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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

책을 읽다 3 순이가 앞서는 우리말

책벌레수다 : 가시버시·암수·어버이



  우리가 대단히 잘못 아는 여러 가지 가운데 ‘웃사내틀(가부장권력)’이 있다. 이 땅에 웃사내틀이 선 지는 그리 오래지 않으나, 우리로서는 즈믄해(1000년)나 두즈믄해(2000년)만 해도 너무 길다고 여기는 터라, 게다가 조선 닷온해(500년)가 무시무시했고, 일본사슬을 거치고서 오늘날에 이르도록 아직 웃사내틀이 버젓하기에 “여태 가시내를 사람으로 친 적이 없는 듯해!” 하고 여기고 만다. 그러나 이 땅뿐 아니라 푸른별 모든 곳은 처음에 ‘엄마누리(모계사회)’였고, 엄마누리는 아득히 기나긴 해에 걸쳐서 이었다. 멍청한 웃사내틀로 흐른 나날은 발톱에 낀 때만큼도 안 되지만, “발톱에 낀 때만큼도 안 되는 나날”에 걸쳐서 멍청한 웃사내가 온누리를 휘어잡으면서 그야말로 멍청한 굴레를 돌담벼락으로 세웠다.


“아톰, 안녕. 나는 죽을지도 모르지만 너는 살리고 싶구나!” 《우주소년 아톰 18》 234쪽


  모든 말은 마음을 담고, 모든 마음은 삶을 담는다. 그냥 태어난 말이란 없다. 수수하게 오래도록 쓴 낱말을 짚으면, 이 삶이 어떻게 태어나서 흘렀는지 엿볼 만하다. 오늘날 숱한 사람은 웃사내틀에 찌든 ‘부부(夫婦)’라는 낡은 중국말을 그냥 쓴다. ‘夫 + 婦’라는 얼개로 엿보듯, 중국은 일찌감치 한문이라는 고리타분한 굴레로 웃사내틀을 세우면서 임금을 섬겼고, 이런 뿌리가 중국한자말에 익히 남는다. 이와 달리 한겨레는 ‘가시버시’라 했다. ‘가시(갓) + 버시(벗)’란 얼개요, ‘가시 = 가시내’이고, ‘버시 = 머스마·사내’를 가리킨다. 우리는 해마다 ‘어버이날’을 기리는데 ‘어버이 = 어머니 + 아버지’인 얼개이다. 이와 달리 중국스런 한자말 ‘부모(父母)’를 보라. ‘父 + 母’인 얼개이다. 국립국어원은 2026년에도 고지식하게 ‘아들딸’만 올림말로 삼고서 ‘딸아들’은 올림말로 안 삼는다만, 워낙 ‘딸아들’이 말소리를 내기에 수월하고, 우리말 얼개에 맞다. 모든 아이는 ‘엄마아빠’라 말한다. 아주 드물게 ‘아빠엄마’라 말한다. ‘암수’라 일컬을 뿐, ‘수암’이라 안 한다. 이미 모든 우리말은 깊고 긴 엄마누리(모계사회)를 드러낸다. 그냥 수수하고 쉽게 우리말을 쓸 적에 차분히 찬찬히 참하게 웃사내틀을 떨치면서 어깨동무로 거듭나는 실마리를 찾아볼 수 있다. 


이 나라에서 여성이 인간이었던 적이 한 번도 없다고 말한다면, 그건 과장일까요? 《자세한 건 만나서 얘기해》 136쪽


  ‘어버이’라는 수수한 낱말이 “어머니 + 아버지”인 줄 제대로 가르치는 어른을 여태 본 적이 없다. 낱말결과 말뿌리를 옳게 읽어내어 어질게 들려주고 이야기할 때부터 사람답게 어울리는 길을 찾지 않을까? 국립국어원 낱말책을 살피면 “어버이 : 아버지와 어머니를 아울러 이르는 말”로 풀이한다. 아주 뜬금없다. 우리는 ‘어미(어매)·아비(아배)’하고 ‘어머니·아버지’라는 낱말을 쓴다. 낱말풀이를 할 적에 “어버이 : 아이를 돌보는 어른. 어머니하고 아버지를 아우르는 이름”으로 바로잡을 노릇이다. 게다가 국립국어원 낱말책은 “가시버시 : ‘부부’를 낮잡아 이르는 말”처럼 다루니, 이런 낱말책을 문득 뒤적이는 사람은 저절로 우리말을 낮잡을 수밖에 없다. 게다가 ‘가시내’가 앞서는 낱말을 낮춤말처럼 잘못 여긴다.


