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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국의 우생학
  • N. 오르도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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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6-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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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생학은 언제나 극히 기민한 이데올로기였다. 우생학은 스스로 힘을 실어주기도 하고 동원되기도 한 운동들, 즉 국가주의, ‘개혁 지향‘ 자유주의, 절대적인 동성애 혐오, 백인우월주의, 여성혐오, 인종주의와 따로 떼어낼 수 없다. 우생학이 오래도록 살아남은 것은 순전히, 어떤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오명을 뒤집어쓰더라도 나머지 사람들은 다치지 않는다는 이유로 이런 운동들과 공모했기 때문이다. 더욱이 우생학이 모든 유형의 편견에 호소력이 있다는 것은 배제나 유전적 추정이나 외과 수술의 대상으로 지목된 개인들이 대부분 다중적 정체성을 가지며, 어느 하나가 아니라 그 이상의 표적 집단에 속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 P56~57

미국의 우생학은 이제는 더는 사라진 학문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더는 자신이 백인 코카서스 인종임을 드러내는 사람은 없지만 여전히 흑인과 이민자에 대한 혐오와 차별이 공공연하게 벌어지고 있는 중이니까. 인종, 계급, 젠더의 위계에 의한 불평등은 우생학을 낳는 기본 토대다. 거기에 정책 입안자, 의사, 법률가, 기업가 등이 서로 간에 양분을 주며 우생학이 오히려 더 강화되었다. 우생학은 가산적 이데올로기다.

20세기 미국 이민의 역사는 우생학과 뗄레야 뗄 수 없는 실천 영역 중 하나다. 1875년 페이지법부터 1882년 중국인 배척법, 연방이민금지령, 1917년 재외국인 미국 이민 및 거주 규제법에 이르기까지 인종 및 계층에 따라 입국 불가 범위는 계속 넓어졌다. 특히 1917년 재외국인 이민법이 발표될 당시는 볼셰비키 혁명으로 공산주의자, 무정부주의자, 사회주의자, 급진주의자에 대한 적대감이 커지면서 보편적인 반이민정서가 횡행할 때다. 이후 1921년 이민자의 범위를 총 인구의 3%로 제한하는 법이 통과되더니 1924년 이민제한법이 발표된다. 이민제한법은 우생학 전문대리인인 로플린이 적극 역할을 했는데 그는 재외국인 국가등록제를 촉구하고 자격 통과한 이민 예정자에게 개발적으로 여권을 발급해야 한다고 권고했던 것이다(정책에 거의 그대로 반영되었다). 이 법은 나중에 히틀러의 나치 독일 단종법에도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우생학을 지지한 사람들은 몰려드는 이민자들로 인해 인종 혼합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이 증폭됨에 따라 백색 인종적 순수성을 지켜야 한다는 강박감에 시달렸고 이를 적극적으로 타개하고자 뛰어들었다. 파이어니어 펀드라는 회사는 우생학 출판물을 영어로 번역하고 미국의 우생학회 등 우생학을 선전하는 단체를 지원하며 반이민 기조에 영향을 주기도 했다.

동성애의 원인이나 치료법을 찾는 것이 동성애에 일탈이라는 꼬리표를 단다는 점, 동성애에 대한 의학적 또는 정신의학적 병리화가 이성애를 정상화하는 역할을 한다는 점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미 국립보건원은 어쨌든 이성애 유전자를 찾는 일에는 자리를 내주지 않았다. 다만, 아마도 의도치 않게 연구를 하는 경우는 있었을지 모르지만 말이다. 그러니 1869년 헝가리 작가 카로이 마리아 케르베니 Károly Mária Kertbeny가 만든 ‘동성애자 homosexual라는 용어가 ‘이성애자 heterosexual‘라는 용어보다 먼저 통용된 것도 놀랍지 않다. - P183

동성애는 유전의 영향인가, 환경의 영향인가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은 사항이다. 그러나 동성애를 문제시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생물학적으로 애당초 문제가 있었다는 식으로 이끌고 가려 했다. 한쪽에서는 동성애는 유전이 아니지만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는 성향은 유전이라는 주장을 펼치기도 했다. 이는 실패를 선천적인 지적 결함으로 이야기하면 특권층에 유리하기 때문에 먹히는 매커니즘이다. 한편 의학이, 의사의 주장이 사법 제도가 된 사례는 단종법의 통과다. 1909년 캘리포니아의 단종법 통과 이후(1911년 아이오와주, 나중에는 오리건주까지) 상습성범죄자 등에 대한 단종 수술이 징벌적 성격이 아닌 치료 목적으로 둔갑되었다. 이는 명백한 우생학적 이데올로기에 의한 사고다. 동성애자는 이렇게 사회에서 근절되어야 할 악이자 그 대상이 되버렸다.
마찬가지로 젠더가 유전적 요소에 따른다는 편견과 집착이 존재했다. 젠더부적응도 마찬가지다. 젠더 역할에 대한 의학적 판단은 인종, 계급에 기초하여 동성애를 구성하고자 했다. 의사든 비전문가든 레즈비언은 신체적으로 이상하고 기괴하다는 생각이 있었다. 동성애로 짐작되는 아이들 중 자위하는 아이들의 음핵을 제거하고 두개골 크기 및 얼굴 생김새로 범죄 성향을 연결지으려는 시도도 있었다. 레즈비언도 지배적 레즈비언과 소극적 레즈비언으로 구별하여 정량적으로 계산할 수 있다는 논리를 폈다.
동성애에 대한 정신의학 및 생물학 논문이 내놓은 가설은 퀴어에 대한 적대감 및 신체적 위해를 제거하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호르몬으로 동성애자를 치료할 수 있다는 가설은 심리학자, 의사, 연구자들을 만족시켰다.

