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해고 - 잊혀진 제국 발해를 찾아서, 오래된 책방 11 서해문집 오래된책방 11
유득공 지음, 정진헌 옮김 / 서해문집 / 200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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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나 재미로 보기엔 지루할 것 같지만, 당대인도 아닌 조선인의 눈으로 발해를 들여다 본, 혹은 발해를 찾아간 흔적이 궁금했다.  고구려 땅을 가보진 못해도 고구려 역사란 우리에게 가깝게 느껴지는데, 발해는 너무도 멀고 아득하게 느껴졌기 때문에 더 그러했다.

유득공은 실학자다. 동시대의 많은 인물들이 그러했듯이 서얼 출신으로 출세길이 막혀 있었지만 정조라는 물을 만나 비교적 자유롭게 헤엄을 칠 수 있었던, 그 정도의 복은 타고났던 사람이다.  '한'이 있었기에 더 열심히 학문을 파고들었을 지 모르겠다.  여하튼, 그가 발해를 추적하여 발해의 역사서를 남겨준 것은 후대인으로서 몹시 고마운 일이라고 인사를 해야겠다.

원전도 그리 짧을 것 같지는 않지만, 서해문집의 이 고전 시리즈들은 대체로 문장도 짧고 전체 페이지도 짧다.  길었으면 나같이 꾀부리는 독자는 애초에 읽을 맘을 못 먹었을 지도 모르겠다^^;;;  짧은 문장들이지만 발해의 이야기를 해주는데 경청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전에 읽었던 책들에서 보았던 서술형의 긴 문장들을 짧게 압축해서 다시 확인하는 느낌이었다.  재밌는 것은, 이 책을 읽으면서 도리어 예전에 쉽게 풀어 써준 책들의 고마움을 느꼈달까.(그 책들은 이덕일씨의 저작들이다.)

인상 깊었던 것은, 일본과 오고 간 친서의 내용들이었는데, 해석을 그리 해주어서인지, 몹시 공손하고 정중하여 짐짓 놀랐다.  선입관 혹은 그러길 바래서인지 고대로 올라갈수록 일본에 대해 우리가 많은 우위를 점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꼭 그렇지만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것이 외교적 수사에 해당하는 것인 지는 사실 잘 모르겠다.  물론, 그런 방법으로 발해가 신라와 당 사이의 줄다리기를, 그리고 무역상의 이득을 취한 것은 알고 있다.

간혹 나오는 지도를 보며 저 광활한 땅의 아득함에 한숨이 나왔다.  지금 당장 우리 옛 땅을 돌려달라는 한심한 말을 하겠다는 것은 아니지만, 유득공이 발해의 역사를 쓰지 않은 고려의 책임을 묻듯 어쩐지 우리의 조상들께 항의 한마디 하고 싶어지는 그런 마음. (고조선 관련 책을 보면 속이 뒤집어질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사실, 우리가 이미 잃어버린 옛 땅에 연연할 것이 아니라 현재 갖고 있는 땅이라도 잘 지켜야 할 판국인 것에 더 심한 한숨이 나온다.  독도가 그렇고 중국의 동북공정이 그러니 말이다. 그리고 역시 멀게 느껴지지만 '통일'이 더 다급한 문제일 터니.

중3 여학생으로부터 '통일을 원치 않는다'라는 말을 들었다.  이유를 물으니 "걔들은 우리보다 못 살잖아요." 한다.

참담했다.  앞으로는 더 멀어질 그 소통의 부재와 거리감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  위 아래로 나뉘어 동시대를 살고 있는 한민족도 이리 멀건만, 천년 전 아득한 제국의 고토를 어찌 설명하고 끌어안게 할 것인가.

발해고를 읽으며, 그러한 생각들로 잠시 머리가 어지러웠다.  서두르지 말고, 조급해하지도 말고, 시간이 걸릴지언정 정도를 밟아나가야 한다고 다독였지만 못내 씁쓸하다.

