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이야기들
#1 저장된 번호들
코로나 팬데믹 이후 비대면 배송이 일상이 되었다. 집에 사람이 있어도 그냥 집 앞에 놓아 달라는 집이 많다. 집 앞에 상자들을 놓고 사진을 찍어서 배송 영수증에 적힌 전화번호로 사진을 보내고, 배송완료했다는 문구를 보낸다. 대부분 모르는 번호이지만, 가끔 아주 가끔 이미 저장된 번호인 경우들이 있다. 긴 시간 나를 챙겨주시는 아주 친한 선배네 집에 배송을 갔을 때에도 그랬다. 그 선배는 당연히 출근해서 댁에 안 계신 것을 알고 있고, 지금 댁에는 선배님 부모님께서 계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초인종을 눌러 부모님께 인사도 드리고 무거운 짐을 집 안까지 넣어드리려고 했었다. 그런데 초인종을 눌러도 아무 반응이 없더라. 울리지 않더라. 아마도 고장난 것일까? 어쩔 수 없이 배송 영수증에 나온 그 선배 번호로 사진을 보내는 것 외에 다른 일을 할 수는 없었다.
간혹 예전에 어떤 행사나 사업 때문에 일시적으로 소통하느라 번호를 저장한 경우들도 있었다. 어떤 분들은 그 분 댁이 여기였구나 하고 얼굴이 떠오르는 경우도 있었고, 이름과 얼굴을 잘 기억하지 못하는 불치병에 걸린 나 답게 아무리 기억을 떠올려봐도 이름도 얼굴도 생각나지 않지만, 저장된 이름인 경우들도 있었다. 한번은 저장된 이름 뒤에 어떤 교육 공동체 이름을 붙여 놓은 분의 댁으로 배송을 갔다가 정확히 어느 문 앞에 둬야 할지 몰라서, 잘못 놔뒀다가 분실이 발생하면 안 되니 전화를 걸었었다. 한참 신호음이 울린 후에 그 분이 전화를 받았는데, 약간 당황해하는 목소리였다. 아마 그도 나와 같이 과거 어느 시점에 어떤 일 때문에 내 번호를 저장해뒀었는데, 갑자기 뜬금없이 전화를 받아서 놀랐을지도 모른다. 암튼 나는 생협 배송을 왔다고 밝히고 상자들을 어디 두면 될지 물었다. 그는 내가 묘사한 그 대문 앞에 두면 된다고 답을 했다. 그날의 마지막 배송이었고, 이미 내 퇴근시간인 6시는 훌쩍 넘어 있었다. 그도 아마 퇴근시간이 지난 상태였을 것이다. 사무실에 차를 반납하러 가는 내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었을까? 나와 어떤 일을 같이 했던 것일까? 떠올리려 애써봤지만 생각나지 않았다. 포기할 수밖에.
#2 어떤 반가움
어제는 가정 집이 아닌 공동체 부엌 한 곳에 배송을 갔었다. 이 일을 막 시작한 지 얼마되지 않았던 지난 달 중순에 그러니까 거의 한 달 전에 그 곳에 처음 배송을 갔다가 몇 가지 어려움을 겪었었다. 일단 꽤 외진 곳에 있는 데다가 접근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가 아주 좁은 골목길이었고, 꼬불 꼬불 이어져 있었기에 운전하기가 까다로웠다. 그리고 그 공간 근처에 주차할 곳이 마땅치 않았다. 정말 다행히 그 공간 앞 도로는 조금 넓었는데, 그 공간에 여러 차들이 불법 주차를 하고 있었다. 이리저리 고민을 하다가 나도 그냥 그 옆에 대충 차를 댔었다. 그리고 그날 하필 무거운 상자가 5개였다. 2개나 3개는 한 번에 들어서 옮길 수 있지만, 5개를 모두 한 번에 들수는 없었다. 그리고 입구에서 안쪽 건물까지 거리가 꽤 있었다. 처음 무거운 상자 3개를 먼저 옮기고 다시 돌아와 나머지 2개를 조금 가뿐하게 옮겼다. 나중에 이 차에 엘카라고 부르는 접이식 손수레가 실려 있다는 것을 들었는데, 그럼에도 이 공간에 그 손수레는 소용이 없었다. 일단 계단을 올라야 하고, 그 다음엔 건물까지 흙길과 자갈길을 걸어서 한참 들어가야 한다. 손수레를 끌어서는 답이 나오지 않는다. 그래도 손수레의 존재를 알고 난 후로는 무거운 상자가 3개 이상이면 수레를 활용한다. 아파트 단지에서 가장 유용하다. 최근에는 탄산수를 4박스나 3박스 이상 주문하는 사람들이 많다. 탄산수 박스는 2개까지는 들 수 있지만, 3개 이상은 들어서 옮길 수 없다. 무조건 손수레를 써야 한다. 그런데 저번에 갔던 한 집은 엘리베이터가 없는 다가구 주택이었는데, 5층이었다. 그리고 탄산수 4상자와 일반 상자가 하나 있어서 총 5개의 상자였다.
