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107 박현욱.
이 소설이 원작인 영화를 극장 개봉 당시에 보았다. 이후에도 두어번 더 보았다. 극장에서 갑자기 남자 하나가 식식 대며 이것도 영화라고! 소리지르고는 동의를 구하듯 극장 안을 잠시 둘러보다 뛰쳐나갔고, 그의 연인인듯한 여자가 뒤따라 나갔다. 혼자 엄청 진지하니까 꽤 우스운 광경이었는데, 그 때 그 분은 뭐가 그리 화가 났을까. 그렇게까지 과몰입할 건 없잖아. 영화이고 소설인걸.
주인아 씨는 픽션 속 인물에서 본 많은 여성들 중에도 잘난 사람으로 분류할 만하다. 난 무슨 일이 있어도 남편 둘을 갖겠어! 하고 실제로 그렇게 한 사람...물론 가부장제에 직접 맞서지도 않고, 시집 살이와 가사 노동을 이중으로 하면서도 그것도 자기가 선택한 것의 대가려니, 팔자려니, 소처럼 일하는 게 좀 마음에 걸리긴 했다만, 그래도 고집탱이 또는 소신을 밀고 가려고 십자가 지고 고행을 하면서도 난 행복해, 하는 것도 같고.
그래서 빼액 불만이다. 둘씩이나 주렁주렁 거기에 딸린 친족까지 인간 관계가 곁가지로 얼마나 뻗어가는지, 아이까지 생기면 더 복잡해지지. 인아 씨가 결혼 제도에 그렇게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더라면 더 난 년이었겠다 싶다. 개샹마웨 하는 듯 하면서도 실제로는 그러지 않고 부모나 시부모들에겐 감추고 극진하고, 첫 남편 덕훈에게만 다 들어줘, 받아들여줘, 아니면 네가 하자는대로 이혼이든 뭐든 할게, 둘째 남편 재경이는 나랑 살 수 있으면 다 좋대, 하여간에 결혼 두 번 하고 싶어… 결혼을 두 번 하겠다는 건 상상력이 풍부한 건지 빈곤한 건지 모르겠다.
작가는 축구를 잘 알지 못한다는데 나야말로 2002년 고3때 보던 월드컵 본선들 말고는 메가커피 광고하던 손흥민이 축구 선수라는 걸 아는 정도라서, 일관되게 서사를 축구 역사와 축구 선수, 감독, 관련 인물들이랑 인아, 덕훈, 재경의 관계랑 연관지으며 이야기 끌어나가는게 완전 이해되지는 않았지만 뭐, 재미있었다. 영화를 보고서는 손예진을 조금 좋아하게 됐고, 고 김주혁 아저씨도 덕훈 캐릭터를 잘 소화했다는 생각도 들었다. 5년 전에 천원주고 산 소설이니까 나쁘지 않아, 했는데 세상에 알라딘 판매자 중고 뒤져보시면 90원에도 구할 수 있는 소설입니다…시간 죽이고 사랑과 관계에 대한 가능성도 넓혀볼 수 있는데 90원이라면 거저 아닙니까. 이 소설이 세계문학상 타던 시절 심사평에는 다들 문제작이다, 하는데 20년 후인 지금 나와도 여전히 문제작이다. 트라이어드에 관해 이만큼 집요하게 썼던 픽션은 이후로 나왔는데 내가 몰랐을지, 선뜻 꼽아볼 수 있는 게 없다. 얘가 너무 집요했고 영화로 많이 알려져서 그런 건지 더 잘 쓰고 재미난 건 없나 궁금해졌다.
그냥, 자기 자신으로 행복하게 원하는 대로 사는 게 유교 이슬람 수준에 밀도 높고 좁은 한국 땅에서는 그리 쉬운 일은 아니겠다. 사랑이 두 개든 세 개든 네 개든 그것 때문에 인간 아닌 취급 받고 괴롭힘 당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만… 누구도 아프지 않은 사링이란 독점적 연애든 다자연애든 어려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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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랑에 대해 흔히 생각하는 것들. 우연히 만난 두 사람이 첫눈에 반해 국경과 인종과 계급을 초월해서 일생에 단 한 번뿐인 열정적인 사랑을 하면서 평생을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건 환상에 지나지 않아요.”(30)
-아내야말로 전복자이다. 실재하지 않고 실재할 수도 없는 일을 게임 같은 가상 현실에서가 아니라 현실에서 구현해 냈다.
전복자와 함께 사는 삶이란 어떤 것일까. (187)
-그리고 인생이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배웠다 해서 그게 인생에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어차피 뜻대로 되지 않는 인생인데. (199)
-누구나 조금씩 그러하듯이 내 삶도 어딘가는 찌그러졌다. 아내의 두번째 결혼은 내 삶을 이전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커다랗게 찌그러뜨렸다. 새로 태어날 아이가 찌그러진 부분을 다시 동그랗게 만들어 줄 수 있을지, 혹은 찌그러진 부분은 더 크게 찌그러뜨릴지, 그것도 아니면 이곳저곳 마구 눌러 대서 도저히 공이라고 부를 수 없는 형체로 만들어 버릴지 알 수 없는 일이다. 기대와 불안이 어지럽게 교차하는 날들이 빠르게 흘러갔다. (26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