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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보지 못한 길

권영국 후보와 자발적 선거운동


성인이 되어 선거권을 얻은 후로 대선, 총선, 지방선거 등 수많은 선거들에 투표하러 갔었지만, 대체로는 표를 줄 후보와 당이 없어서 일부러 기권표를 만들곤 했다. 경계선에만 골라서 여러 번 찍거나,표 바깥에 찍거나 어쨌거나 나는 표를 찍었다는 표시를 하고 투표함에 넣었다. 나는 반드시 투표는 했지만, 제대로 투표를 하지 않았던 것이 대부분이었다. 특히 위성정당이 되려는 녹색당을 탈당한 후에는 더욱 표를 줄 곳이 없어졌다. 진보당과 기본소득당은 민주당의 위성정당이 되어 버렸고, 정의당은 그 어정쩡한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녹색당은 탈당한 순간 지워버린 이름이다. 창당 시점부터 누구보다 열심히 당 활동을 했었지만, 이제는 아웃이 되어 버렸다. 나의 표를 받을 수 있는 후보는 정말 제대로 된 후보 혹은 정당이라는 자신감을 가져도 좋을 거라는 생각을 가끔 한다.


정말 다행히도 이번 대선에서는 찍을 후보가 생겼다. 사회대전환 연대회의에서 경선을 통해 권영국 후보가 선출되었고, 짧은 기간안에 기탁금을 모아 무사히 등록했다. 그리고 선본을 꾸리기 위한 비용도 모금이 이뤄지고 있었다. 선거에 얼마나 많은 돈이 필요한지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나도 녹색당에서 활동하기 전에는 자세히 알지 못했다. 전 국민에게 겨우 한 장짜리 흑백 공보물 한 장 보내기 위해서도 엄청난 돈이 든다. 동네마다 정해진 수량을 걸 수 있는 현수막 비용도 마찬가지다. 거대양당이야 어차피 선거운동 비용 전액을 돌려받을 것이고, 득표율을 걱정할 필요가 없으니, 돈 걱정 없이 펑펑 쓰며 선거를 치를 수 있겠지만, 가난한 진보정당은 그 비용들을 다 감당하기 어렵다. 이번에 정의당이 당명을 민주노동당으로 바꾸는 과정이나, 권영국 후보 선거 운동에 오히려 정의당이 덜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는 등 여전히 정의당에 대해서는 아쉬움이 있지만, 어쨌거나 유일하게 제대로 된 후보가 나왔으니, 이 기회를 잘 살여야 한다는 것에는 동의한다.


조금 늦기는 했지만, 우리 지역에서도 자발적으로 여러 단위에서 모여 공동 선본을 꾸렸다. 현수막도 공동으로 비용 부담을 해서 제작했고, 직접 동네 곳곳을 다니며 게시했다. 그리고 출퇴근 시간에 한 시간에서 두 시간 사이 시간을 내어 선전전을 하고 있다. 노동당, 녹색당 그리고 정의당이 주축이고 내가 속한 지역 정당인 은평민들레당도 함께 참여하고 있다. 이외에도 여러 지역의 단위들이 참여하고 있다. 이 중에는 지역에서 오래 활동한 활동가들도 있지만, 시국과 상황 때문에 더는 안 되겠다며 용기를 낸 평범한 시민들도 있었다. 쭈뼛쭈뼛 어색하게 나타나 선거운동에 참여하셨는데, 나중에는 열심히 구호도 외치고 적극적이었다고 들었다. 누군가는 지긋지긋한 보수 양당이 너무 싫어서 뭐라도 하고 싶다고 말씀하셨다. 아침 저녁으로 올라오는 선거운동 사진들을 보니 조끼 색깔도 각 당의 색으로 맞춰 입은 모습이 재미있었다. 노동당은 빨간색, 정의당은 노란색, 녹색당은 초록색. 신호등이다. 그 사진을 보며 옛날 생각이 많이 났다. 노동당이 지역에서 한창 활발하게 활동할 시절, 녹색당이 이제 막 창당하고 지역 활동을 시작하던 시절. 정의당은 아마 당시에는 국민참여당이었던 것 같다. 당시에도 지금도 국참당에서 이름을 바꾼 정의당은 당의 규모에 비해서는 지역 활동은 별로 없었다. 당의 규모에 비해 항상 활발하게 활동한 것은 노동당과 녹색당이었다. 이 적록연대 활동이 참 재미있고 좋았었다.


