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169 호/2014-07-09 

비행기 사고 서바이벌 가이드

시속 1000km로 에베레스트 산보다 더 높은 공중을 날아가는 알루미늄 원통 안의 좁은 의자에 앉아 길게는 10여 시간을 보내야 한다면 당연히 마음이 불안하지 않을까. 자동차 사고야 운전을 조심스럽게 하는 식으로 어느 정도 예방할 수 있지만, 비행기 사고는 승객이 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하지만 사고를 예방할 수 없다고 해서 모든 것을 운명에만 맡길 수는 없다. 실제로 비행기 사고의 생존율은 의외로 높다. 2013년 7월 일어났던 아시아나 214편 사고에서도 승무원과 승객이 적절히 대처한 결과 인명 손실을 최소한으로 막을 수 있었다. 비행기가 착륙 도중 활주로에 충돌해 부서지고 화재가 일어나는 상황에서도 총 307명 중 3명만이 사망했다. 그렇다면 비행기 사고가 났을 때 어떻게 해야 불운한 사람에 끼지 않을 수 있을까. 가능한 생존 확률을 높이는 대처 방법을 알아보자.

흔히 비행기의 뒷자리에 앉는 게 생존율이 높다고 한다. 2007년 미국의 파퓰러 메카닉스는 1971년 이래 미국에서 일어난 20건의 비행기 추락 사건을 조사했다. 이들은 비행기의 좌석을 네 구역으로 나눈 뒤 각 구역의 생존율을 구했다. 그러나 20건 중 11건의 사고에서 뒷좌석에 앉은 승객의 생존율이 확실히 높았다. 11건 중에서 특히 7건의 사고에서는 가장 뒤에 앉은 승객이 가장 유리했다. 이 조사 결과만 놓고 보면 뒤쪽에 앉을수록 생존 가능성이 높다는 속설이 사실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이를 뒷받침해 주는 실험 결과도 있다. 대담하게도 아예 실제 비행기를 추락시켜서 위치에 따라 충격을 얼마나 받는지 알아보는 것이다. 자동차의 안정성을 검증하기 위해 하는 충돌 실험과 같다. 다만 비행기 추락 실험은 규모가 자동차에 비할 바 없이 크기 때문에 실제 사례가 많지 않다. 1984년 미국 항공우주국(NASA)과 연방항공청(FAA)이 보잉720기를 추락시킨 적이 있고, 2012년에 다시 NASA가 미국의 디스커버리 채널과 함께 보잉727기를 추락시킨 사례가 있다.

두 번째 추락 실험은 다큐멘터리로도 만들어져 대중에게 공개됐다. 그 결과는 앞선 파퓰러 메카닉스의 조사 내용과 흔히 알려진 속설을 뒷받침하고 있다. 디스커버리 채널은 다큐멘터리에서 비행기가 충돌하는 과정을 상세하게 보여준다. 먼저 비행기의 앞바퀴가 부러지면서 동체가 충격을 받아 조종사와 가장 앞쪽 승객이 탄 부분이 통째로 뜯겨 나간다. 수집한 데이터를 분석하니 가장 앞쪽의 더미(충돌실험용 인형)가 받는 힘은 12G(중력, Gravity)에 달했다. 날개 부근에 탄 더미는 8G, 꼬리 쪽에 탄 더미는 가장 적은 6G의 힘을 받았다. 뒤쪽에 승객이 탔다면 걸어서 비행기를 탈출할 수도 있는 수준이었다.

물론 이건 비행기가 앞부분부터 부딪쳤을 때 이야기다. 지난 번 아시아나 214편 사건처럼 뒤쪽부터 부딪쳤다면 오히려 앞쪽이 안전할 수도 있다. 하지만 비행기가 앞쪽부터 부딪칠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다는 점을 생각하면 뒤쪽이 좀 더 안전하다는 결론을 내는 게 무리는 아니다. 게다가 비행 자료를 기록해 사고 원인을 파악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블랙박스가 있는 곳이 바로 비행기의 꼬리다. 블랙박스의 중요성을 생각하면 그만큼 꼬리가 충격을 덜 받는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아무리 충격을 적게 받는다고 해도 안전띠를 매지 않았다면 소용이 없다. 아시아나214편 사고에서도 승객이 비행기 밖으로 튕겨 나가 사망한 사례가 있었다. 충돌 시에 생존 가능성을 높이려면 안전띠를 매고 ‘브레이스 포지션’(Brace Position)을 취해야 한다. 브레이스 포지션은 두 손을 깍지 낀 채 머리를 감싸고 팔을 앞좌석 등받이에 붙이는 자세다. 앞에 좌석이 없는 경우에는 허리를 숙이고 무릎을 감싼 뒤 머리를 무릎에 대면 된다.

보잉727 추락 실험에서는 이 브레이스 포지션이 실제로 유용한지도 알아봤다. 더미 두 개를 비슷한 위치에 앉힌 뒤 하나는 브레이스 포지션으로, 다른 하나는 곧게 앉아 있는 자세로 두고 비행기를 추락시켰다. 조사 결과 브레이스 포지션을 하고 있던 더미는 종아리에 압박을 받아 뒤로 밀리면서 의자 아래쪽에 발목이 부딪쳤다. 발목 골절을 당할 가능성이 있었다.

반면, 곧게 앉아 있던 더미는 앞좌석 등받이에 머리를 세게 부딪쳤다. 뇌진탕을 당했을 가능성이 컸다. 상체는 급격히 앞으로 기울어지면서 허리에 강한 충격을 받았다. 또한, 허공에 날아다니는 파편이 얼굴과 가슴 부위를 때렸다. 더미 실험을 담당한 신디 비르 미국 웨인 주립대 바이오공학과 교수는 “브레이스 포지션이 머리를 보호할 수 있어 상대적으로 안전한 자세”라며 “사고가 날 경우 브레이스 포지션으로 충격에 대비할 것을 권한다.”라고 말했다.

