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을만들지않는대화법 #TongueFu #샘혼 #갈매나무 #사람을얻는대화의기술56 #화법화술
@book_withppt @galmaenamu.pub
북피티님의 서평모집을 통해 출판사로부터 #도서협찬 을 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본서의 원제는 [Tongue Fu! : How to Deflect, Disarm, and Defuse Any Verbal Conflict ]이다. 한국어 제목과 비교하니 저자의 집필 의도를 잘 수렴해서 한국어 제목도 정하지 않았나 싶기도 했다. 한국어 제목의 부제는 [사람을 얻는 마법의 대화 기술 56]이기도 하다. 원제도 한국어 제목과 부제도 모두 상대를 이기는데 주안점을 둔 대화 기술이 아니라 포용하고 함께 하는 대화법을 다룬 책이란 걸 주지시키고 있다.
본서는 2008년 출간된 책으로 무려 17년을 지속적인 사랑과 관심을 받고 있는 저서이기도 하다. 일을 진행하고 언쟁에서 이기고 설득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 시대에는 대화의 기본으로서 사람을 존중하는 것에 중요성을 다시 돌아보고 있는 시대가 아닌가 싶다. 샘 혼의 이 저작 이후로 논쟁에서 이기거나 타인을 설득하는 경우의 저작에서까지 타인의 기분을 상하지 않게 하는 방식을 헤아리는 저작들이 더러 있지 않은가? 화법에 관한 책을 많이 접해 보신 분들이라면 아시겠지만 쇼펜하우어 시대의 타인에게 모욕적인 대응을 해서라도 언쟁에서 이기는 기술 등은 이 시절에는 거의 폐기되는 지경이다. 대화에서의 기본을 이기는 것이 아니라 어우러짐으로 여기며 ‘반드시 이긴다’ 보다 ‘함께 한다’에 주목하는 시대가 되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본서의 영어 제목이 [Tongue Fu!]인 건 저자가 강연을 이어가다 어느 참가자 분이 이건 동양 무술들처럼 언어와 마음의 소양이 담긴 것 같다고 한 발언 때문에 이런 제목으로 출간하게 되었다고 한다. 쿵후와 같은 텅후라고 말이다. 본서에서 저자는 텅후의 기법이라며 종종 언급하는데 기억에 남는 두 가지는 ‘텅후는 싸움이 아닌 조절의 기법이다. 우리 목표는 균형을 이루는 것이지, 상대의 부정적 전술을 낱낱이 밝혀내 파멸시키는 것이 아니다’라는 문장과 ‘텅후의 핵심은 당신 자신의 권리와 상대방의 권리를 동시에 지키는 것이다’라는 문장이다.
이 두 문장은 본서의 빛깔을 그대로 담고 있기도 하다. 상대를 나의 이익에 맞게 유도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고 내 말만을 무조건 따르라고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상호간의 권리와 이익을 조율하고 균형을 찾는 대화의 기법이 바로 저자가 전하고자 하는 핵심이라고 보였다. 리뷰를 쓰는 본인도 내향적이고 타인과 언쟁을 꺼리는 편인데도 다소 대화에 서툴러서 타인이 오해할만한 화법을 구사할 때가 종종 있있던 것 같다. 그러나 본서를 통해 나의 입장만이 아니라 타인이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와 의도가 무언지를 생각하는 데 주의하게 되었다.
왜냐는 물음에는 설명이든 해명이든 이어가게 되고 상대의 말과 나의 의지가 충돌할 때는 반박을 하는 게 당연했지만, 이제는 입장을 바꿔 생각해 보며 상대가 반발하지 않는 화술은 무언지를 알게 되었다. 이건 기술이라기보다는 포용과 헤아림과 어우러짐을 바탕으로 사고하는 법을 헤아려보도록 저자가 안배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분명히 느껴진 건 ‘텅후’는 기교가 아니라 태도라는 것이었다. 관계에 대한 태도, 사람에 대한 태도, 그리고 자신의 말과 행동에 대해 항상 헤아려보는 태도. 이러한 태도가 자리잡으면 ‘텅후’는 고수의 경지에 이르게 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
흔히 ‘끌어당김의 법칙’이라고 불리는 것에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는다. 하지만 자기 혼자만 사는 세상이 아니고 세상에는 많은 사람들과 사회를 이루며 살아가야 한다. 이 사회 속에서는 각기 기준과 욕망과 의도가 다른 많은 바람들이 있다. 그리고 그 바람들에는 나름의 타당성이 대개는 다 존재한다. 그런데도 당신 한 사람만의 기준과 욕망과 의도만이 관철되어야 한다고 믿는가? 그건 옳지도 않고 있어서도 안되는 일이다. 끌어당김의 법칙은 독단과 독선의 원칙이라는 말이다. 타자의 바람에는 타자의 정당성이 있다. 그렇기에 나만의 바람이 반드시 관철되어야 하는 게 아니라 통해야 할 것이 통하는 것이 순리에 맞는 것이리라. 이러한 시각에는 나만이 옳고 나만이 정의이고 나만 행복하면 된다는 의식과는 다른 깊이가 있다. 이런 깊이와 본서의 저자의 눈높이가 다르지 않다고 생각된다. 보다 나은 현실을 끌어당기지만 순리에 맞는 대화의 기법, 텅후가 바로 그것이다.
아프리카어 [우분투]처럼 우리가 있기에 내가 있다는 의식을 일깨우기도 하는 것이 본서였다. 이기는 것이 아니라 화합하고, 함께이면서 일을 진행하고, 나의 의사를 무리하지 않고 전달하며 나아가는 법을 다룬 책이 본서이다. ‘나’만큼 ‘서로’의 중요성을 문득문득 깨닫는 사람들에게 꼭 필요할 책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