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독자(獨子)적인 독자(讀者)





전망 좋은 [책]방

 

EP. 31









풀무질


2025년 6월 6일 금요일

오전 11시~오후 12시 20분경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인문 서적 · 사회과학 도서 전문 서점은 <풀무질>과 <그날이 오면>이다. <풀무질>은 1985년 성균관대학교 앞에서 태어났고, <그날이 오면>은 1988년 서울대학교 근처 신림동 고시촌에서 태어났다. 두 서점은 지식에 목마른 학생들이 찾는 오아시스였고, 민중을 억누르는 권력에 맞서 저항하는 학생들에게는 소중한 아지트였다.












풀무는 불을 피울 때 바람을 일으키는 도구다. 서점 이름이 된 풀무질은 바람을 일으켜 생긴 불로 전두환 정권에 저항하겠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올해로 마흔 살이 된 <풀무질>은 2019년에 커다란 위기를 만난 적이 있었다. 1993년에 <풀무질>을 운영하기 시작한 은종복 대표가 서점을 이어받을 사람이 없으면 서점을 닫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다행히 세 명의 청년이 <풀무질>을 이어받으면서 다행히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다. 서점을 이어받은 청년 중 한 사람인 전범선 대표는 록밴드 ‘양반들’의 리더이며 동물권 단체 사단법인 <동물해방물결>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올해 3월 15일에 <풀무질>과 <동물해방물결>이 용산에 ‘함께 살게 되면서(한살림)’ 한층 더 젊은 서점으로 변신했다.













<동물해방물결> 회원을 <풀무질>에서는 ‘살리미’라고 부른다. ‘살리미’는 환경 문제, 동물권과 채식주의(veganism)를 알고 싶은 사람들이다. <풀무질>에 정기적으로 ‘살리미’를 위한 공부 모임 또는 독서 모임들이 진행된다. 때로는 공연도 열리기도 한다. 








<풀무질>에 구매할 수 있는 책들 대부분은 헌책이다. 책장을 잘 살펴보면 곳곳에 꽂힌 신간 도서들을 찾을 수 있다. 책뿐만 아니라 커피와 와인, 비건(vegan)을 위한 베이글과 쿠키를 판다. 








<풀무질>에 처음 방문해서 구매한 책들은 세 권이다. 더 사고 싶은 책들이 있었지만, 다음으로 가야 할 서점(!)을 위해서 신중하게 생각하면서 책을 골랐다.












 






















* 제러미 벤담, 강준호 옮김 《도덕과 입법의 원칙에 대한 서론》 (아카넷, 2013년)

 

* 존 스튜어트 밀, 박상혁 옮김 《존 스튜어트 밀의 윤리학 논고》 (아카넷, 2020년)

 

* 존 스튜어트 밀, 서병훈 옮김 《존 스튜어트 밀 선집》 (책세상, 2020년)

 

* [리커버판-절판] 존 스튜어트 밀, 서병훈 옮김 《공리주의》 (책세상, 2018년)

 

* 헨리 R. 웨스트, 김성호 옮김 《밀의 <공리주의> 입문》 (서광사, 2015년)





공리주의 하면 벤담(Jeremy Bentham)과 밀(John Stuart Mill), 이 두 철학자가 가장 많이 언급된다. 나는 지금까지 아주 작게 축소된 상태가 된 철학자 ‘벤담’을 알고 있었다.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은 벤담의 공리주의를 상징하는 표어가 되었다. 그런데 이 표어가 어느 책에 적힌 문장인지 모르고 있었다. 《도덕과 입법의 원칙에 대한 서론》은 벤담 공리주의의 온전한 모습이 담긴 책이다.

 
















* 존 롤스, 황경식 옮김 《정의론》 (이학사, 2003년)

 




지난달 마지막 금요일에 한 독서 모임(<읽어서 세계 문학 속으로>)에 조약돌 님이 벤담의 공리주의를 언급했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존 롤스(John Rawls)의 《정의론》에 인용된 벤담의 공리주의였다. 오래전에 《정의론》을 읽은 적이 있어서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아마도 롤스는 ‘다수의 행복을 위해 소수가 희생되는’ 벤담의 공리주의를 비판했던 것 같다.


밀은 벤담의 공리주의를 계승하면서도 이 철학적 방법론의 한계를 이해했고, 이를 보완하는 대안으로 자신만의 공리주의를 발전시킨다. 밀과 벤담의 공리주의를 비교할 때 항상 언급되는 밀의 저서는 1861년에 나온 《공리주의》다. 하지만 밀은 조숙한 10대 때부터 이미 벤담의 공리주의에 심취했다. 그는 아버지 제임스 밀(James Mill)의 엄격한 교육을 받고 자랐으며 아버지가 친하게 지낸 학자는 벤담이었다. 