상자가 좀 무거운 것은 괜찮다. 배송 일을 하다 보면 가벼운 상자도, 무거운 상자도 만날 수 있으니. 좀 무거운 상자가 여러 개라도 괜찮다. 물건을 많이 팔아야 내 일자리도 유지가 될 테니. 좀 무거운 상자들이 있는데, 엘리베이터가 없어서 계단을 올라야 한다면 그것도 이해할 수 있다. 우리 모두가 다 엘리베이터가 있는 집에 사는 것은 당연히 아니므로. 이해할 수는 있지만 힘들기는 엄청 힘들었다. 하필 그날 무릎 상태가 좀 안 좋아서 계단을 오르기가 너무 힘들었다. 총 세차례 5층을 오르내리며 그 고객을 원망하지는 않았지만, 하필 그날 상태가 좋지 않았던 내 무릎은 계속 원망했다.
암튼 앞서 말했던 공동체 부엌으로 상자를 들고 걸어 들어가고 있는데, 입구에 서 계신 한 분이 나를 멀리서부터 쳐다보고 계셨다. 당연히 멀리서는 누군지 알아보지 못했고, 그저 주문한 물품들이 오니까 받으려고 쳐다보고 계신가보다 하고 생각했다. 조금 가까워지면서 어렴풋이 표정이 보일무렵 누군지는 정확히 떠오르지 않았으나, 아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분의 표정이 확실히 말해주고 있었다. 저런 표정은 아는 사람이 아니면 나오기 어렵다. 그 분이 먼저 나에게 물었다. "상무님, 지금 뭐하세요?" 약간은 따지는 듯한 말투다. 목소리를 듣자마자, 그리고 나를 '상무'라는 직함으로 부르는 것을 깨닫자마자 그 분이 누구인지 생각났다. 그 분은 지금 내가 배송일을 맡고 있는 이 생협에 오래 계셨던 지금은 그만둔 상무님이셨다. 그 분이 이 생협의 상무이사 일을 맡고 계셨을 당시에 나는 우리 조합에서 상임이사를 맡고 있었다. 본인이 상무이사라서 그런지, 아니면 상임이사라는 직함이 익숙하지 않아서 그런 것인지, 그 분은 나를 늘 상무님이라고 불렀다. 암튼 제법 오랜만에 뵙는 상황이라 반가운 마음이 먼저 들었는데, 그 다음 순간 그가 "지금 뭐하세요?" 물은 말투가 약간 따지는 듯한 느낌이었음을 깨달았다. 나는 손에 든 상자를 잠시 바닥에 내려놓고 인사를 드린 후에 "저 배송일을 하고 있어요." 라고 말씀드렸다. 그는 "아니 왜 상무님이 배송을 하세요?" 라고 다시 물으셨다. 나는 그냥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네요." 라고 하고 약간 억지로 웃었는데, 그는 바쁜데 나를 맞이하느라 기다렸다는 느낌으로 "다음에 뵐게요." 라고 했다. 나도 인사를 드리고 돌아서 나왔다.