 


주로 온라인(그러니까 SNS)을 통해서 본 것이긴 하지만, 권영국 후보에게 가는 표가 사표가 될 거라며, 이번에는 꼭 이재명이 압도적으로 당선될 수 있도록 해달라는 글들이 돌아다녔다. 매번 선거철이 되면 토시 하나 안 틀리고 똑같이 강요하는 이 말. 그거 도대체 몇 번째인지 모르겠다. 그래서 뭐가 달라졌나? 매번 그렇게 이번에는 또 이번에는 이라고 말하고선, 차별금지법 하나 제정하지 못했고, 국가보안법 하나 손보지 못했다. 


이번 대선후보 티비 토론회에 4명의 후보가 나온 것은 까다로운 조건을 달성했기 때문이다. 조건은 아래 세 가지다.

① 국회에 5인이상 소속의원을 가진 정당이 추천한 후보자

② 직전 대통령선거, 비례대표국회의원선거, 비례대표시.도의원선거 또는 비례대표자치구.시.군의원선거에서 전국 유효투표총수의 3/100 이상을 득표한 정당이 추천한 후보자

③ 「선거방송토론위원회 구성 및 운영에 관한 규칙」 제22조(언론기관의 범위) 규정에 의한 언론기관이 선거기간개시일전 30일부터 선거기간개시일전일까지의 사이에 실시하여 공표한 여론조사 결과 평균 지지율이 5/100 이상인 후보자

권영국 후보는 과거 정의당이 3% 이상 득표한 자격을 바탕으로 티비 토론회에 나갔다. 그럴듯하게 들리기는 하지만 실속은 없는 뻔한 내용의 이재명과 내용이 없는 김문수와 어떻게든 튀어보려고 발버둥치는 이준석 사이에서 꼭 필요한 내용을 쉽게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전달하는 권영국 후보 덕분에 티비 토론 다운 토론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권영국을 찍어봐야 사표가 된다고? 그렇지 않다. 권영국 후보가 조금이라도 더 많은 표를 받아야 보수 양당이 가리고 싶은 진짜 문제들을 드러낼 수 있다.


SPC 불매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르겠다. SPC 공장에서 또 노동자가 기계에 끼어 사망했다. 권영국 후보에 의하면 출근했다가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노동자가 매일 6명에 이른다고 했다. 아니 하나의 기업에서 이렇게 여러번 같은 형태로 기계에 끼어 돌아가시는 노동자가 연달아 나온다는 것이 말이 되나? 지난 2022년과 2023년에도 계열사에서 사망 사고가 있었고, 손가락 절단 사고는 훨씬 더 많았다. 매번 재발 방지 약속을 했지만, 이번에도 또 사고가 났다. 그리고 매번 기업은 처벌 받지 않았다. 이게 상식적으로 말이 되나? 이게 지금 21세기 민주주의 국가에서 일어나는 일이 맞나?


원래 빵을 거의 먹지 않고, 사는 일도 거의 없는데, 지난 22년 사고 이후로 불매는 해왔다. 만약 빵을 살 일이 생기면, 동네 작은 빵집을 이용하곤 했다. 어차피 먹을 일이 거의 없어서 불매를 하려고 해도 별로 소용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뭔 계열사가 이렇게 많나? 모르는 브랜드가 거의 대부분인데, 혹시 나도 모르게 가는 일이 생길지 몰라 유심히 살펴보았다. 문제는 시민들이 불매를 한다고 해도 기업에 타격이 가기 보다는 가맹점주들에게 타격이 갈 거라는 것이다. 