그러나 20대의 밀은 회의적인 시선으로 공리주의를 바라본다. 그는 모든 공리주의의 이상이 실현된다고 해도 자신은 절대로 행복하지 않을 거로 생각했다. 밀은 헛헛한 정신을 채우기 위해 다른 유럽 지식인들의 사상을 공부했다. 밀이 발견한 벤담의 단점은 인간의 다양한 감정을 파악하지 못하고, 공감이 부족하다. 1838년에 쓴 『벤담』(Essay on Bentham, 《존 스튜어트 밀의 윤리학 논고》에 수록)은 아버지가 만든 벤담의 공리주의적 그늘에 벗어나 벤담 철학을 본격적으로 비판한 논문이다. 그러므로 벤담과 밀의 공리주의를 비교하면서 이해하려면 벤담의 대표작 《도덕과 입법의 원칙에 대한 서론》과 밀의 논문 『벤담』을 겹쳐서 읽어야 한다.


















* 니콜라이 베르자예프, 이종진 옮김 《도스토옙스키의 세계관》 (한국외국어대학교출판부 지식출판원, 2016년)

 

* [절판] 니콜라이 베르자예프, 주용택 옮김 《도스토예프스키의 세계관: 러시아 문학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대문호》 (행복한박물관, 2011년)





나에게 니콜라이 베르자예프(Nikolai Berdyaev, ‘베르다예프’로 표기되기도 한다)가 누군지 처음으로 알려준 책은 그가 쓴 《도스토옙스키의 세계관》이다. 러시아의 사상가 베르자예프는 본인의 정신에 큰 영향을 준 작가로 도스토옙스키(Dostoevskii)를 꼽았다. ‘세계관’의 의미를 한마디로 쉽게 풀이하면 ‘사상’이다. 도스토옙스키 사상의 중심에는 ‘자유’가 있다. 베르자예프는 자유를 응시하는 도스토옙스키의 눈을 자신의 종교 철학에 이식했다. 

















* 이디스 클라우스, 천호강 옮김 《러시아 문학, 니체를 읽다: 도덕의식의 혁명에 관하여》 (그린비, 2022년)




그는 또 서구 유럽의 철학 이론과 사상을 흡수한 러시아 지식인들 사이에서 유행한 니체(Nietzsche)의 철학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도덕적 가치 및 관습에 도발하는 니체 철학에 매료된 젊은 러시아 지식인들은 구세대 지식인들의 목표였던 사회적 책무보다는 ‘자아 발견과 자아실현’에 더 관심이 많았다.

 

베르자예프의 저서들은 1980년대에 출판되었다. 《도스토옙스키의 세계관》은 1979년에 이미 번역된 적이 있다(이경식 옮김, 현대사상사, 알라딘 미등록 도서). 하지만 베르자예프의 책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조용히 절판되었고, 그의 철학은 독자들에게 제대로 알려지지 못한 채 잊혔다. 최근에 베르자예프의 책들이 출간되었지만, 여전히 그의 사상을 이해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러시아 지성사》(이경식 옮김, 종로서적, 1980년)는 알라딘에 등록되지 않은 베르자예프의 책이다. 《러시아 지성사》의 원제는 ‘러시아 공산주의의 기원’이다. 어째서 원래 제목을 숨기고 다른 제목이 붙여진 것일까? 이 책이 나온 시기의 사회적 분위기를 알면 출판사의 사정을 이해할 수 있다. 


《러시아 지성사》의 초판 발행 날은 1980년 8월 20일이다. 쿠데타를 일으켜서 국가를 장악하는 데 성공한 군인 전두환이 대통령으로 취임한 날은 1980년 8월 27일이다. 전두환이 대통령으로 정식 취임하기 전부터 이미 신군부의 문화공보부(문공부)는 반정부적 목소리를 내는 잡지들을 폐간시켰으며 문공부의 심의를 통과해야만 책을 출판할 수 있었다. 전두환의 제5공화국은 그야말로 ‘금서 공화국’이었다. 자본주의 비판 서적, 마르크스주의, 노동 관련 서적들은 금서로 지정되었다. 러시아 공산주의의 역사에 관한 책에 붙여진 ‘러시아 지성사’는 금서 공화국에서 살아남기 위해 만든 ‘가명’이었다.



















