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표하는 날 마음똑똑 (책콩 그림책) 18
상드린 뒤마 로이 글, 브뤼노 로베르 그림, 이주영 옮김 / 책과콩나무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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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 코끼리, 기린, 악어가 초원의 왕이 되려고 나섰다. 사자는 대대로 초원의 왕이었으니 이번에도 자기가 왕이 될 거라고 의심하지 않았다. 투표라는 생소한 제도가 낯설었지만, 그래도 초원의 왕될 자는 자신 뿐이라고 철석같이 믿었다. 코끼리도 기린도 마찬가지의 생각을 했다. 나 정도라면 초원의 왕이 될 만하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뜻밖에도 투표 결과 초원의 왕으로 뽑힌 것은 악어였다. 세상에, 악어라니!


악어는 자신이 이제부터 초식동물로 거듭나겠노라며 호언장담했다.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서 지킬 수도 없고 지킬 마음도 없는 공약을 내건 것이다. 악어는 악어의 눈물이라도 흘리듯이 착한 시늉을 했다. 초원의 유권자들은 홀랑 넘어가버렸다. 실제의 악어를 떠올리면 상상이 안 되지만, 그림책 속의 악어는 충분히 귀엽고 재치 있어 보였다. 하지만 선거거 끝나자 악어는 바로 본색을 드러냈다. 악어는 말도 안 되는 악법을 만들었고 초원의 동물들을 탄압했다. 스스로 뽑은 대표에 의해서 학대를 받게 되는 초원의 친구들. 아, 이거 대한민국의 현실을 지나치게 잘 반영한 것이 아닌가. 이 작품이 우리나라 책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런 식의 눈먼 공약과, 약속을 지키지 않는 정치인은 대한민국에만 있는 것이 아님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속이 쓰리구나.


결국 초원의 친구들은 자신들이 어떻게 해야 할지,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지, 그러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할지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고민은 행동으로 이어졌다. 자신들이 살고 있는 터전을 옛날의 아름다운 곳으로 되돌리기 위한 노력들이다. 


지난 지방선거에서 안산의 유권자들이 새누리당을 더 많이 지지한 것에 큰 충격을 받았다. 300명 이상의 목숨을 앗아간 세월호 참사. 그중 가장 많은 희생자를 낸 안산 단원고가 경기도에 있는데도, 그들의 선택은 이렇다는 것이 잘 납득이 되지 않았다. 물론, 그런 스타일의 투표를 하시는 분들은 대한민국에 널리고 널렸지만.


어린이 친구들에게도 투표의 중요성과, 거짓 약속을 알아보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려주는 좋은 보기가 될 것 같다. 앙증맞은 그림도 아이들에게는 이야기를 가깝게 만들어주는 역할을 할 것이다. 모르던 책인데 조카 덕분에 읽게 되었다. 의미있는 독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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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겐 빵이, 그리고 장미가 필요해요.
우리 엄마는 청소노동자예요! - 노동자의 정당한 권리를 찾은 엄마의 파업 이야기 희망을 만드는 법 9
다이애나 콘 글, 프란시스코 델가도 그림, 마음물꼬 옮김 / 고래이야기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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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년, 노리개, 슬기로운 해법

이상은 내가 제작 두레에 참여한 영화들이다. 그리고 어제 또 다른 작품의 제작 두레에 참여했다. 제목은 "귀향"이다.

최근 무슨 똥배짱으로 버티는지 이해할 수 없는 국무총리 지명자 때문에 더더욱 마음앓이를 하고 계시는 위안부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담을 영화이다. 정부가 나서서 더 보듬고 책임을 져야 할 분들이지만 늘상 이분들을 챙겨주는 것은 연대의 손길을 내미는 사람들이었다. 


몇 달 전에는 근무하는 곳 인근 대학의 청소 노동자들이 파업을 한 적이 있다. 대학은 올해부터 임금인상을 약속하겠노라고, 지난 해 협상을 했지만, 막상 해가 바뀌니 입을 씻어버렸다. 전문대라 4년제 대학보다 학교 운영금이 부족하다나 뭐라나. 학교에 돈이 있고 없고를 떠나서, 4년제 대학의 청소 노동의 강도와 2년제 대학의 노동 강도가 다르다던가? 무슨 변명이 이따위인지... 청소 노동자들의 파업은 일단락 되었지만 지금은 또 다른 플래카드가 붙어서 새로운 투쟁과 거기에 대한 연대를 분명히 고지하고 있었다. 이들의 긴 싸움은 지금도 진행형이다. 


