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멜리 노통브, 이상해 역, [푸른 수염], 열린책들, 2014.
Amelie Nothomb, [BARBE BLEUE], 2012.
나는 무엇을 기대한 것인가? 혹시나 하고 읽었지만, 역시나였다. 아멜리 노통브의 소설 [푸른 수염]은 프랑스 샤를 페로의 (잔혹) 동화를 모티브? 오마주? 하고 있다. 여러 차례 결혼했던 푸른 수염의 귀족 남성은 결혼식을 올리며 새 신부에게 성 안의 모든 문을 열 수 있는 열쇠를 준다. 하지만 지하실의 한 방은 절대로 열어서는 안 된다고 하는데, 거기에는 지금까지 그와 결혼했던 여자들의 시체가 있었다는 내용이다.
"여긴 내가 사진을 현상하는 암실의 문이오. 잠겨 있진 않소. 신뢰의 문제니까. 물론 이 방에 들어가는 건 금지요. 당신이 이 방에 발을 들여놓는다면 내가 알게 될 거고, 당신은 크게 후회하게 될 거요."(p.13)
파리 7구의 호화 저택이 월세 5백 유로에 나온다. 벨기에 여자이고, 루브르 미술관에서 보조교사로 일하는 사튀르닌은 파격적인 조건을 보고 지원한다. 광고대로 고급스러운 집이지만, 이전에 살았던 8명의 여자는 행방을 알 수 없다. 집 주인인 돈 엘레미리오는 품격을 중시하는 에스파냐 귀족으로 가톨릭 신자이고, 세상을 따분하게 여기며 20년간 외출하지 않은 남자이다. 그는 사진을 현상하는 암실의 방에는 들어가지 말라고 한다. 이렇게 강단 있는 여자와 특이한 남자의 아홉 번째 동거가 이루어진다.
"사랑은 믿음의 문제요. 믿음은 위험의 문제이고. 난 그 위험을 제거할 순 없었소. 주님께서도 에덴동산에서 그렇게 하셨소. 그분께선 위험을 제거하지 않을 정도로 피조물을 사랑하셨소."
"궤변이네요."(p.79)
"좋소. 내가 당신 말대로 했다고, 열쇠로 문을 잠갔다고 상상해 봅시다. 그래도 그들은 집 안을 샅샅이 뒤져, 끝내는 열쇠를 찾아냈을거요. 내가 어떻게 하든 그들이 암실에 발을 들여놨을 거라는 얘기요. 그 경우에 당신이라면 어떻게 하겠소."
"아무것도."(p.82)
사람은 누구나 감추고 싶은 내면, 자기만의 암실이 있다. 드러나는 것을 꺼려 하고, 선을 넘으면 즉시 폭발하는... 아무리 사랑하는 사이라고 해도 절대로 들일 수 없는 방에 관한 이야기를 기대했다. 하지만 인생의 동반자를 찾으려고 세를 놓는 중년 남자와 연쇄살인범일지 모르는 위험을 감수하고 세를 사는 젊은 여자는... 궤변만 늘어놓고 있다. 열지 말라고 하는 문을 기필코 여는... 어쩔 수 없는 인간의 호기심, 탐욕, 반항의 심리를 알고 싶었다. 그러나 쉽게 사랑에 빠지는 귀족 남자와 결코 사랑하지 않을 것 같은 평민 여자는... 다른 본성을 보여준다.
사랑에 빠지는 건 우주에서 가장 신비로운 현상이다. 첫눈에 사랑에 빠지는 사람들은 그나마 설명이 크게 어렵지 않은 형식의 기적을 경험한다. 말하자면, 그들이 이전에 사랑하지 않은 것은 상대방의 존재를 몰랐기 때문이다.
시한폭탄처럼 나중에 찾아오는 벼락같은 사랑은 이성에 대한 가장 거대한 도전이다.(p.105)
사랑하는데, 결국은 죽이는 부조리한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