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뭐든지 할 수 있어 그림책은 내 친구 36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글, 일론 비클란드 그림, 햇살과나무꾼 옮김 / 논장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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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타는 요나스 오빠와 미아 마리아 언니한테 자신이 얼마나 휘파람을 잘 부는지 보여주며 한껏 뻐겼다.


"나, 참 신기해. 할 수 있는 게 정말 많아!"


게다가 이렇게 덧붙이기까지 했다.


"난 마음만 먹으면 뭐든지 할 수 있어."


언니와 오빠는 여동생이 허풍이 심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스키 타고 방향 바꾸기도 할 수 있냐고 물었다. 로타가 잘 하지 못하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 로타는 방향 바꾸기만 빼고 뭐든지 다 할 수 있다고 여전히 자신감이 충만했다.


때는 겨울이었고 눈은 온 거리에 가득 쌓여 있다. 엄마는 크리스마스 빵을 만들고 계셨다. 그리고 아파서 몸져 누워 계신 이웃의 베리 아줌마에게 크리스마스 빵을 갖다 주라고 하셨다. 간 김에 심부름도 해드리라며~ 


다섯살 로타는 이 말이 반가웠다. 


"난 아픈 사람도 잘 돌봐요. 난 뭐든지 다 할 수 있어요. 거의 다요!"


이 얼마나 자신감 충만한 긍정적 자세인가! 그러고 보니 조카 다현 양도 심부름 시키면 굉장히 즐겁게 한다. 세현군도 그나이 때는 그랬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걸 해보일 때 스스로 생각해도 으쓱해지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누군가 내가 아는 길을 물어보는 걸 아주 좋아한다. 대표 길치인 내가 가르쳐줄 수 있는 길이 있다는 것에서 행복감을 느낀다. 


로타는 엄마가 주신 쓰레기 봉지와 크리스마스 빵이 담긴 봉지를 들고 스키를 탔다. 뭐든지 할 수 있는 아이가 되기 위해서 방향 바꾸기 연습도 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문제가 생겼다. 전달해야 할 봉지는 뒤바뀌었고 소중한 친구인 인형 밤세도 잃어버리고 만 것이다.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크리스마스 빵과 인형 밤세는 무사히 찾아왔다. 로타는 베리 아줌마의 집을 청소해 주었고, 아줌마에게 필요한 것들을 챙겨 주었다. 정말 싹싹하고 일도 잘 하는 로타다. 아줌마는 마지막으로 신문을 사다 달라고 하셨고 선물로 1크로나짜리 은화도 주셨다. 로타가 얼마나 신났을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신문을 사러 가기 전에 로타는 집에 잠깐 들러 보았다. 아빠가 크리스마스 트리를 사오시기로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크리스마스 트리는 오지 않았다. 시내에 트리가 모두 동났다는 슬픈 소식! 


이렇게 추운 나라에서, 게다가 크리스마스를 중시하는 문화권에서 전나무를 구하지 못했다는 것은 설날에 떡국을 먹지 못하고 추석에 송편을 먹지 못하는 것보다 더 섭섭한 일이 될 것이다. 지난 신정에 장염으로 떡국을 먹지 못한 다현 양이 자신은 떡국을 먹지 못했으므로 아홉살이 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것처럼...



아까 스키 타고 길을 나섰다가 밤세를 잃어버릴 뻔했던 로타는 이번에는 썰매를 타고 외출했다. 그리고 발견한 멋진 전나무를 가득 실은 트럭! 그러나 애석하게도 나무는 모두 스톡홀름으로 가게 되어 있었다. 이곳보다 수도로 가면 더 비싸게 잘 팔릴 테지. 어린 로타가 이해할 수 없고 인정할 수 없는 셈법이었다. 그렇지만 뭐든지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이 기특한 어린이에게 반가운 기회가 생긴다. 크리스마스를 트리 장식과 함께 보낼 수 있는 기회 말이다!