그리고 여기, 바다 건너 먼 나라에서도 비슷한 투쟁이 벌어지고 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뒤 멕시코에서 미국의 로스앤젤레스로 이민을 온 카를리토스네 가족. 이민 노동자인 엄마는 밤에 고층건물을 청소하고 새벽에 집으로 돌아오신다. 엄마는 출근 전에 잠자리에 든 아들에게 다정한 인사를 건넨다. 


"잘 자렴, 카를리토스. 천사가 너와 함께 있을 거야."


천사의 도시에서 할 수 있는 가장 잘 어울리는 굿나잇 인사다. 

고된 노동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 가족들과 아침식사를 한다. 할머니와 엄마, 그리고 카를리토스가 함께 모이는 시간이다. 

그리고 엄마는 아들이 스쿨버스에 오르는 것을 보고 나서야 돌아와 지친 몸을 침대에 기댄다. 야간 근무가 더 피곤하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아들을 배웅하고 나서야 잠자리에 드는 엄마의 정성과 사랑이 보통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엄마는 로봇도 아니고 초인도 아니다. 평일에는 일을 하고, 주말에는 밀린 집안 일을 해야 하니 아이와 함께 보낼 시간이 늘 부족하다. 아픈 할머니의 약값도 보통 벅찬 게 아니다. 엄마가 이렇게 고된 시간을 보내야 하는 것은 임금이 터무니없이 낮기 때문이다 .하루에 1억을 제하는 황제노역을 하는 이들은 결코 상상할 수 없는 노동과 급여! 몸이 부서져라 열심히 일을 하지만, 겨우겨우 입에 풀칠할 정도의 임금만 받고 있으니 생활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소중한 일자리이니 버티는 게 능사일까. 아니라고, 카를리토스의 엄마는 생각했다. 그녀와 같은 청소노동자들이 모두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서 그들은 파업을 결정했다. 



노동자들은 똘똘 뭉쳤다. 신문에서도 이들의 행보를 알려주었다. 많은 사람들이 이들의 행진을 지켜보았고 관심을 가졌다. 

카를리토스의 같은 반 학급에는 또 다른 조합원들의 아이들이 있었다. 그들의 부모님들도 이 파업에 참여하였다. 선생님은 이 파업의 의미와 중요성을 설명해 주셨다. 선생님의 할아버지도 미국에 이민 와서 서러움을 당했던 세대였다. '공감'을 해주시는 선생님이 계시다는 건 아이들에게 또 얼마나 큰 힘이 될 것인가. 


파업이니 데모니 빨갱이들의 선동이라며, 너희 부모님들은 그런 일을 하시지 않지? 라고 물어보는 교사가 있는 어느 나라의 서러운 풍경이 떠오른다. 



엄마의 인터뷰 장면은 TV에까지 나왔다. 카를리토스는 엄마를 돕고 싶었다. 아이들은 똘똘 뭉쳐서 팻말을 만들었다. 


"나는 엄마를 사랑해요! 우리 엄마는 청소노동자예요!"


이 부분이 정말 뭉클했다. 아이의 대가 없고 계산 없는 순수한 연대가 벅찼고, 엄마가 청소노동자라는 것을 당당히 밝히는 모습이 부러웠다. 우리 나라라면 어땠을까? 우리 엄마는 청소노동자예요, 나는 청소 노동자입니다-라고 공개적으로 말하는 것이 쉽지 않은 사회 분위기이다. 이 사실을 인식하는 순간 내 마음도 어두워졌다. 이는 "나는 비정규직 노동자입니다.", "나는 장애인입니다."와 얼마나 닮아 있는가. 우리 사회의 어둡고 습한 모습이 한꺼번에 노출된 기분이다.