차를 몰고 다음 배송지로 향하면서 그 분의 묘한 태도가 마음에 걸렸다. 그러다 혹시 이런 거였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이 생협 임직원들과 친하다는 것은 그 분도 잘 알고 있었다. 내가 지금 배송을 맡아 움직이는 것을 내가 원해서, 돈이 필요해서 직업으로 맡은 것이 아니라, 급하게 임시로 당장 맡아줄 사람이 없어서 내가 떠맡은 것으로 오해를 하신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아주 오래전에 내가 그렇게 생협 배송 일을 잠시 했었다. 그때는 정말 급하게 임시로 당장 맡아줄 사람이 없어서 며칠만 했었던 거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내가 고정 수입이 없어 곤란한 상황에서 생협에서 마음을 써줘서 나를 고용해준 것인데. 내가 고마워해야 할 상황인데. 나중에 오해를 풀 기회가 또 오겠지. 아마도.
#3 차를 막아 놓고 전화도 안 받고
배송은 정말 시간 싸움이다. 1분 1초가 급하고 아깝다. 하지만 나는 한 달이 지났는데도 배송기사로서의 태도는 아직 몸으로 익히지 못했다. 예를 들면 엘리베이터를 타고 고층으로 올라갔을 때, 다른 기사님들은 엘리베이터를 어떻게든 내려가지 않도록 뭔가 조치를 취하고(어떻게 하는 것인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물건을 문 앞에 옮겨 놓고 다시 그 엘리베이터를 타고 이동하는데, 내 경우에는 문 앞에 상자를 내려놓고, 폰을 꺼내어 사진을 찍는 사이에 엘리베이터가 내려가 버리고 만다. 간혹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바로 근처에 현관문이 있다면 얼른 문이 닫히기 전에 사진을 찍고 타기도 하는데, 요즘 아파트들은 구조가 복잡해서 엘리베이터에서 내렸을 때 어디에 집이 있는지도 알기 어려운 경우들이 있더라.
아파트 단지에서 엘리베이터를 하루에도 수십번 타면서 새로운 발견을 했다. 엘리베이터 문에 붙어 있는 스티커들을 잘 살펴보면 배송, 배달 기사님들이 메모를 해놓은 것들을 찾을 수 있다. 대체로 몇 호가 어디에 있는지 위치를 알 수 있도록 적어 놓았고, 해당 동이 몇 동인지를 적어 놓았다. 그리고 주로 다니는 지하 주차장이 몇 층인지도 적어 놓았다. 이것들은 모두 나도 늘 헷갈렸던 것들이어서 먼저 이렇게 메모를 적어 놓은 선배 기사님들에게 감사한 마음이 든다. 나도 늘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마자 어느 방향으로 가야할 지 헷갈리고, 혹시 여기가 몇 동이었더라 헷갈리고, 상자를 내려두고 가벼운 마음으로 엘리베이터를 다시 탄 후에 내가 차를 지하 주차장 몇 층에 세워뒀더라 헷갈리곤 했었다. 가끔 아주 가끔 새 엘리베이터를 만나면 아무런 메모도 없는 경우가 있더라. 언젠가 어느 기사님께서 여기에도 메모를 하시겠지. 그리고 가끔 이해 못할 메모들도 있었다. 이해를 못하니 그게 뭔지 글로 설명하지도 못 하겠다.
암튼 그렇게 어떻게든 시간을 줄여야 먹고 살 수 있는 일이라, 가끔 도로에서 시간을 허비하게 만드는 차들을 만나면 짜증이 나고 화가 나고 스트레스를 받기도 한다. 그리고 어제는 황당한 상황이 벌어졌다. 차를 아파트 입구에 최대한 가까운 주차 공간에 넣어두고 무거운 상자를 들고 고층으로 배송을 갔다가 돌아왔는데, 그 사이에 큰 SUV 한 대가 내 차를 막고 주차해 놓은 상태였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빈 주차 공간이 분명히 있었는데, 이렇게 차를 대놓았다고? 혹시 아직 사람이 있나 싶어 운전석을 보았는데 없었다. 급한 마음에 바로 전화번호를 찾아 전화를 걸었다. 전화기를 귀에 대고 혹시 어떻게든 빠져나갈 공간이 있을까 살피는데, 없었다. 운전자가 바로 나타나지 않으면 여기서 한참 시간을 허비하게 될 예정이었다. 