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랍 안에는 새 것과 쓰던 것이 있다. 늘 애용하는 쓰던 것의 라벨이 떨어지자 새 것을 사용해본다. 그런데 정이 가지 않는다. 손톱의 부분이 잘리거나 날라가기에 불안하다. 낡은 것은 적절한 힘으로 또각또각 온전한 손톱모양을 유지하며 잘린다. 자르고 난 뒤 한번만 다듬기로 굴려주면 맵시도 있고 완벽하다. 모아 버리기도 수월하다.
전시를 준비하면서 여러 경로 가운데 알맞은 길을 찾으려고 노력중이다. 그림 카드를 만들고, 전시홀별로 자석식 도면도 만들어 둔다. 캔버스별로 라벨을 달고, 투명상자도 구입해 따로따로 넣어둔다. 그러기 위해서는 있는 것들을 또 다시 확인하고 분류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흐뜨러뜨리고 다시 기억을 살리는 작업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관계들도 그러할 것이다. 경도된 결과에 어처구니없이 버려진 과정들. 여러 경우의 수의 과정들이 있던 것이다. 왜 그 관계가 어그러졌을까. 미리 예비하는 징조들이 있었을텐데, 왜 눈에 들어오지 않은 것일까. 지난 과거의 기억들을 흐트러트린다.
지난 번에 읽은 책이 로르동이다. 분명 여성분이구나 했는데, 새 책을 보니 남성이다. 지난 번 느낌적 느낌이라는 단어를 새기면서 다시보게 되는 책이다. 그래서 화이트헤드의 느낌의 위상학이라는 책을 건네들기도 했다.
과정이 실재다
이상사회라는 것은 없다. 그렇게 결과에 집착되는 세계는 없다.
영원한 과정만 있을 뿐이다.
볕뉘
잘 짤리지 않는 손톱깎이를 사랑한다. 온전한 과정을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