얘기가 조금 새어버렸다. 아무튼, 고전 읽기는, 쉬운 작업은 아니지만 필요한 작업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강조한다.  알라딘에서 서해문집의 고전을 싸게 구입하게 되어서 근래 고전을 몇 권 읽었다.  재차 말하지만 재미보다는 교훈과 지적 욕구에서 만족감을 느껴야 할 것이다.  그래도 보너스로 표지가 이쁘다. 한지의 느낌, 옛스런 느낌이 고급스럽다^^ (너무 약한가?)

하여튼, 읽어서 다 도움이 되는 독서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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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완용 평전 - 애국과 매국의 두 얼굴
윤덕한 지음 / 중심 / 199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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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보았던 응답지가 생각난다. 혹 보았을 지 모르지만, 아니라면 같이 풀어보자

 

첫번째 질문

어떤 여인이 임신중이고, 현재 8명의 아이들을 키우고 있다.
그 중 셋은 귀머거리이고 둘은 장님이며 한 명은 정신지체아였다.
또한 그녀는 매독(에이즈같은 성병)에 걸려있는데...
그녀는 낙태를 해야할까요?

두번째 질문

전세계를 이끌어갈 지도자를 뽑아야 할 때입니다.
여기 3명의 후보들에 대한 사실들이 있습니다.

후보 a

부패한 정치인들과 결탁한적 있고, 점성술을 가지고 결정을 하며,
두명의 부인이 있고 줄담배를 피우고
하루에 8내지 10병의 마티니를 마신다.

후보 b

두번이나 회사에서 짤린적이 있으며 정오까지 잠을 자고
대학시절 마약을 복용한 적도 있고 위스키 4분의 1을 마신다.

후보 c

전쟁 영웅이다.
채식가였으며 담배도 안피우고 경우 에 따라서 맥주를 가끔 마신다.
불륜관계, 또한 가져본 적이 없다.


어떤 후보를 택하셨습니까?



당신이 선택하고 선택하지 않은 사람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후보 a : franklin d. roosevelt(루즈벨트)
후보 b : winston churchill(윈스턴 처칠)
후보 c : adolph hitler(아돌프 히틀러)

그렇다면 먼저번 여인의 경우는 어떤가요? 만약 당신이 낙태에 대해 yes라고 대답했다면,,,
당신은 '베토벤'을 죽였습니다...

이 응답지의 의도와 지금 이완용 이야기를 하려는 나의 이야기가 완전 합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완용 평전을 읽으면서 같이 떠오른 이야기라서 언급해보았다.  이제 책 이야기를 해 보자.

이 책이 나온 지는 좀 된 편인데, 아마 처음 나왔을 때 제목 때문에 여러 사람 놀래켰을 것 같다. 흔히 '평전'이란 단어를 우린 애국을 한, 혹은 그에 가까운 긍정적 의미의 인물에게 붙이지 매국노에게 붙이진 않았으니까.  물론, 특별한 예외는 있다. "위대한 폭군"이라는 제목의 진시황 평전도 있었으니까.  폭군이었을지언정, 놀라운 일도 많이 했다라는 것을 부정하지는 않으니 놀라울 제목으로는 느껴지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완용은 달랐다.  온 국민이 매국노라고 부르는 것에 결코 인색하지 않을 인물이니까.  그러나 그 역사의 적 이완용에 대해서 제대로, 혹은 자세히 알고 있는 사람 역시 드물다는 것을 인정한다.  나도 크게 다르지 않았으니까.  그래서 흥미가 많이 갔다.  그에 대한 말도 안 되는 변명을 늘어놓는 거라면 절대 읽을 리도 없지만 용감(?)하게 책을 낼 사람도 없으리라 믿었으니까.