사실 최근에 딱 한 번 파리바게뜨를 간 적이 있었다. 무슨 앱에서 적립금을 네이버 페이 상품권으로 바꿨는데, 근처에 네이버 페이로 결제가 가능한 가맹점 중에 가장 가까운 곳이 파리바게뜨였다. 해당 상품권은 사용 기한이 정해져있었고, 그냥 없어지기 전에 쓰려다보니 가까운 곳에서 써야 했다. 샌드위치 두 개를 사서 매니저님과 나눠 먹었는데, 이번에 노동자 사망 사고를 보면서 몇 년째 안 갔던 파리바게뜨를 하필 최근에 딱 한 번 갔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올해 프로야구는 역대 유래없는 큰 흥행을 이어가고 있다. 한화 이글스의 엄청난 활약에 힘입어 대전 한화생명 볼파크 18경기 연속 매진은 KBO 역사상 신기록이라고 했다. 프로야구의 흥행과 함께 없어서 못 판다고 소문난 것이 바로 크보빵이라고 불리는 각 구단의 이름을 달고 나온 빵이었다. 안에 포토카드인가 뭔가가 들어있다고 했다. 예전에는 포켓몬 빵이 그렇게 인기가 있어서 구하고 싶어도 못 구한다고 하는 얘길 듣곤 했었다. 실제로 가끔 SNS 에서 크보빵을 잔뜩 사서 카드를 모은다는 사람들이 보이기도 했다. 이번 사고로 크보빵 불매를 하자는 서명 운동이 시작되었다. 롯데 자이언츠는 이 크보빵에 참여하지 않고 나중에 별도로 카드를 넣은 제품들을 출시했다. 빵을 좋아하지 않으니, 크보빵도 살 일이 없고, 롯데가 별도로 낸 다른 빵과 과자류도 살 일이 없는데, 야구팬으로서 이런 움직임은 꼭 참여해야 할 것 같아서 서명에 동참했다. 


사람 목숨은 소중하다. 노동자의 목숨을 지켜주지 않는 기업에서 누가 안심하고 일할 수 있을까? 그럼에도 당장 생활하기 위해 위험한 일터에 출근해야 하는 노동자들이 있다. 그 노동자가 당신이 될 수도 있고, 당신의 가족이 될 수도 있고, 친구가 될 수도 있다.


본인상


지난 주 금요일 저녁에 태양광 강의를 했다. 외부에서 들어오는 강의 요청은 주제에 따라 다양하게 해왔지만, 이번에는 내가 직접 기획하고 준비한 강의였다. 기후위기, 재생에너지, 탈핵, 자원순환, 협동조합 등 다방면에서 강의를 해왔지만, 내가 제일 잘 알고 있고 제일 잘 할 수 있는 주제는 역시 태양광이다. 이번에는 3회 연속 강의로 10년 이상 이 분야에서 일하며 알게 된 모든 것들을 종합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만들었다. 옛날에 컴퓨터 교재 중에 [컴퓨터, 일주일만 하면 전유성만큼 한다]는 책이 있었다. 그 책을 사보지는 않았지만, 전유성이라는 유명인이 얼마나 컴퓨터를 잘 하는지는 모르지만, 그 제목은 한번 듣는 순간 기억에 오래 남는 제목이라 생각했었다. 이번에 강의를 준비하면서 이 3회차 강의를 듣고 나면 누구나 태양광 전문가가 될 수 있다고 말할 정도로 내용을 알차게 준비했다. 


홍보를 시작하자 누군가가 전국적으로 유명한 태양광 전문가라고 나를 소개했다. 절반만 맞는 말일 것이다. 전국 조직인 시민발전협동조합 연합회에서는 나름 유명했었다. 그러니 저 '전국적'이란 단어는 그냥 전국이 아닌 해당 전국 조직 안에서만 해당되는 말이다. 지난 금요일은 이례적으로 국지성 호우가 심했다. 누군가가 열대 우림의 스콜 같다는 이야기를 했었다. 갑자기 천둥 번개가 내리치기도 했다. 날씨가 갑자기 나빠져 신청하신 분들이 많이 안 오실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며 강의 준비를 마무리하고 있었는데, 하나 둘씩 참가자들이 오셨다. 궂은 날씨에 비해서는 오시기로 하신 분들 대부분 오셨고, 사전 신청을 안 하고 오신 분들도 계셨다.


강의는 재미있었다. 나는 원래 강의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고, 내가 제일 잘 알려줄 수 있는 내용이라 신나서 열심히 떠들었다. 참여자들의 진지한 태도와 열의가 느껴져서 더 신이 났다. 중간중간에 질문도 많이 나왔다. 그렇게 강의를 마치고 폰을 들여다 봤는데, 부고 소식이 와있었다. 오늘 강의에 꼭 오고 싶었는데, 갑자기 부고 소식이 와서 장례식장으로 갈 수 밖에 없었다는 내용이었다.