아이가 정직하게 계산을 하려고 한 것도 예쁘고, 그걸 지켜봐주고 도와주고 또 아이가 부채감을 가지지 않게 살펴봐주는 어른이 있는 게 좋았다. 비록 스키를 타고 방향 바꾸기는 하지 못하지만 나무를 실을 수 있는 썰매를 끌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이었던지...



식구들이 함께 장식하는 크리스마스 트리가 예쁘다. 이렇게 가족이 함께 하는 시간이 소중하고, 쌓여가는 추억도 예쁘다. 

요나스 오빠와 미아 아리아 언니도 모처럼 얄미웠던 로타가 사랑스러웠을 것이다. 뭐든 할 수 있다고 당당하게 말하는 동생이 어떻게 보면 형님들 별이 자기 별 앞에 절을 했다는 꿈을 꿨다며 눈치 없이 말해서 형님을 미움을 샀던 요셉을 떠올리게 한다. 요셉과 달리 로타는 언니 오빠의 시새움은 받았어도 미움은 받지 않았다.^^



그야말로 북유럽의 풍경을 느끼게 해주는 겨울 책이었다. 지도를 펼쳐 놓고 스웨덴이 어디에 있는 나라인지 꼭 확인해 보기를 바란다. 스웨덴 하면 떠오르는 게 뭐가 있는지 꼽아보는 것도 좋겠다. 나로서는 삐삐를 만든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바로 이 책의 저자가 떠오르고, 영화 '렛미인'이 떠오르고, 이동진의 눈물 겨운 삽질 여행기가 떠오른다.^^


비록 크리스마스는 지났지만, 아직 우리집에 남아 있는 크리스마스 트리를 보면서 이 책을 더 정겹게 읽었다. 로타보다 더 나이가 들었을 때까지, 나 역시 그런 생각을 하고 살았다. 난 뭐든지 할 수 있어~라고. 그 당시 내가 해낼 수 있다고 여겼던 것들은 많은 종류가 아니었지만, 내가 생각해낼 수 있는, 또 하고 싶어하는 것들이었다. 이미 다 커서 어른이 된 지금은 해낼 수 없는 게 얼마나 많은지 충분히 알고 있지만, 그걸 쓸쓸하게 여기지 않게 된 것이 도리어 쓸쓸하게 느껴진달까. 


이럴 땐 로타처럼 어깨를 당당히 펴고, 활짝 웃으면서 이렇게 말해보는 것도 좋겠다. 


"난 뭐든지 할 수 있어."


할 수 없는 몇 가지 빼고는 뭐든~

기분 좋은 에너지를 갖게 하는 책이다. 익숙한 그림체도 정겹기만 하다. 오랜만에 노래도 흥얼거려 보자. 더더더 싱그러운 기운이 맘껏 솟도록!


삐삐를 부르는 환한 목소리
삐삐를 부르는 상냥한 소리
삐삐를 부르는 다정한 소리
삐삐를 부르는 산울림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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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퍼남매맘 2014-01-11 0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리뷰 써야 하는데 일단 급한 불부터 끄고 하려구요.

마노아 2014-01-12 14:37   좋아요 0 | URL
넵! 급한 불이 먼저죠. 저도 좀 늦은 편이긴 한데 후다닥 썼어요.^^
 
스무고개 탐정 2 : 고양이 습격 사건 스무고개 탐정 2
허교범 지음, 고상미 그림 / 비룡소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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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고개 탐정 1권을 읽은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어느새 2권이 나왔다. 어린이 친구들이 직접 심사위원으로 참여해서 자신들의 눈높이로 선정한 작품답게 이번에도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진행되었다. 


이미 1권에서 소개한 등장인물이 그대로 등장한다. 스무 개의 질문으로 사건을 해결하는 주인공 탐정이 있고, 1편에서 마술을 선보여주었던 친구가 하나, 그리고 절친 문양이와 명규, 반장 다희와 박쥐버거의 말라깽이 형, 그리고 뭔가 비밀 하나 정도 숨기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교장선생님이 있다. 