추락한 비행기가 멈췄을 때 다행히 움직일 수 있는 상태라면 재빨리 밖으로 빠져나와야 한다. 화재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 연기가 나고 있다면 몸을 숙이고 움직여야 한다. 전원 90초 이내에 탈출해야 하는데, 이른바 ‘90초 규칙’이다. 추락한 뒤 화재가 발생하고 90초가 지나면 불이 서서히 타다가 산소가 공급되면서 선실 안이 일순간 화염에 휩싸이는 ‘플래시오버’ 현상이 일어나기 쉽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모든 새 여객기는 승인을 받기 전에 90초 탈출 시험을 통과해야 한다. 비상구가 50%만 열린 상황에서 모든 승객이 90초 안에 탈출할 수 있는지 입증해야 하는 것이다. 2008년 에어버스의 A380기 시험 때도 870명의 승객이 78초 만에 전원 탈출했다. 물론 실제로는 탈출이 매끄럽게 이뤄지지 않는다. 보잉727 추락 실험에서도 비행기의 배선이 튀어나오면서 길을 막아 승객의 움직임을 방해할 수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솔직히 비행기 추락 사고에서 승객이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좌석을 마음대로 골라 앉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앞부터 부딪칠지 뒤부터 부딪칠지도 전혀 예측할 수 없다. 결국 응급 상황에 대비한 훈련을 받은 승무원의 지시에 따라 모범 교본대로 행동하는 것이 가장 생존 확률을 높이는 방법이다. 탈 때 비상구의 위치를 확인해 두고, 산소마스크와 구명조끼의 사용법을 숙지하며, 사고가 예상될 경우 브레이스 포지션으로 대비하는 것이다.

몇 가지 쓸모 있는 행동 지침은 있다. 일단 직항을 이용하는 것이다. 사고는 대부분 이착륙 시에 일어나기 때문에 직항을 이용하면 사고 확률을 낮출 수 있다. 단단한 물건은 충격을 받았을 때 흉기로 돌변할 수 있으니 가급적 몸에 지니지 말자. 짐칸에도 떨어지면 위험할 정도로 무거운 짐을 올려놓지 말자. 그리고 비행 중에도 항상 안전벨트를 차는 게 좋다.

또한, 술은 많이 마시지 말자. 사고가 났을 때 재빨리 대피하려면 맑은 정신으로 있어야 한다. 게다가 기압이 낮은 공중에서는 평소보다 알코올의 영향을 더 받는다. 비행기 밖으로 빠져나온 뒤에는 폭발에 대비해 최대한 빨리 멀어져야 한다. 새어 나온 연료가 완전히 증발할 때까지는 접근하지 않는 것이 좋다. 하지만 구조를 받으려면 비행기 잔해 근처에서 너무 멀어지면 안 된다.

앞으로 비행기를 타야 할 일은 점점 늘어날 것이다. 막연한 두려움으로 벌벌 떨기보다는 생존 지침을 철저히 숙지한 뒤 확률과 맞서 보자.

글 : 고호관 과학칼럼니스트

 

출처 : 과학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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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165 호/2014-07-07

 

냉장고를 이기는 극한생물?!

‘여름 돼지고기는 잘 해야 본전’이라는 말이 있다. 지금처럼 저온 보관이 일상화되지 않았던 시절, 여름은 돼지를 잡기에 적합한 시절이 아니었다. 덥고 습한 우리나라 특유의 기온 탓에 여름에는 도살 직후부터 고기는 부패가 시작됐다. 그래서 모처럼 몸보신한다고 돼지고기를 먹었다가, 식중독에 걸려 오히려 몸이 축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또한 그 시절, 아낙네들은 여름이면 3일에 한 번 김치를 담가야 했다. 더운 날씨는 김치 속 유산균 뿐 아니라 다른 세균들의 번식도 부추겼기에, 김치는 3일이면 물러 버렸고 김치 없이는 밥을 못 먹는 우리네 입맛 탓에 여름철에는 번거롭더라도 김치를 조금씩 자주 담가 먹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먼 조선 시대 이야기가 아니다. 국산 냉장고가 처음 선을 보인 것은 1965년(금성사-현 LG에서 만든 ‘눈꽃냉장고’)이었지만, 냉장고 한 대의 가격이 대졸 초임자의 여덟 달 월급과 맞먹을 정도로 비싸서 이를 갖춘 집은 극히 드물었다. 그리하여 우리네 어머니들이 3일에 한 번씩 김치를 담가야 하는 번거로움에서 벗어난 건 냉장고가 대중적으로 보급된 1980년대부터였다.

냉장고의 보급은 식품 보관에 일대 혁명을 가져왔다. 우리는 이제 매일 조금씩 귀찮게 장을 보지 않아도, 한꺼번에 식재료를 사다가 보관하거나 음식을 한꺼번에 많이 만들어 두는 것이 가능해졌다. 저온 보관은 식품의 신선도를 오래 유지시켜주기 때문이다. 식품을 저온으로 보존하는 기술은 크게 냉동과 냉장법으로 나뉜다. 냉동은 빙점(氷點, 0℃로 물이 얼기 시작하거나 얼음이 녹기 시작할 때의 온도) 이하로 물질을 보관하는 것이다. 냉장은 빙점보다는 높으나 실온보다는 훨씬 낮은 상태(일반적으로 0~10℃)로 보관하는 것이다.

