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 마을책집 이야기
ㄴ을 얹는 나 (2025.6.1.)
― 부산 〈책과 아이들〉
어릴적부터 둘레에서 ‘생활·생계·생존’ 같은 한자말을 쓰는 분이 많았습니다. “왜 우리말로 ‘삶·살림·남다’라 안 해요?” 하고 여쭈면, 뭔 이런 조무래기가 다 있느냐며, 우리말로는 깊이도 너비도 없어서 나타낼 수 없다고 끊어요. 이윽고 ‘라이프·리빙’처럼 영어가 물결치면서 한자말이 수그러듭니다. 요즈음은 우리말 ‘삶·살림’을 헤아리는 분이 제법 늘었습니다. 그러나 아직 ‘남다’를 눈여겨보는 분은 턱없이 적어요.
나무는 이곳에 남아서 푸르게 가꿉니다. 아무리 메마른 곳이어도 먼저 티끌만큼 작은 풀씨가 날아앉아서 지렁이랑 풀벌레를 부릅니다. 어느새 애벌레는 나비로 깨어나서 춤추고, 새하고 들숲짐승이 깃듭니다. 사람이 살 만한 데란, 풀꽃씨에 풀벌레에 벌나비에 새가 일군 터전입니다.
나는 너를 바라봅니다. 나하고 너 사이에 금을 그으며 끊으면 ‘남’이자 ‘놈’입니다. 나하고 너를 아우르려고 하니 ‘우리’이고, 우리는 서로 어울리고 한울(하늘)처럼 파랗게 만나서 ‘하나’이면서 ‘한(큰)’껏 피어나는 꽃입니다.
나는 너한테 가려서 너머를 그리고, 어느새 서로 날갯짓으로 넘나들어요. 넘나드는 홀가분한 날갯짓 같은 사이라서 ‘너나들이’입니다. 부산 〈책과 아이들〉에서 아침에는 “살림짓기 이야기밭” 첫걸음을 펴고, 낮에는 “말이 태어난 뿌리” 두걸음을 폅니다.
“나이들기 때문에 아픈” 사람은 없어요. “나이들면 아프게 마련이라고 마음에 씨앗을 심기 때문에 아픈” 사람만 있어요. 머리카락은 빠지고 새로 납니다. 손발톱은 닳으면서 새로 자랍니다. 이와 잇몸도 쓰는 만큼 닳고, 안 쓰면서 쉬는 사이 새로 나옵니다. 살갗과 피도 끝없이 새로 나오고요. 눈이 잘 안 보일 적에는 눈을 너무 쓴 탓에 쉬어야 하기도 하지만, 둘레에 ‘불(형광등·LED)’이 너무 많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눈을 살리려면 ‘불’이 아닌 ‘풀(풀잎과 나뭇잎)’을 바라보고, ‘물(빗물·이슬·샘물)’과 ‘바람(파란하늘·구름)’을 바라보면 되어요.
느긋이 나를 돌아보기에, 넉넉히 몸이 나아가고, 나긋나긋 마음이 자라난다고 느껴요. ‘나이’를 “나로서 잇고 일어서고 읽고 익히는” 길로 삼으니 ‘이야기’를 지어요. 마음은 그저 ‘마음’일 뿐이니, ‘좋은마음’도 ‘나쁜마음’도 아닌 ‘나로서 나라는 마음’만 바라볼 일입니다. 먹든 굶든 언제나 튼튼몸으로 나아갈 수 있어요. ‘ㄴ’이라는 낱말에 ‘나·너’를 얹고서 ‘나무·남다·날다’를 잇고서 ‘나다·낳다·놀다·나눔’을 둡니다. 놓는 낱말에 따라 이 삶이 다릅니다.
ㅍㄹㄴ
《결혼식은 준비하지만, 결혼은 준비하지 않았다》(김수현, 스토리닷, 2025.6.14.)
《쇼핑은 투표보다 중요하다》(강준만, 인물과사상사, 2020.4.14.)
《수없이 많은 바닥을 닦으며》(마이아 에켈뢰브/이유진 옮김, 교유서가, 2022.8.1.)
#Rapport fran en skurhink (1970년) #MajaEkelof
《평범한 경음부 1》(쿠와하리 글·이데우치 테츠오 그림/이소연 옮김, 서울미디어코믹스, 2025.3.30.)
《평범한 경음부 2》(쿠와하리 글·이데우치 테츠오 그림/이소연 옮김, 서울미디어코믹스, 2025.4.30.)
#ふつうの輕音部 #クワハリ #出內テツオ
《밤을 걷는 고양이 2》(후카야 카호루/김완 옮김, 미우, 2017.12.12.)
《밤을 걷는 고양이 3》(후카야 카호루/김완 옮김, 미우, 2017.7.29.)
#夜廻り猫 #深谷かほる
《시노자키 군의 정비 사정 9》(부리오 미치루/김명은 옮김, 서울미디어코믹스, 2025.2.28.)
《시노자키 군의 정비 사정 10》(부리오 미치루/김명은 옮김, 서울미디어코믹스, 2025.3.30.)
#篠崎くんのメンテ事情 #?尾みちる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