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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獨子)적인 독자(讀者)




프리드리히 엥겔스(Friedrich Engels)는 공장주가 아닌 공산주의자가 되고 싶었다. 그는 방직 공장주의 아들로 태어났다. 엥겔스의 아버지는 아들이 가업을 이어주길 바랐지만, 사회 개혁을 꿈꾼 청년 엥겔스는 독일에 유행한 급진적 사상에 관심이 있었다. 엥겔스는 ‘청년 헤겔파’ 또는 ‘헤겔 좌파’로 알려진 젊은 급진주의자들과 어울려 다녔다. 청년 헤겔파 중에 두각을 나타낸 인물이 바로 마르크스(Karl Marx)다.


















* 피터 싱어, 노승영 옮김 《마르크스》 (교유서가, 2019년)

 

* [절판] 조너선 울프, 김경수 옮김 《한 권으로 보는 마르크스》 (책과함께, 2005년)





젊은 마르크스는 아버지에게 보낸 편지에서 자신이 헤겔(Hegel) 철학에 ‘딱 달라붙어’ 있다고 썼다. 헤겔 철학의 핵심 개념은 ‘정신(Geist)’이다. 모든 존재의 정신은 자기 자신을 스스로 인식하면서 자유를 향해 나아간다. 완전한 자기 인식에 도달한 ‘절대정신’은 역사의 종착점이다. 헤겔주의자는 절대정신의 진보와 발전에 힘입어 만들어진 세계가 합리적이며 완벽하다고 생각했다. 그들의 논리대로라면 종교는 절대적 진리이다. 청년 헤겔파는 헤겔 철학을 뼛속 깊이 받아들이는 헤겔주의자가 아니다. 청년 헤겔파는 헤겔의 철학적 관점을 이용해 자유와 참된 자기 인식을 방해하는 종교를 비판한다. 


종교를 비판하는 청년 헤겔파의 무신론은 종교와 관련이 깊은 정치적 권력을 공격하는 일과 비슷하다. 보수적인 기득권 계층은 청년 헤겔파의 등장을 위협적으로 느꼈다. 엥겔스의 아버지는 군 복무를 마친 아들을 영국 맨체스터에 있는 자신의 공장으로 보냈다. 당시 맨체스터는 런던 다음으로 무섭게 발전하고 있는 산업 도시였다. 엥겔스의 아버지는 아들의 정신 개조를 위해서 엥겔스를 부르주아지(bourgeoisie, 유산 계급)의 천국으로 보낼 속셈이었다. 엥겔스와 급진주의자들의 교류를 단절시키는 동시에 엥겔스가 공장을 경영하는 일을 배우도록 해서 부르주아지로 만들려고 했다.

















* 프리드리히 엥겔스, 이재만 옮김 《영국 노동계급의 상황》 (라티오, 2014년)





하지만 독일 공장주의 계획은 빗나갔다. 오히려 엥겔스에게 날개를 달아주었다. 엥겔스는 죽어라 일만 하는 프롤레타리아트(proletariat, 무산 계급)의 빈곤한 삶을 가까이서 볼 수 있었다. 《영국 노동계급의 상황》은 엥겔스가 맨체스터와 영국 북부에 거주하는 노동자들의 실상을 상세하게 기록한 저서이다. 그는 노동계급을 대변하는 부르주아지였다. 사회주의를 탐탁지 않게 바라보는 부르주아지 지식인들은 엥겔스의 활동을 모순에 가까운 이중성이라고 비난했다. 그러나 엥겔스는 지속적으로 노동자들을 만났다. 노동자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인 엥겔스는 부르주아지 지식인들 앞에서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대신 들려주는 확성기 역할을 했다. 


