투쟁은 계속 이어졌다. 연대의 손길은 주의 경계를 넘었고, 파업 노동자들은 이 시간을 축제의 장으로 바꿔버렸다. 그야말로 장관이 연출된 것이다. 3주일에 걸쳐 이어진 파업은 마침내 노동자들의 승리로 끝이 났다. 임금도 올라갔고 더 좋은 노동조건을 쟁취했다. 오랜만에 이루는 달콤한 잠은 천사들과 함께 하는 또 다른 축제의 초대가 되었다. 로스앤젤레스가 진짜 천사의 도시가 되는 순간이었다. 



이제 엄마는 보다 여유로워졌고, 그 시간은 카를리토스와 함께 하는 소중한 추억의 그릇이 되었다. 그리고 또 다른 노동자들의 파업에 연대하기 시작했다. 그녀가 받았던 그 따스한 동지애를 이제 갚아줄 때가 된 것이다. 카를리토스 역시 그 자리에 함께 하기로 했다. 어려서부터 아름다운 연대의 기억을 가진 이 아이의 미래가 기대된다. 아이는 더 당당하게, 더 단단하게 자랄 것이다. 



책의 말미에 루이스 로드리게스의 이 책의 배경이 된 2000년 로스앤젤레스에서 8천 명의 청소노동자가 펼친 파업과, 그 파업에 참가했던 돌로레스에 대한 글이 나온다. 이어서 "그래 우린 할 수 있어!"라는 그의 시가 실렸다. yes, we can!이라고 나도 함께 외치고 싶다. 이 땅에서 노동자의 땀이 제대로 대접받을 날이 언젠가 올 거라고, 교사도 노동자라는 게 당연히 인정될 그 날이 반드시 올 거라고. 그러니 우리에겐 연대만이 최선이고, 최고의 지름길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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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4-06-21 04: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노동이 정당한 대가를 받는 나라가 살기 좋은 나라겠지요~ 앞으로 우리가 만들어갈 나라이기도 하고!!
어머니들은 박봉에 궂은 일 하시며 가정을 꾸리고 자식을 키워 세상에 쓸모 있는 사람을 내놓건만...
박성우 시집 <거미>에 청소하는 어머니 모습에 뭉클, 눈물났던 기억이...

마노아 2014-06-22 00:29   좋아요 0 | URL
노동자라는 이름을 하찮게 여기지 않는 때가 되어야 대한민국에 진정한 민주주의가 뿌리를 내릴 것 같아요.
경제 규모에 비해서 의식 수준이 따라가지 못하는 게 참 많아요.
진정한 의미의 선진국, 성숙한 그 나라를 포기하지 말아야지요.
박성우 시인의 시집도 찾아봐야겠어요. 읽고 싶어졌어요.^^
 
바람이 머물다 간 들판에 봄봄 아름다운 그림책 38
이동진 글.그림 / 봄봄출판사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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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보는 순간 '모락모락 피어나는 저녁 연기~' 

이렇게 자연스레 동요가 흘러나왔다면 당신은 '노을'을 알고, 또 사랑하는 사람일 것이다. 

84년도에 창작가요제 대상을 받은 이 노래는 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전히 사랑받는 대표 동요다.

이 작품에 노랫말을 쓰신 분이 바로 이 책을 쓰신 이동진 화가시다. 이 책 말고도 동화책을 여러 권 내셨는데, 이 책에도 글과 그림을 모두 당신의 손으로 담당했다.

소개글에 보니 '산돌 이동진체'라는 폰트가 있다고 한다. 궁금해서 검색해 봤다.

혹시 제목의 저 폰트가 이동진체인가 싶어서 이 글씨체로 직접 써봤다.

많이 다르구나. 위의 폰트는 그냥 휴먼매직체인가??



'노을'의 노랫말에도 가을바람이 등장하는데, 바로 그 노랫말의 풍경과 배경이 되는 이야기가 이 책의 주제이자 소재다. 

유미, 유라, 유노 세남매가 살고 있는 시골 마을의 풍경으로 함께 들어가 보자.


딱새가 왔다며 호들갑스럽게 누나를 부르고 있는 까까머리 남동생이 귀엽다. 딱새가 대체 어떤 새인지 서울 촌뜨기인 나로서는 알 길이 없지만, 이 새의 울음소리에서 딱새가 나왔을 것 같다는 기분은 든다. 

