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간 중에 <대온실 수리 보고서>라는 것이 있어서 혹시 남산 식물원이나 서울대공원 식물원 같은 유리 구조물의 보존 관리에 대한 논픽션인가 싶어 클릭해 보니 의외로 소설이다. 그래도 창경원 식물원을 소재로 다루었다기에 호기심이 생겨 해상도 떨어지는 알라딘 미리보기로 대강 살펴보았는데, 그리 흡인력 있는 내용까진 아닌 듯하니 안 읽어도 그만일 듯하다.
얼마 전 바깥양반이 요즘은 소설을 읽어도 영 재미가 없다면서, 아무래도 우리보다 나이 어린 작가의 경우에는 한글 전용 세대이다 보니 어휘 자체부터 제한적이기 때문이 아니겠느냐고 말한 기억이 난다. 그러고 보니 얼마 전 정양완 선생의 에세이에서 '거드쳐주다'와 '창거려주다' 같은 생경한 서울 사투리(?)며 독특한 문장이 의외로 참 재미있었던 기억도 나고.
재미있는 소설은 처음 한두 문장, 길어야 처음 한두 페이지에서 뭔가 '느낌'이 온다고 믿는 나귀님이다 보니, 요즘은 각종 화제의 신간을 미리보기하다가 영 밍밍한 느낌에 포기하는 경우가 더 많다. 그렇다면 나귀님 기준으로 재미있는 소설이 무엇이냐 묻는다면, 가장 최근의 사례로 (그래 봤자 몇 년 전이지만) 크누트 함순의 <땅의 혜택>이라고 말해야 되겠다.
함순의 책은 <생태학의 역사>라는 책에서 '구약성서 비슷한 간결한 문장'이라는 평가를 접하고서 흥미를 느껴 읽게 되었으며 (참고로 <생태학의 역사>는 알라딘 중고샵에서 구입했는데, 딱 그 부분을 읽고 나서 페이지를 넘기자마자 파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어서 결국 반품했다!) 다음에는 또 무슨 일이 벌어질까 궁금해서 페이지를 넘기다 완독해버린 거였다.
그나저나 창경궁 이전 창경원 시절에 여러 번 가본 나귀님이지만, 의외로 식물원에 가본 기억은 없다. 인터넷에서 창경원 시절 평면도를 찾아보니 동물원은 서쪽 끝에 있고 식물원은 동쪽 끝에 있는데, 그 시절 창경원이라면 당연히 호랑이며 코끼리 같은 동물을 구경하러 가는 곳이라는 인식이 보통이니, 멀리 떨어진 식물원까지 굳이 가볼 이유는 없었을 법하다.
옛날 사진을 모아 놓은 앨범에서는 케이블카 오가는 창경원 연못 앞에서 가족끼리 찍은 사진을 본 기억도 있으니, 늘 왼쪽에만 있었던 것은 아니고 오른쪽에도 가보기는 한 것 같고, 어쩌면 식물원에도 한두 번은 들어가 봤을지 모르겠지만, 여하간 동물원에 대한 기억도 가물가물해진 지금에 와서는 식물원에 대한 기억 따위 아무리 더듬어도 나올 리 만무하다.
예전에 창경원 동물원을 서울대공원으로 옮길 때에 안전을 고려해서 한밤중에 이동했다는 뉴스도 접한 적이 있는데, 이후 창경궁으로 복원한 이후에는 한 번만 가봤나 했었던 것 같다. 언젠가 알라딘 대학로점 가느라 창경궁 앞으로 버스 타고 지나가 보니, 근처 고가도로도 없어지고 홍화문 앞도 예전 기억처럼 넓고 웅장하지는 않기에 새삼스레 놀라기도 했었다.
창경원 관련서로는 당시 그곳 동물원에 근무했던 사육사 오창영과 김정만의 에세이를 갖고 있는데, 동물원보다는 동물에 대한 설명 위주인 책이다 보니, 구입 당시에만 해도 자료 가치가 높아 보였지만 지금은 오히려 낡은 감이 없지 않다. 드문드문 언급된 동물원 자체에 대한 이야기가 더 많았다면, 사라진 모습을 알아볼 자료로 오히려 귀하게 여겨지지 않았을까.
최근에 에버랜드의 판다 가족이 인기를 끌면서 담당 사육사들도 강바오니 송바오니 하면서 덩달아 인기를 끄는데, 앞서 말한 창경원 사육사 오창영과 김정만도 꾸준한 언론 기고와 방송 출연으로 이름을 많이 알린 경우에 해당한다. 특히 김정만은 <퀴즈 탐험 신비의 세계>라는 동물 퀴즈 프로그램에 자주 출연해서 얼굴이며 목소리를 기억하는 사람도 많으리라 본다.
그런데 지금은 '사육사'를 '주키퍼'라는 영어 명칭으로 일컫는 풍조도 생긴 모양인데, 실제로 하는 일이야 큰 차이가 없으니 뭔가 불필요한 말장난처럼 보이기도 한다. 특히 강바오와 송바오가 근무하는 에버랜드에서 유독 그렇게 칭하는 듯한데, 선배 격인 오창영과 김정만이 무려 정식 수의사였음에도 불구하고 '사육사'로 호칭되었음을 감안하면 아이러니하다.
<대온실 수리 보고서>라는 책 제목에 나와 있듯, 창경궁 대온실은 식물원 이전 후 한동안 방치되다가 수리를 거쳐 다시 식물원으로 사용되고 있다니, 나중에라도 시간 되면 한 번 찾아가 봐야겠다. 내친 김에 남산 식물원도 오랜만에 가볼까 싶어서 지금 다시 검색해 보니... 2006년에 이미 철거되었다고 한다! 이제는 그냥 옛날 추억으로만 떠올려 봐야 하려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