1편에서 마술사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이미 스무고개 탐정의 실력은 보았다. 친구들도 스무고개 탐정의 놀라운 재주를 동경하고 부러워하기도 하고, 또 누군가는 질시의 눈길을 보내기도 했다. 그런 와중에 사건이 하나 터졌다. 이름하여 '고양이 습격 사건'이다. 문제가 꼬인 것은 사건의 음흉한 범인으로 순둥이 문양이가 지목된 것이다. 벌써 몇 명이나 목격자가 나왔다. 그 바람에 명규와 문양이 사이가 벌어졌고, 스무고개 탐정은 다희와 명규 두 사람에게서 동시에 사건 해결을 의뢰받았다. 애초에 우리의 착한 친구 문양이가 범인일 리는 없다고 독자도 여겼다. 그렇다면 누가, 어떤 목적으로 문양이를 함정에 빠뜨린 것일까? 



이 시리즈의 그림은 독특하게도 색깔을 많이 쓰지 않았다. 연필인지 목탄인지... 아님 색연필? 아무튼 그런 재질로 검은 바탕을 그렸고, 집중해야 할 주인공 스무고개 탐정은 노랑색으로 그렸다. 두 색의 조화가 나름의 미스터리한 느낌을 연출해 주었다. 문틈으로 엿보아는 아이의 모습에서 긴장감이 느껴진다. 


스무고개 탐정은 스무 개의 질문 안에서 사건을 해결한다는 나름의 원칙을 세워놨고, 지금까지는 그 조건을 지키면서 문제를 풀어왔다. 그러나 여기에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스무 개의 질문에 대해서 상대방이 진실된 답을 하지 않고 거짓을 말해 버린다면 사건의 해결은커녕 더 꼬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니 이에 대한 대책도 필요하다. 스무 고개 탐정은 자신의 룰을 지키되 방법은 조금 바꾸는 지혜를 내놓았다. 그걸 다시 조수 역할을 맡게 된 다희가 노트에 정리를 했는데, 그 바람에 독자들도 좀 더 쉽게 스무 고개 질문에 다가갈 수 있었다. 1편과 같은 두근거림은 다소 줄어들었다는 게 약간의 아쉬움이 남지만... 


이야기의 거의 끝까지 읽어감에도 명확한 사건 해결이 나지 않아서 초조했는데, 알고 보니 3권으로 이야기가 이어졌다. 고양이 습격 사건의 전말은 드러났지만, 그 정체까지는 말해주지 않았다. 다만 스무고개 탐정과 관련 있는 인물이라는 것만 알게 되었다. 이 이야기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큰 그림을 그리면서 진행되나 보다. 3권까지 이어서 읽어야 이 이야기의 완벽한 결말을 맺을 수 있게 되었다. 이리 되었으니 3권은 더 빨리 나왔으면 하는 바람을 자연스레 갖게 된다.



슈렉의 장화신은 고양이 뺨치는 미모를 자랑하는 고양이이다. 고양이를 습격하는 나쁜 자식도 등장했지만, 길고양이들에게 밥을 챙겨주고, 어미 잃은 고양이를 맡아서 돌봐주는 마음 따스한 사람도 등장했다. 스무 고개 탐정은 검은 고양이 네로를 언급하며 고양이에 대한 두려움을 내보였는데, 그보다 더 깊은 어떤 트라우마가 있는 게 아닐까 짐작했다. 만약 그렇다면 그 역시 이번 사건 배후의 인물과 관련이 있을 테지.


범인을 잡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 앞에서도 다친 생명을 먼저 챙겨준 마음씀이 예뻤다. 스무 고개 탐정이 단지 사건의 해결에서 희열을 느끼는 머리만 좋은 녀석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번에도 미니전사 프라모델이 꽤 중요한 단서로 작용했는데, 내가 직접 보지 못한 프라모델을 바로 앞에서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자꾸 나오니 정들었나 보다. 


아마도 3편을 작가님은 이미 쓰신 게 아닐까. 출간만 하면 되는 게 아닐까. 이미 써놓은 책을 분량 맞추어 반 뚝 나누어서 2권만 먼저 내놓은 것 아닐까 혼자 상상해 보았다. 3권이 어서 나오길 기다리며 갖는 즐거운 상상이다. 