* 전혜은 《퀴어 이론 산책하기》 (여성문화이론연구소, 2021년)





퀴어(Queer)는 성 소수자를 나타내는 용어다. 장애학(Disability Studies)의 정의는 무척 다양한데, 그동안 개인적인 문제로 인식되어 온 장애인의 차별 경험을 사회학적 관점으로 분석하는 학문이다. 장애학이 다루는 주제는 매우 광범위하다. 예를 들면 장애의 범주, 장애인의 자율성, 장애를 규정하는 의학의 실태, 장애인 돌봄 문제 등이 있다. 장애학이 등장하기 전에 이런 주제들은 ‘비장애인 관점’으로 접근하는 경우가 많았으며 장애인의 삶과 몸의 다양성은 ‘결함’ 또는 ‘불완전성’으로 치부되면서 평가 절하되었다.












전혜은 님은 퀴어 페미니즘 장애학 연구가다. 2019년에 대구 페미니즘 독서 모임 <레드스타킹>은 일반인을 위한 페미니즘 학습 공동체 ‘페미 스쿨’을 주최했다. 4개월로 진행되는 페미 스쿨 커리큘럼의 주제는 ‘상호 교차성 페미니즘’, ‘퀴어 페미니즘 장애학’, ‘주디스 버틀러(Judith Butler)’였다. 전혜은 님은 페미 스쿨 강사로 초빙되었다. 당시에 전혜은 님은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던 퀴어 이론들을 한 권에 담아서 정리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고 하셨는데, 그 책이 바로 《퀴어 이론 산책하기》다.































* 비사이드 콜렉티브 · 전혜은 · 루인 · 도균 함께 씀 《퀴어 페미니스트, 교차성을 사유하다》 (여성문화이론연구소, 2018년)

 

[도란스 기획 총서 1]

* 권김현영 · 정희진 · 루인 · 류재희 · 한채윤 함께 씀 《양성평등에 반대한다》 (교양인, 2016년)

 

[도란스 기획 총서 2]

* 권김현영 · 정희진 · 루인 · 엄기호 · 한채윤 · 준우 함께 씀 《한국 남성을 분석한다》 (교양인, 2017년)

 

[도란스 기획 총서 3]

[대구 페미니즘 독서 모임 <레드스타킹> 선정 도서(2018년 4월)]

* 권김현영 · 정희진 · 루인 · 한채윤 · <참고문헌 없음> 준비팀 함께 씀 《피해와 가해의 페미니즘》 (교양인, 2018년)

 

[도란스 기획 총서 4]

* 권김현영 · 정희진 · 루인 · 한채윤 함께 씀 《미투의 정치학》 (교양인, 2019년)





퀴어 페미니즘 장애학 관련 교재는 전혜은 님이 집필진으로 참여한 《퀴어 페미니스트, 교차성을 사유하다》라는 책이었다. 이 책의 집필진 중 한 사람인 루인은 한국 퀴어의 역사를 모으면서 정리하는(archiving) 연구자다. 루인은 정희진, 권김현영 등과 함께 ‘도란스 기획 총서’ 집필진에도 참여했다. 전혜은 님의 《퀴어 이론 산책하기》 추천 글은 루인이 썼다.


















* 리아 락슈미 피엡즈나-사마라신하, 전혜은 · 제이 함께 옮김 《가장 느린 정의: 돌봄과 장애정의가 만드는 세계》 (오월의봄, 2024년)

 

[대구 페미니즘 독서 모임 <레드스타킹> 선정 도서(2020년 4~5월)]

* 일라이 클레어, 전혜은 · 제이 함께 옮김 《망명과 자긍심: 교차하는 퀴어 장애 정치학》 (현실문화, 2020년)

 

* [절판] 수잔 스트라이커, 루인 · 제이 함께 옮김 《트랜스젠더의 역사: 현대 미국 트랜스젠더 운동의 이론, 역사, 정치》 (이매진, 2016년)





전혜은 님은 장애학과 퀴어에 관심이 많은 페미니스트로 활동하는 제이와 함께 두 권의 책을 함께 썼다. 《망명과 자긍심》과 《가장 느린 정의》다. 루인과 제이가 함께 쓴 책은 성 소수자 운동 역사의 고전인 《트랜스젠더의 역사》다.









   


Thanks to books





  • 댓글쓰기
  • 좋아요
  • 공유하기
  • 찜하기
로그인 l PC버전 l 전체 메뉴 l 나의 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