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살림말 / 숲노래 책넋
2025.6.9. 눈감지 마라
이른바 소설은 우리 삶하고 너무 동떨어진다 싶어서 1995년부터 안 읽기로 했으나, 몇 해 앞서부터 조금씩 주섬주섬 읽어 본다. 아직 삶을 다루는 흉내같은 소설이 많이 보이는데, 오늘 만난 책은 꽤 다르다. 글쓴이가 예전에 살던 모습일까? 들은 얘기일까? 어느 쪽이건 이만 하게 쓰는 소설이 있다면, 이제는 소설도 곧잘 읽을 수 있겠다고 느낀다.
사람물결인 서울 같은 곳은 늘 놀라우면서 안 놀랍다. 14:40 고흥버스를 1시간째 기다리는 뒤에서 1시간 내내 아지매 아재 무리가 큰소리로 자잘수다잔치를 펴더라. “저쪽은 있잖아, 사람들이 많아서 시끄러워 얘기를 할 수 없어.” 그래서 어쩌라고? 이분들은 고흥도 장흥도 완도도 화순도 강진도 순천도 어디 붙은 줄 모르면서, 전남 두멧시골로 돌아가는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앉는 ‘애먼 자리’에까지 굳이 몰려와서 떠든다. 시골로 가는 시외버스가 언제 들어오려나 하면서 하염없이 조용히 기다리는 시골내기를 꼭 쇳소리로 괴롭혀야 즐거울까?
그런데 드디어 버스가 들어온 뒤에 짐을 메고 나갈 즈음에 이분들 쇳소리를 다시 알아챈다. ‘아! 나는 책에 마음을 쏟느라 이분들이 떠들든 말든 한 마디도 더 귀로 안 받아들이고 흘리면서 1시간을 보냈구나! 이기호 씨, 고맙습니다. 다른 소설도 읽어 볼게요.’ 바로 옆에서 시끄럽게 떠드는 쇳소리를 처음 느낀 뒤부터 1시간 동안 이분들 쇳소리를 못 느꼈다니.
이달부터 부산에서 ‘한달하루 배움모임’을 새롭게 느슨히 다섯걸음으로 꾸리기로 했다. 참말로 지난해랑 올해에는 거의 부산사람마냥 일한다. 고흥에서는 함께 배우자고 하는 말을 누구한테 해볼 수 있으려나. 그러나 우리집 두 아이하고 날마다 배우면 되지. 밖에 나가서 나누는 말은 모두 집에서 아이들하고 먼저 나눈 말이게 마련이다.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