덧글) 오타가 있다.


57쪽 고양이 집를 >>> 집을

159쪽 어둠 속에서 검은 모자의 흰자는>>>눈의 흰자위 말하는 건데 검은 모자의 흰자라고 하니 문장이 부자연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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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퍼남매맘 2014-01-11 0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 집 고양이 온이 닮았네요. 그림 스타일 좋은데요.

마노아 2014-01-12 14:36   좋아요 0 | URL
이 작가님 그림 스타일이 다소 날카로운데, 그게 또 매력이 있더라구요. 온이 닮은 고양이, 반가워요.^^
 
범블아디의 생일 파티 네버랜드 Picture Books 세계의 걸작 그림책 227
모리스 샌닥 글.그림, 조동섭 옮김 / 시공주니어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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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서 한번도 생일 파티를 해보지 못했던 범블 아디가 아홉번째 생일을 맞게 되었다. 모두가 지나치거나 모두가 잊은 척하거나, 더는 축하해줄 이도 없는 상태에서 맞닥뜨린 범블아디의 생일 날은 어떤 일들이 펼쳐질까?



모리스 샌닥의 생일과 똑같은 날짜를 택했다. 실제로 모리스 샌닥도 어려서 생일파티에 대한 어떤 풀리지 않은 아쉬움이 있었던 게 아닐까. 범블 아디의 마음이 꼭 이해가 되는 것이 내가 그랬었다. 부모님은 어린이 날이나 크리스마스 날에 선물을 주신 적이 한번도 없었다. 산타 할배로 변신한 부모님의 선물을 자랑하는 친구들을 늘 부러워했을 뿐이다. 생일 날도 크게 다르지 않았던 터라 범블아디의 마음이 크게 와닿는다. 가족이 축하해주는 생일잔치도 근사하지만, 친구들을 초대해서 왁자지껄하게 보내는 생일에 대한 기대가 분명 나에게도 있었다. 친구들을 초청한 나의 생일 파티는 초등학교 5학년 때였다. 아, 그때 그 기분이 확 살아난다. 친구들을 집으로 초청한 생일은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구나.^^



범블아디는 식구들이 모두 식용으로 세상을 떠난 뒤였고...ㅜ.ㅜ 아델라인 고모님께 입양이 된 상태였다. 고모님이 준비해 준 카우보이 의상과 케이크는 충분히 훌륭했다. 범블아디도 무척 신이 났을 것이다. 하지만 앞서도 이야기했지만 범블아디는 '파티'를 하고 싶은 것이다. 친구들을 가득 초대해서 시끌시끌하게 즐기는 그런 파티!!



범블아디는 초대 카드를 보냈다. 파티는 무려 '가장 무도회' 형식으로 열렸다. 돼지 친구들의 저 찬란한 의상들을 보시라. 모두들 상상력이 넘치고 재치가 가득한 녀석들이다. 



실제로는 돈이 많이 들어서 쉽게 해보지 못하지만 어떤 캐릭터를 재현해 보는 코스프레에 대한 로망이 있다. 좀 화려한 시대물 의상도 입어보고 싶고 무사 역할도 해보고 싶은 로망... 직접 해보진 못했지만 이렇게 그림 속 친구들의 모습을 보며 대리만족을 느껴본다. 아, 조로도 해보고 싶다. 가면에 대한 로망!!!



그러나 애석하게도 파티의 흥은 오래 가지 않았다. 범블아디의 생일날 멋진 저녁을 함께 하기 위해서 고모님이 귤을 사들고 일찍 집으로 오신 것이다. 



게다가 집안은 얼마나 난장판이 되어 있던가! 이 친구들이 얌전히, 조용히, 깔끔하게 놀았을 것 같지는 않다. 혹여 고모님이 늦게 오셨으면 좀 치워놨을까? 그건 장담하기 어려워 보인다.^^ 아무튼 엉망진창이 된 집안 꼴에 화가 머리끝까지 나버린 고모님! 아홉까지 세겠다고 했다. 그 안에 안 나가면 모두 '햄'으로 만들어 버릴거라는 무시무시한 협박까지!


