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아픔 - 박경리 생명 에세이
박경리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04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페이지 넘기기가 쉽지 않은 책이었습니다.  많이 무겁고 그만큼 불편하기도 했답니다.  작가는 아무래도 식민지 치하의 기억과 한국 전쟁, 그밖에 이념으로 인한 고초와 설움을 많이 받으신 분이기 때문에, 아무래도 글 전반적으로 비장감과 삶의 무게 등이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환경과 생명에 대한 주제를 다루었는데, 곰곰히 생각해 보면 하나 그른 것이 없이 공감할 내용들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쉽게 고개 끄덕이기 어려운 것은 뭐랄까요.  일종의 벽 같은 것?

우리가 알지 못한, 겪지 못한 과거의 기억들이, 그 흔적들이 글 전반에 걸쳐 지배적인 흐름을 형성하는 것 같습니다.  아래 서평 쓰신 분들도 비슷한 지적을 하셨는데, 글이 많이 무겁습니다.  단순히 에세이나 수필 정도로 치부하기에는 뭔가 부족한 느낌이 들 정도로요.

개인적으로 토지를 책으로 접하지 못해서 선생님의 글 분위기가 어떤지 비교를 하지는 못하겠습니다.  설마 토지도 이런 분위기는 아닐테지요^^;;;;

빨리빨리 읽히지는 않지만, 몇번 되새기며 읽어볼 여지를 줍니다. 또 그렇게 해야 읽혀지는 것이 사실이구요.  깊이 생각하고 잠시 여운을 느낄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도 가끔은 좋다 여겨집니다.  생명의 아픔을,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함께 느껴 보자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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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곱의 사다리
노아 벤샤 지음, 공경희 옮김 / 북스캔(대교북스캔) / 2004년 7월
평점 :
절판


내가 싫어하는 종류의 책이 있다.

뭐뭐뭐 하는 몇 가지 방법!

하룻밤에 읽는, 한권으로 읽는 무엇무엇무엇....

이런 제목들의 책은 너무 상업적이고 내용도 실망일 때가 많아서 대체로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필요에 의해서 보기도 하고 구입도 하지만, 안 좋아하는 것은 사실.

그리고 장르로 따지면 처세술에 관한 책들을 안 좋아한다.

폰더씨의 위대한 하루도 참 별로였고,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도 정말 별로였다.

그래서, 이 책을 도서관에서 집어들 때도 시큰둥했다. 뻔하겠지. 베스트셀러라고 다 좋은 책이겠어? 라는 비아냥도 섞어가며...

그래도, 전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읽었다니까 궁금하기는 했다. 어떤 내용인지.

이번에도 내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실망스럽다면 "그럼 그렇지!"하며 내던질 요량이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책이 너무 괜찮았다.

내 선입관과 편견이 부끄러워질 만큼.

대단할 것도 없어보이는 빵장수 야곱은 그가 사는 마을의 현자다.

그가 어떤 마을에 살고 있는지, 어떤 시대를 살고 있는지 책은 말해주지 않았다.

그에게 어느날 한 아이가 맡겨진다.  요나라는 이름을 가진 아이는, 야곱의 곁에서 그를 닮아가며 성장한다.

그리고 그는 또 하나의 현자가 되어 그를 촌장으로 맞아들일 마을로 돌아가기 위해 야곱과 작별한다.

작품은 긴 시간을 뛰어넘으며 그들의 이야기를 보여주는데, 그 안에서 성장해가는 요나의 모습과, 그리고 더불어 발전해 가는 야곱의 모습을 지켜볼 수가 있다.

작품을 보면서, 왜 '야곱'이고 왜 '요나'일까를 생각했다.

성경에서는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이란 표현이 많이 나온다. 그러나 "야곱의 하나님"이란 말만큼 많이 나오진 않는다.

야곱은 할아버지 아브라함이나 아버지 이삭보다 문제가 많은 사람이었다. 형님의 장자의 명분을 팥죽 한그릇에 사들일 만큼 영악했고, 형님의 장자의 축복을 가로채기 위해서 아버지를 속였다. 자신을 죽이려드는 형님의 눈을 피해 하룻밤에 멀리 도망갈 만큼 겁도 두려움도 많았던 그는, 자신보다 한술 더 위인 사기꾼 장인을 만나 엄청시레 고생을 하며 아내를 맞이한다.

그의 고생은 거기서 끝나지 않아 열두 아들 중에 특별히 사랑했던 요셉은 형제들 손에 의해 애굽으로 팔려가 그는 긴 시간 아들이 죽은 줄로만 알고 지냈다. 그리하여 그가 다시 요셉을 만났을 때, 요셉을 통하여 애굽왕 바로를 만났을 때 . "내 나그네의 생이 130년이니 내 조상의 시간에 미치지 못하나, 험한 시간을 보내었나이다."라고 고백한다.(조금 틀릴 지 모르겠지만 대강 저런 의미였다..;;;;;)

한마디로 야곱은, 흠도 많았지만 그만큼 인간적이었던 사람으로 읽혀진다.  그래서 그의 이름을 따서 야곱의 하나님이란 말이 더 많이 나왔을 거라고 나는 짐작한다.