식품을 차게 보존하면 일반적으로 보존 기간이 늘어난다. 그 이유는 첫째, 식재료가 가진 효소의 활성을 억제해 변성을 막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껍질을 벗긴 사과가 갈색으로 변하는 갈변 현상은 사과 속에 포함된 페놀 성분이 폴리페놀 옥시다아제라는 효소에 의해 산소와 반응해 갈색을 지닌 퀴논류로 변화하여 일어나는 현상이다. 하지만 껍질을 벗긴 사과라도 즉시 냉장고에 넣으면 갈변 속도가 현저히 느려진다. 효소에 의해 매개되는 반응은 효소의 활성이 저하되면 반응 속도가 급격히 떨어지게 되는데, 대부분의 효소들이 단백질로 이루어져 온도 변화에 민감하기 때문이다.

둘째, 식품을 차게 보존하면 미생물의 증식도 억제할 수 있다. 앞서 말했듯이 단백질은 온도 변화에 민감하게 영향을 받는데, 미생물 역시 단백질로 이루어진 생명체이므로 온도 변화에 따라 활성도가 달라진다. 대부분의 미생물들은 인간의 체온과 비슷한 온도에서 가장 활성을 나타내며 온도가 떨어지면 활성이 저하된다. 이런 이유로 사람들은 냉장고 속에 넣어둔 음식은 언제나 신선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하지만 세상에는 극한 생물(extrempphiles)이라 하여 도저히 생물이 살아갈 것 같지 않는 고온이나 저온, 고압, 고염분, 낮거나 높은 pH를 지닌 곳에서도 거뜬히 살아가는 미생물들이 존재한다. 특히나 미생물은 선호하는 생장 온도에 따라 저온균(psychrophile, 15~20℃ 이하), 중온균(mesophile, 20~45℃), 고온균(thermophile, 45℃ 이상)으로 분류되는데, 시원한 것을 좋아하는 저온균들은 빙점에 가까운 냉장실 속에서도 충분히 생존 가능하며 그 중 일부는 오히려 냉장실 속에서 활발하게 증식하기도 한다.




실온에서 장염 비브리오균의 번식 속도
(출처 : 국가정보포털, http://health.mw.go.kr/AttachFiles/Content/Image/s02_103_i02.jpg)


예를 들어 식중독을 일으키는 장염 비브리오균은 최적 조건에서는 10분에 1번씩 분열할 정도로 번식력이 왕성하다. 상온에 방치한 음식물 중에 장염 비브리오 균이 단 1마리라도 있을 경우, 겨우 4시간 뒷면 이들은 100만 마리 이상으로 불어난다. 따라서 상온에 몇 시간 동안 방치했던 음식물(특히 수산물)이라면 이미 장염 비브리오균은 식중독을 일으키기 충분한 수로 번식한 뒤라 아무리 냉장고 속에 넣어도 식중독을 예방할 수 없다.

역시 식중독을 일으키는 리스테리아균 역시 추위에 강해 냉장고는 무용지물이다. 따라서 이들로 인한 식중독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더운 여름철에는 단시간이라도 냉장 상태가 유지되지 않았던 우유나 유제품, 육류나 생선류는 가급적 먹지 않는 것이 좋다. 심지어 여름철에는 고기의 핏물을 빼기 위해 찬물에 담가 놓는 경우라도 때로는 위험할 수 있으므로, 이 경우에라도 고기를 담근 즉시 그릇째 냉장실에 넣어두는 것이 좋다.

이런 균들은 저온 상태에서 단지 생존이 가능할 뿐이지만, 개중에는 저온 상태에서 오히려 잘 자라는 별종들도 존재한다. 여시니아균의 경우, 빙점에 가까운 저온에서도 얼마든지 번식할 수 있어서 여시니아균으로 오염된 물과 우유, 유제품, 육류 등은 냉장고 속에 넣어두어도 계속해서 번식하여 숫자를 늘린다. 또한 곰팡이의 일종인 푸른곰팡이는 10℃이하 저온에서 활발하게 번식하므로 신선한 상태에서 냉장고 속에 넣어둔 채소나 과일, 식빵이라 할지라도 시간이 지나면 이들에게서 푸르게 피어난 곰팡이 자국을 발견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렇다면 저온 세균만 주의하면 냉장고에 보관한 음식을 믿을 수 있는 것일까? 아쉽지만 이 질문에 대한 답도 ‘No’다. 식중독은 살아있는 세균이나 노로바이러스처럼 미생물 그 자체가 원인이 되어 일어나는 경우도 있지만, 미생물이 만들어 분비한 독소가 원인이 되어 발생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것이 황색포도상구균이 만들어낸 독소다. 황색포도상구균은 저온에서 생존이 어려우며 특히나 조리를 위해 끓이게 되면 바로 사멸한다. 하지만 이들이 만들어낸 장독소는 냉장고 속에 넣어두어도 파괴되지 않으며, 심지어 이들은 100℃에서 60분간 끓여야 겨우 없어질 정도로 내열성이 강하다. 따라서 이미 황색포도상구균이 자라고 있던 식재료는 저온 보관해서 익혀 먹는다고 해도 식중독을 예방하기 어렵다.

냉장고는 식품이 본래 지닌 효소의 활성을 저해하고 미생물의 활동을 억제시켜 식품의 신선도를 유지시켜주는 유용한 존재다. 이 유용한 존재가 계속해서 우리 삶에 도움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는 꼭 기억해 두어야 할 것이 있다. 냉장고의 기능은 원래 신선했던 식품의 신선도를 ‘조금 더 오래’ 유지시켜줄 뿐, ‘계속’ 유지시킬 수는 없으며, 처음부터 미생물에 상당히 오염된 음식물이라면 이를 원래대로 되돌려 놓을 수도 없다는 사실이다. 그 것만 주의한다면 우리는 더운 여름철에도 기름진 돼지고기와 신선한 생선회를 실컷 먹고 난 뒤 입가심으로 얼음처럼 시원한 수박과 달콤한 아이스크림을 얼마든지 음미할 수 있다. 이 평범한 일상은 천하를 호령하던 진시황도 누리지 못했던 호사인 것이다.