감나무는 키워본 적 없고, 감나무에 열린 감을 직접 따먹어본 적도 없지만, 적어도 장독대가 있던 집에서는 살아봤다. 

장독대 위에 하얗게 눈 쌓였을 때, 그 너머 담장위에도 눈이 소복하게 쌓여 있고, 처마 끝에 고드름이 주렁주렁 달려 있던 풍경도 기억한다. 내게는 가을보다 겨울의 느낌이 더 강하게 남아 있나보다. ^^


지붕 위 볏단 얹은 집에 살아보지 못했지만, 어리던 시절에 시골에 가면 소똥 냄새에 코를 움켜쥐며 인상을 찡그렸던, 그러면서도 그 풍경이 신선하고 재밌어서 호기심에 겨워했던 추억들이 방울방울 솟는다. 


유라를 업고 있는 유미 옆에 붉은 꽃이 피었다. 미안하다. '수박바'가 떠올랐다. 아, 먹고 싶구나.^^



마당 있는 집에서 살아봤기에 수돗물 받아놓은 큰 다라이에서 물놀이 했던 추억도 자연스레 떠올린다. 김장철에 거기 가득 쌓여 있던 소금 절인 배추까지도. 


노랑색이 주는 강렬함은 아찔할 정도였다. 은행이 떨어지면 냄새가 고약해서 탈이지만, 은행잎 자체는 얼마나 낭만적이던가. 예쁜 모양으로 주워서 책에다가 끼워놓고, 나중에 한해 지나 발견하면 지난 가을의 냄새를 뒤늦게 추억할 수 있었다. 그렇게 모은 은행잎과 단풍잎을 시를 쓴 편지지에 붙여 코팅해서 썼던 기억도 난다. 이럴 때의 배경음악은 이문세가 진행하던 별이 빛나는 밤에~ 되겠다.^^


거북이 모양을 닮은 좌구산이란다. 거북구에 앉을 좌인가? 거북이가 앉아 쉬는 것 같은 모양의 산이란 뜻일까? 

그렇게 우리 고장을 대표하는 자연이 뭔가 있을 것인데, 그런 걸 관심 가져보지 않고, 있어도 알지 못하고 지내는 도시의 삭막하고 무심한 삶을 새삼 반성하게 된다. 


허수아비 하면 오즈의 마법사이지! 우리 옷을 입었음에도 그리 떠오르니 좀 미안한 걸!



디지털 문화에 익숙한 요즘 아해들은 모여서 몸으로 뛰어노는 놀이를 많이 해보지 못했다. 해보지 못햇으니 알 길이 없고, 그렇게 소중한 놀이 문화가 사라져가고 있다. 고무줄 놀이를 고3이 되어 처음 해봤다고 즐거워하는 아이들을 보고 있자니 난감하기도 하고 낯설기도 하다. 애들은 일단 뛰어노는 게 제맛이건만!


지난 가을 하늘공원에 엄마와 함께 억새축제에 다녀왔다. 이제 억새와 갈대는 구분할 수 있을 듯하다. 일단 사는 곳이 다르잖아~


잠자리하면 나는 코스모스가 떠오른다. 가을에 시골 집에 가게 되면 길가에 가득 핀 코스모스 떼를 보게 되는데, 그때 주변을 날던 잠자리들이 너무 커서 무섭기까지 했다. 하지만 이 모든 건 다 가을이 가득 와 있다는 상징일 테지.


열심히 일하시는 아빠께 저녁 진지 드시라고 알려온 고마운 아이들. 땀흘려 노동한 대가로 가족을 먹이는 가장으로서 당당한 아버지의 풍경이 아름답기만 하다. 그렇게 노동은 정직하고, 노동은 따듯한 법이거늘...



온 하늘이 물들어 가는 시간. 아이들이 노을을 지켜보고 있다. 그렇게 발걸음을 뗄 수 없을 만큼 곱고 고운 노을을, 우리는 살면서 몇 번이나 보았던가. 그리고 몇 번이나 기억하고 떠올렸던가.