* 카를 마르크스 · 프리드리히 엥겔스 함께 씀《독일 이데올로기》 (두레, 2015년)


* 카를 마르크스 · 프리드리히 엥겔스 함께 씀, 이진우 옮김 《공산당 선언》 (책세상, 2018년)

 

* [절판] 카를 마르크스 · 프리드리히 엥겔스 함께 씀, 권화현 옮김 《공산당 선언》 (펭귄클래식코리아, 2010년)

 




1840년대 초중반, 프랑스 파리에서 마르크스를 다시 만나면서 공산주의의 이론적 토대를 쌓았다. 두 사람이 함께 쓴 《독일 이데올로기》는 젊은 시절에 만난 헤겔 좌파와의 결별을 알리는 동시에 역사적 유물론을 본격적으로 소개한 책이다. 《공산당 선언》은 부르주아지 중심의 세상을 향해 던진 첫 번째 공산주의 강령이다.


엥겔스는 《영국 노동계급의 상황》에서 노동자들의 심각한 건강 상태를 꽤 많이 언급한다. 열악한 위생 상태는 하층 계급의 수명을 빼앗는 전염병을 일으킨다. 대부분 노동계급 가족은 너무 가난해서 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한다. 부실한 식사는 자녀들의 성장과 건강에 나쁜 영향을 끼친다. 병원에 갈 수 없는 아픈 노동자들은 아주 저렴한 약에 의존하다시피 살아간다. 그런데 그들이 자주 복용하는 약은 오히려 건강을 악화시킨다. 노동자들이 주로 찾는 약은 ‘만병통치약’으로 과장되었고, 돌팔이 의사들이 만든 것이다.

 

엥겔스는 노동자들의 몸과 정신을 망가뜨리는 가장 큰 원인이 ‘사회’라고 지적한다. 《영국 노동계급의 상황》은 빈민가의 그늘에 가려진 노동자의 건강권 침해 문제를 조명한 책이다.










 










[<읽어서 세계 문학 속으로> 2025년 6월의 세계 문학]

* 토머스 드 퀸시, 김석희 옮김 《어느 영국인 아편쟁이의 고백》 (시공사, 2010년)





엥겔스는 액체로 된 아편이 주성분인 고드프리 강장제(Godfrey’s Cordial)가 노동자들의 건강을 해치는 가장 해로운 약이라고 말한다(《영국 노동계급의 상황》, 152쪽). 당시 아편은 약국에 가면 쉽게 구할 수 있었다. 영국 노동자들은 몸이 아픈 자녀에게 아편 팅크를 먹였다. 엥겔스는 노동자들이 아편을 지나치게 남용하고 있다면서 우려를 표했다.


《영국 노동계급의 상황》은 1845년에 발표된 책이다. 엥겔스의 책이 나오지 않은 24년 전에 이미 가난한 노동자들의 아편 복용 실태를 영국 사회에 알린 사람이 있었다. 그는 바로 영국에서 가장 유명한 아편 중독자 토머스 드 퀸시(Thomas De Quincey)다. 드 퀸시는 자신이 아편에 탐닉하게 된 이유를 1821년에 쓴 《어느 영국인 아편쟁이의 고백》에서 밝힌다. 드 퀸시가 태어난 곳은 맨체스터다. 그의 아버지는 면직물 수입상이었다. 그는 이 책의 서문에서 맨체스터의 면직물 노동자들의 아편 중독을 언급한다.




 몇 년 전 내가 맨체스터를 지나가다가 몇몇 면직물 업자한테 들은 바에 따르면, 직공들이 아편 복용 습관에 급속히 빠져들고 있다는 것이었다.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가 하면, 토요일 오후에는 모든 약종상의 계산대가 밤에 찾아올 단골손님들의 주문에 대비하여 미리 늘어놓은 1그레인, 2그레인, 3그레인의 환약으로 가득 메워질 정도라고 한다. 이런 습관을 낳은 직접적인 원인은 저임금이었다. 당시 직공들은 저임금 때문에 맥주나 위스키에 탐닉할 여유가 없었다. 임금이 올라가면 이 습관도 저절로 사라질 거로 생각하겠지만, 나는 아편이 주는 천상의 쾌락을 한 번 맛본 사람이 알코올처럼 조잡한 세속의 음료가 주는 즐거움으로 전락하리라고는 선뜻 믿을 수 없다.