글 : 이은희 과학칼럼니스트

 

출처 : 과학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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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164 호/2014-07-02

 

우리 가족의 재밌는 ‘과학캠핑’ 즐기기

해가 지면 귀뚜라미 소리를 들으며 모닥불을 지피고 밤에는 수많은 별을 지붕 삼아 누웠다가 아침이면 새소리와 함께 자연 속에서 잠을 깬다. 각박한 도시 생활에 지친 사람이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꿈이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치 않다. 녹지가 부족한 도심에서는 풀벌레 소리를 스마트폰 앱으로 대신해서 들어야 한다. 아파트 베란다는 위아래 집이 붙어 있고 환기 장치가 없어서 모닥불은커녕 가스레인지에 고기를 굽기도 힘들다. 밤하늘에는 별 하나 보이지 않고 새벽부터 크고 작은 차들이 굉음을 내며 지나가느라 단잠을 깨운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캠핑’이다. 짧디 짧은 하루 이틀 밤이지만 숲에서 들판에서 마음껏 숨 쉬고 즐기며 기운을 얻고 일터로 돌아가는 정신적 치유의 행위다. 회색을 견디기 힘든 사람들이 초록과 파랑을 즐기기 위해 일주일을 기다리며 마음의 여유를 가질 수 있게 하는 묘약이다.

이제 우리나라 캠핑 인구는 연간 300만 명 규모를 넘어섰다. 유행이 되면 으레 경쟁이 심해지듯 캠핑을 떠나기 전에 구비해야 할 것들이 너무나 많아졌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돗자리 펴놓고 바닥에 앉아 프라이팬에 삼겹살을 굽는 풍경이 보통이었지만, 지금은 집채만 한 텐트와 접고 펴기 쉬운 탁자와 의자를 가지고 다니는 것이 일반적이다.

장비만 잔뜩 갖췄다고 캠핑이 편한 것은 아니다. 차에서 짐을 내리는 순간부터 마음껏 쉴 수 있는 펜션이나 호텔과 달리 캠핑은 하나부터 열까지 자기 손으로 직접 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요령이나 노하우도 중요하지만 과학적인 시각과 지식을 갖추는 것도 캠핑 준비의 완벽함뿐만 아니라 즐거움과 매력을 높여준다. 도착부터 복귀까지 각 단계마다 필요한 지식도 장비와 함께 미리 준비해보자.

첫째는 ‘집터 고르기’다. 하룻밤을 보내려면 텐트부터 제대로 쳐야 한다. 자연의 날씨와 기온은 변화가 심하기 때문에 집터도 세심하게 골라야 한다. 한쪽이 움푹 꺼지거나 기울어지지는 않았는지, 비가 왔을 때 물이 잘 빠질 만한지, 땅의 상태부터 살핀다. 토양은 크게 잔디밭, 돌밭, 흙밭, 모래밭으로 나눌 수 있다.

잔디밭은 의자나 돗자리를 펴놓기 좋고 팩이 텐트를 지탱하는 힘도 적당하다. 그러나 물이 잘 빠지지 않을 위험이 있다. 뿌리를 상하게 하므로 배수로를 파는 것도 금물이다. 돌밭은 바위를 잘게 부순 파쇄석을 많이 쓴다. 그러나 요즘에는 건물 철거에서 나온 콘크리트 폐기물을 사용하는 곳도 있어 위험하다. 차라리 구멍이 송송 뚫린 벽돌 바닥을 추천한다.

흙밭은 자연 상태와 가깝지만 비가 오면 진창으로 변하기 때문에 생활이 어렵다. 모래밭은 물이 잘 빠지지만 팩이 쉽게 빠져서 바람이 세게 불 때는 무조건 피해야 할 곳이다. 요즘은 흙밭 위에 ‘마사토’라는 일본 이름으로 불리는 화강토나 굵은 모래를 깔아둔 곳이 늘어나고 있다.

둘째는 ‘방위 정하기’다. 캠핑에서 햇볕은 아군이 되기도 하고 적군으로 돌아서기도 하므로 상황에 따라 적합한 장소를 골라서 적당히 이용해야 한다. 위치와 더불어 동서남북을 잘 판단한다면 텐트 생활이 한결 쾌적해진다. 스마트폰마다 나침반을 비롯해 온갖 기능이 있지만 배터리가 다 되면 무용지물이다. 주변 사물을 관찰해서 방위를 알아내는 정도는 할 수 있어야 자연 속 캠핑이라는 의미가 커진다.

해는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진다. 해를 정면으로 바라보면 오전에는 자신의 오른편, 오후에는 왼편이 남쪽이다. 해는 정오에 가장 높이 위치하므로 현재 시간을 대입하면 남쪽과 해의 거리를 알아낼 수 있다. 오후 3시에 캠핑장에 도착했다면 손가락으로 해를 가리킨 후 손 뼘을 벌려 왼쪽으로 두세 뼘 정도 옮기면 그쪽이 남쪽이다. 아날로그시계를 차고 있다면 몇 시이건 상관없이 해가 있을 때 시침, 즉 작은바늘이 태양을 향하도록 몸을 돌린 후 숫자 12와의 거리가 짧은 쪽의 각도를 보면 그 절반 지점이 가리키는 방향이 남쪽이다.

