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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의 산
  • 중국정치사상사
  • 김영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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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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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의 귀족제

정치체의 귀족적 성격은 귀족의 배타적 권리를 법적으로 규정한 이른바 팔의, Eight Deliberations 에 분명히 드러난다.예컨대 같은 범죄라 하더라도 피해자의 상대적인 지위에 따라 다른 형벌이 적용되었다. 귀족 대부분은 고문을 받지 않았으며, 일정 금액을 지불하면 형벌을 면제받을 수 있었다.이후 중국의 법률에서도 그 유제 遺制 를 발견할 수 있다.


‘당시‘는 당나라 귀족들 간의 사회적 교류와 세련된 대화의 주된 형식으로 떠오르면서 귀족들 간의 문화적 응집력을 보여주는 데 한몫했다. ‘당시‘를 정의하는 주된 특징 중 하나는 계기성 occasional character이다. 당시를 짓는 일은 고독한 상태에서 스스로에게 말을 거는 외로운 작업이 아니라, 적절한 계기를 맞아 현실 혹은 상상 속의 사람에게 건네는 일종의 반응response 이다. 다시 말해 당나라 때 시詩란 깊숙한 사적 감정을 표현하는 수단이라기보다는 효과적인 공적 연설을 위한 형식에 가까웠다.



외국인들도 당나라 중앙 관료제의 상당 부분을 점유할 수 있었다. 외국 학생들을 위한 과거 시험인 빈공과 가 바로 그것이다. 빈공과에 합격하기 위해 다수의 외국인이 장안의 과거 시험 준비 학교에서 공부하였다. 빈공과에 합격한 일본인, 한국인(신라인), 소그드인 sogd人, 東特 등 외국인도 중요한 공무를 맡았다. 그 결과 번관 譯官, officials of foreign origin 이 조정에서 늘어났다. 『당육전唐六典』에 따르면, 중앙 관료의 5분의 1이 번관이었다. 간단히 말해 국가 관료제 역시 문화적으로나 민족적으로나 혼합된 세계의 일부였던 것이다. 한족 출신이 아닌 이들도 이 관료제라는 경력 사다리를 타고 최상의 위치에 오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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