 트로이 목마로 트로이가 불타고, 파리스가 쏜 화살에 발뒤꿈치를 맞은 아킬레스가 죽으며 끝난다.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말이 있다. 영화를 감상할 때, 영화와 관련된 여러 가지 사실을 알고 영화를 감상한다면 보다 즐거운 영화 보기가 될 것이다. 특히 그 속에 숨겨져 있던 수학적 사실을 찾아 이해하며 영화를 감상한다면 만든 이의 의도를 좀 더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 여러분도 영화에 담겨진 수학을 발견하며 즐거워하는 수학자의 기분을 함께 느껴보기 바란다.


글 : 이광연 교수

 

출처 : 과학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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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084 호/2014-03-12

 

[만화] 곤충이 미래의 식량?!

오랜만에 횟집에서 외식을 하는 태연 가족. 싱싱한 회가 한 접시 가득 상에 올라왔는데도 태연은 눈길 한 번 주지 않는다. 회 대신 태연이 허겁지겁 먹고 있는, 아니 흡입하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번데기 볶음! 도대체 얼마나 먹어치웠는지 빈 접시가 상 한쪽에 가득하다.

“이모, 여기 번데기 볶음 추가….”

추가 주문을 하려는 태연의 입을 아빠가 틀어막는다.

“제발 그만!! 딸아, 여기는 횟집이지 번데기집이 아니라고! 너는 도대체 왜 이리로 친환경적이며 미래적 인간이란 말이냐.”

“홍홍. 뭔지는 몰라도 엄청 좋은 얘기로 들려요~. 제가 쫌 미래 지향적이고 세련된 미모이긴 해요. 근데 번데기 먹다가 웬 폭풍 칭찬이실까?”

“곤충을 먹는 게 미래 트렌드가 될 테니, 너야말로 진정 앞서 가는 인류라 할 만하다는 거지. 작년에는 유엔식량농업기구(FAO)가 곤충을 미래의 식량난 해결 대안으로 꼽았고, 미국 뉴욕에선 쇠고기 패티 대신 커다란 귀뚜라미를 넣은 귀뚜라미 버거가 큰 인기를 끌고 있단다.

“예에? 미래 식량이라고요? 벌레는 아프리카 원주민이나 SBS ‘정글의 법칙’에 나오는 병만족만 잡아먹는 줄 알았는데, 완전 신기해요. 하긴, 우리도 번데기를 먹긴 하지만. 그런데 과연 사람들이 곤충을 먹으려고 할까요? 저야 뭐 맛만 좋으면 못 먹는 게 없지만 제 친구들은 모기만 봐도 ‘꺄약~’ 하고 도망가거든요. 게다가 그 쪼끄만 곤충을 먹고 배가 부를지도 의문이에요. 저 지금 번데기 12접시를 먹었는데 간에 기별도 안 간단 말이에요.”

“태연아, 네 위랑 다른 사람들의 위는 근본적으로 사이즈가 많이 달라요. 그리고 곤충은 작기는 하지만, 번식력이 엄청나게 좋은데다 성장도 빨라서 식량으로 충분한 역할을 할 수 있단다. 예를 들어, 아프리카 큰 메뚜기는 성충 한 마리가 한 번에 약 1,000개의 알을 낳고 하루에 몸 크기를 두 배나 키울 수 있지. 또 네가 지금 먹은 번데기의 전 단계인 누에는 태어난 지 20일 만에 몸무게가 1,000배나 늘어날 만큼 빨리 자란단다. 더구나 대량 생산도 쉽고 세대가 짧아서 여러 번 사육하는 것도 가능해요.”

“와, 대박! 그런데 징그러운 건 어떡해요? 영화 설국열차에도 바퀴벌레로 만든 에너지 바가 나오잖아요. 사람들이 그거 보면서 막 우웩우웩 하더라고요. 난 먹어보고 싶던데…, 짭짭~.”

“그거야 뭐, 갈아서 다른 재료랑 섞어 먹거나 하면 되지 않을까?”

“하긴 그러네요. 그런데 또 질문! 소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말고기 등등 맛난 고기들이 세상에 널렸는데 왜 굳이 곤충을 먹어야 해요? 곤충이 특별히 맛있나?”

“물론 아빠는 맛있어. 어릴 때 논에서 메뚜기 잡아다가 엄마가 프라이팬에 살살 볶아주면 그게 어찌나 고소하고 맛있던지, 꿀꺽~ 얘기하니까 또 군침 흐른다. 하지만 곤충을 미래 식량으로 제안한 건 맛 때문이 아니라 식량난 때문이야. 지금 같은 추세로 인구가 계속 증가한다면 2050년 세계 인구는 현재의 70억 명을 넘어 90억 명이나 될 것으로 예상된단다. 지금도 전체 인류의 6분의 1이 굶주리고 있는데 20억 명이나 늘어나면 훨씬 상황이 심각해지겠지? 그렇다고 경작지를 넓힐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설사 넓힐 수 있다 해도 고품질의 동물성 단백질을 구할 방법은 막막하거든.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곤충을 길러 먹자고 제안한 거란다.”

“곤충이 그렇게 영양성분이 좋아요?”

단백질과 몸에 좋은 지방이 풍부하고 칼슘, 철, 아연 등 무기질 함량도 높은데다, 같은 먹이를 단백질로 전환하는 효율성 역시 뛰어나단다. 동남아시아에서 많이 먹는 귀뚜라미는 단백질 전환 효율이 소의 12배, 양의 4배, 돼지와 닭의 2배나 되지. 이 정도면 왜 곤충이 중요한 식량인지 알겠지?”

“와, 제가 번데기를 많이 먹어서 이렇게 쑥쑥 잘 자라는 거였군요! 참, 그런데 아까 저보고 친환경적이라고 하셨잖아요. 그건 또 무슨 얘기예요?”

“그건 소보다 곤충을 키우는 게 훨씬 친환경적이기 때문에 한 말이야. 너 혹시 지구 온난화의 주범 중에 하나가 소의 방귀와 트림이라는 얘기 들어봤니? 소를 비롯한 반추 동물(되새김질하는 동물)은 일 년에 보통 47kg의 메탄가스를 배출해. 다시 말해, 한우 4.2마리가 자동차 1대와 맞먹는 온실가스를 배출한다는 얘기지. 실제로 지구 온난화 요인의 18%가 소 사육 때문이라는 연구 결과도 있단다. 그런데 곤충은 메탄가스 문제도 없고 소처럼 넓은 사육 공간이 필요하지도 않으니 곤충으로 소를 대체 하는 게 훨씬 친환경적이라는 얘기지.

“소가 맛은 참 좋은데, 방귀가 문제였군요. 아빠는 반추 동물이 아니지만 방귀 냄새만 놓고 보면 소 백 마리 못지않아요. 오만 년 삭힌 홍어 냄새가 난다니깐요. 그 신기하고 오묘한 원리는 누가 연구 안 해주나?”

“헐~ 너도 만만치 않거든!”

글 : 김희정 과학칼럼니스트

 

 

 

 

 

 

 

출처 : 과학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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