그리고 불길한 예감처럼 그 차주는 계속 전화를 받지 않았다. 두 번, 세 번, 네 번, 다섯 번....... 이젠 화가 나기 시작했다. 차를 막아 놓고 전화를 안 받는다고! 이런 미친! 화가 났지만 전화를 다시 거는 것 외엔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그런데 더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이젠 신호음이 한 두번 가자마자 전화가 바로 끊어져 버리는 것이다. 신호음이 계속 가는 것이 아니라 신호음이 바로 끊기는 것은 그 인간이 전화를 거절했다는 뜻이리라. 여기서 화가 머리 끝까지 나버렸다. 계속 전화를 걸었다. 결국 열 번 이상 전화를 걸었을 때, 목소리가 굵은 남성이 무뚝뚝한 목소리로 받았다. 나는 먼저 한 숨을 내쉬고, 차를 빼달라고 말하고 화를 내기 시작했다. 차를 막고 주차를 해놓고 전화를 안 받으면 어떻게 하냐고! 이게 뭐하는 짓이냐고! 그는 그제서야 아, 다른 전화인줄 알았다고 말하며 금방 내려가겠다고 말하고 끊어버렸다. 만약 나였다면 죄송하다는 말부터 먼저 했을텐데, 그는 미안하다는 말조차 하지 않았다. 차에 앉아 시동을 걸어 놓고 기다리면서 나타난 인간이 이번에도 미안하다는 시늉조차 하지 않으면 멱살이라도 잡아야지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덩치가 큰 아마도 내 또래 정도로 보이는 중년 남성이 나타났다. 그는 나를 향해 고개를 살짝 숙이더니 차에 올랐다.
그 정도 제스쳐로는 화가 풀리지는 않았지만, 머리는 남아 있는 배송 건수들을 먼저 떠올렸다. 여기서 허비한 시간을 만회하려면 얼른 출발해야지. 화를 계속 내는 것은 내 기분만 더 상할 뿐이고, 나만 손해다. 머리로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감정은 좀처럼 화를 가라앉히지 못했다. 결국 급한 배송들을 다 마친 후에 다음 매장으로 가는 중에 한적한 곳에 차를 세워 놓고 담배를 한 대 피운 후에야 비로소 마음이 조금은 가라앉았다.
#4 스트레스와 담배
담배를 처음 피운 것은 고3때였다. 군대를 다녀와 복학한 후에 혼자 작은 자취방에 살았던 시절에 나는 이미 헤비 스모커가 되어 있었다. 소설을 쓰겠다고 그 골방에 혼자 쳐박혀 살았던 시절에 얼마나 많은 담배를 피웠는지 알 수 없었다. 담배를 처음 끊었던 것은 애들 엄마가 큰 아이를 임신했을 때였다. 아마 3년 정도 끊었던 것 같은데, 업무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하고 다시 담배를 피웠고, 나중에 애들 엄마가 둘째를 임신했을 때 다시 담배를 끊었다. 작은 아이가 태어나고 1년 정도 지나 또 담배를 다시 피우기 시작했었다. 그런데 그 후로는 예전처럼 담배를 많이 피우지는 않게 되었다. 며칠 동안 안 피우기도 했다. 그 후로 나는 일주일에 한 두세 개비 정도의 담배를 피우는 정도로 라이트 스모커가 되었다. 그리고 아마 3년쯤 전에 달리기에 푹 빠졌던 시절에 폐활량에 대한 고민 때문에 또 담배를 끊었었다. 그러다 다시 담배에 손을 대기 시작한 것은 역시 업무 스트레스 때문이었다. 그래도 담배를 사서 피우지는 않았다. 어쩌다 가끔 담배를 피우는 지인에게 얻어 피웠었다. 한 달에 두세번 정도. 그러다 다시 담배를 산 것이 지난 주였다. 배송 일을 시작한지 4주차가 되었을 때였다.
도로에서 벌어지는 여러 상황들. 가끔 배송 건수가 적은 날엔 일찍 일을 마치기도 했지만, 가끔 배송 건이 아주 많은 날에는 정해진 시간보다 한 시간 반 이상 늦게 일을 마치기도 했다. 그런 날에 담배 생각이 간절했다. 결국 담배를 샀던 것이다. 그렇다고 매일 자주 피우는 것은 아니다. 스트레스가 많은 날 마지막 배송을 마치고 차를 사무실에 반납하기 전에 한 개비 피우는 것이 다였다. 어쩌면 조금 더 이 일에 익숙해지다보면 담배를 피우는 빈도도 더 줄어들 수 있겠지.