즉석에서 해시계를 만들 수도 있다. 평평한 땅에 짤막한 나무 막대를 세우거나 꽂은 후 그림자의 끝부분에 표시를 한다. 10분 후 다시 표시를 한 후 두 점을 연결해서 직선을 그으면 동서 축이 된다. 여기에 수직선을 그으면 남북을 쉽게 알아낼 수 있다. 밤에는 달과 별을 이용한다. 초승달이 떴다면 뾰족한 두 끝을 연결해서 지평선과 만나도록 가상의 선을 그어 내린다. 거기가 남쪽이다. 북두칠성 앞부분의 두 별을 이어서 선을 그으면 두 별 사이 거리의 5배 쯤 되는 곳에 북극성이 있다.

셋째는 ‘불 피우기’다. 특히 탁탁 소리를 내며 타들어가는 나무 장작의 불꽃을 바라보고 있으면 일주일 동안의 고난과 시름이 눈 녹듯 사라진다. 꼬치에 음식을 꿰어서 불에 익혀 먹는 것도 캠핑의 큰 재미다. 그러나 불을 피우는 것은 위험을 동반하기 때문에 언제나 주의해야 한다. 아이들에게는 절대로 불과 관련된 일을 부탁해서는 안 된다. 불을 붙이거나 장작을 넣는 것은 언제나 어른들의 몫이다.

불을 붙이려면 부싯깃, 불쏘시개, 장작의 순서대로 불을 붙이는 것이 좋다. 부싯깃은 잘게 찢은 종이, 화장지, 마른 풀, 마른 나뭇잎과 같이 조직이 촘촘하지 않고 습기가 없는 물질을 고른다. “옛날 사람들은 원래 이렇게 불을 붙였어” 하며 나뭇가지를 비비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적합한 재료 없이는 기진맥진해 쓰러지기 쉬우니 전혀 추천하지 않는다.

성냥이나 라이터가 아닌 현대적인 부싯돌을 이용해 부싯깃에 점화를 하는 것도 캠핑의 멋이다. 원자번호가 58번인 희토류 세륨(Ce) 65%에 철(Fe)을 35% 섞어 만든 페로세륨 합금이 주로 쓰인다. 라이터 속 부싯돌도 페로세륨으로 만든다. 세륨은 공기에 노출될 경우 섭씨 150도의 저온에도 쉽게 발화된다. 탄소강 조각을 긁을 때 불꽃이 튀는 이유다. 조선시대에는 석영 계열의 광물질에 쇠를 긁는 방식으로 불을 붙였다.

넷째는 ‘주변 관찰하기’다. 저녁이면 집집마다 텐트 앞에 불을 피우고 고기를 굽지만 아침의 캠핑장은 텐트를 뒤집어 말리는 가족, 라면을 먹는 아저씨, 웃으며 뛰어다니는 아이들, 커피 잔을 들고 담소를 나누는 사람들이 한데 섞여 복잡한 풍경을 연출한다. 이 시간을 그냥 보내는 것보다는 주변 산책을 하며 동물과 식물을 관찰하는 시간을 가지는 편이 유익하다. 자연휴양림 인근에 조성된 캠핑장은 숲 체험을 하거나 숲 해설사에게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 오전 시간을 보내기 적합하다.

숲 체험에서는 몸에 유익한 피톤치드 성분을 들이마시며 삼림욕을 하기도 하지만 갖가지 식물을 바라보고 만져볼 수 있어 의외의 즐거움을 준다. 곤충이라면 질겁하는 아이들도 숲에서 만난 곤충은 크게 무서워하지 않고 호기심을 가진다.

밤에 늦게 자는 습관이 있다면 오전이 아닌 한밤중을 관찰의 시간으로 활용하는 것이 좋다. 모닥불이 꺼지는 12시 이후 하늘 곳곳에 떠 있는 별을 올려다보면 혼자서 누리는 고요함과 충만함의 매력을 알게 된다. 눈이 어두움에 적응해야 별빛을 알아볼 수 있으니 스마트폰 화면이나 전등과 같은 조명 기구는 끄거나 그 밝기를 최대한으로 줄여야 한다.

글 : 임동욱 과학칼럼니스트

 

출처 : 과학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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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2155 호/2014-06-23

 

[Keyword로 읽는 과학]외상 후 스트레스(PTSD), 이해와 믿음으로 극복

2014년 4월 16일, 세월호가 침몰했다. 실종자 304명 중 292명(6월 17일 기준)이 주검으로 돌아왔다. 생존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담당자들의 무책임한 행동과 국가의 무능함에 온 국민은 슬픔을 넘어서 분노했다. 국가는 최선을 다하고 있다며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치료를 위해 전문가를 투입하고 있지만, 유가족과 생존자가 상담에 응하지 않는다고 한다. 단원고를 위기 극복 연구학교로 지정했다는 발표도 이어졌다. 지금 생존자와 유가족은 어떤 아픔 가운데 있는 걸까.

■ 끝없는 절망의 시간이 온다

재난 직후(3~7일) 사람은 아픔과 피곤함도 잊고 초인적인 힘을 발휘한다. 세월호가 침몰한 직후 실종자 가족은 잠도 못 자고 밤낮을 울며 실신 직전의 상태가 돼도 실종자가 발견됐다는 소식에 팽목항으로 뛰었다.

시간이 지나면서(사고 후 1~3개월) 초기의 에너지는 점점 줄어들지만 유가족은 체육관에 모여 있으면서 서로를 위로하고 격려한다. 매스컴과 국민의 관심이 집중되면서 사고를 극복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도 갖는다. 친구에게 구명조끼를 건네고 죽은 아이의 유가족은 살아남은 이를 보며 우리아이 몫까지 열심히 살아달라며 진심어린 격려를 보낸다. 살아남은 아이도 용기를 얻고 열심히 살겠노라 다짐을 한다.