아하하핫, 열도 아니고 아홉이란다. 범블아디의 아홉번째 생일을 이런 식으로 축하하시나? 



이제 다시 파티는 없다는 엄포에 열살이 안 되겠다고 맹세하는 귀여운 범블아디! 돼지 세계에서 나이 아홉살이면 인간 나이로 몇 살일까? 모르지만, 뭐 크게 중요하지는 않다. 


이래저래 버럭 성을 내긴 했지만 고모님은 여전히 범블아디를 사랑한다. 범블아디도 알고 있다. 이야기의 마무리가 급작스럽긴 하지만, 범블아디의 서운했던 마음과 들뜬 마음, 초조한 마음과 다시 기쁜 마음까지도 모두 자세히 전달되었다.


이 책은 모리스 샌닥의 유작이다. 그는 갔지만 아직도 그의 책이 종종 나오는 걸 보니 국내에 소개되지 않은 책들이 꽤 있었나보다. 왕성한 그의 창작 활동이 무척 다행스럽게 느껴지는 지점이다. '괴물들이 사는 나라'만큼 폭발적으로 즐겁거나 신나거나 좋지는 않았지만, 옛 생각도 나고 생일이 가지는 의미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는 그림책이었다. 게다가 '범블아디'라는 이름, 참 좋다. 발음부터가 예쁘다. 모리스 샌닥의 이름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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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색 아침
프랑크 파블로프 글, 레오니트 시멜코프 그림, 해바라기 프로젝트 옮김 / 휴먼어린이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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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를리는 키우던 개를 안락사 시켰다. 병이 들었다거나 어떤 사연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개가 검은 털을 가졌기 때문이다. 정부에서 갈색이 아닌 개는 모두 없애라는 법을 만든 탓이다.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지난 번에는 갈색 고양이를 제외한 모든 고양이를 제거하라고 했다. 독이 든 고기를 나눠주는 정부였다. 이유는 이러했다. 고양이가 너무 많이 불어나서 도시를 어지럽혔다는 것이다. 과학자들은 갈색 고양이들만 살려두어야 한다고 했다. 여러 실험을 통해 갈색 고양이가 도시에서 살기 가장 알맞다는 결론을 내렸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헐!이다. 갈색 고양이는 새끼도 조금만 낳고 먹이도 많이 먹지 않는다나...



얼마 뒤에는 '거리 일보'가 폐간 되었다. 직원들이 파업을 했다든가 회사가 망하기라도 한 건 아니었다. 이른바 '갈색 개' 사건 때문이었다. 거리 일보가 갈색 개를 제외한 나머지 개를 죽이라고 한 법을 비판했던 것이다. 거리 일보를 보던 사람들이 정부를 의심하게 되었다고. 정부를 비판한 대가로 거리일보는 폐간되었다. 등골이 서늘하다. 이거 우화 속 이야기 맞아??


이후 필요로 하는 정보는 '갈색 신문'에서 제공하는 것만 봐야 했다. 이 도시에서 정부를 지지하는 신문은 갈색 신문뿐이고, 그 결과 갈색 신문만 살아남았다. 다른 신문들은 모두 폐간 조치되었다. 하아....



신문만 손을 봤겠는가. 도서관에서는 책이 검열되었다. 출판사들은 줄소송에 휘말렸고, '갈색'이라는 말을 쓰지 않은 책들은 도서관에서 폐출되었다. 사람들은 의식적으로 모든 말에 '갈색'이란 단어를 붙였다. "갈색 커피 한 잔 주세요." 이런 식으로...


사람들은 스스로를 검열하게 되었고 불안에 떨었다. 갈색 개는 자신이 갈색이라는 이유만으로 아주 기고만장해졌다. 

갈색 개가 아닌 개를 키우다가 어른들에 의해서 개가 죽임 당하자 한 소년은 거리에서 슬피 울었다.