그렇지만 기대와 달리 책 초반 읽어나가는 것이 몹시 불편했다.  그것은 이완용에 대한 일반인들의 선입관을 깨주기 위해서 들어준 예시 때문인데 대원군과 독립협회의 이야기에서 동의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어서였다.  저자는 독립협회의 회장을 역임한, 독립협회가 옹호했던 이완용을 설명하면서 이 무렵까지의 이완용은 '매국노'는커녕 오히려 '애국'도 했음을 강조하였다.  그런데 아무리 백번을 양보해도 독립협회의 회장직이, 그들의 옹호가 이완용의 행적을 애국으로 포장해줄 수는 없다고 본다.  독립협회 자신이 결코 깨끗하지 못하니 말이다.  청나라에 대해서만 독립을 얘기하고 미국이나 일본에 대해서는 적극 옹호하는 자세뿐 아니라, 나라 되찾겠다고 애쓰는 의병활동에 대해서도 '폭도'라고 규정한 그들을, 제 나라 말도 모두 잊고 '미국인'으로 충실히 살았던 서재필의 옹호 따위야 이완용의 입장을 좋게 보아주기는커녕 더불어 도매급으로 욕먹게 하기 쉽단 생각 때문이다. (아마 서재필이 들으면 펄쩍 뛰겠지만 내 눈엔 서재필도 조선의 꽃은 결코 아니었다.ㅡㅡ;;;)

또 대원군이 민비 시해의 제일 선봉이라고 얘기했는데, 며느리와의 사이가 무지 살벌했다는 것은 아는 얘기이지만 그가 민비 시해의 주범이라는 말엔 선뜻 동조하기가 어렵다.  일본의 전략이라는 것이 늘 조선인의 적을 조선인으로 내세우는 것이어서 그 일에 이용된 사람이 대원군이라면 또 모를까.  이 부분에 대해서는 나 역시 좀 더 공부가 필요하겠지만, 기존의 인식과 조사에 너무 파격적으로 다른 부분이어서 솔직히 혼란스럽기까지 하다.  민비가 저지른 일들이 결코 잘했다 할 일들이 없지만, 그렇다고 유교의 나라 조선에서 일본 칼잡이들을 시켜 왕비를 시해한다... 감정적으로도 이성적으로 납득이 가질 않는다. (이런 혼란조차도 일본측의 깊은! 의도가 아니었을까.)

물론, 을사조약 때의 가장 큰 책임을 져야 할 사람은 고종이라는 사실에 나도 동의한다.  그러나 주범과 종범이 있다고 종범의 죄가 가벼워질 수는 없다.  어차피 넘어갈 나라니까 피 안 보고 조용히 넘겨주자라는 식의 사고로 그의 매국 행위를 이해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러나 당시 조선의 대외 관계의 모습을 오늘날의 대미 관계에 비추어 설명해준 부분들은 십분 공감할 수 있었다.  나 역시 답답하고 화나는 부분들이니까.  당시야 조선이라는 작은 우물 안에 갇혀 있던 사대부들의 좁은 세계관을 탓할 수 있지만 오늘처럼 정보가 열린 국제화 사회에서 미국에 지나칠 정도로 의존하며 또 거기에 기대어 권력과 부를 챙기려하는 잡배들의 행태를 무엇으로 용인하고 이해할까. 예나 지금이나 제 한 몫 챙기기에 바쁜 사람이 너무 많다는 것에 한숨이 나올 뿐이다.

또 한 가지 울컥!하게 한 것은 청산하지 못한 과거사이다.  해방 이후 반민특위가 결성되었지만 시기적으로도 이미 늦었고 이승만 정권의 탄압으로 흐지부지 되어 결국 해체되었으니, 결과적으로 35년간 이민족의 식민지로 나라를 수렁으로 만들었던, 그에 앞장섰던 민족 반역자들은 단 한 사람도 제대로 처벌하지 못한 것이다.  처벌하지 않았기에 반성이 없고, 그들의 악행이 대를 거듭하여 지금도 자행되고 있는 것이다.  뿌리가 썩었는데 어찌 아름다운 꽃과 달콤한 열매를 기대하겠는가.  민족의 정신을 바로 세우지 못한 그 과오를 어찌 바로잡을 것인가 한탄스럽다.

