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
  • 야성의 부름
  • 잭 런던
  • 10,800원 (10%600)
  • 2015-08-30
  • : 773

숲노래 숲책 / 환경책 읽기 2025.6.9.

숲책 읽기 239


《야성의 부름》

 잭 런던

 햇살과나무꾼 옮김

 시공주니어

 2015.8.30.



  “The Call of the Wild”를 우리말로 어떻게 옮겨야 할는지 돌아봅니다. 우리말은 우리말일 뿐, 일본말이나 영어가 아닙니다. 일본말씨나 옮김말씨가 아닌, 우리말씨로 헤아릴 노릇입니다. 잭 런던 님이 1903년에 남긴 글은 ‘집개’가 들숲살이를 거치면서 ‘늑대’가 들숲에서 살듯 들숲으로 떠나는 줄거리를 다룬다고 할 만합니다. “들숲이 부른다”나 “숲이 부른다”처럼 옮겨야 어울리지 않을까요. 단출히 ‘들숲소리’나 ‘숲소리’나 ‘숲노래’로 옮길 수 있습니다.


  바람이 안 부는 날이란 없습니다. 바람은 아주 잔잔하다 싶도록 부는 날이 있더라도 늘 흐르고 감돌며 퍼집니다. 바람이며 물은 고이면 그만 갇혀서 괴로운 나머지 곪듯 썩습니다. 흐르기에 살리는 바람과 물입니다. 우리 몸을 이루는 피도 언제나 흘러요. 우리 몸에서 피돌기가 멎으면 우리 숨도 나란히 멎습니다.


  바람이 간질이는 하루입니다. 바람이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어루만지는 하루입니다. 바람을 마시면서 깨어나고, 바람을 느끼며 잠듭니다. 이 바람이 있기에 나하고 너는 서로 다르되 하나인 넋으로 이 별에서 어울립니다. 이 바람을 잊기에 나는 나부터 잊으면서 너를 못 보고, 너도 너 스스로 잊기에 나를 바라보지 않습니다.


  《들숲소리(야성의 부름)》를 오랜만에 되읽는데, 사람들이 개를 때리고 괴롭히면서 돈에 얽매이는 줄거리가 대단히 깁니다. 모든 사람이 모든 개를 때리고 괴롭히지는 않습니다만, 예나 이제나 사람 사이에서도 괴롭히고 때리는 무리는 고스란하고, 사람 곁에 있는 뭇짐승과 뭇새와 뭇벌레를 괴롭히고 죽이는 무리가 숱합니다.


  전남 고흥군 읍내에는 즈믄나무(천년수)가 있습니다만, 내내 이 나무를 괴롭히고 들볶더니, 2025년 5월에는 아주 가지치기까지 해댑니다. 멀쩡한 즈믄나무를 이대로 살피고 보듬는 손길이 아니라, 보기 흉하게 괴롭히는 막칼질입니다. 시골인 고흥뿐 아니라 서울과 큰고장도 비슷해요. 온나라 길나무는 해마다 젓가락으로 바뀌기 일쑤예요. 줄기만 올리는 나무가 아니라, 가지를 뻗는 나무인데, 가지가 좀 난다 싶으면 죄다 쳐낸다면, 나무가 살 수 있을까요?


  우리는 나무만 괴롭히면서 죽이지 않습니다. 이 나라 아이들은 올해에도 똑같이 배움수렁(입시지옥)에 갇힌 채 앓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아이들을 수렁에 내몰면서 손전화를 휙휙 던져 줘요. 아이들은 수렁에서 헤매며 손전화에 코를 박습니다. 죽음수렁으로 내몰렸어도 손전화를 들여다보면서 키들키들하더군요. 이러면서 혀끝에 갖은 막말을 얹으며 떠들어요. 다만, 혼자 있을 적에는 막말을 못 얹고, 또래가 여럿 어울릴 적에만 큰소리로 막말을 뇌까립니다.


  나무는 왜 ‘나무’인지 생각해 보는 사람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나하고 너는 왜 ‘나·너’인지 알아보려고 하는 사람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사람은 왜 ‘사람’이고, 사랑은 왜 ‘사랑’인지 깨달으려고 하는 사람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나무가 왜 나무인지 생각조차 않으니, 나비와 벌과 풀과 꽃이 왜 ‘나비·벌·풀·꽃’이라는 이름인지 생각하지 못 하거나 않습니다. 스스로 우리 이름과 말을 생각하는 빛을 잊으니, 왜 ‘삶’인지 생각하지 못 하거나 않아요. 개 한 마리는 사나운 채찍질에도 끝까지 살아남아서 들숲소리를 따라서 사람터를 의젓하게 떠났습니다. 채찍질이 없는 숲에서, 죽임짓이 없는 들에서, 따돌림과 무리질이 없는 들숲에서, 이제 스스로 하루를 그리고 짓는 길로 나아갑니다.


