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노래꽃 / 문학비평 . 시읽기 2025.6.9.
노래책시렁 499
《축구공 속에는 호랑이가 산다》
곽해룡 글
강태연 그림
문학동네
2015.4.21.
남다르거나 다르거나 놀랍거나 믿기지 않거나 이루 말할 수 없는 글감을 찾아야 하는 노래(동시·시)가 아닙니다. 남과 다르다 싶은 줄거리를 글감으로 삼아야 하지 않습니다. 놀랍다고 여길 줄거리를 애써 뽑아내거나 캐내야 하지 않습니다. 아기나 아이를 구경하는 자리에서 먼발치로 쓸 적에는 뜬금없거나 삶하고 등지게 마련입니다. 모든 노래는 스스로 ‘살림하는 하루’를 그릴 노릇입니다. 모든 글은 손수 ‘살림짓는 오늘’을 담을 노릇입니다. 《축구공 속에는 호랑이가 산다》는 지난날 ‘동심천사주의’를 고스란히 드러내면서 ‘말만들기’와 ‘주제주의’라는 글버릇을 보여줍니다. 그저 어린이 곁에서 함께 살림하는 길을 그리면 될 텐데요? 왜 자꾸 말만들기를 하면서 ‘좋은 소제·주제’에 얽매여야 하는가요? 언뜻 보면 ‘어린이 삶’을 짚는 듯하지만, ‘어린이 삶’이 아닌 ‘어린이를 먼발치에서 구경하는 좋은 소제·주제’를 맴도는구나 싶습니다. 신 한 짝을 놓고서 귀염구경을 하는 글은, 이제 좀 끝낼 노릇입니다. 얼린고기이든 달걀이든, 손수 밥차림을 하면서 아이가 몸소 밥살림을 익혀 가는 얼거리를 들여다볼 노릇입니다. 쥐어짜려고 하지 말아요. 창피했던 일이건 슬펐던 일이건 기뻤던 일이건 웃던 일이건, 그저 그대로 차근차근 적으면 저절로 삶노래로 피어날 수 있습니다.
길바닥에 떨어진 / 쪼끄만 신발 한 짝 / 유모차 타고 가던 / 아기 발에서 벗겨졌겠지 // 아기는 / 으앙, 울음 터뜨렸겠지 // ― 우리 아가 쉬했니? (신발 한 짝/16쪽)
입을 아, 벌린 채 꽁꽁 얼어 있다 / 바다에서 건져져 파닥이다가 / 산 채로 꽁꽁 얼어 버렸을 동태 / 바다 냄새도 얼어 버리고 / 바다로 돌아가고 싶어 엉엉 울었을 울음마저도 / 꽁꽁 얼어 버렸다 // 지금이라도 물에 놓아주면 동태는 / 비릿한 바다 냄새 물씬 풍기며 / 몸을 뒤척이고 / 배 위로 건져졌던 기억으로 돌아가 / 울다 만 울음 / 엉엉 울어 버릴 것만 같다 (동태/48쪽)
지금은 / 특특란, 특왕란, 왕왕란을 판다 // 할머니 어렸을 적엔 / 계란이 / 메추리알만 했나 보다 (계란 가게/58쪽)
죽음을 앞둔 부자가 / 평생 모은 돈을 /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써 달라고 / 기부했다고 합니다 // 개학이 다가오자 / 하느님께 낼 / 밀린 방학 숙제를 / 한꺼번에 했나 봅니다 (방학 숙제/62쪽)
매미채를 들고 살금살금 / 집을 나서려다 들켜서 // “공부 안 하고 어디 나가!” / 엄마가 내 오른쪽 귀를 잡아당겨서 (줄다리기/74쪽)
+
《축구공 속에는 호랑이가 산다》(곽해룡, 문학동네, 2015)
달아나는 것이 귀찮아 코끼리는 몸뚱이를 키웠다
→ 달아나기가 귀찮은 코끼리는 몸뚱이를 키웠다
38쪽
커다란 몸뚱이를 먹여 살리기 위해 코끼리는 종일 풀을 뜯어야 한다
→ 코끼리는 커다란 몸뚱이를 먹여살리려면 내내 풀을 뜯어야 한다
→ 코끼리는 내도록 풀을 뜯어야 커다란 몸뚱이를 먹여살린다
38쪽
낙타는 사람을 등에 업고 다니지만 제 자식은 한 번도 업어 주지 않았다
→ 곱등말은 사람을 등에 업고 다니지만 제 아이는 안 업어 주었다
→ 모래말은 사람을 등에 업고 다니지만 제 아이는 못 업어 주었다
39쪽
배 위로 건져졌던 기억으로 돌아가 울다 만 울음 엉엉 울어 버릴 것만 같다
→ 배로 건져올린 옛일로 돌아가 울다 만 나를 엉엉 울어버릴 듯하다
→ 배에 낚인 지난일로 돌아가 울다 만 삶을 다시 울어버릴 듯싶다
48쪽
동무들과 작별 인사를 나누고 있으니
→ 동무하고 마지막말을 나누니
→ 동무랑 헤어짐말을 나누니
55쪽
제각각 원하는 방향으로 가는
→ 저마다 바라는 바로 가는
→ 다들 바라는 길로 가는
55쪽
할머니 어렸을 적엔 계란이 메추리알만 했나 보다
→ 할머니 어릴적엔 달걀이 메추리알만 했나 보다
58쪽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써 달라고 기부했다고 합니다
→ 가난한 사람한테 써 달라고 내놓았다고 합니다
→ 가난한 사람한테 쓰라면서 바쳤다고 합니다
62쪽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