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

숲노래 노래꽃

시를 씁니다 ― 51. 까맣다



  “까맣게 모른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하얗게 안다”고도 할까요? 그렇지는 않아요. “하얗게 모른다”를 비슷하게 씁니다. 머리가 “하얗게 비었다”처럼 쓰니, 이때에는 하나도 모른다는 뜻입니다. 까맣게 모른다고 할 적에는 온통 까만 빛깔이라 이 빛이나 저 빛을 가릴 수 없는 나머지 도무지 모르겠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서 “까맣게 모르다 = 이도 저도 가릴 수 없이 밤빛이 되면서 헤아리기 어렵다”는 소리요, “하얗게 모르다 = 몽땅 사라져서 아무것도 없는 나머지 아예 생각조차 할 수 없다”는 소리입니다. 사람들이 우글거리기에 “까맣게 모여든다”고 합니다. 참으로 많은 ‘까망’입니다. 밤하늘을 채우는 별인데, 별을 누리는 밤이란, 어둠이란, 고요하게 모두 그득그득 채우면서 새롭게 깨어나려는 빛깔을 나타내지 싶습니다. 그래서 아기는 ‘어두운 어머니 품’에서 고요하면서 아늑하게 열 달을 살아낼 테고, 어머니 품을 떠날 적에 눈부신 빛(하양)을 찾아서, 아직 아무것도 없는 텅 빈 데이지만, 이 텅 빈 데를 저 나름대로 새로운 이야기(빛)를 하나씩 채워서, ‘가득 채운 하얀 누리’로 거듭나게 하려는 길을 나서는 셈이로구나 싶습니다. 까만 눈알이란 버찌나 먹머루 같은 눈알입니다. 까만 글씨란 이제까지 새하얗던, 텅 빈 종이에 새롭게 이야기를 그려서 넣는, 우리 생각을 이루고 싶은 꿈을 밝히는, 흰곳을 밝히는 까만글이란, 둘이 새삼스레 어우러지는 놀이판이지 싶습니다. 흰종이에 까만글이듯, 까만밤에 흰별입니다.



까맣다


그만 까맣게 탄 빵

뒤꼍 구덩이에 놓으니

새까맣게 모여드는 파리

배불리 잔치한다


저토록 까맣게 높다란 봉우리

언제 다 오르나 하면서

새까맣게 타들어가는 마음

이제 내려놓아 봐


걱정이라면 까맣게 잊자

해보면 모두 해내니까

여태까지 새까맣게 몰랐어도

오늘부터 하얗게 배우지


까만 눈이 되어 기다리기도

새까맣게 질려서 고단하기도

그렇지만

까만 버찌 먹고서 기운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 댓글쓰기
  • 좋아요
  • 공유하기
  • 찜하기
로그인 l PC버전 l 전체 메뉴 l 나의 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