다시 한번 동요 노을의 예쁜 노랫말을 들여다 본다. 하나도 버릴 것이 없는 곱디 고운 시다.

시도 고운데, 여기에 노래까지 입혔으니 얼마나 아름답게 치장을 했는가.

이 노래를 부르던 씩씩한 목소리도 귓가에 울린다. 아, 이 노래 나도 참 좋아했었지.

내가 치던 동요 소곡집에는 이 노래가 없었다. 그런데 내 책보다 나중에 나왔을 법한 책에는 이 노래가 실려 있었다.

이미 있는 책이니 새로 사지 못했다. 얼마나 야속했던가.


안되겠다. 바로 노을 악보로 검색해 보니 이미지가 뜬다. 냉큼 인쇄했다. 날 밝으면 피아노로 쳐보리라. 

조카들도 이 노래를 알 것이다. 모른다면 가르쳐줘야지. 내가 피아노 치고, 아해들이 노래 부르고...

참으로 고운 정경이 될 것이다. 벌써 미소가 그려진다. 


엄청 더운 여름날에 가을 풍경을 상상하며 읽기에는 날씨가 다소 안 도와주지만, 이 더위 꺾이면 마주칠 그 가을 풍경이니 이상할 것도 없다. 이 책을 통해 도시 아이들이 접하기 어려운 '고향'의 풍경이, 그 그리운 냄새와, 색깔과 소리까지 모두 재생되기를 소망해 본다. 참으로 예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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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구리 판사 퐁퐁이 - 이야기로 배우는 법과 논리, 제16회 창비 ‘좋은 어린이책’ 기획 부문 수상작 사회와 친해지는 책
김대현.신지영 지음, 이경석 그림 / 창비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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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이 환상적인 책이다. '사회와 친해지는 책'이라는 카테고리가 보이는데, 그 중에서도 '법'을 소재로 하고 있다. 현재 맡고 있는 과목이 '법과 정치'인데, 나한테도 어려운 책이다. 왜 이 교과를 굳이 선택해서 달랑 하나 있는 사회 과목을 이걸로 가르치는지 도통 알 수 없지만, 하여간 그렇게 교과가 짜여 있는 탓에 우리 학교 학생들은 법과 정치를 배우고 있다. 비록 이 책이 어린이를 대상으로 쓰여진 책이지만 고등학생이더라도 '법'이라는 것이 너무 어렵고 멀기만 한 학생들이 읽는다면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이야기로 배우는 법과 논리'라는 부제가 딱 들어맞는 너무리 판사 퐁퐁이의 세계로 들어가 보자. 


이야기에 들어가며 너구리 판사 퐁퐁이가 누구인지를 설명하기 시작한다. 그러니까 행복 마을의 퐁퐁이 판사는 어떤 분쟁이 일어나도 그걸 현명하고 공정하게 풀어주는 명판사였다. 행복마을의 포청천이랄까.


이 책에는 모두 다섯 개의 사건 파일이 나온다. 아래 그림을 보자.



아주 실한 배추 농사를 짓고 있는 황소와 거저 줘도 안 먹을 것 같은 배추를 농사 짓던 족제비가 재판장에 불려왔다. 이번에도 잘 여문 배추를 팔러 나온 황소는 고갯길에서 브레이크를 걸지 않은 채 경운기 바퀴에 버팀나무를 걸고 잠시 농산물 시장 지배인과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이번에도 장사 망친 족제비가 황소의 배추 경운기를 보고 짜증이 나서 바퀴를 발로 차버렸는데, 그 바람에 바퀴를 받쳐놓은 나뭇조각이 튕겨나가 경운기가 언덕 아래로 미끄러진 것이다. 결국 황소의 배추는 모두 망가져버렸다. 당연히 황소는 억울해 했고, 족제비의 책임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퐁퐁이 판사는 이 일에 족제비의 배상 책임이 없다고 판결을 내렸다. 우리의 정서적 판단과는 제법 차이가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그런 판결이 나온 것일까? 퐁퐁이 판사는 차근차근 이유를 설명해 준다.