“하지만 인간도 불량하다는 말을 듣기도 하지! 아예 나랑 같이 제대로 불량해지지 않을래?” 《고물 로봇 퐁코 9》 115쪽


  국립국어원이 참 얄궂고 엉터리라고 나무라기는 쉽다. 그러나 벼슬꾼(공무원)을 나무라기보다는 새길을 스스로 찾아나설 노릇이다. 벼슬꾼이 낱말풀이를 엉성하고 어리석게 한다면, 우리 스스로 낱말풀이를 제대로 새롭게 하면 된다. 곰곰이 헤아려 본다. 나라면 ‘가시버시’라는 아름다운 낱말을 “짝을 이룬 가시내와 사내를 아우르는 이름. 어른으로서 함께 지내고 살림을 짓는 길을 펴려고 보금자리를 이루려는 두 사람을 아우르는 이름. 두 어버이 사랑을 받고서 태어난 다른 두 사람이, 이제부터 새롭게 다른 두 사랑을 하나로 빛내어 아기를 낳거나 품으면서 돌보는 길을 이루려고 함께 지낼 적에 가리키는 이름”처럼 차근차근 풀이를 하겠다. 그냥그냥 짝을 맺는다고 적기보다는, 어떤 마음과 눈빛과 숨결로 함께 보금자리를 이루려 하는지 낱말풀이에 담을 노릇이라고 본다. 어른뿐 아니라 어린이와 푸름이가 읽고서 새길 뜻풀이를 이제부터 차곡차곡 일굴 일이라고 본다.


손가락 몇 번 움직이면 삼십 분 뒤 오토바이와 함께 음식이 도착하는 시대에 《던전밥》을 읽는다. 식량자급률이 낮고 농업인을 귀히 여기지 않는 국가에 살며 거식과 폭식 사이를 자주 오가는 우리에게 이 작품은 어떤 감각을 돌려준다. 《갈등하는 눈동자》 48쪽


  우리는 모두 아기로 태어나서 아이로 자란다. 철들며 무르익는 나날을 보내는 푸름이로 크고서 스무 살을 넘기면 얼핏 ‘어른’으로 여긴다. 일찍 철든다면 열다섯 살이나 열 살에도 어른스럽게 마련이다. 새나라이든 새터이든 새마을이든 새집이든, 어른인 우리 손으로 새록새록 가꾸면 된다. 우리 마음을 나누는 말 한 마디도 우리가 손수 돌보고 보듬고 다듬으면서 북돋우면 된다. 누구나 말할 수 있고, 누구나 글쓸 수 있고, 누구나 책읽기와 책쓰기를 할 수 있다. 오늘부터 우리가 하나씩 새롭게 짓고 빚고 여미면 된다. 앞서서 태어난 어른이 비록 슬기롭게 일하지 못 했다고 한다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가 슬기롭게 일하면 된다. 지난날 어른이 남긴 굴레와 늪과 벼랑이 까마득하다면, 바로 오늘 이곳에서 하나하나 손보고 추스르면 된다.


‘어떡하지? 나, 이걸로 끝내고 싶지 않아.’ 《아사코의 희곡 2》 154쪽


  ‘가시버시·암수·어버이’뿐이 아니다. 말밑을 제대로 짚으면, 우리말은 워낙 가시내를 앞세우면서 사내가 나란히 걸어가며 배우고 익히고 나누는 얼거리이다. 앞장서서 아침을 여는 암빛이다. 수더분히 따라가면서 머슴마냥 머드러기로 일할 줄 아는 수빛이다. 더구나 ‘암수’이면서 ‘아버지·어머니’처럼 사내가 ‘아’를 품고 가시내가 ‘어’를 품기도 한다. 아직 아이스럽고 알에서 덜 깬 아버지로 볼 만한데, 어머니가 어질게 이끌면서 어여삐 보아줄 만하다. 땀흘려 논밭을 짓는 일꾼을 나타내는 이름인 ‘머슴(머스마)’이기에, 멋스럽고 맛깔스러우며 멧자락을 이루는 머드러기요 머리이며 마루를 이룬다. 가장 높고 빛나고 밝은 갓(산정山頂)이기에 머리에 씌우는 옷이기도 하고, 빛나는 풀꽃나무에 맺는 가시처럼 야물게 스스로 지킬 줄 아는 가시내는, 갖추고 간직하기에 ‘감다(검다)’를 품는다. ‘가시버시’에서 ‘가시’는 ‘감·검·곰·굼’으로 닿고, ‘버시’는 ‘벗·범·벼락·별’로 닿는다. 낱말로는 가시내가 앞서더라도 함께 나아가려고 나란히 서는 두 빛이요 씨앗이다. 오래말에 서린 숨결을 읽고 이야기하고 이으며 서로 사람으로 마주할 수 있다.


ㅍㄹㄴ


《우주소년 아톰 18》(테즈카 오사무/박정오 옮김, 학산문화사, 2002.3.25.)

#鐵腕アトム #手塚治蟲 #てづかおさむ

《자세한 건 만나서 얘기해》(황효진·윤이나, 세미콜론, 2021.10.28.)

《고물 로봇 퐁코 9》(야테라 케이타/조원로 옮김, 소미미디어, 2025.10.22.)

#ぽんこつポン子 #矢寺圭太

《갈등하는 눈동자》(이슬아·이훤, 먼곳프레스, 2026.1.5.)

《아사코의 희곡 2》(와다 후미에/심이슬 옮김, 서울미디어코믹스, 2023.9.30.)

#朝子のムジカ!! #和田フミ江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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