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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귀님 나귀님 나귀님


프란치스코 교황 타계 소식을 듣고 뉴스를 보니 10여 년 전 한국 방문 당시의 영상이 나온다. 문득 그때 광화문 광장에서의 행사에서인가 교황을 직접 만났던 세월호 유가족 중에 '유민 아빠'로 알려진 사람이 있었던 것이 기억났다. 나중에 바깥양반하고 앉아 있다 교황 이야기가 나오기에 유민 아빠 이야기를 언급했더니, 그렇잖아도 추모글을 올렸더라 대답한다.


가톨릭 신자들 사이에서는 교황 알현이 평생 소원이라고 알고 있다. 한때 우리나라의 어느 사이비 종교 지도자도 교황을 만났다는 거짓 주장을 홍보에 이용할 정도였으니, 그 권위와 명성이 어느 정도인지 알 만하다. 따라서 유민 아빠의 경우에도 특별한 경험을 한 것만큼은 분명해 보이는데, 사안이 사안이다 보니 딱히 남들의 부러움을 살 만한 처지까진 아니었다.


물론 유민 아빠가 했다는 부탁대로 교황이 세월호 사건 처리에 대해 한국 정부에 압력을 가할 수는 없었으리라 짐작되고, 또 이후의 상황 전개만 보아도 압력 따위는 있지 않았음이 분명할 정도로 엉망진창이었다. 한편으로는 각국 지도자보다 더 큰 권위의 상징인 교황까지 만난 이상, 이제는 산 사람의 입장에서 더 호소할 곳이 없지 않나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제아무리 잊지 말자 다짐했어도 잊을 수밖에 없는 것이 세상의 이치이다. 11년째인 올해에는 나귀님도 당일까지 미처 그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유가족은 아직도 진실 규명을 주장하지만, 이제는 사실상 불가능해진 목표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유가족이 여전히 몸부림치는 사이에, 책임을 방기했던 대통령은 물론이고 선장을 제외한 선원들도 모두 석방된 상태다.


지금 와서 세월호 사건의 가장 끔찍한 부분은 도무지 결말이 날 기미가 없어 보인다는 점이다. 교황을 만나고, 정권을 바꾸고, 선체를 인양하고, 조사를 진행해도 여전히 알 수 없는 것 투성이로 11년 전에 머물러 있는 듯하다. 심지어 유가족 측에서도 조사 결론에 대해 계속 의문을 제기하며 사건에 마침표 찍기를 완강히 거절한다는 폭로 아닌 폭로까지 나왔었다.


이쯤 되니 세월호와 유가족을 정치적으로 이용했다는 비판이 나오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자칭 '촛불 정권'에서도 마무리하지 못했으니, 이제 이 사건은 수많은 조롱과 폄훼 속에 영영 미완결 상태로 남게 되지 않을까. 어찌 보면 유민 아빠의 교황 알현 모습이 유독 씁쓸하게만 기억되는 이유도 그래서일지 모른다. 이 세상에는 끝내 안 되는 일이 있었으니까.


유민이라는 이름을 들으면 김훈이 훗날 기고문에서 언급한 현금 6만 원이 떠오른다. 평생 받은 중에서도 가장 많았으리라 짐작되는 용돈을 갖고 떠났지만, 결국 쓰지 못한 지폐만 물에 젖어 돌아왔다는 이야기였다. 과연 그 돈은 지금 어디 가 있을지 궁금하기도 하다. 유가족의 입장에서는 절대로 써서는 안 될 돈으로, 화폐가 아니라 유품이라고 간주되지 않을까.


김훈이 그 6만 원의 구매력을 언급하기에, 11년 뒤인 지금의 가치를 따져보니 물가 인상을 반영해 대략 7만 4천 원쯤 되었다. 마침 어제 지인의 아들이 대학에 들어가자마자 그 열 배쯤 되는 돈을 한 달 용돈으로 원하더라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누군가에게는 큰 돈이 누군가에게는 작은 돈이고, 그 돈을 주려도 받을 수 없다는 사실이 새삼 서글프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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