책에는 우리가 드라마에서 보는 법정의 단골 대사도 등장하는데, "이의 있습니다! 표범의 말은 저에 대한 인신공격입니다." 같은 게 그런 것이다. 적재적소에 궁금하지만 정확히는 모르는 용어들에 대한 설명이 담겨 있다. 



족제비가 황소의 경운기 뒷바퀴를 찬 것은 이 사고의 직접적인 원인은 아니다. 직접적인 원인은 브레이크를 걸지 않은 거였고, 그것은 황소가 저지른 실수였다. 비록 족제비가 발로 차지 않았더라면 사고가 안 났을 수도 있지만 그건 사실 모르는 일이다. 났을 수도 있다. 좀 더 쉬운 보기도 들어준다. 


부실 건축한 건물이 있는데, 마침 주변을 지나던 오소리가 축구공을 건물의 벽으로 찼는데, 그 공을 맞은 순간 건물이 와르르 무너졌다. 그렇다면 오소리 때문에 건물이 무너진 것일까? 건물이 무너진 것에 대해 오소리가 책임을 져야 할까? 


이렇게 실례를 들어 보면 왜 족제비에게 책임이 없는지 이해가 쉽게 된다. 


물론, 황소는 여전히 억울한 마음이 들수도 있겠지만, 이번 사건으로 브레이크를 확실히 걸고 경운기를 세워두는 습관을 가질 것이다. 현명한 퐁퐁이 판사는 이긴 게 다가 아니라는 소중한 진리도 가르쳐준다. 잘못에는 '도의적인 책임'이란 것도 있으니까. 


다섯 개의 판례 중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두번째 이야기였다. 잘못된 생각을 가졌는데 결과는 좋게 나왔을 때, 그때 어떤 책임이 얼마나 있는지에 대한 사례였다.



과실과 미수는 완벽하게 잘못된 행동이라고 하기에는 뭔가 하나씩 부족합니다. 과실은 '나쁜 생각'이 없는 행동이고, 미수는 '나쁜 결과'가 없는 행동이죠. 그러므로 과실이나 미수에 해당하는 행동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그 행동에 책임을 묻지 않는 것이 원칙입니다. 혹시 책임을 묻는다 하더라도, 나쁜 생각을 가지고 나쁜 결과를 가져온 행동에 비해 가벼운 책임을 물어요. -55쪽


과실, 미수와 같은 단어는 자주 쓰기도 하고 듣기도 하지만 정확히 구분하는 게 쉽지 않았는데, 무척 쉽고 재밌게 설명해 주었다. '미필적 고의에 의한'도 나왔으면 더 좋았으련만...^^


우리가 누군가의 잘못된 행동을 비판할 수 있으려면 그가 올바른 행동을 할 수 있는데도, 그렇게 하지 않고 잘못된 행동을 저지른 경우여야 해요. 만약 누군가가 도저히 올바른 행동을 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해 있었는데도, 올바른 행동을 하지 않았다고 비판하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죠. 불가능한 것을 기대하는 것이니까요. -79쪽


이야기 속의 이야기라는 액자 구조가 이 책에는 무척 걸맞는 옷이 되어버렸다. 소소한 유머 감각도 돋보이고, 행복 마을의 동물 친구들이 비록 모습은 동물이어도 인간들처럼 살고 있기에 더 정감있고 설득력이 있었다. 글을 쓰고 기획한 사람이 두분인데 두 작가님이 머리를 맞대어 근사한 공동작업을 내놓은 듯하다. 더불어 '창비 좋은 어린이책 수상작'이라는 마크도 함께 빛을 발한다. 믿고 고르는 책의 약속이라고 해도 무방하겠다. 


법이라고 해서 무조건 지킬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가령 행복 마을에 '모든 빗방울은 땅에서 하늘로 올라가야 한다.'라는 법이 만들어진다고 해 봅시다. 그렇다고 해서 빗방울이 하늘로 올라갈 리는 없겠죠. 법은 자연의 이치를 거스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즉, 법에 우선하는 이치나 가치가 있다는 것입니다. 

