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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모모
  • 소설 보다 : 봄 2025
  • 강보라.성해나.윤단
  • 4,950원 (10%270)
  • 2025-03-14
  • : 32,800



『남은 여름』이라는 윤단 작가의 작품은 처음이다. 작은 원룸에서 생활하는 도시생활자 서현이는 실업급여를 받고 있는 상황이다. 최근에 죽은 친구의 죽음과 그 친구에게서 빌린 책들과 축구공에 관한 이야기가 전해진다. 성실하게 주 6일 근무를 하면서 도시 직장인의 삶을 살았던 친구가 죽은 이유를 서현은 끝내 알아내지 못한 상황이다. 그 친구는 일을 그만둔 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고자 노력했던 친구였다. 수면유도제를 먹고 잠드는 서현과 죽은 친구에게서 걸려온 전화를 받지 못한 순간들이 전해진다.

도시의 직장인들이 좁은 원룸에서 생활하면서 계속되는 야근, 울음조차도 마음껏 울지 못해서 원룸 옥상에서 울었어야 했던 무수히 많은 밤들을 수놓는 소설이다. 젊은 꿈들이 왜 도시에서 사라져야 했을까. 울면서 매일 밤을 보내야 했던 이유들을 모두 보여주지는 않지만 이들의 고충은 말하지 않아도 충분히 짐작하게 하는 작품이다.

빽빽한 빌딩숲에서 소비된 부품과 같은 이름 없는 노동자들이 있다. 그들이 어느 공간에서 생활하고 어떤 감정들을 가지면서 잠을 이루지 못하는지도 곁가지처럼 작가는 흩어뿌려놓는다. 죽은 친구에게서 빌린 책들을 서현은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그때 무거운 책들을 들고 가다가 우연히 길거리에 버려진 소파를 발견하면서 이야기는 전개된다.

서현이 매일같이 앉아서 쉴 수 있었던 소파는 큰 쉼표와 같은 존재가 된다. 뜨거운 햇살 아래에서도 서현은 매일같이 소파를 찾는다. 그러다가 권고사직으로 퇴사한 전 직장의 추 팀장을 만나게 되면서 추 팀장이 자신이 소파에 앉아서 쉬는 것을 불편해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한 명을 정리해고해야 하는 상황에 자신이 그 한 사람이 되었고 추 팀장은 그러한 불편한 사연을 지금까지도 불편해하는 상황이다.

회사가 내린 방침에 복종해야 하는 상명하복 직장 생활자의 모습에 추 팀장은 양심이 편하지 않았던 것이다. 감정조차도 없는 기업의 모습과 대조되는 양심이 추 팀장과 서현의 사이에서는 불편하게 흐른다. 서현은 추 팀장을 원망하지도 않지만 추 팀장은 내내 마음이 불편하다는 것을 보여주면서 검은 봉지에 삶은 옥수수를 사주면서 미안했다는 말까지 남기게 된다. 미안하다는 말을 듣기도 어려운 세상에 미안하는 말을 건네는 사람이 낯설게 느껴진 상황이 전개된다. 국민들을 향해 미안하다는 말도 하지 않는 집단의 모습에 환멸이 느껴지는 상황에 추 팀장의 양심과 사죄의 말은 기대 이상의 장면이다. <세자매> 영화에서도 딸들은 가부장제의 권력자인 아버지를 향해 미안하다고 사죄하라고 말하지만 들을 수 없는 사죄의 말이었음을 떠올리게 된다. 어쩔 수 없었던 한 사람의 희생을 강요한 직장문화에 쓸려버린 이름 없는 소모품과 같은 노동자들이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 소설이다.

서현은 직장을 구한 상황은 아니지만 좌절하지도 포기하지도 않은 모습이다. 죽음을 선택한 친구의 죽음은 그녀에게 적잖은 파장을 일으켰음을 짐작하게 된다. 난폭한 파도가 밀려왔지만 서현이 버리진 길거리의 소파에서 매일같이 쉬면서 하늘을 보기도 하고 숨을 쉬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갑자기 사라진 소파가 그리워 밤에 처음으로 소파가 있었던 자리를 찾으면서 소파가 지켜보았을 깊고도 눅진한 슬픔을 서현도 보게 된다.

누군가에게 편안한 휴식이 되어주고 있는 존재인지 자문하게 하는 소설이다. 서현과 죽은 친구가 외롭지 않기를, 소파와 같은 한 사람이 되어주기를, 함께 공감해주고 슬퍼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주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일깨워준다. 오늘도 고단한 하루를 보낸 많은 도시 생활자들이 있음을, 그들도 누군가의 소중한 가족임을 잊지 않아야 한다고 말하는 작품이다. 눈물을 흘리고, 수면유도제로 잠들지 않는 노동자들이 많아지는 세상이 살기 좋은 도시이며 살기 좋은 나라이다.

한국은 여전히 행복지수가 낮은 나라인 이유가 무엇인지 모두를 향해 질문을 던지는 소설이다. 악행을 저지르고도 자신이 지옥과 같은 세상임을 인지하지 못하는 사람보다 온유하고 넉넉한 가슴을 가진 우리가 되어야 하는 이유를 버리진 소파에게서도 가치의 효용성을 보게 된다. 우리는 안아줄 수 있는 두 팔이 있고, 들어줄 수 있는 두 귀가 있으며 따뜻한 가슴이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차가운 가슴, 냉담한 무표정으로 그들의 성곽에서 자신의 것을 지키고자 노력하는 소수의 계급집단의 악습인 권고사직, 계약직, 아르바이트, 차별적인 사회제도를 예리함으로 분별하는 힘이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준 소설이다.

경제성장의 그늘에 사라지는 이름없는 노동자들이 있다는 것을 차분히 살펴본 작품이다. 이 소설에서도 친구는 이름이 없었고 이름을 불러주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자신의 이름을 가지면서 생애를 온전히 살아갈 수 있도록 모두가 배려하고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질문을 던져야 하는 소설이다.

소파가 밤에 보았을 세상을 서현은 오래 보았고, 그러는 동안 서서히 깊고 눅진한 슬픔을 마주했다. 146

(버려진 소파) 앉아도 된다는 듯이, 있어도 된다는 듯이. - P137
소파가 밤에 보았을 세상을 서현은 오래 보았고, 그러는 동안 서서히 깊고 눅진한 슬픔을 마주했다.- P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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