문제는 다음 단계다. 사고가 난 뒤 2~3여 개월이 지나면 끝없는 절망기가 찾아온다. 매스컴과 주변의 관심이 멀어지면서 자신들이 단순한 호기심의 대상이었다는 사실에 실망한다. 각자의 공간으로 돌아가면서 공동체가 아닌 개인의 문제라는 생각에 막막하고 두려워진다. 잃은 가족과 함께 했던 공간에서 그리움과 슬픔은 더욱 커진다. 그동안 잊고 지냈던 피로도 몰려들면서 두려움, 죄책감, 허무함과 같은 여러 감정이 뒤섞이며 깊은 슬픔에 빠진다. 유가족의 잇단 자살 기도가 그 예다.

친구를 구하려다 죽은 아이의 부모는 만약 내 아이가 친구에게 구명조끼를 벗어주지 않았더라면, 내 아이가 살았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원망과 그리움이 커진다. 또 생존한 아이는 ‘그 친구가 살았어야 했는데’라는 미안함과 죄책감에 휩싸인다. 하지만 아무도 자신의 감정을 입 밖으로 낼 수 없다.

유정 한국사회과학자료원 연구원은 “이 시기에 자신의 감정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회복의 중요한 시작”이라며 “전문가가 필요한 시점은 이 때”라고 말했다. 이어 “하지만 아직 외상이 진행 중인 유가족에게 사고 직후 전문가가 찾아가 슬픔에 대해 이야기하도록 강요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지적했다.

이 시기에는 재경험 현상(플래시백)도 두드러진다. 생존자는 사건과 연관될 수 있는 물건이나 상황, 냄새나 촉각만으로도 사고가 반복적으로 떠오르거나 악몽을 꾼다. 대구 지하철 사고의 트라우마 극복 과정에 대해 다룬 논문 ‘트라우마 내러티브 재구성과 회복효과, 2010’을 보면 사고 이후 노래를 못하게 된 성악과 학생의 상담 내용이 담겨있다. 사고 당시 다른 사람보다 숨을 잘 참아 기관지 손상이 적었음에도 더 이상 노래를 못하게 된 이유는 고음이나 음을 길게 끌기 위해 숨을 참을 때마다 사고의 고통이 떠올라서였다. 전문가들은 “일본 쓰나미 생존자의 경우 김치찌개에 올려진 두부를 보고 쓰나미에 휩쓸린 사람들이 생각나 구토 증세를 호소하기도 한다.”라고 말했다.

또 신경이 예민해져 작은 자극에도 과하게 반응하게 된다. 사고와 관련된 것을 피하거나 외부와의 관계를 단절시키는 경향도 나타난다. 이 때문에 주변 사람이 도움을 목적으로 사고에 대해 이야기 해 보라고 묻거나 성급한 충고를 하는 것은 피해야 한다. 오히려 당사자가 이야기하고 싶을 때 귀 기울여주고 언제나 당신이 옆에서 지원해준다는 믿음과 신뢰를 주는 것이 중요하다.

■ 국가에 대한 신뢰 회복과 온 국민의 이해 필요해

끝없는 실망 끝에는 회복기(사고 6개월~1년 후)가 온다.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사고를 경험의 일부로 받아들이면서 이를 극복하고 새 삶을 꾸리겠다는 의지가 생기는 시기다. 사고를 잊고 마음의 평화와 안정을 찾는다는 의미가 아니다. 사고는 기억의 일부로 남는다. 혼란과 갈등도 계속된다. 매년 4월 16일이면 평소보다 더 우울한 시간이 찾아오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이 시기에 내면의 죄책감과 불안감, 슬픔을 딛고 일어서야 심리적인 회복이 된다.

충격이 너무 커 경험의 일부로 받아들이지 못한 경우, 해리장애가 나타나기도 한다. 사고에 대한 기억만 지워져 사고 자체를 기억하지 못하거나 사고의 기억을 ‘나’의 경험과 분리시켜 사고는 기억하지만, 내가 겪은 사고는 아니라고 생각하는 정신분열 증세가 나타나기도 한다.

따라서 회복기에는 국가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국가가 그들을 지켜줄 수 있다는 신뢰를 주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또 정부는 사고 경험자가 다시 삶을 꾸려갈 수 있도록 지원하되 아픈 사람이라는 낙인을 찍지 않아야 한다.

미국 정부는 9.11 테러 이후 전문가를 소집해 교통과 바다 생태계, 건축, 시민들의 충격 등 전 분야에 걸쳐 10년간 뉴욕시가 입은 피해에 대해 조사했다. 그동안 정부는 피해자들이 다시 삶을 꾸릴 수 있도록 전폭적으로 지원했다. 심리 치료는 물론 직업을 바꾸고 싶다고 하면 새로운 것을 공부할 수 있도록 해주고 다른 주로 이사를 원하는 이에게는 주거를 제공했다. 혼자 있는 것이 두렵다는 이에게는 후견인도 지원했다.

또 매년 9월 11일이면 대통령이 TV 연설을 통해 나라가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말로 시작하여, 우리는 무너지지 않고 다시 일어설 것임을 강조하며 국가에 대한 신뢰를 구축해갔다.

반면 우리나라는 국가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날이 갈수록 커져 생존자와 유가족뿐 아니라 온 국민이 세월호 사고의 외상을 겪고 있다. 생존자를 위한 국가의 지원은 단원고를 위기 극복학교로 지정해 낙인을 찍는 일부터 시작했다. 고등학생은 성인과 달리 가치관이나 자신만의 세계가 완성되지 않은 상태다. 단원고 학생들은 이 상황에서 일어날 것이라 상상조차 못했던 사고가 벌어지면서 자신들이 믿고 있는 모든 것이 무너졌다. 유정 연구원은 “어른이 외상을 극복해가는 과정을 집을 보수하고 수리하는 과정이라고 한다면 학생들은 건물을 허물고 다시 짓는 재건축”이라며 “위기 극복 학교 지정은 다시 자신만의 새로운 집을 짓는 아이들의 토대에 ‘어딘가 아픈 사람’이라는 낙인을 찍는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오히려 외부 전문가가 아닌 학교 선생님이나 지역 사람들의 교육을 통해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치유해갈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전문가들은 “학교에 상담실을 늘리거나 수업의 일부를 활용해 학교 선생님과 학생들이 서로의 감정에 대해 편하게 말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외부의 의식을 덜하면서 다시 축구도 하고 친구들과 수다를 떨며 자연스럽게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게 하는 것이 좋다는 것이다.