인권도 이러한 가치에 해당합니다. 행복 마을의 모든 시민은 어떤 경우에도 종족과 성별, 종교, 취미 등에 의해 아무런 차별을 받지 않아야 합니다. 행복 마을 시민들이 행복을 추구할 권리는 그 어떠한 법보다도 위에 있는 가치입니다. 어떤 법도 그 가치를 해쳐서는 안 되죠. 

따라서 설령 우리 손으로 뽑은 대표가 나쁜 법을 정한다 하더라도, 그 법이 자연의 이치나 인권과 같은 가치를 거스른다면 받아들일 수 없는 것입니다. -133~134쪽


백번 옳은 지적이다. 더군다나 선거날에 이 부분을 읽으니 더 사무칠 수밖에 없었다!!! 재미와 감동과 교훈을 함께 주고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 


책날개를 펴보니 '사회와 친해지는 책' 시리즈가 여덟 개가 더 있다. 차차 찾아 볼 생각이다. 특히 '내가 원래 뭐였는지 알아?'가 눈에 들어온다. 도깨비가 낸 수수께끼를 풀며 옛날 살림살이를 배운다고 하니 재미와 지적정보를 함께 얻을 수 있지 않을까. 내가 딱 좋아하는 조합이다! 빠른 시간 안에 만나자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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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우스 2014-06-05 2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 이렇게 훌륭한 책이..어른인 제가 읽어도 무릎을 칠만큼 설명이 친절해요!! 제가 어릴 적 저런 책이 있었다면 정말 법없이도 살 사람이 됐을텐데요.

마노아 2014-06-06 12:25   좋아요 0 | URL
제가 바로 무릎을 치며 읽은 1인입니다. ㅎㅎㅎ
저 어릴 때 이런 책을 읽었으면 저도 법 없이 살 사람이 됐을 텐데 말입지요.^^
 
노란 샌들 한 짝 맑은가람 테마 동화책 평화 이야기 1
카렌 린 윌리암스 글, 둑 체이카 그림, 이현정 옮김 / 맑은가람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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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나는 난민촌에 살고 있는 소녀다. 구호 센터 사람들이 트럭을 몰고 오면 사람들은 서로 좋은 옷을 차지하려고 있는 힘껏 손을 뻗는다. 리나 역시 그 틈바구니에 끼여 있다. 잡히는 대로 움켜 쥐고 일단 당기고 봐야 한다. 그런데 흩어지는 사람들 속에서 새 샌들 한짝을 찾고 말았다. 리나의 눈이 커지는 순간이다. 신은 열살 리나의 발에 꼭 맞았다. 파란 꽃이 달린 노란 샌들은 고왔다. 무려 2년 만에 신어보는 신발이다. 지금껏 맨발로 살아왔을 리나의 고단한 난민 생활이 눈에 그려진다.


다른 한짝도 주변 어딘가에 있을 것 같아 두리번거리던 리나는, 자기처럼 신발 한짝을 신고 서 있는 여자 아이를 보았다. 리나보다 더 마르고 얼굴이 까만 아이였다. 발은 리나가 처음 난민촌에 왔을 때처럼 갈라지고 부어 있었다. 리나보다 더 신발이 필요한 아이로 보였다. 그런데 인사를 건네는 리나를 보자마자 아이는 휙 돌아서 사라져 버렸다. 신발을 놓치고 싶지 않아서였을 것이다. 


두 아이가 다시 만난 것은 냇가에서였다. 리나가 빨래를 하고 있을 때 어제 사라졌던 그 아이가 샌들 한짝을 들고 찾아왔다. 


"우리 할머니가 그러는데, 한 짝만 신는 건 바보 같대."


아마도 아이는 샌들을 들고 오기 싫었을 것이다. 하지만 간디의 지혜를 닮은 아이의 할머니의 충고를 들었을 것이다. 망설였을 마음과, 기꺼이 들고 온 그 마음이 모두 아련하고 예쁘다.


아이는 샌들을 두고서 다시 휙 돌아서 가려고 했다. 아이를 붙잡은 건 리나였다. 자신의 이름을 소개하고 아이의 이름도 들었다. 소녀의 이름은 페로자. 둘은 하루씩 번갈아 가며 샌들을 신기로 했다. 둘이 내놓을 수 있는 가장 슬기로운 해법이다. 그렇게 두 소녀는 친구가 되었다.



