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 스완슨, 노진선 역, [아홉 명의 목숨], 문학동네, 2024.
Peter Swanson, [NINE LIVES], 2022.
고대 이스라엘, 유다 왕국이 바벨론에게 멸망하고, 백성들이 포로(노예) 생활을 하게 되었을 때 당시 젊은이들 사이에서 "아버지가 신 포도를 먹었으므로 그의 아들의 이가 시다"(에스겔 18:2)라는 말이 유행했다고 한다. 아버지가 불량 포도를 먹었는데, 아들의 이가 탈 나는 기이한 상황... 이것은 조상의 잘못으로 인해서 후손이 고통 당하고 있음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속담이다. 다행히 에스겔 선지자는 이 속담을 사용하지 않게 될 것이라는 희망을 선포한다.
의부증 부인이 있는, 매슈 보몬트
배우 지망의 사이코패스, 제이 코츠
작곡과 노래를 하는, 이선 다트
대학에서 영문학을 가르치는, 캐럴라인 게디스
리조트를 운영하는, 프랭크 홉킨스
노신사의 정부, 앨리슨 혼
종양 전문 간호사, 아서 크루즈
은퇴한 경영 컨설턴트, 잭 래디보
FBI 특수 요원, 제시카 윈즐로
이건 살해될 사람 명단이야. 누군가가 우리를 죽음의 표적으로 삼은 거야. 저절로 떠오른 생각이었다.(p.34)
"당신이 왜 죽는지 알아?" 그의 귓가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프랭크는 기침을 했고, 입에 들어간 모래와 섞인 찝찌름하고 따뜻한 피맛이 느껴졌다. "아뇨." 프랭크는 그렇게 말했지만, 사실 마음 한구석으로는 이유를 알고 있었다. 방파제와 연관이 있지 않나? 그가 늘 꾸는 꿈과도?(p.51)
자기 이름을 포함해서 아홉 명의 이름이 적힌 종이가 동시에 각 사람에게 배달된다. 그들은 무슨 명단인지? 잠시 의문을 품지만, 대부분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일상을 유지한다. 그런데 프랭크 홉킨스를 시작으로 한 명씩 의문의 죽음을 당하자 사정은 달라진다. 살인 명부? 도대체 누가? 왜? 이런 일을 벌이는 것인지... FBI 특수 요원인 제시카 윈즐로는 편지를 분석하고, 아홉 사람의 신원을 파악하고, 그들 사이에 어떤 연결고리가 있는지를 조사한다.
왜 아홉이지? 제시카는 의아했다. 명단은 열 명이어야 하지 않나?(p.108)
연대순으로 정리된 할머니의 애거사 크리스티 전집을 빤히 들여다보던 샘은 양장본 하나를 꺼내들었다. 이 책은 훗날 제목이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또는 '열 개의 인디언 인형'으로 바뀌지만, 샘 해밀턴이 소장한 이 양장본에는 원래 제목이 적혀있었다. '열 명의 깜둥이 소년'.(p.150)
70대는 두 명이고, 나머지는 30대 중반에서 40대 중반의 나이이다. 여자는 세 명이고, 남자는 다섯 명이고, 성소수자가 한 명이다. 사는 곳은 전부 다르고... 인종, 학교, 직업은 제각각이다. 하지만 이 명단은 나름의 체계가 있고, 명단에 있는 사람은 우연히 선택된 게 아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하나 둘 죽어가는데... 범인은 훗날 이러한 범행은 무질서한 세상에서 질서를 찾으려는 시도였다고 고백한다.
피터 스완슨의 소설은 [살인 재능](푸른숲, 2024.)도 그렇고... [아홉 명의 목숨]이라는 제목이 흥미롭다. 애거사 크리스티의 소설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를 오마주하고 있는데, 외딴섬이 아니라 일상에서 맞이하는 죽음, 고통 없는 죽음, 이유 모르는 죽음에 관해서 이야기한다. 하지만 막연한 복수극보다는 어떤 메시지를 강조하면 어땠을까? 가령 "그 때에 그들이 말하기를 다시는 아버지가 신 포도를 먹었으므로 아들들의 이가 시다 하지 아니하겠고 신 포도를 먹는 자마다 그의 이가 신 것 같이 누구나 자기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죽으리라"(예레미야 31:29-30)처럼 아버지의 죄가 아닌, 누구나 자기의 죄를 심판받는다는 공의로운 메시지를 던졌더라면 하는 바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