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참을 수 없는
무용의 유용.
반유행열반인  2025/06/28 11:09
  • 음식의 영혼, 발효의 모든 것
  • 샌더 엘릭스 카츠
  • 44,100원 (10%2,450)
  • 2021-06-07
  • : 855
-20250628 샌더 엘릭스 카츠.

부록과 주석 빼고도 848쪽이 되는, 발효의 백과 사전 같은 이 책을 조금씩 오래 읽었다. 엄마는 직접 장을 담고 김치를 만들고 채소를 썰어 병에 담아 실온에 방치(?)하곤 했는데, 난 채소에서 오는 식중독이 더 무섭다는 소리를 어디서 주워듣고는, 채소 뿐 아니라 자주 식재료나 조리된 음식물을 내놓고는 깜빡하는 엄마를 보며 아이고, 아이고, 하면서 냉장고에 이거저것 치워버리길 반복했다.

발효책 읽기는 엄마가 정성을 다해 절이고 말리고 다듬고 하는 걸 이해하고 견뎌보기 위한 시도였던 것 같다. 개호로잡놈의 불효새끼라 엄마가 사 먹고 남은 고수 뿌리를 발코니 화분에 키워, 꽃이 피고 씨 맺힌 걸 다시 심어 또 키운 고수를 따다가 고춧가루에 무치거나 간장에 절인 걸 꺼내 놓고 먹어 보렴, 해도 싫어, 하던 나놈이다. 자잘한 매실을 만 얼마에 5킬로라고 사왔는데 그거 넘는 것 같다고, 사흘 밤낮 반으로 쪼개 씨앗 빼는 걸 지나치면서도 난 몰라, 뭐 그렇게 까지, 당덩어리 음료랑 청산 들어서 한참 분해될 때까지 놔둬야 하는 걸 왜 저 고생하면서 만들어, 마음 속으로 또 불효새끼 하면서 씨빼기도 안 도와주는 나놈이었다.

식품공학, 가공식품 분야의 발달, 해썹 인증 같은 과학과 위생으로 무장한, 얼핏 깔끔해 보이는 자본주의 플러스 과학 음식 세계에서 역시나 가공 단백질 음료를 간식으로 달고 다니는 나놈, 이 책 읽고 발효 분야에 공들이는 전통적 움직임을 이어가는 사람들에게 공경심을 갖게 되었다. 시행착오를 거쳐가며 스스로에게 먹일, 먹을 만한 뭔가를 만드는 행위는 얼마나 주체적인지. 주체성 빼앗기면 뒤질 것 같이 굴던 나새끼 사실은 얼마나 거대 기업에게 노동의 대가를 바치며 편리함은 얻고 복잡한 미생물 만날 기회는 잃었던 건가. 약간 반성은 했지만 그렇다고 갑자기 내가 양배추를 썰어 소금물에 담가 자우어크라프트를 만들거나 김장 때 김치 만드는 방법을 배워 거들거나 하지는 않을 것 같다. 그나마 어린이들 아기 시절 발효기에 우유랑 종균으로 마시는 요구르트 조금씩 섞어 직접 요거트 만들어 먹인 적도 있는데, 역시나 시간과 비용 따지면 그냥 당무첨가 플레인 요거트 대용량 한 병을 사다 먹는 게 속 편하겠다, 어린이들은 요거트에 과일 시럽이랑 과당이라도 섞여야 맛있다고 먹으니 그냥 좋다는 거 먹이자...뭐 그렇다.

뭘 배우고 얻어내겠다고 읽는 게 아니라 순전히 읽는 게 신기해서, 저렇게나 다양한 발효음식이 세계 곳곳에 있고, 우리나라 삭힌 홍어나 청국장이나 무슨무슨 식해나 게장 같은 건 나오지도 않으니까, 그렇다면 이 책이 제법 방대하게 두루두루 식품은 물론 발효식품의 사업화와 비식품 발효에 대해서 까지 다루지만, 이 세상엔 또 우리가 모르는 미생물 활용 음식이 얼마나 많을지 짐작도 못하겠다.

그래서, 그냥 채소 좀 시들시들하게 뒀다 먹는다고 죽는 거 아니라고, 다시 적당히 씻어 먹든가 익혀 먹든가 하지, 미생물 너무 미워하지 말자(그렇지만 이엠 다루는 부분에선 예전에 누가 아토피에 좋다고 이엠 써 보라는 걸 따라했다가 포도상구균 감염되어 뒤질 뻔한 생각에 앞으로 그런 거 권하는 사람들은 다 쌩깔 거야) 하면서 아침에는 전날 요거트 부어놓은 압착귀리에 보리시리얼과 사백일향과 블루베리와 피칸을 섞어 늘 먹던 걸로 먹었다. 사실 대부분은 다른 과일 대신 포도를 먹는데 포도를 안 씻어둬서 귀찮음. 포도의 겉면에 이스트가 풍부한 걸 책 덕분에 알게 됨. 거의 일년 넘게 미리 씻어 통에 담아둔 포도를 매일 먹었는데 미생물 좀 먹는다고 안 죽는 구나, 했다. 발효책을 실용서 아닌 엔터테인먼트로 읽는 놈이 여기 있습니다...

+밑줄 긋기
-어떤 음식을 먹으면 어떤 병이 나을 것이라는 식의 기대는 버려야 한다. (348, 콤부차는 맛으로 먹는 거야.)

