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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모모
  • 소설 보다 : 봄 2025
  • 강보라.성해나.윤단
  • 4,950원 (10%270)
  • 2025-03-14
  • : 31,605



강보라 『바우어의 정원』, 성해나 『스무드』, 윤단 『남은 여름』을 만날 수 있는 3편의 단편소설집이다. 모든 작가들과 인터뷰한 글도 구성된 소설집이라 작가의 소설을 넘어선 이야기도 들을 수 있는 글도 야무지게 만날 수 있다. 강보라 작가의 『바우어의 정원』에서 "살면서 여성으로서 겪은 상처를 독백 연기의 형태로 들려주세요."라는 연출가의 제안을 받는 배우들이 오디션을 보게 된다. 그중에 은화라는 인물과 정림이라는 배우도 오디션을 보고 난 후 서로 나누는 대화들이 꽤 의미심장하게 전해지는 소설이다.

여성의 몸은 신비로운 존재이다. 여성의 임신과 출산, 유산을 사회가 어떻게 받아들이느냐가 중요해진다. 출산과 유산을 구분하는 사회와 유산도 출산과 다르지 않는 의미라고 받아들이는 사회가 언급되면서 두 여성이 자신의 상처를 되짚는 시간을 가지게 된다. 자신의 사연을 심사위원들 앞에서 극화하는 상황이 자연스럽지 않다는 것을 은화는 느끼게 된다. 하지만 은화는 거절하지 못하고 오디션 현장에까지 도착하여 연극할 때 친했던 후배 정림을 만나게 된다.

은화의 남편인 무재도 다르지가 않다. 아르바이트 강사 일이 계약직이 되고 정규직까지 이어지게 되었던 무재도 저항할 수 없는 삶의 중력을 떠올리게 된다. 은화, 무재, 정림의 노동과 삶이 담담하게 언급되면서 이들의 이야기는 계속된다. 은화는 원인을 알 수 없는 불안과 초조한 감정적 이유로 연기 활동을 지속하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활동을 잠시 쉬라는 남편의 제안까지 듣는 상황이다. 은화가 놓쳐버린 것은 무엇이었는지, 드디어 마주보게 되는 순간이 찾아올 수 있을지 의문스럽게 바라본 작품이다.

어린 은화가 배우로 잘 간직하려고 했던 것을 지금의 은화는 문득 떠올리게 된다. 그것이 작고 파란 불씨 하나가 되어 그녀의 정원에서 고요히 타올랐다고 전한다.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자신의 것이었던 것이 있는가. 그것을 배우로서 잊지 않고 잘 간직하는 힘을 잃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 은화는 남편인 무재가 제안한 초원이라는 학생을 만나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잊었던 과거의 비참함이 지금 그녀를 깨워냈음을 보여준 소설이다.

학교폭력이 어떤 방식으로 비화되는지도 소설의 초원을 통해서 보여준다. 사실이 아닌 거짓이 진실로 포장되는 것이 비일비재한 사회임을 초원이라는 학생을 통해서 은화도 학창시절 경험한 학교폭력의 피해자였음을 회상하면서 초원을 만나서 돕겠다는 의지를 드러낸다. 암컷을 유혹하고자 자신의 깃털 색과 비슷한 파란 물건을 강박적으로 수집하는 새틴 바우어라는 새를 통해서 인물들을 들여다보게 된다.

치료 목적으로 모인 내담자들이 쏟아내는 자신의 상처를 드러내는 이야기가 마치 새틴 바우어라는 새처럼 보이기 시작하는 은화는 오디션 현장에서 자신이 드러낸 여성으로서 겪은 상처도 다르지 않음을 자각하게 된다. 후배 정림이도 자신의 세 번의 유산 경험을 오디션에서 언급한 후 뒤늦은 찝찝함과 헐값에 팔아넘긴 기분이라고 은화에게 말하게 된다. 이 배우들이 뒤늦게 깨닫는 것들과 외마디의 외침이 강열한 잔상을 남긴다.

어린 은화가 비참함을 잘 간직할 거라고 말했던 다짐을 이제서야 떠올리듯이 삶의 중력에 이끌려 놓쳐버린 것은 없는지 잠시 멈추는 시간도 필요해 보인다. 세상의 아름다움이 천천히 비참해졌다는 것이 무엇인지 은화를 통해, 후배 정림을 통해, 무재를 통해 천천히 곱씹어 보게 하는 소설이다. 그들의 삶의 중력은 무엇이었으며 그들이 보았던 세상의 아름다움이 천천히 비참함으로 변해버린 것들도 바라보게 한다.

정림의 연극을 관람한 후 배우들이 관객들에게 관례적으로 보여준 무대인사 없이 사라지는 행동도 의미심장한 장면이다. 연극배우들의 중요한 신념을 보여준 것이기 때문이다. 이순재 배우가 60회 백상예술무대에서 '예술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들려준 것들이 떠오른다. 리어왕 연극을 잠시 설명하면서 '부자들아 가난한 자들과 나누어라'라고 감동적인 대사를 남기며 무대를 장식한 내용이 기억에 남는다. 은화의 가슴에서 조용히 타오르는 것을 우리도 찾아내고 다시 불태워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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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아름다움을 하나하나 감각했고, 그러는 동안 천천히 비참해졌다. 어린 은화는 배우로서 그 비참함을 잘 간직하기로 마음먹었다. 그것만큼은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그녀 자신의 것이었으므로. 작고 파란 불씨 하나가 그녀의 정원 안에서 고요히 타올랐다. 42

(연극배우가 무대에서) 인사 없이 사라지는 행동이 어쩐지 그들의 중요한 신념처럼 느껴져서- P40
왜 뒤늦게 찝찝한 기분이 드는 건지...... 왜 자꾸 뭔가를 헐값에 팔아넘긴 기분이 드는 건지...... 악!- P35
무재에게 초원을 만나겠다고 말하기로 결심했다... 희끗한 머리 위로 그보다 더 흰 눈이 정직하게 내려앉았다. 아득한 과거가 ... 마침내 그녀를 따라잡았다.- P42
세상의 아름다움을 하나하나 감각했고, 그러는 동안 천천히 비참해졌다. 어린 은화는 배우로서 그 비참함을 잘 간직하기로 마음먹었다. 그것만큼은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그녀 자신의 것이었으므로. 작고 파란 불씨 하나가 그녀의 정원 안에서 고요히 타올랐다.- P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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