미국이 9.11 사건을 극복하는 데는 국민들의 힘도 컸다. 피해자에 대한 정부의 지원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고 희생자를 추모하는 의미로 전 국민이 추모 촛불 점등을 하는 등 그들의 슬픔을 함께 하고 격려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이해를 받고 있음을 느끼는 것도 생존자의 회복에 중요한 요건”이라며 “그들을 잊지 않는 것, 그들 곁에 우리가 있다는 믿음을 줘야 한다.”라고 조언했다.

모든 이들이 이해와 믿음으로 건강하게 회복할 수 있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글 : 이화영 과학칼럼니스트

 

출처 : http://scent.ndsl.kr/sctColDetail.do?seq=5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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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154 호/2014-06-18

 
어둠 이기는 빛, 과하면 공해가 된다

빛과 어둠의 두 가지 중에서 하나만 골라야 한다면 당신의 선택은 무엇일까. 대부분의 문화권에서 빛은 언제나 생명, 희망, 청결, 치유, 기쁨을 상징한다. 이와 반대로 어둠은 죽음, 절망, 고난, 상처, 슬픔을 나타낸다. 빛과 어둠 중에서 고르라면 보통은 빛을 선호할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세상이 바뀌었다. 조금의 빛도 들어오지 않도록 창문을 꼭꼭 가리고 그것도 모자라 눈가리개까지 한 채 캄캄한 방안에 머무르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빛공해’ 또는 ‘광공해’를 피하려고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법률적으로는 인공조명의 부적절한 사용으로 인해 과도한 빛이 생기거나 정해진 영역 밖으로 누출되는 빛이 건강하고 쾌적한 생활을 방해하는 상태를 빛공해로 규정한다.

전기 장치와 조명 기술이 발달하면서 인간이 만들어내는 빛의 세기도 함께 증가했다. 수십 년 전에는 촛불에 의지해 어두운 밤을 보냈지만 지금은 촛불 수백 수천 개에 해당하는 강렬한 빛을 아무렇지도 않게 켜고 산다. 촛불 하나 정도의 밝기를 1칸델라(cd, 광도의 SI단위)로 정하면 컴퓨터용 모니터는 400칸델라가 넘는다.

가정용 대형 LED TV의 밝기는 그보다 10배 밝은 4천 칸델라 수준이다. 거실에 다 들어가지도 못할 정도의 많은 촛불을 켠 수준의 밝은 화면을 매일 밤 바라보며 살고 있는 셈이다. 옥외 광고판은 더하다. 도심 곳곳에서는 8천 칸델라가 넘는 초대형 화면이 현란한 영상으로 사람들의 시선을 유혹한다. 자동차의 앞길을 밝히는 헤드라이트는 최소 기준이 1만5천 칸델라에 최대는 11만 2천5백 칸델라나 된다.

수만 년에 달하는 기나긴 역사를 지나며 인간의 신체는 낮과 밤이라는 고정된 주기에 적응해왔다. 해가 져서 어둑어둑해지면 저녁을 차려먹고 곧바로 잠자리에 들었다가 해가 떠서 창밖이 훤해지면 잠에서 깨어 하루를 시작하는 패턴이다. 캄캄해야 할 야간에 너무 밝은 빛을 쬐게 되면 고유한 신체 리듬이 깨져 건강에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 시끄러운 소리가 반복되면 소음 공해, 불쾌한 냄새가 지속되면 악취 공해라 부르는 것처럼 너무 밝은 빛으로 인해 생활에 방해를 받는다면 빛 공해라 부를 만하다.

빛공해는 크게 다섯 가지의 피해를 준다. 우선 ‘하늘 밝아짐’ 현상을 꼽을 수 있다. 빛이 밝으면 밤하늘의 별을 보는 데도 문제가 있다. 도심의 불빛으로 인해 밤하늘의 어둠이 영향을 받는 현상을 ‘광해’라 하는데 광해가 심해져 밤하늘이 밝아지면 별은 자취를 감춘다. 어린 시절에는 쉽게 보던 은하수를 더 이상 관측할 수 없는 것은 대기 오염의 영향도 있지만 빛공해도 큰 몫을 차지한다.

둘째는 ‘눈부심’ 현상이다. 빛이 너무 밝으면 순간적으로 시각이 마비되기 때문에 안전사고의 위험이 높아진다. 약한 빛에는 불쾌한 기분이 드는 정도지만 빛의 세기가 강해질수록 사물을 분별하기 어려워지고 일시적으로 눈이 멀기도 한다.

셋째는 ‘빛 뭉침’ 현상을 꼽을 수 있다. 조명이나 광고물이 밀집돼 강한 빛을 내면 시선을 분산시키고, 판단력을 저하시켜 사고 위험을 높인다. 한데 뭉쳐 있는 조명 기구들 중 불필요한 것들은 소등하거나 제거하는 것이 좋다.