이후 두 소녀는 물 길으러 갈 때도, 동생들을 돌볼 때도 사이 좋게 샌들을 나눠 신으며 우정을 키워 나갔다. 전쟁 통에 가족을 잃은 슬픔을 알고 있는 두 소녀는 서로를 깊이 이해했다. 남은 가족이 얼마나 소중한지도 알 수밖에 없는 두 소녀들.


배우고 싶은 욕망은 크지만 학교가 작아서 여학생까지 받아주지 않았다. 그럴 땐 학교 밖에 쭈그리고 앉아 땅바닥에 이름을 썼다가 어른 지우곤 했다. 혹시라도 잘못 쓴 거라면 창피할 까봐서. 



이 사진이 떠올랐다. 어려운 지역의 아이들일수록 배움에 더 목마르고, 열악한 환경 속에서 더 열심히 공부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리나와 페로자처럼 말이다.



난민촌에서 언제까지 살 수는 없는 노릇. 두 가족 모두 미국으로 이민 신청을 했지만 먼저 허락을 받게 된 것은 리나네 가족이었다. 새로운 기회를 갖게 된 것은 기쁜 일이지만 동무와 헤어지는 건 안타까운 일이다. 맨발로 갈 수 없다며 신발을 안겨주는 착한 페로자. 엄마가 삯바느질로 마련해준 구두가 있으니 페로자에게 신을 양보하는 리나. 그러나 페로자는 신을 받을 수가 없다. 두 친구의 소중한 추억와 우정의 상징이 아니던가. 그렇게 둘은 다시금 신발을 한짝씩 나눠 가졌다. 언제고 다시 만나게 된다면 하나가 될 그 신발을 품은 채 두 사람은 헤어졌다. 



이 책은 맑은가람 테마 동화책 중 평화이야기다. 비록 우리나라의 어린이들은 머나 먼 이야기로 들리겠지만, 우리나라도 전쟁을 경험한 나라이고 아직도 분단국가이다. 늘 한쪽에 위협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역지사지의 마음으로 책을 보았으면 좋겠다. 상대방을 배려해주는 따뜻한 마음에는 박수를 보내주면서 말이다. 더불어, 얼마든지 학교에 가서 공부도 할 수 있는 이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도 제발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배움의 축복이 전 세계의 어린이들에게 주어진 특권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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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4-05-27 04: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참 먹먹하면서도 따뜻한 감동이 출렁이는 그림책이죠.
몇 년 전에 도서관에서 빌려봤는데 얼마전에 구입했어요.
거의 일주일만에 알라딘 로긴했어요.
그동안 분주했고, 지난 수욜부터 인터넷이 안됐어요.
서비스 받을 시간이 없어 어제 오후에서 개통됐다는...

마노아 2014-05-27 09:46   좋아요 0 | URL
안 그래도 책 이름 클릭하니까 순오기님 리뷰 보여서 이미 좋은 책을 알아보셨구나~ 했어요.^^
저는 어제부터 컴퓨터가 바이러스 먹어서 속썩이네요. 알약 v3 돌려봤는데 치료는 되지만 여전히 증상은 남아 있어서 다 밀어야 하는 건가 고민 중이에요. 컴퓨터 새로 산지 한달 조금 넘었는데 이 모양이네요. 흑흑...;;;;

순오기 2014-06-04 07:45   좋아요 0 | URL
마노아님 컴퓨터도는 참 속을 썩이는 거 같아요.
조립품 아닌 정품인데도 그런가요?
한달 조금 넘었으면 서비스 불러서 해결하면 될 거 같은데....

마노아 2014-06-04 11:39   좋아요 0 | URL
제 컴은 친구가 조립해준 거예요. 그 친구라 카톡으로 대화하면서 바이러스들을 잡았어요.
친구가 삼주간 바쁘다고 해서 다녀가질 못할 것 같아서 메신저로 했는데 다행히 좋아졌어요.
의심되는 게 하나 있는데 이건 증상이 복불복이라 나오면 이상하다!하고 여겨요.
아직은 괜찮네요. 연휴 시작인데 다행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