어른들은 소년의 슬픔에 동조하지 않은 채 갈색 강아지를 키우면 편하다고 충고했다. 자신들이 그렇게 살고 있는 것처럼...



모든 것이 갈색으로 덮였는데 갈색 법의 무시무시한 횡포는 끝나지 않았다. 이제는 예전에 갈색이 아닌 개를, 고양이를 키웠다는 이유만으로 잡혀 갔다. 너 좌익이었지! 너 빨갱이였지! 이런 문장으로 바꿔 들린다. 동물 뿐이던가. 바로 그 갈색이 아닌 동물을 키웠던 가족을 둔 죄로, 이웃을 두었다는 죄로 너도나도 잡혀가는 세상이 와버렸다. 과거 민주화운동을 했던 인사들이 보수(라고 쓰고 수구꼴통이라고 읽는!)로 변신하고 나면 더 극성 맞게 진보 쪽을 탄압하는 모습이 연상된다. 갈색 아닌 것은 오늘날 '종북'이라고 표현해야 할까. 



사람들은 처음부터 문제가 있다고 여겼을 때 행동해야 했었다. 의심하지 않고 비판하지 않고 순응한 대가는 이렇게 공포정치로 돌아왔다. 침묵이 얼마나 무서운 죄인지 깨달아야 했던 것이다. 


프랑스에서 큰 반향을 일으키고 여러 나라로 번역된 이책은 참으로 시의적절하게 우리나라에 상륙한 듯 보인다. 갈색 아침.... 그야말로 대한민국의 현주소가 아니던가. 


어제는 신촌에서 친구와 헤어지고 강북 삼성 병원으로 향하는 버스에 올랐다. 조카가 장염으로 입원한 탓이다. 버스가 서대문을 지날 때 벨을 눌렀는데 기사님이 버럭 성을 냈다. 어디서 내리려고 벨을 누르냐고 짜증스럽게 물었다. 강북삼성병원에 간다고 하니 거기 안 서는데 왜 일어났냐고 또 화를 낸다. 왜 나한테 화를 내냐고 맞받아치려다가 잠시 참았다. 그러면 어디서 서냐고 하니 종로 6가나 가야 세워준다고 한다. 지금 데모 중이어서 길을 통제하고 있다고...


울컥! 했지만 일단 기사님을 달래서 서대문 역에서 내렸다. 거리엔 전경들이 가득했다. 병원까지 걸어갔다가 조카랑 잠시 놀아주고 밖으로 나왔다. 거리는 여전히 전경들 차지였고, 닭장차로도 모자라서 관광버스를 대거 동원해서 길을 다 막아놨다. 시간도 늦었고 몹시 추웠던 터라 집으로 바로 갈 생각이었는데, 그 전경들을 보고 있자니 걸음이 떨어지지 않아서 시청으로 향했다. 횡단보도도 다 막아놔서 비집고 들어가기도 힘들었다. 걷는 내내 두려웠다. 혹시 중간에 막으면 뭐라고 하지? 이쪽이 집으로 가는 길이라고 할까? 그런 생각을 하다가 화가 났다. 왜 이 나라의 경찰은 시민을 보호하는 게 아니라 시민을 발목을 잡고 정당한 권리 행사를 훼방 놓지? 


시린 귀를 부여잡고 부지런히 걸음을 놀려 시청 광장에 도착했는데, 애석하게도 이미 집회가 끝난 뒤였나 보다. 8시 30분... 스케이트 장 주변에만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내가 너무 늦었구나.



여기서 떠밀리면 다음엔 또 뭐가 기다리고 있을지 끔찍하다. 처음엔 고양이, 그 다음엔 강아지, 그리고 신문과 출판사 도서관.... 우린 이중 몇 번째 순서에 닿아 있는 것일까. 짧은 우화가 던져주는 메시지가 서늘하고 무겁다. 온통 갈색인 세상에서 눈을 뜨고 싶지 않다. 그러니 이 문을 열고 나가야 한다. 바로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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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개 2013-12-30 09: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마지막 인용구는 어떤책?