(드 퀸시, 김석희 옮김, 《어느 영국인 아편쟁이의 고백》 중에서, 14~15쪽)



드 퀸시는 노동자들이 아편에 빠지는 원인을 ‘저임금’이라고 주장한다. 쉬지도 않고 온종일 일한 노동자들은 피로를 풀기 위해 술집을 찾았다. 그러나 술을 살 돈이 없는 가난한 노동자들은 약국으로 향했다. 약국에 가면 적지 않은 돈으로 아편을 많이 구매할 수 있었다. 당시 영국 노동자들은 아편을 ‘몸에 좋은 약’으로 믿었기에 아편이 술보다 낫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 [절판] 카를 마르크스, 강유원 옮김 《헤겔 법철학 비판》 (이론과실천, 2011년)


* 미카엘 뢰비 · 엠마뉘엘 르노 · 제라르 뒤메닐 함께 씀, 배세진 옮김 《마르크스주의 100단어》 (두번째테제, 2018년)





엥겔스와 드 퀸시는 영국 사회가 방치하고 있었던 노동계급의 아편 중독 문제를 직접적으로 거론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드 퀸시는 아편 중독을 비판한 의사와 지식인들에게 공격을 받았다. 드 퀸시를 비난한 지식인들은 대중에게 좋은 반응을 얻은 《어느 영국인 아편쟁이의 고백》이 아편에 대한 대중의 호기심을 부추길 수 있다고 주장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아편은 약국에서 퇴출당하였다. 약사들은 자신들의 주 수입원이었던 아편을 쫓아냈다. 약사들이 쫓아낸 아편은 만병통치약이 아닌, 우리가 아는 ‘마약’이 되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대중에게 일시적인 위안을 주는 종교를 비판하기 위해 환각 상태를 유발하는 아편에 비유했다. 그 유명한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라는 문장은 마르크스가 쓴 글 《헤겔 법철학 비판》 서문에 나온다. 이 문장은 마르크스가 처음으로 썼다고 알려졌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 마르크스의 친구이자 독일의 시인 하인리히 하이네(Heinrich Heine)가 이미 쓴 적이 있다(《마르크스주의 100단어》, 199쪽).

     

   



















* 트리스트럼 헌트, 이광일 옮김 《엥겔스 평전: 프록코트를 입은 공산주의자》 (글항아리, 2010년)


* [절판] 요세프 슈페크 엮음, 원승룡 엮음 《근대 독일 철학》 (서광사, 1986년)




드 퀸시가 가장 좋아했던 철학자는 칸트(Immanuel Kant)다. 그는 철학자들의 말을 여러 번 인용하면서 《어느 영국인 아편쟁이의 고백》을 썼으며, 이 글에서 자신은 과거에 칸트뿐만 아니라 피히테(Fichte)와 셸링(Schelling)의 책들을 탐독하면서 독일 형이상학을 공부했다고 언급한다. 셸링은 헤겔과 친하게 지낸 헤겔주의자였으나 사상적 갈등으로 인해 헤겔 비판자가 된 독일의 철학자다. 헤겔을 지지한 청년 엥겔스는 셸링을 반박하기 위해 그가 강연하는 베를린 대학 강의실을 자주 찾았다고 한다. 









드 퀸시는 대중에게 잘 팔리는 글을 주로 쓰는 매문가로 살았다. 그렇지만 철학을 혼자서 공부한 드 퀸시의 목표는 제대로 된 철학책을 쓰는 것이었다. 드 퀸시는 엥겔스와 같은 혁명가 기질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젊은 시절에 위장병으로 고생했을 정도로 그의 몸은 허약했다. 드 퀸시는 불시에 자신을 습격하는 육체적 고통을 늘 경계하면서 살았다. 《어느 영국인 아편쟁이의 고백》을 처음부터 끝까지 제대로 읽어야만 드 퀸시가 왜 이토록 아편과 철학을 중요하게 생각했는지 이해할 수 있다. 아편과 철학은 육체적 고통에 대항할 수 있는 무기이자 고통을 잠시나마 막아주는 방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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