수년 전 이완용의 후손이 땅 문제를 들고 나오며 소송을 하였다. 도의적으로 절대 이해할 수도 용납할 수도 없었건만, 우리의 법은 당시 이완용 손자의 주장에 손을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일 터지고 나서 수습하는 태도도 혈압 팍팍 오르게 하는 종목이다.(ㅡㅡ;;;)

근래에 들어서 송병준 후손들이 재차 소송을 내었건만 법원이 기각했던 것은 그나마 다행스런 일이라 하겠다.  그러나 자자손손 잘 먹고 잘 살았던 이들이 오죽 많으며 독립운동한 대가로 자손 대대로 헐벗고 가난하게 억울하게 살아온 사람은 좀 많은가.  우리 근현사를 공부하고 또 말하다 보면 가슴이 터질 것 같은 때가 한 두번이 아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도 여러번 한숨 쉬며 마음을 다스려야 했다.  아니볼 수 없고, 아니 알 수도 없는데, 정신 건강에 참 해롭다^^;;;;

그렇지만 이렇게 알고자, 알리고자 하는 책들이 있어서 참으로 고맙다.  억울하고 분하고 화가 나도 더 열심히 알리고 퍼트리고 시정을 해야 할 테니까.  몇몇 불편한 부분들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별 네개는 충분히 받을 만한 책이다. 

내내 잘 먹고 잘 살다가 죽어서 묘비가 들어내진 것 외에는 아무 해도 없건만, (그가 민족에게 했던 반민족적 행위에 비해서 죽어 무덤 사라진 게 그리 대수인가?) 그 후손들이 얼굴 들고 못 사는 것만으로 그에 대한 역사적 심판은 과연 끝날 것인가.(이민 가서 역시 잘 먹고 잘 살 텐데, 과연 부끄러워는 하고 있는가. 그랬다면 소송을 하지 않았을 테지.ㅡㅡ;;)

역사의 심판이, 올곧이 바른 길을 향해 달려가길 바란다.  뿌린 대로 거둔다는 만고의 진리를 제발 보여줬음 좋겠다.  그래서, 이제는 근현대사의 기억을 더듬어도 아픔 다음에 속 시원한 만족감을 느꼈으면 한다.  그런 날을 우리가 만들어가야 함은 물론이다.  오늘도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괜히 두 주먹 불끈 쥐어본다.

덧글, 그렇게 역사 교육 중요하다고 하면서 왜 역사 과목은 선택 과목인데?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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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성일기 - 인조, 청 황제에게 세 번 절하다 서해문집 오래된책방 6
작자미상 지음, 김광순 옮김 / 서해문집 / 200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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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사료를 접하는 마음으로 읽었다.  이 책을 쓴 사람은 알려져 있지만 척화파에 동조하는 모습을 보이니 그가 기울었을 마음은 대강 짐작이 간다.  그런 전제조건으로 책을 읽었음에도 쉽게 페이지를 넘기기 어려울 만큼 마음이 불편했다.  당시의 답답했던 국제 정세와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은 우리의 현주소 때문이다.

우리는 흔히, 침략해보지 않은('못한'이라고 하지 않는다) 우리의 역사를 자랑스럽게 얘기하곤 했다.  잦은 침략을 당했지만 그때마다 민족이 뭉쳐서 이겨내었다고 역시 자랑하며 떠든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무조건 맞지도 않다.) 그러나 침략당하지 않을 수도 있는데 침략 당한 사실에 대한 반성은 잘 보이지 않는다.  반성하지 않으니 같은 잘못을 되풀이하고 극복해내지 못한다는 한계를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

사실 병자호란은 우리가 불러낸 전쟁이다.  광해군의 대북외교는 당시로서는 최선이었고 적절한 판단이었다.  그가 내치에서 어떤 잘못을 저질렀건 간에(솔직히 유교적 질서를 빼면 크게 잘못한 것도 별로 없다.ㅡㅡ;;;;) 임진왜란을 온 몸으로 겪으면서 외교와 국방의 문제를 뼈속 깊이 깨우친 그의 이성과 판단을 능가하는 신하가 당시에는 없었다.  현실적 대안은 아무 것도 없는 채 오로지 명나라에 대한 의리 하나로 나라를 무너지게 한 이들이, 청나라의 말발굽 앞에 무릎 꿇은 것은 국가적 치욕 이상으로 개별적 어리석음의 소치였다.  더군다나 이후 인조가 보여준 행보를 생각해 볼 때, 그들을 동정하고픈 마음은 눈꼽만큼도 없다(ㅡㅡ;;)