-(…)가루에 존재하는 미생물만으로도 얼마든지 발효를 시작하고도 남는다. (…) 젖산균과 이스트는 도처에 존재하므로, 꾸준히 주의를 기울이면서 조심스럽게 키우기만 하면 된다. (…) 사워도의 복합적인 미생물 집단 내에서 이스트의 활동을 촉진하는 방법은 신선한 곡물 가루를 높은 비율로 물에 섞어서 영양분으로 꾸준히 제공하는 것이다. (467, 미생물이 도처에 있어서, 굳이 시판 이스트 나 종균 같은 거 안 사고도 일상에서 적절한 방법만 취해주면 빵반죽 발효시킬 수 있다는 걸 강조한다. 다른 발효 미생물들도 종균을 호의로 기꺼이 얻을 수 있고 구매할 수도 있다는데, 우리 나라는 첨단 자본주의라 그런가 캐피어 구해보려고 하다가 진짜 소량에 몇 만원에 팔고 있길래 마음 접었다… 그냥 슈퍼에서 요거트 사먹을게…)

-어디서든 식품을 대량으로 생산하기 시작하면, 부의 집중화, 문화적 차별성 소멸, 긴요한 문화적 지식과 기술의 폐기, 의존성 심화가 필연적이다. 대중이 사회문화적 맥락을 상실한 음식을 먹게 된다는 뜻이다. (543, 나는 오히려 과거와 단절되는 맥락 상실의 음식이 좋다. 어릴 적 명절날의 친가집 제삿상이나, 아빠에게 이런저런 구박 받으며 먹던 밥상 떠올리게 하는 한식은 냄새만으로도 거부감이 느껴진다. 그래서 점점 괴식 내지 이그조틱 아티피셜한 음식들로 빠져...보그냐 ㅋㅋㅋ)

-아아, 나는 템페와 사랑에 빠진 나머지 두부를 향한 마음이 애매해지고 말았다. 이제는 모두 지난 일로 묻어두고 싶은, 학창 시절 가슴 아픈 첫사랑의 추억처럼. 나는 템페가 너무 좋아서 템페 없이는 못 산다. 그래서 템페를 어마어마하게 많이 만든다. 아침에도, 점심에도, 그리고 저녁에도 템페를 먹고 싶기 때문이다. 신선한 템페로 가득한 부엌이란 실로 축복받은 장소가 아닐 수 없다. (607, 스파이키 씨의 템페 예찬. 무언가 저만큼 사랑하는 음식이 있다는 건 부럽기도 하다. 나도 템페를 만들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지만, 종균 구하기도 힘들고 그냥 바싹 튀겨 파는 템페칩이나 사다 먹었다. 양념 센 맛 덜 센 맛 다 먹어봤는데 오 나 이 맛 좋아한다. 된장 청국장은 안 좋아하면서 인도네시아 곰팡이콩은 좋아하냐…)

-미소-땅콩버터와 미소-요구르트 조합도 이에 못지 않게 맛있다. (668, 된장국-모짜렐라치즈 조합 유행시키고 싶었는데 진작 실패했다. 이거 보면 나만 괴식 아니라니까!!)

-상업적 생산은(꼭 그런 것은 아니지만) 기쁨의 종말을 의미할 수 있고, 손익분기점은 (꼭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이상과 충돌할 수 있다. (…) “이 사회 안에서 지속 가능한 사업이려면 어느 정도 자본주의적 고려가 필요한데, 때로는 어떤 결정이 최선인지 파악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라고 말한다. (755, 온갖 발효 경험담, 레시피, 관여 미생물 소개, 발효 과정과 메커니즘, 문제 해결을 넘어 발효를 사업 삼아 할 때 고려 사항까지 세심하게 담은 책이었다. 저자는 정작 사업화 해 본 적이 없고, 소규모 발효음식 사업 하는 사람들로부터 전해 들은 교훈과 이야기를 모아 놓았다.)

-쓰레기 발생은 불가피하다. 그러나 자연 생태계에는 쓰레기가 전혀 없다. 모든 생명체의 부산물이 다른 생명체의 먹이가 되기 때문이다. 지구가 배설물과 사체로 가득하지 않은 까닭이 여기에 있다. 열광적인 숭배자들을 거느린 고전 ‘인간 배설물 핸드북’의 저자 조지프 젱킨스는 “대변과 소변은 동물이 소화과정을 완료한 뒤에 배설한, 자연적이고도 이로운 유기물질”이라면서 “우리가 내버리면 ‘쓰레기’가 되지만, 재활용하면 자원이 되는 법”이라고 말한다. (811, ‘젱킨스’로 검색했으나, 안타깝게도(?) 번역서가 없었고, 제시카 커윈 젱킨스의 ‘세상의 모든 우아함에 대하여‘만 찾았다. 똥 대신 우아함을 안겨준 인용 서적이여…)

-시신의 매장이 가능한 곳이라면, 여러분의 시신을 되도록 간소한 상태로 땅에 묻도록 하자. 아무리 그래도 관이 필요하지 않겠느냐고? 그러면 관 대신에 생분해가 신속하게 이루어지는 천연섬유나 종의 수의로 시신을 감싸는 것이 어떨까? (…) 우리가 남긴 육신이 방부처리액에 잠겼다가 부패가 힘든 물질로 번들거리는 관 속에 담기는 것보다 나무의 거름으로 쓰이는 편이 낫지 않겠는가. (816, 이 부분에 동의. 어려서는 매장이 계속되면 대한민국엔 무덤밖에 없겠다 싶었는데, 땅값 비싸지니 꺼려지던 화장이 알아서 보편화 되었다. 아파트형 납골묘 단지 안에 내내 갇혀 누굴 기다리기 보다는 잘 갈아서 나무 둥치 아래 구덩이 파고 적당히 묻어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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