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작 부끄러울 사람들은 어디에 있나?
책선생 2024/11/24 2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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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끄러움의 시대
- 장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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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0) - 2024-10-31
: 1,133
호텔 청소원 아버지는 유난히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사람이었다. 어릴 때부터 그랬다는데 부끄러움의 정도가 심해 유령처럼 손님들 눈에 띄지 않게 청소를 하고 샤사삭 사라지는 호텔 청소원이 아니었으면 밥벌이도 어려울 정도였다고 한다.
아버지의 모든 역사는 호텔에서 벌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머니를 만났고, 어머니를 그 곳에서 잃었다. 그 곳에서 ‘나’의 스승을 만났다. 그리고 아버지의 마지막 순간도 호텔에서 청소를 하다가 맞이한다.
‘나’는 수공예 우산을 만드는 사람이다. 아버지가 호텔에서 만난 스승님은 어릴 때 벨기에로 입양간 한국인이다. 입양 가기 전 한국을 느티나무에 부딪히는 빗소리로 기억한 스승님은 우산 수공예 장인이 되었다고 한다. 말년을 한국에서 보내러 왔다가 숙소였던 호텔에서 아버지를 만나게 된다.
어머니는 정의로운 분이다. 불의를 참지 못하고 고등학교를 뛰쳐나왔고 집에서도 나와 호된 고생 끝에 호텔에서 청소를 하게 됐다. 호텔에서도 청소 노동자로서 억울한 일들을 참지 못 했다. 그런 과정에서 아버지를 만났다.
성실한 아버지와 어머니는 호텔을 이용하는 사람들에게는 눈에 띄면 안 되는 사람들이었다. 아버지는 객실 문 앞에 붙여 두는 ‘방해하지 마시오’라는 팻말을 읊조리며 살았다. 성실하게 살아 오던 이들을 부끄럽게 여기는 것이 당연한가? 아버지는 ‘나’는 다른 사람을 살기를 바랐는지 ‘강한해’라고 이름을 지어주셨다.
언제부터인가 우산 가게 앞을 서성이는 ‘봐요’씨는 화재 사고로 언니를 잃었다. 화마로부터 피하기 위해 몸을 던지던 순간 꼭 쥐고 있었던 우산을 버릴 수 없어 고치러 왔다가 한해와 연인이 된다. ‘봐요’씨는 기계를 만드는 사람이다. 안전 사고가 벌어질 때마다 무너지는 마음이 힘들다.
아버지가 이제는 부끄러움 없이, 들킬 염려도 없이, 누구의 방해도 없이 편한 마음으로 호텔 청소를 하며 지냈으면 좋겠다. 어떤 시대든 시대는 견디고 버티는 것이고, 견디고 버티는 자가 시대의 승자이다. 호텔 최고의 청소부였던 아버지는 자신의 시대를 잘 견디고 버텨냈다.
사회적 참사와 재난으로 부터 무던하게 살아낸 사람들의 이야기
‘강한해’가 수제 우산을 만드는 사람인 이유를, 강한해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호텔 청소부인 이유를,
‘봐요’ 씨가 기계 설계를 하는 사람인 이유를 곰곰히 생각해 봤다.
소설 속에 일어나는 화재, 열차 탈선, 팬데믹 현상은 우리가 이미 겪은 사회적 재난과 참사이다. 이런 참사의 원인을 무던히 성실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존중의 부족으로 이야기하고 싶었던게 아닌가 싶었다.
반복되는 참사와 사회 재난 때마다 ‘예방할 수 있었다. 인재다’ 식의 뉴스를 접하며 하나 마나 한 말이라는 생각을 한다. 책임 소재를 가르며 책임자 사퇴 운운할 게 아니라 눈에 보이든 그렇지 않던 제자리에서 맡은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들을 기억해야 하는 게 아닐까?
촘촘한 구성이 돋보이는 마음에 남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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