  우리는 날마다 무슨 소리를 듣는 하루인지 곱씹을 노릇입니다. 우리는 늘 무슨 소리에 휩싸인 터전인지 되새길 노릇입니다. 사람으로서 사람답게 사랑을 하면서 살림을 짓는 소리와 말과 마음이 흐르는 집에서 살아가는지, 아니면 사람됨과 사랑빛과 살림길과 생각소리와 말씨앗과 마음밭을 모두 팽개치거나 등돌린 채 쳇바퀴에 스스로 갇힌 굴레는 아닌지 짚어 볼 노릇입니다.


ㅍㄹㄴ


#TheCalloftheWild (1903년) #JackLondon

필립 R.굿윈·찰스 리빙스턴 불 그림


단지 경험으로 배워 나가는 것만이 아니라, 오랫동안 죽어 있던 본능이 다시 살아나는 것이기도 했다. 수많은 세대를 거치며 길들여진 습성이 벅에게서 떨어져 나갔다. (48쪽)


벅은 냉혹했다. 자비는 따뜻한 땅에서나 통하는 말이었다. 벅은 최후의 돌격을 위해 태세를 갖추었다. (78쪽)


뭔가를 보거나 소리를 들은 것은 아닌데도, 벅은 어쩐지 땅이 달라졌다는 것을, 땅 곳곳에 낯선 것들이 생겨나 돌아다니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183쪽)


사람은 화살이나 창이나 몽둥이가 없으면 아예 상대가 되지 않았다. 앞으로 벅은 사람이 손에 활이나 창이나 몽둥이를 들고 있지 않는 한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다. (188쪽)


+


《야성의 부름》(잭 런던/햇살과나무꾼 옮김, 시공주니어, 2015)


해안 지방에 사는 모든 개들에게 고난의 조짐이 보이고 있었다

→ 바닷가에 사는 모든 개한테 가시밭길이 닥치려 한다

→ 바닷마을에 사는 모든 개는 곧 가싯길을 맞을 듯하다

→ 바닷마을 모든 개는 이윽고 바람서리를 맞을 듯하다

9쪽


단지 경험으로 배워 나가는 것만이 아니라, 오랫동안 죽어 있던 본능이 다시 살아나는 것이기도 했다

→ 그저 겪으며 배울 뿐 아니라, 오랫동안 잠자던 넋도 되살아난다

→ 그저 부딪히며 배울 뿐 아니라, 오랫동안 억눌린 숨결도 살아난다

48쪽


수많은 세대를 거치며 길들여진 습성이 벅에게서 떨어져 나갔다

→ 벅은 숱한 고개를 거치며 길든 버릇이 떨어진다

→ 벅은 긴긴 길을 거치며 길들었지만 바뀐다

48쪽


신중한 것은 벅의 특징이었다

→ 벅은 꼼꼼하다

→ 벅은 빈틈이 없다

→ 벅은 차분하다

53쪽


빙글빙글 원을 그리며 호시탐탐 기회를 노렸다

→ 빙글빙글 걸으며 노려본다

→ 빙글빙글 돌며 틈을 노린다

→ 동그라미를 그리며 틈을 본다

74쪽


자비는 따뜻한 땅에서나 통하는 말이었다

→ 사랑은 따뜻한 땅에서나 하는 말이다

→ 따뜻한 땅에서나 너그러울 뿐이다

→ 따뜻한 땅에서나 따사로울 뿐이다

78쪽


사람들의 관심은 또 다른 우상들에게로 쏠렸다

→ 사람들은 곧 다른 꽃별을 쳐다본다

→ 사람들은 이내 다른 님을 떠받든다

89쪽


서로 깊은 교감을 나누는 사이였기에

→ 서로 마음을 깊이 나누었기에

→ 서로 마음으로 느끼는 사이였기에

139쪽


잡아먹는 쪽보다 인내심이 약하기 마련이다

→ 잡아먹는 쪽보다 덜 끈질기게 마련이다

→ 잡아먹는 쪽보다 못 버티게 마련이다

180쪽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 댓글쓰기
  • 좋아요
  • 공유하기
  • 찜하기
로그인 l PC버전 l 전체 메뉴 l 나의 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