돌아가신 분은 나도 몇 차례 뵈었던 분이었다. 노동·정치·사람 집행위원장이자, 한국정보통신산업노동조합(IT노조) 위원장인 김태식 동지 본인상이었다. 불과 한 달 전쯤에도 우리 지역정당 총회에 오셨던 분이어서 왜 갑자기 이렇게 돌아가셨나 궁금했다. 작은 조직에서 너무나도 많은 일들을 하느라 집에 자주 들어가지 못하고 사무실에서 숙식을 해결하곤 한다는 이야기를 예전에 들은 기억이 있었다. 그날 그러니까 목요일에도 집에 못 가고 야근을 했고, 금요일 아침 회의를 하고 나서 잠깐 같이 낮잠을 자려 눈을 붙였는데, 같이 잠든 분이 깨보니 그렇게 되셨다고. 일종의 돌연사인 것 같다고 들었다. 그 와중에 잠든 상테에서 돌아가셨다면 고통 없이 가셨을 거라는 이야기가 있었다.


나이가 들면서 이제 부고 소식에서 부모님 상이 아닌 '본인상' 이라는 단어가 점점 많아진다. 익숙해질 수 없는 단어, 아니 익숙해지면 안 될 단어. 하지만 언젠가는 반드시 마주해야 할 단어. 이번에 노동사회장으로 장례를 치르면서 조문객으로 온 사람들이 대부분 운동판의 여러 분야에서 오래 활동한 사람들이어서 이 분이 어떤 삶을 살다 가신 것인지 알 수 있었다는 이야기가 들렸다. 한편으로 많은 조문객들이 다녀갔음에도 장례비용을 모두 정산하기에는 조의금이 부족했다는 이야기도 들렸다. 이 역시 이 분이 생전에 어떤 삶을 살았는지를 잘 보여주는 모습일 것이다. 늘 낮은 곳에서 늘 어려운 사람들과 함께 활동하신 분이셔서 그랬으리라. 나는 청소년인 자녀를 비롯해 남은 가족들에 대해 떠올렸다. 돌아가신 분께는 잘 가시라고 인사 드릴 수 있지만, 남은 가족들을 생각하면 갑자기 정신이 아득해졌다. 혹시 만약 나에게 이런 일이 생가면 우리 아이들은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오래 살 생각은 없지만, 아이들이 자라서 성인이 될 때까지는 내가 아빠로서 역할을 해줘야 할 것이다. 그리고 아프지 말아야 한다. 나이 들어서 아픈 아빠로 아이들의 물질적 정신적 부담이 될 수는 없다. 그래서 더 열심히 운동하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달리기 후원회


최근에 나의 달리기를 응원하는 지인들이 다음 대회는 언제냐고 묻길래, 여러 마라톤 대회의 참가비가 점점 오르고 있어서 부담스럽다는 이야기를 했다. 예전에는 2~3만원 선이었던 참가비가 요즘은 대체로 5만원으로 오른 것 같다고. 큰 대회들이 참가비를 올려서 작은 대회들도 덩달아 올리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렸다. 그러자 이야기를 듣던 지인 중 한 명이 나를 마라톤 대회에 보내기 위한 후원회를 조직하자는 제안을 했다. 십시일반 돈을 모아서 다음 마라톤 대회 참가비를 마련해주자는 이야기였다. 설마 그 제안이 실현되어 후원회가 만들어지지는 않겟지만, 그런 제안을 떠올린 것 자체가 너무 고마운 일이었다. 


나 라는 사람, 그래도 나쁘지 않게 살았나보다 하는 생각을 했다. SNS 를 비롯해 주위에 민주당 지지자들이 별로 없다는 것을 깨달은 것도 너무나도 다행이다 싶었다. 내 주위엔 다들 권영국 지지자들 밖에 안 보였다. 그래 이 정도면 그래도 열심히 살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앞으로도 꼰대 보수가 되지 않도록 늘 스스로 반성하고 경계하고 살아야겠다. 달리기 이야기와 프로야구 이야기를 더 쓰고 싶지만, 오늘은 여기서 줄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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