테크노픽스는 점점 더 암호화된 방식으로 활용됐고, 자유주의자들에게 더욱 강력한 호소력을 발휘했다. 자유주의자들은 의식적이든 아니든 보수주의자들과 합세해 인종, 계급, 젠더(청소년 여부 및 장애 유무에 의해 더 강화됨)를 우생학 프로젝트의 주요 결정 요인으로 확립했다. 새로운 테크놀로지는 공공 정책 분야의 ‘혁신‘과 손을 맞잡고 오랫동안 지속되어온 양상을 다시 한번 각인시켰다. 여성 및 여자아이들이 먼저 하나 이상의 특정 인구통계학적 집단의 구성원이라는 이유로 병리화된 다음, 의학적으로 위험하고 헌법에 비춰 의심스러운 ‘치료법‘을 받아들이도록 압박을 당하는 일이 바로 그것이다. - P411~412

산아제한은 계급(지위든 경제든)과 연관되어 우생학적 관점에서 해석되었다. 마거릿 생어는 적극적 우생학(‘적자‘는 인종과 국가에 봉사하기 위해서 가족 구성원을 늘려야)은 비난했으나, 소극적 우생학(‘부적자‘ 사이의 생식은 방지되어야)은 가치가 있다고 여겼다. 푸에르토리코의 가난한 여성을 대상으로 경구프로게스테론 실험약이 투여된 것은 미국의 식민주의와도 연결될 수 있는 지점이다. ‘니그로 프로젝트‘는 흑인 사이의 출생률을 감소시키면 남부의 빈곤이 해결될 것이라는 가설에서 시작된 프로젝트다(반대 목소리를 낸 것이 W.E.B.듀보이스). 클래런스 겜블은 강제 단종수술 클리닉을 설립하고 널리 시행했는데 여기에 생어는 적극 동조하고 지원했다. 생어는 빈곤층이 재정 부담을 가져오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인구 과잉은 국가적 재앙을 불러온다며 단종수술이 필요하다 보았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녀는 장애나 정신적 부적자에게도 단종수술이 필요함을 설파하는 인간개량재단에도 참여했다.
미국 남부에서는 조직적인 단종수술이 이루어지기도 했다. 1929년에서 1940년 사이 노스캐롤라이나 주 단종 수술 후보자 중 78%가 여성이었고, 그중 21%가 아프리카계 미국인이었으며, 1964년에는 아프리카계 미국인이 전체 단종 수술의 65%를 차지했다. 수술 대상자로 지목된 사람들에는 인종 및 사회 경제적 지위 뿐 아니라 연령(낮은) 기준이 작용했다. 가장 큰 문제는 단종 수술을 받지 않으면 복지 혜택이 줄어든다고 하는 사실 때문에 수급자에게는 협박으로 작용했다는 현실이다. 이처럼 산아제한의 명목으로 여성의 선택권은 보호받지 못했고 의료계가 선택한 자율성과 편의성에 의해 단종수술이 시행되었는데 이를 제공한 의료 서비스 제공자들의 권리는 철저히 보호되었다. 이는 난관결찰술 및 자궁적출술에 이은 노플란트, 데포-프로베라도 마찬가지다. 국외 빈곤 퇴치 방안으로 행해진 두 시술은 모두 부작용이 제대로 고지되지도 않은 채 미국 외 저개발국가에서 실시되었다. 특히 노플란트는 원상태로 돌릴 수 있다(주로 5년 이후 빼낸다고 하지만 빼내는 사람이 얼마나 있었을지...)는 사실 때문에 더 호혜적으로 느끼게 만들었다. 여성의 몸(의 부작용과 위험적 결과)은 누가 책임져야 하는가. 생각할수록 소름이 끼친다.

이처럼 이 책은 과거 미국의 우생학이 펼쳐진 다양한 국가 정책적 사례를 자세히 보여준다. 그러나 서두에도 이야기했지만 우생학은 결코 죽지 않았고 여전히 드러나지 않았지만 미국 사회 전반에 뿌리내려져 있다고 생각한다. 이 책을 통해 미국의 과거와 현재를 확인하고 진단해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미국 우생학의 역사에서 두드러지는 점은 반동주의적 의제와 개혁주의적 의제가 늘 협력한 것은 아니더라도 공통의 목소리를 냈다는 것이다. 논쟁의 여지는 있지만 그럼에도 많은 경우 자유주의는 보수주의, 그리고 심지어 전면적인 파시즘도 이룰 수 없었던 것을 더 밀고 나아갔다. 여성, 가난한 사람, 인종화된 사람, 장애인에 대해서는 자유주의자와 보수주의자, 양쪽 모두 온정주의적인 자세를 취했다. 구조적 불평등을 해결하는 데양쪽은 모두 실패했다. 양쪽 모두 미국 국내와 ‘개발도상국‘의 인구 조절 프로젝트를 지원했다. 이런 공동의 대의의 기틀을 만들고 조성한 사람이 바로 자유주의 페미니즘이 가장 소중히 여기는 우상 중 한 명인 마거릿 생어다. 물론 생어 혼자서 한 일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 P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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