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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귀님 나귀님 나귀님


이른바 '지브리풍(風) 그림 만들기'가 인기라고 한다. 챗GPT에 사진이나 그림을 올리고 '지브리풍'으로 바꿔달라면 진짜로 그 회사에서 만든 애니메이션의 한 장면처럼 바꿔준다던가. 심지어 이 유행 덕분에 챗GPT 유료 사용자가 급증했다고 보도하는 뉴스 기자들도 취재를 핑계로 자기 사진을 '지브리풍'으로 바꿔 게재할 정도이니, 확실히 인기는 인기인 모양이다.


미술의 역사를 살펴보면 유명 작가나 특정 시대 고유의 화풍을 모방한 모작이며 위작이 종종 등장해서 훗날 그 진위 여부를 놓고 논란이 벌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직접 그림을 그려야 하는 모작은 아무나 따라할 수 없는 일인 반면, 챗GPT를 이용한 화풍 따라하기는 일반인도 가능할 만큼 손쉽고도 파급력이 강하다는 점에서 더욱 주목과 논란의 대상이 되는 듯하다.


이런 인기는 다른 무엇보다도 지브리의 명성 때문일 것이다. 이미 수많은 걸작 애니메이션을 통해 대중에게 사랑을 받은 까닭에, 그림체마저 거부감 없이 호의적으로 받아들여졌던 것이 아닐까. 저작권 문제를 이유로 충분히 이의를 제기할 만한 상황이지만, 아직까지 별다른 반응이 없는 이유도 자칫 대중의 열광에 찬물을 끼얹었다 생길 역풍이 두려워서는 아닐지.


일각에서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예전 인터뷰를 근거로 '지브리풍' 그림의 원조인 그가 불쾌하게 생각할 것이라고 추론하지만, 비록 저작권 위반일망정 전세계가 자신의 그림체에 열광한다는 사실 자체를 기분 나빠할 것 같지는 않다. 만약 지금 상황에서 '진짜' 지브리의 신작이 나온다면, 일본과 아시아는 물론이고 아마 전세계를 제패하게 될 것도 같아 보이니까. 


어쩌면 지브리는 자기네가 가장 잘 하는 방법으로 복수를 계획 중일지도 모르겠다. 예를 들어 기술 문명을 비판하고 전원 생활을 예찬하며, 질주와 낙하, 로봇과 비행기가 한데 어우러지는 신작 애니메이션에서 타인의 생각을 훔쳐 판매함으로써 막대한 부를 쌓은 '샘'이라는 지브리 캐릭터가 나와서 빌런 노릇을 하다가 결국 주인공 소년소녀에게 응징당한다든지...




[*] 그런데 '지브리풍'의 원조인 미야자키 하야오의 그림체도 역사상 선례가 없는 유일무이한 것이라고 볼 수는 없을 듯도 하다. 나귀님이 맨 처음 본 미야자키의 애니메이션은 지브리 이전에 그가 제작진의 일원으로 참여한 <태양의 왕자 홀스의 모험>(1968)이었는데, 훗날 지브리 애니메이션의 특징으로 자리잡은 소년, 소녀, 꼬마, 동물, 질주, 낙하, 거인(로봇), 비행(기) 같은 소재가 모조리 등장하기는 하지만, 그림체 자체는 오히려 <하늘을 날으는 유령선>(1969) 같은 동시대의 애니메이션과 유사하지, 지금 유행하는 '지브리풍'과 아주 똑같지는 않기 때문이다. 즉 <홀스>는 이후의 본격적인 지브리 애니메이션만큼 '지브리풍'은 아니지만 (어쩐지 '영향에 대한 불안' 개념도 떠오른다. 제프 다이어는 재즈 분야에서 '마치 빌 에반스의 연주가 키스 재릿의 연주를 모방한 것처럼 들린다'는 예시를 통해 이를 깔끔하게 설명한 바 있다!) 그래도 미야자키의 영향력을 짐작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지브리풍'이라고는 할 수 있으니, 과연 문제의 '지브리풍'을 어떻게 정의할지에 대해서부터 갑론을박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솔직히 나귀님이 보기에도 챗GPT의 '지브리풍'은 어디까지나 '요즘 지브리풍'이지, <나우시카>나 <라퓨타> 같은, 또는 <코난>이나 심지어 <홀스> 같은 '옛날(?) 지브리풍'까지는 아닌 듯하니, 어찌 보면 이것 역시 과거의 콘텐츠보다는 최근의 콘텐츠가 더 흔하게 마련인 인터넷을 답습한 챗GPT의 근본적인 한계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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