2.마노아님.... 점점 과격해지고 있어요 하하

3.하지만 그래야 할 때인거죠?

마노아 2013-12-30 21:34   좋아요 0 | URL
마지막 인용구도 갈색아침에 나와요.
아까 댓글 달다가 자판이 속으로 들어가서 안 나오는 바람에 다 분해해서 닦았는데도 아직도 뻑뻑하고 들어가서 안 나오고 하네요. 어제 맥주 엎은 후유증이 이렇게...ㅜ.ㅜ
점점 더 과격해져야 하는 시점이 오는 것 같아요. 과거 우리의 조상들은 이럴 때 도끼들고 상경을 했죠..ㅜ.ㅜ
 
똥 목도리다! 꿈터 지식지혜 시리즈 23
최정현 글, 대성 그림 / 꿈터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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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얼어붙을 것만 같은 추운 겨울 날!
토끼의 귀마저 꽁꽁 얼어서 더 바짝 서버린 어느 날!
분홍 토끼는 빨간 똥~을 보고 말았다.
하지만 또아리를 튼 똥처럼 보였던 그 물건은 바로 목도리였다.
목도리는 얼어버린 몸과 귀를 녹여주기에 충분할 만큼 길고 따뜻했다.
이때부터 시작이었다. 토끼의 목도리 안으로 군식구가 자꾸 늘어갔던 것은!
마찬가지로 추워하던 펭귄이, 그리고 곰이 다가와서 목도리 안으로 파고들었다.

이후 너구리, 늑대, 사막여우, 염소 등등...
지나가는 온갖 동물들이 모두 목도리 안으로 들어왔다.
더 좁아졌지만, 자신을 두르는 목도리의 면적이 줄어들었지만 누구도 새식구를 타박하지 않는다.
비록 목도리에 닿는 면적은 줄어들었지만, 가까이 달라붙은 동물 친구들의 체온이 더 따뜻한 난로가 되어주었을 것이다.
사막 여우가 왜 눈 쌓인 벌판에 등장했는지 묻지 말자.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하자. 이곳에선 상상하는 모든 것이 가능한 나라니까!

사슴 친구까지 등장했다. 루돌프의 등장이라고 해야 할까.
크리스마스 쇼핑 중이던 꼬마 아이가 바로 이 동물 친구들과 마주쳤다.
소년의 마음을 사로잡고도 남을 크리스마스 선물이 되는 순간이다.
크리스마스 트리 옆에 놓아두니 잘 어울린다.
그많은 동물들이 모두 들어가기에 굉장히 클 것 같았지만, 실제로는 이 정도 크기다.
무엇이든 가능한 세상의 비밀이 여기에 있다.

무려 열넷이나 되는 친구들이 등장했다.
너무 많은 친구들이 나오는 바람에 이야기의 반복이 다소 지루하기도 했다.
게다가 겨울을 배경으로 한 이런 종류의 이야기는 무척 익숙하다.
그럼에도 역시 한겨울에 이런 이야기가 좋은 것은 그 따스한 느낌 때문일 것이다.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의 모습도 읽힌다.
나눌수록 더 커지는 기쁨의 크기도 보인다.
크리스마스날 조카에게 준 그림책이다.
조카는 어떤 기분으로 읽었는지 물어봐야겠다.
부디 메리 크리스마스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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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3-12-27 03: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크라이나 민화 그림책 <장갑>을 '목도리'로 바꾼 버전이네요.
<비오는 날 생긴 일>은 버섯 아래로 숨어들어 비를 피하는 동물들 이야기도 같은 맥락....
세상에 모방아닌 창조가 없다고는 하지만 이건 좀 대놓고 표절한 느낌!ㅠ

마노아 2013-12-28 00:09   좋아요 0 | URL
저도 장갑 제일 먼저 떠올랐어요. 너무 많이 닮아 있어서 좀 그랬는데, 그래도 따뜻한 이야기니까 나름의 의미를 두어야겠다-하고 여겼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