#5 운전하면서 먹는 식사
벌써 15년 정도 전이었다. 당시 출판사 영업자들은 친한 사람들끼리 차를 얻어 타고 몇 군데 서점들을 함께 돌았었다. 각자 차를 몰고 가면 그만큼 기름 값도 더 들고, 각자가 다 운전하느라 더 피곤하겠지만, 같은 곳들을 돌아야 하는 여러 영업자들이 한 차를 같이 타고 다니면 그만큼 서로 이득이었고, 그렇게 다니며 정보 교환도 많이 했었다.
친하게 지내던 친구이자 동료 영업자 한 명은 여러 지역의 행사장을 돌며 책을 파는 가판을 많이 다녔다. 그는 장거리 운전을 해야 하는 날엔 식당에 가서 밥 먹는 시간도 아까워 도로에서 운전하는 중에 김밥을 먹으며 다녔다. 그렇게 끼니를 때우며 운전하는 일이 익숙하다고 했었다.
요즘 내가 그러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평소엔 점심을 안 먹는 편이다. 오후에 배송 일을 하면서 점심을 아예 안 먹으면 무거운 짐을 옮길 때 허기가 져서 힘을 쓰지 못하겠더라. 그렇다고 어디 식당에서 밥을 챙겨 먹을 여유도 없었다. 출근하면서 사무실 근처 편의점에서 김밥을 하나 사고, 가방에 넣어두었다가 첫번째 매장 배송 건을 다 마치고 두번째 매장으로 옮겨갈 무렵에 운전 중에 김밥을 꺼내 씹기 시작했다. 한 손으로 운전하면서 김밥 하나를 입에 넣고 다 씹고 나면 또 다음 하나를 입에 넣는 방식으로 밥을 먹었다. 김밥만 먹으면 질려서 어떤 날엔 빵, 어떤 날엔 샌드위치를 먹기도 했다.
저번에 유난히 배송 건이 많아서 퇴근시간이 거의 다 되어서야 마지막 매장에 도착했는데, 그날따라 그 매장의 배송 건도 많았다. 해당 매장 점장님께서는 본인이 미안해 할 일이 아닌데도 미안해 하시며 빵 하나와 음료 하나를 챙겨주셨다. 퇴근 시간보다 한 시간이 더 지났을 때에도 아직 배송이 두 건이 더 남아 있었다. 게다가 장거리였다. 그제서야 점장님께서 주신 음료와 빵을 꺼내 먹으며 운전을 했다. 이제 배송 한 건이 남았을 때, 사무국 팀장님이 전화를 주셨다. 아직도 안 끝났느냐고 걱정이 가득한 목소리였다. 나는 이제 마지막 하나 남았다고. 괜찮다고 걱정 마시라고 하고 남은 빵을 마저 먹었다.
뭐 누군가는 이런 모습에 마음을 쓸지도 모르지만, 솔직히 나는 괜찮다. 일이니까. 맡은 일을 하는 거니까. 일을 하다보면 어쩔 수 없이 늦을 수도 있는 것이고, 배가 고프면 운전하면서 김밥도 먹을 수 있는 것이고, 빵도 먹을 수 있는 것이지. 그냥 나는 이렇게 열심히 살아야 할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면 그 뿐이다. 다만 더 신경이 쓰이고 힘든 것은 돈을 버는 이 일 외에 돈으로 연결되지 않는 다른 여러 종류의 노동들이 여전히 내게 계속 맡겨진다는 현실이다. 낮에 운전을 하고 저녁에 퇴근을 하면 다시 사무실로 출근을 해서 다른 일들도 더 해야 한다. 하지만 이 일들은 돈으로 보상 받지 못하는 일들이다. 이것도 뭐 괜찮다. 평생 그렇게 살아온 것을. 활동가의 삶이라는 것이 뭐 그런 것이지. 어쩌겠는가.
지금 이렇게 새벽까지 자판을 두드리는 것도 글을 쓰고 싶다는 욕망. 몸이 좀 힘들어도 꾸준히 글쓰는 삶을 살고 싶다는 욕망 때문인 것을. 이것도 괜찮다. 뭐, 어쩌겠는가. 이렇게 계속 살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