이미 지나온 역사를 지금에서 돌이킬 수 없으니, 답답하고 화딱지 나지만 그래도 이런 부분들은 심호흡으로 넘어간다고 치자.  나를 더 황당하게 만든 것은 이 책을 만든 필자의 설명들이다.  광해군을 묘사한 부분도 인조 때의 탁상공론을 좇아가더니, 인조 손에 억울하게 죽은 소현세자와 그 가족들을 폄훼한 표현들 앞에서 난 내 눈을 의심했다.  설마 연구가 부족해서?  이건 부지런하지 못한 까닭 아닐까?  정말로 그렇게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더 싫고 무섭다.  당시 정황을 잘 모르는 독자가 이 책을 무비판으로 읽었을 때 입을 영향력이 두렵다는 얘기다.  (물론, 평범한 독자들은 이런 책에 별 관심 없다.  전공공부나 숙제가 아닌 한..;;;;)

그리고 더 씁쓸한 것은, 오늘의 우리 국제 형세도 당시의 조선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현실 때문이다.  미국에 대한 지나친 의존과 저자세 외교, 바른 말 쓴 소리 한 번 제대로 못하고 그들이 어떤 폭력을 휘두르건 지당하다는 듯 순종하는 모습들에 투영된 자화상들.  야구 경기 하나에도 우리는 강대국의 논리가 바로 들어가지 않던가.  현재 FTA협정 문제로 많은 사람들이 한숨과 뜨거운 눈물을 쏟고 있다.  우리가 이 현실을 극복해내지 않는 한, 과거의 조선이 현재의 대한민국이, 미래의 우리가 바라볼 현실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한숨만 쉬고 있을 수 없지만 기운이 없는 것도 사실이다.  진정한 자유, 진정한 자립, 진정한 의미의 '독립'을 오늘도 목메어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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찢겨진 산하 - 김구, 여운형, 장준하가 말하는 한국 현대사
정경모 지음 / 한겨레출판 / 200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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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도 더 전에 이 책이 출간되었을 때 이 책을 접한 독자들이 겪었을 충격이 눈에 선하다.  이미 많은 사실들이 밝혀진 가운데 더는 숨어서 이 책을 보지 않아도 되는 이 시점에서도 충격적인 책으로 느껴졌으니 말이다.  그리고 그 사실이 못내 아프고 안타깝다.

이승만, 박정희 등에 억울한 죽임을 당했던 우리의 민족 지도자 여운형, 김구, 장준하 선생님이 구름 위에서 시국을 걱정하는 역할로 등장하는데 어찌 보면 황당한 이 설정들이 전혀 어색하지 않고 진지하게 연출되고 있다.   나아가 그들이 당시에는 깨닫지 못했던 자신들의 오판들에 대한 소탈한 반성과 통한도 같이 보여준다.  물론 이는 저자의 생각과 판단이 그들의 입을 통해서 드러난 것이지만, 그분들이 정말로 저승에서 우리나라의 지금 모습을 보고 있다면 똑같은 말을 하셨을 거라는 짐작이 들만큼 자연스럽고 또 온당한 지적들로 읽혔다.

