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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

숲노래 어제책 / 숨은책읽기 2025.4.27.

숨은책 1049


《뱅뱅클럽》

 그레그 마리노비치·주앙 실바 글·사진

 김성민 옮김

 월간사진

 2013.3.11.



  우리나라 빛밭(사진계)은 고이다 못해 이제는 한 줌 재로도 안 남고 사라졌다고 느낍니다. ‘유리원판’에서 ‘대형원판’을 거쳐 ‘중형필름’과 ‘소형필름’을 지나는 동안에도 몇몇이 또아리를 틀 뿐이었고, ‘디지털’로 넘어올 적에도 몇몇이 거머쥐며 저희끼리 다투느라, 바야흐로 ‘누구나 찍고 즐기고 나누는’ 오늘날에는 이 나라 빛밭은 그야말로 초라하고 후줄근할 뿐입니다. 붓을 쥔 사람은 ‘쓰기·적기·옮기기·그리기’를 한다면, 쇠(찰칵이)를 쥔 사람은 ‘찍기·담기·얹기·새기기’를 합니다. 글담(문단권력)도 드세기는 하지만 빛담(사진권력)도 드센 나머지, ‘누구나 찍고 즐기고 나누는’ 물결을 이루는 한 줌짜리 사진잡지나 사진평론이나 사진전시가 얼마나 부질없는 멋자랑인지 환히 드러날 텐데, 아직 이런 수렁에서 헤매는 판입니다. 《뱅뱅클럽》은 불화살(총탄)이 춤추면서 숱한 사람들이 고꾸라져 사라지는 싸움터 한복판에서 작은쇠(소형사진기)를 쥐고서 손을 덜덜 떨며 ‘불바다(참혹한 전쟁현장)’를 찍어서 남긴 사람들이 겨우 살아남은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불바다에서 살아남은 이 가운데 ‘케빈 카터’도 있는데, 글담을 휘두르는 이는 난데없이 케빈 카터를 벼랑으로 내몰아 죽음길로 걷어찼습니다. 요즈음 이 나라는 ‘딥페이크’를 핑계로 들며 ‘졸업사진책’조차 안 냅니다. 이른바 구더기 무서워 된장 못 담그는 꼴입니다. 빛이 왜 빛이요, 빛을 담는 길인 ‘사진’이 어떻게 사진인지, 아이곁에 서서 아이가 알아들을 목소리로 사근사근 들려주려는 빛바치(사진가)가 아주 몇 사람조차 없다시피 한 나머지, ‘졸업사진책’을 안 내거나 굴레(법)만 더 세우면 되는 줄 잘못 아는 사람이 수두룩합니다. 글이 왜 글인지 가르치고 배워야 글빛이 살아나고, 빛이 왜 빛인지 배우고 가르쳐야 빛밭이 깨어납니다. 돈만 바라보는 직업훈련으로는 글도 땀도 빛도 붓도 덧없습니다. “어느 나라 글인지 알쏭달쏭한 옮김말씨에 일본말씨로 늘어놓는 글·그림(창작·비평)”으로는 그저 더 막장으로 치달을 뿐인 빛밭입니다.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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