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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은 진행중
  • 환상의 빛
  • 미야모토 테루
  • 11,520원 (10%640)
  • 2014-12-15
  • : 8,360

사람 이름을 잘 기억못하는 편은 아닌데 일본 이름은 여전히 낯설다. 더구나 일본 소설을 자주 읽는 편이 아니다보니 그나마 몇 권 읽었던 소설의 작가 마루야마 겐지와 미야모토 테루를 구별못하고 고른 책이 이 책 <환상의 빛>이다.

미야모토 테루. 1947년 일본 고베 출신으로 올해 79세, 일본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작가중 한 사람이다. 서정시가 사라진 시대에 서정성이 두드러진 소설을 주로 써왔으며 <환상의 빛>은 1977년 그가 소설가로 데뷔하던 해에 발표한 소설이다.

"어제, 저는 서른두 살이 되었습니다." 주인공 여성 유미코의 독백으로 시작되는 첫 페이지부터 확 빠져들 정도로 문장이 조용하면서도 매력있었다.

이렇게 이층 창가에 앉아 따스한 봄볕을 쬐면서 잔잔한 바다와 일하러 나가는 그 사람 차가 꼬불꼬불 구부러진 해안도로를 콩알만 하게 멀어져가는 것을 보고 있으면, 어쩐지 몸이 다시 꽃봉오리로 돌아가는 것처럼 삐걱삐걱 오그라드는 것 같습니다. 

주인공이 말하는 대로 눈 앞에 풍경이 그림처럼 펼쳐지는 것 같았다.

바닷가 마을로 시집온 유미코는 올해 32살. 칠년 전에 남편이 아무 이유 없이 집에 들어오지 않고 결국 자살로 추정되는 죽음을 맞이한다. 이후 유미코는 지금의 남편을 만나 재혼하여 새로운 삶을 살고 있지만 여전히 죽은 전남편의 환상을 보며 계속해서 한 가지 질문에 사로잡혀 사는데, "왜 그는 그날 떠났을까?" 하는 것이다.

하늘색 와이셔츠 위에 회색 블레이저 코트를 입고 약간 등을 구부린 특유의 모습으로 혼자 묵묵히 이슥한 밤의 선로 위를 걷고 있는 당신의 뒤를 좇으면서 저는 열심히 그 마음속을 알려고 기를 썼습니다. (23)

작품은 사건의 원인을 설명하지 않는 대신 남겨진 사람이 느끼는 이해할 수 없는 상실과 질문을 따라간다. 남편이 왜 죽었는지를 밝혀내는 이야기가 아니라, 끝내 알수 없는 이유와 함께 살아가는 이야기이다.

이 세상에는 사람의 혼을 빼가는 병이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좀 더 깊은 곳에 있는 중요한 혼을 빼앗아가는 병을, 사람은 자신 안에 키우고 있는 게 아닐까. 절실하게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자 , 보세요. 또 빛나기 시작합니다. 바람과 해님이 섞이며 갑자기 저렇게 바다 한쪽이 빛나기 시작하는 겁니다. 어쩌면 당신도 그날 밤 레일 저편에서 저것과 비슷한 빛을 봤는지도 모르겠습니다. (82)

바다를 하염없이 바라보던 유미코는 바다 한쪽이 빛나기 시작하는 모습을 보며 이상한 기운을 느끼고, 그 심상치 않은 기운이 누군가의 마음을, 혼을 빼앗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다. 


두번째 단편 <밤 벚꽃>에서도 비슷한 정서가 느껴진다.

주인공 아야코는 남편 유조의 외도로 이혼했고 아들과 함께 살고 있었는데, 일년 전 아들 슈이치마저 교통사고로 잃는다. 벚꽃이 한창이던 봄 날, 어떤 신혼 부부가  찾아와 아야코의 집 2층 방에서 하루만 자고 갈수 있게 해달라는 부탁을 해온다. 어떡해야 할지 결정을 못내리고 있다가 마지못해 허락을 한 아야코는 그날 밤 활짝 핀 벚꽃을 보며 이런 저런 생각에 빠져드는데, 이 순간이 가지고 있는 특별한 정서가 있고 그 속에서라면 자기가 아닌 무엇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은 감상에 빠진다.

이 단편 역시 특별한 줄거리가 있다기 보다 서정적인 감정의 묘사에 치중하고 있다.


세번째 단편 <박쥐>에서 주인공 남자는 오래전 고등학교때 친구였던 란도의 소식을 듣는데, 란도가 고등학교에서 퇴학당한 후 야쿠자 조직에 들어갔다가 죽었다는 소식이다. 고등학교 재학 시절 란도가 퇴학당하게 된 사건에 관련이 있던 주인공은 자신과 다른 부류의 인간이라고 여겼던 친구 란도의 그 당시 상황과 자기의 현재 상황이 시간차가 있을 뿐 묘하게 닮아 있음을 발견 한다. 


마지막 작품 <침대차>에서는 주인공 남자가 출장을 가느라 타게 된 침대차에서 우연히 한 노인을 만나게 되고 그의 울음소리를 듣게 된것을 계기로 어린 시절의 잊을 수 없는 한 사건을 떠올린다. 


이 책에 실린 네 작품은 공통적으로 상실, 외로움, 불안을 그리고 있다. 확실한 사건이나 기억 대신, 모호하고 뚜렷하지 않은 기억을 얘기한다. 줄거리보다는 분위기이며 해결되지 않는 물음이다.

이중 <환상의 빛>은 고레다 히로카즈 감독에 의해 영화로도 만들어졌다고 하는데 영화는 어떻게 표현하고 있을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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