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로부터 #도서협찬 을 받아 자유롭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빅히스토리 도서가 유행하던 시기가 기억납니다. 데이비드 크리스천 교수의 [빅 히스토리]라는 저작의 등장과 함께 같은 분야에 대한 저작들이 속속 출간되기도 했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빅히스토리라는 장르만에는 흥미를 크게 느끼지 않아 이번 [존재의 기원]이란 저작 이전에는 관련 분야의 책을 읽어본 적이 없습니다. 물론 [총 균 쇠]와 [사피엔스], [인류의 여정]이란 책들도 빅 히스토리로 분류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특정 주제를 인류의 역사로 풀어간다거나 인류 발전의 특징을 짚어보는 주제의 책이 아니라면, 게다가 우주의 시작부터 인류사까지 모두 돌아보는 저작은 본서가 처음이었습니다.
본서의 감상은 몇 가지 맥락을 꿰뚫는 키워드로 10개의 장과 하나의 의문을 던지는 장을 유려하게 서술해내었다고 생각됐습니다. 본서는 우주의 역사를 이해하기 위한 빅 히스토리는 세 가지 핵심 개념을 뼈대로 삼는다며 [들어가는 말]에서 서술의 축을 짚어줍니다. 에너지로 작용하는 원재료이자 새로운 복잡성이 등장하게 되는 배경을 말하는 ‘구성 요소’, 새로운 것이 탄생하거나 복잡성이 진화하기 위한 ‘딱 알맞은 조건이나 환경’을 의미하는 ‘골디락스 조건’, 이와 같은 조건이 충족되면 ‘새로운 복잡성’이 나타난다고 합니다. ‘구성 요소’와 ‘골디락스 조건’이 맞아 ‘새로운 복잡성’이 출현하면 이것이 다양한 도약과 전환점을 거치며 단계적으로 진화해서 ‘임계국면’을 형성한다고 합니다. 저는 이 서술이 ‘원인’과 ‘조건’이 만나 ‘업’이 형성되면 업장의 ‘생’과 ‘세계’가 형성된다는 이야기와 같다고 받아들여졌습니다.
본서는 이와 같은 서술의 축으로 10개의 임계국면으로 우주의 탄생부터 생물의 출현 거기서 다시 인류사의 흐름까지를 짚고 있습니다. 저는 빅히스토리라는 것이 가상의 현실을 진행함으로써 서술이 이어질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우주 탄생이나 물질 생성, 생물 출현, 인류로의 진화, 그리고 인류사라는 것이 가정하고 가공하지 않으면 이야기로 진행하기 어렵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가상의 이야기가 흐를 것으로 단정했습니다.
하지만 김서형 저자는 가정하거나 이야기로 창조해내기 보다는 신화와 전설, 고고학, 역사와 인물의 일화를 오가며 실제 인류 역사 속 인물들이 가설을 짓고 파헤쳐온 여정을 있는 그대로 담아 가공의 이야기를 만들지 않았습니다. 그게 무리한 스토리텔링보다 더 이야기에 몰입하도록 만들었습니다. 저자는 각 장의 소장들 마다 신화와 전설로 운을 떼고 그것을 역사와 고고학에서 다시 과학으로 씨실과 날실 삼아 이야기를 주조해 갑니다. 그것도 아주 유려하게 말입니다.
저자의 서술을 따라가다 보면 학문 간의 [통섭]이라는 것이 이렇게 이뤄져야 하는 것이구나 싶다는 짐작을 하게도 됩니다. 책의 표지에 저자를 빅히스토리 아시아 최고 권위자라고 소개하고 있지만 저자의 서술의 수준 또한 아시아 최고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가공의 이야기로 구성하지 않고는 시작하기도 이 막연한 이야기를 이렇게 유려히 서술할 수 있을 사람이 몇이나 될까 싶기만 했습니다. 가상의 이야기가 아니었다는 점에서 상식을 깨면서 더 깊이 기억에 담기는 독특함이 있는 책입니다.
임계국면이라는 이해를 위한 축이 되는 키워드와 임계국면을 이루는 과정에서 어떠한 구성요소들이 골디락스 조건과 맞이해 새로운 복잡성을 나타냈는지를 생각하며 독서하는 것도 이해의 깊이를 남기기에 좋을 겁니다. 하지만 저자의 서술을 따라가며 신화에서 역사와 고고학으로 거기서 다시 과학으로 진행되어 나가는 여정를 따라가다보면 자연스럽게 빅히스토리의 맥락이 뇌리에 남는 저작이 본서라는 감상을 가지게 되실 겁니다.
본서는 10개의 임계국면으로 우주 탄생, 물질 생성, 생물 출현, 인류로의 진화, 인류의 역사 발전을 돌아봅니다. 그리고 마지막 11장은 인류세의 현재와 미래에 대한 위기의식과 의문이 담겨 있습니다. 대량살상무기, 환경문제, 기술발전 등으로 실존과 공존의 문제가 팽창하고 있는 지금 인류세는 과연 또 다른 도약을 할 것인지 이것이 인류세의 끝인 건지 의문을 가져 보셨던 분들이 많을 시절이라 본서의 마지막 장도 의미롭지 않으실까 싶습니다.
저로서는 다른 빅히스토리 저작을 읽어보지 못해 비교 대상이 없지만 저의 첫 빅히스토리 저작과의 만남이 본서라는 것에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마 스토리텔링이 과도한 저작들과 만났다면 독서를 중도 포기했을 가능성도 높다고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저와 감상이 비슷하실 분들이 많이많이 본서와 만나보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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