이 책에서 야곱이란 이름의 주인공은 현자다. 그러나 그는 아직도 배울 것이 많고 스스로 깨달아야 할 것들이 많은 것을 아는 겸손한 현자다. (겸손함을 알기에 현자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왜 요나일까?

요나는 니느웨에 회개하라는 명을 전하러 갔지만, 패악한 그들의 모습에 염증을 느끼며 왜 그들을 구원해야 하느냐며 하나님께 항의하다가 고래 뱃속에 삼키워져 사흘간 암흑 속에 있게 된다. 다시 지상으로 돌아와서야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지만 그는 다시금 불순종으로 하나님의 뜻을 거역한다. 하룻밤새에 자란 나무의 그늘 아래서 편안함을 맛보던 그는, 벌레 한마리가 나뭇잎을 갉아 먹고 동풍이 불어와 뜨거운 기운이 닥치자 자신에게 고통을 준 하나님께 원망의 말을 한다. 그때 하나님은 하룻밤새에 얻은 나무 그늘에도 네가 억울해 하거늘, 저 니느웨 성에 있는 수만 사람이 내게 어떻겠느냐고 그에게 깨달음을 주신다.(너무 오래 전에 읽어서 역시 정확한 설명인지 자신 없지만 아무튼 이런 얘기였다..;;;;;)

작품 속의 요나가 딱 그랬다. 아직 어렸고 철없던 시절의 요나는 왜 그래야 하느냐고 야곱에게 항의하기 일쑤였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야곱을 닮아간 그는, 자연스레 또 하나의 야곱이 되어 있었다.

그들이 나누는 선문답같은 이야기와, 주변 사람들과 나눈 대화들을 떠올려 보면,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과 또 깨달음을 준다.  결국 불평이라고 하는 것은 스스로의 부족함에서 나오기 마련이었고, 그것을 인정하기 싫어서 남탓을 하는 우리를 발견하게 된다.

사람이 나이를 먹어가면서 즐거워질 수 있고 감사할 수 있는 한 부분은,

인생의 연륜이 우리의 모난 부분을 깎아내며 겸손함을 가르치게 하는 것이 아닐까.

겸손함을 알지 못한 나이는 그 자체로 생에 대한 모독이 아닐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

이 씨리즈가 더 있던데, 몇편을 더 찾아서 읽어야겠다.

서평을 보니 반응들이 극과 극이지만, 결국 최종 판단자는 나 자신이 되어야 할 테니. 이번엔 입소문보다 내 자신의 마음의 창에 더 자세히 비쳐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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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엠툰
정헌재 지음 / 청하 / 200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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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들 참 감동이었다고 말하는데 전 참 시니컬했어요.

마치 신파로 치닫고 있는 일일 드라마를 보는 듯한 그런 느낌.

'사랑'없는 우리 삶을 상상할 수 없고, 인간의 역사를 상상할 수 없는데, 그걸 부정하는 것은 아닌데, 오매불망 사랑'만' 얘기하는 것을 보면 조금 짜증이 나서요.

제가 좀 꼬인 걸까요?

이런 종류의 글들이 한참 많이 쏟아졌는데, 같은 시기의 문스 패밀리나 광수생각은 좀 더 가족이나 사회에 대한 이야기를 했고, 마린블루스는 보다 현실적인 이야기들을 했습니다.

모두가 획일적으로 같은 이야기를 해야한다는 얘기는 아니지만, 전 크게 공감이 가거나 감동스럽지 않던걸요.

비유하자면, 이은혜 만화를 보는 느낌이었답니다.

재밌고, 그림 이쁘고, 감각적이지만, 그녀의 작품엔 '삶'이 빠져 있다고 종종 생각했거든요. 지나치게 현학적인 말만 내뱉는 주인공들과, 고달픈 삶과는 너무 먼 모델 하우스같은 집들과 생활환경 등등이요.

모르지요. 저도 사랑에 눈멀고 그러면 눈물 펑펑 흘리며 내 얘기야!하며 공감할지두.

그러나 아직까지는 참 별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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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깍지 사랑 - 추둘란의 마음이 따뜻해지는 수필집
추둘란 지음 / 소나무 / 200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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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신은 인간에게, 감당할 만한 시련을 주신다고 했다.  그러나 남에게 말해주기는 쉬워도 나 자신에게는 더없이 가혹한 이 말을, 아름다운 사랑으로 감내하며 극복, 또 지금도 열심히 살고 계시는 분이 있다.  바로 이 책의 주인공 가족들이다.