그러나 기막힌 것은, 이미 5,60여 년전에 돌아가신 그분들의 입을 빌려 우리 현대사를 지적하는데, 또 작가가 이 책을 쓴 지 20년도 훨씬 지났는데, 우리는 여전히 그때의 그 답답하고 암울한 현실을 아직도 살고 있다.  그들을 죽였던, 그들의 죽음에 동조자였고 방조자였던 자들이 아직도 사회 곳곳에 깊이 뿌리를 내린 채 영향력을 발산하고 있는 오늘인 것이다.  그들의 더러운 거래가 올곧이 드러났다 할지라도 그들은 여전히 사회적 강자이고, 그들의 후예가 그 뒤를 이어 우리 사회를 좌지우지하고 있다.  아직 드러나지 않은 숨은 악행은 또 얼마나 될런가.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면서 책 제목 참 잘 지었다고 감탄도 했다.  그 찢겨진 산하가 아직도 아물지 않고 여전히 벌어진 상처로 힘겨워하고 있음에 동시에 서러운 마음도 들었다.  어느 때면 이 강산에 진정한 자유와 치료와 안식, 위로가 깃들 것인가.  그 날을 만들기 위해 더 정신 바짝 차려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일본은 재방송하듯이 여전히 망언을 일삼고 있는데, 우리 역사 교육의 현주소를 생각하며 혀도 차 보고...;;;;;; 답답하지만 한숨만 쉬고 있어서도 안 되겠다.  역사는 결국 정을 향해서 달려나가는 힘을 지녔으니까.  단, 그 속도를 빠르게 밀어주는 힘이 우리에게 요구되지만.

쉬운 책은 아니다. 내용을 어렵게 풀어낸 것은 아니지만 현대사의 기본 줄거리를 알고 있어야 책이 제대로 읽힐 것이다.  통사류로 대강을 파악한 뒤 이 책을 만날 것을 권한다.  그 만남이 꽤 인상적이다. 단, 가슴이 많이 아프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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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멜표류기 - 낯선 조선 땅에서 보낸 13년 20일의 기록 서해문집 오래된책방 3
헨드릭 하멜 지음, 김태진 옮김 / 서해문집 / 200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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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드릭 하멜과 그의 동료 선원들은 한 번도 예상하지 못했던 조선 땅에 표류하고 만다.  그들이 거부할 수 없는 자연의 힘(태풍, 풍랑) 앞에 무릎 꿇으며 말이다. 그러나 인류의 역사가 증명해 왔듯 그들은 포기하지 않고 살길을 모색한다.  제주도에서 도망치려고도 해보았고, 청나라 사신에게 손을 뻗어보기도 한다.  비록 실패했지만, 거기서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기회를 노린 그들은 마침내 13년 만에 조선 땅을 떠나 일본의 나가사키에 도착한다.  그곳에서도 시련은 끝나지 않지만, 결국 그들의 인내와 도전은 조국 땅을 밟는 결실로 되돌아 온다.

작품 속에는 그들보다 앞서 표류한 네덜란드 인 벨테브레도 나온다.  그는 수십 년 간을 조선 땅에 머물면서 귀화하여 모국어를 잊을 지경에 이르렀다. 공과를 떠나서 그는 하멜 일행만큼은 조선 땅을 떠날 노력을 덜 했다고 보여진다.  긴 시간이 걸렸고, 일행 모두가 함께 떠나지 못했지만, 인고의 시간을 견디어 낸 하멜 일행 등은 끝내 원하는 곳을 향해 출발할 수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기회'란 '늘' 오지는 않지만 '언젠가'는 오는 것이고, 그것을 잡을 수 있는 자가 자신의 운명을 개척해 나가는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역사적으로 서양 세력이 우리나라에 처음 문을 두드렸을 때, 19세기 제국주의 시대보다 상대적으로 덜 위협적이었고 보다 예의를 갖추고 있었을 때 조우하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고 안타깝다.  역사에 '만약'이란 없는 것이지만 우리 역시 언젠가는 오지만 늘 오지는 않는 그 '기회'를 놓친 것 같아 속이 탄다.

이 작품은 하멜이 13년 간의 밀린 월급을 받아내기 위해서 쓴 글이지만, 목적이야 어떻든 우리로서는 귀중한 자료에 해당한다.  제3의 입장에서 들여다 본 조선의 생활상을 21세기의 우리가 보다 객관적으로 지켜볼 수 있지 않은가.

책이 몹시 얇은데, 그렇다고 단숨에 읽을 만큼은 아니다. 좀 더 눈여겨보면서 공부하듯이 읽히는 재미가 있다.  그럼에도 너무 두꺼워 지레 지치게 하는 맛이 없어 다행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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