넷째는 ‘빛 침투’ 현상이다. 애초 의도한 범위를 벗어나 빛이 넓게 퍼지면 동물 생태계를 교란시키고 주택 거주자의 취침을 방해한다. 잘못된 가로등 방향으로 인해 집안으로 밝은 빛이 들어오는 사례가 여기에 속한다. 호숫가에 밤새도록 가로등을 켜놓으면 물 속 동물성 플랑크톤이 성장하지 못해 녹조류가 급증하고 수질이 악화된다. 논밭 주위에 밝은 전등을 켜놓으면 작물의 성장이 크게 저하된다.

다섯째는 ‘과도한 빛으로 인한 부작용’이다. 필요 이상의 조명을 사용하게 되면 그만큼 많은 에너지를 소모할 수밖에 없으며 인간의 건강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칸델라의 빛이 1m 밖에 도달할 때의 조도를 1룩스(lx, 조명이 밝은 정도를 말하는 조명도의 단위)로 정했을 때, 취침 환경의 조도가 5룩스만 넘어도 잠을 제대로 못 자게 돼, 이튿날 인지기능이 눈에 띄게 달라질 정도로 뇌에 문제가 생긴다. 신체적으로도 마찬가지다. 빛공해에 노출되면 결막충혈, 안구 건조, 눈 피로감, 눈 통증, 자극감 등의 증상이 나타난다. 밤새 불을 켜둔 방에서 자는 아이 중 절반 이상은 16세 이전에 근시가 된다.

빛공해는 암도 일으킨다. 이스라엘의 조사에 따르면 빛공해가 심한 지역에 사는 여성은 유방암 발생률이 일반인보다 73%나 높다. 과도한 빛이 몸속 호르몬 중 암 발생을 막는 멜라토닌의 분비를 막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야간 조명이 강한 지역을 조사했더니 유사한 결과가 나타났다.

빛공해의 심각성을 처음 제기한 사람은 1910년대 미국의 천문학자 지디언 리글러(Gideon Riegler)다. 당시 일반인들은 빛공해가 무엇인지도 모르던 시절이다. 천문학자들은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외딴 산골이나 바닷가에서 관측을 하기 때문에 빛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빛공해에 대한 일반인의 인식이 바뀌어 과도한 빛 사용을 법적으로 제한하기 시작한 것은 그로부터 수십 년이 지난 후다.

국제조명위원회(CIE)는 4가지 종류의 환경 구역에 따라 빛의 세기를 달리할 것을 권장한다. 제1종은 국립공원과 같은 자연환경 보전 지역으로 건축물과 광고물의 평균 휘도(輝度, 광원의 단위 면적당 밝기의 정도)가 0칸델라로 제한된다. 제2종은 농림 지역과 녹지 지역으로 평균 휘도가 건축물은 1m²당 5칸델라, 광고물은 50칸델라를 넘지 못한다. 제3종은 주거지역으로 건축물 15칸델라, 광고물 400칸델라를 넘어선 안 된다. 제4종은 야간 활동이 활발한 상업지역이지만 건축물은 50칸델라, 광고물은 800칸델라, 대형 광고물도 1천500칸델라 이하를 권장한다.

우리나라도 2013년 2월에서야 ‘인공조명에 의한 빛공해 방지법’을 시행했다. 하지만 도심 지역의 건축물 조명 중 70% 이상이 기준치를 초과했다. 전광판은 87%가 규정을 위반할 정도로 조명 사용이 과도한 상황이다. 빛공해를 호소하는 민원도 2005년 28건에서 2011년 535건으로 크게 늘어나는 추세다.

게다가 요즘 들어 법의 테두리를 벗어난 새로운 종류의 빛공해가 등장했다. 손에 들고 다니며 잠들기 직전 침대 맡에서까지 들여다보는 스마트폰이 주범이다. 스마트폰의 화면은 가장 어둡게 조정해도 80칸델라 수준이며 최대 밝기에 놓으면 500칸델라를 훌쩍 넘는다. 손바닥만한 화면에서 컴퓨터 모니터보다 밝은 빛이 나오기 때문에 빛공해로 인한 부작용도 그만큼 강력하다.

밤늦게까지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린 아이들은 수면 장애와 학습 부진에 시달리기도 한다. 어른들도 빛공해에 취약하기는 마찬가지다. 침대에서까지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다가 불면증에 걸린 사람들의 하소연이 병원마다 줄을 잇는다. 게다가 잠자리에 든 이후 아주 잠깐 스마트폰의 빛을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숙면 가능성은 크게 낮아진다. 침실의 불을 끈 이후에는 아주 작은 불빛도 접할 수 없도록 두터운 커튼을 치고 모든 전자 제품의 전원을 끄는 것이 좋다.

늦은 밤 TV 시청이나 스마트폰 생활로 인해 종달새 족에서 올빼미 족으로 바뀐 사람들은 어떻게 제자리로 돌아와야 할까. 2013년 8월 미국 콜로라도대학교 연구진은 생체시계를 정상으로 되돌릴 수 있는 비결을 공개했다. 인공적인 불빛이 전혀 없는 산속으로 캠핑을 떠나 태양빛과 모닥불에만 의지해 일주일 동안 지내는 것이다. 실제 실험에 참가한 사람들은 예외 없이 비슷한 시간에 잠이 들었고 일출 시간에 맞춰 자동적으로 눈이 떠졌다.

간단한 방법이지만 바쁜 현대인들로서는 실행하기 쉽지 않다. 그렇다고 최근 환경부가 발표한 ‘빛공해 방지 종합계획’에 따라 2013년도 빛공해 기준 초과율 27%가 오는 2018년도까지 절반인 13%로 줄어들 때까지 기다려야 할까. 불필요한 조명을 끄고 스마트폰 사용 시간을 줄이는 방법만으로도 눈에 띄는 효과가 나타난다니 오늘밤부터 실천에 옮겨보자.

글 : 임동욱 과학칼럼니스트

 

출처 : 과학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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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18 19:2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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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19 10:0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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