다운증후군 아이를 가진 엄마와 아빠, 아이의 치료와 교육 등을 위해서 임용 시험을 포기하고 생업 전선에 뛰어든 아버지, 그 아이를 키우며 해사하게 웃는 어머니의 모습은 감동을 넘어 존경의 지경까지 이르지 싶다.

모르고 나았으니 차라리 다행이었을까. 미리 알았더라면 겪었을 그 고뇌와 번민은 또 얼마나 아팠을까.  그들의 행보에 박수를 보내는 나이지만, 내가 만약 그 경우라면 어찌 판단할 지는 지금도 솔직히 자신이 없다.

그들 가족에게 정말로 다행이고 축복인 것은, 아들 민서의 밝게 자라는 모습이, 그들을 지탱해주는 또 다른 축인 마을 사람들의 따뜻한 정이 아무 상관 없는 독자인 내게도 감사로 느껴진다.

나보다 더 어렵고 힘든 사람을 보며 그래도 나는 저보다 낫지 않더냐... 라는 위로는 사실 잔인한 것이다.  타인의 슬픔으로 나의 슬픔의 무게를 상대적으로 줄여보려는 움직임.  그러나 그것이 인간의 본능이라는 것도 인정한다. 

지극히 평범한 어머니 중의 어머니 추둘란씨는, 그 평범함이 미덕이고 장기인 것처럼 차분하게 글을 썼다.  당신의 슬프과 아픔 고민, 그리고 극복과정의 힘겨움까지...  그래서 글을 보며 '상대적인 안심'에 안주하는 것조차 미안하여 조심스러운 마음가짐을 가졌다. 

콩깍지 사랑,  팔불출 소리를 들을 것이 아니라 부모의 본능적인 아름다운 사랑임을, 이 책은 흥분되지 않은 목소리로 차분히 들려준다. 마음이 따스한 사람들의 따뜻한 이야기, 함께 들어보자구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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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의 선물 - 한 어린 삶이 보낸 마지막 한 해
머라이어 하우스덴 지음, 김라합 옮김 / 해냄 / 200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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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이 책의 장르를 뭐라고 해야 할 지 모르겠다.  소설처럼 극적이지만 실화이고, 에세이라고 하기에는 보다 무거운... 아무튼, 굉장히 슬픈 이야기라는 것만은 확실하다.  사실, 이렇게 아픈 사람의 실화가 담긴 내용을 좋아하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비슷한 경로로 소중한 사람을 잃었던 기억이 있기에 이런 내용들은 책장 몇 장 펴기도 전에 눈물부터 쏟고 감정은 더 힘들어진다.  그럼에도 극구 추천하는 친구의 소개로(그러면서 정작 그녀는 울다가 책을 다 못 보고 내게 넘겼다.ㅡㅡ;;;) 이 책을 만나게 되었다.  책을 만나고 난 뒤의 느낌은? 보기를 잘했다고 생각한다.  내게도 슬픔을 뛰어넘어 추억으로 승화시킬 기회가 되었으니까.



세살박이 한나는 암 진단을 받고 일년 간 자신의 삶과 죽음 위에 포개어진 채 아주 씩씩하고 용감하게 진실을 받아들인다.  한나뿐 아니라, 아이의 가족들도 그녀와 비슷한 시선을 내내 유지한다.

이 책은 단지 암과 투병한 어린 아이가 얼마나 슬프게 죽어갔는 지를 말하고자 하지 않는다.  눈물이 펑펑 쏟도록 감정을 자극하지만, 더 감동으로 다가오는 것은 그들 가족이 이 어린 생명의 다가오는 죽음을 바라보는 시선과 준비하는 마음가짐이다.  그들은 진실을 외면하지 않았고, 속이려 들지도 않았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되 슬픔으로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주어진 시간을 버릴 것 없이 지극히 소중하게 사용한다.

일년 여의 시간 동안 아이의 죽음을 준비했지만, 어머니는 아이를 보내고 난 뒤 한없이 무너져 내렸고, 자신의 삶의 기반의 끈을 모두 놓기까지 이른다.  그러나 진실의 힘이란 과연 위대했다.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과 용기, 그리고 다른 이들을 돌아볼 수 있는 위대함마저도 부여해 주었다.

책을 모두 읽고 나면, 이 책의 제목이 왜 "한나의 선물"인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작지만 아주 큰, 그래서 더 위대해 보이는 선물... 우리의 삶을 보다 따듯하게 바라볼 수 있는 소중한 눈을 우리는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누군가에게 선물하면 참 좋을 것 같다는 기분이 든다.  아주아주 슬프지만, 몹시도 아름다운... 그래서 더 감동이 짙은 책 한 권이다.  뻔할 거라는, 진부할 거라는 선입관에 좋은 책을 놓치지 말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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