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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귀명사 골목의 여름
  • 가시와바 사치코
  • 15,120원 (10%840)
  • 2024-06-25
  • : 2,522






 언젠가 사람은 죽기에 삶이 아름답다는 건 조금 알겠다. 사는 건 그리 쉽지 않지만 말이다. 이 책 《귀명사 골목의 여름》을 보니, <충사>라는 만화영화에서 본 게 생각났다. 어느 섬에 사는 사람은 나이를 먹고 아프면 그 사람을 바다에 빠뜨렸다. 그건 안락사 같은 게 아니다. 아직 죽기 전에 바다에 빠뜨리고 바다에서 나오는 뭔가를 여성이 먹으면 죽은 사람은 다시 태어난다. 같은 사람이 다시 태어나는 거지만, 전생 기억은 없다. 누군가 낳아줘야 하는데, 딸이 엄마를 낳아서 딸이 엄마가 되고 엄마가 딸이 되기도 했다. 그런 거 좋을까. 그 마을 사람은 거의 다시 태어났다. 그렇게 낳아줄 사람이 있다니. 그런 신기한 일이 일어나는 곳도 있다니. 그건 벌레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다. 벌레는 종류가 많은데, 이 세상에 있지만 누구한테나 보이는 건 아니었다. ‘충사’는 이런저런 벌레 이야기를 하는 만화다. 벌레는 요괴와 비슷한 것 같기도 한데.


 예전에 죽은 사람이 돌아온 소설도 봤는데, 그건 마지막에 어떻게 됐던가. 잘 생각나지 않는다. 이 이야기 ‘귀명사 골목의 여름’에도 그런 이야기가 나온다. 민간 신앙으로 귀명사 본존불한테 죽은 사람을 돌아오게 해달라고 빌면 돌아온단다. 본래 식구와는 상관없는 사람으로 돌아오고, 돌아온 사람은 예전 식구 기억이 없었다. 그런 게 있다면 믿고 모시고 싶기도 할까. 잘못하면 사이비 종교가 될 수도 있겠다. 사다 가즈히로는 학교 공부시간에 우연히 자기 집 근처가 귀명사 골목이었다는 걸 알게 된다. 귀명사가 뭔지 알아보게 된다. 어느 늦은 밤 가즈히로는 자기 집에서 나온 여자아이가 돌아온 아이가 아닌가 여겼다.


 가즈히로 집 가까운 곳에는 귀명사를 아는 사람이 없고, 이곳에 살다가 아파트로 이사한 여든이 넘은 미나카미 할머니를 만나게 된다. 미나카미 할머니는 귀명사를 제대로 알려주지 않고 절 주지 스님을 찾아가 보라고 한다. 주지 스님도 중요한 건 알려주지 않았다. 귀명사를 자세히 알려준 건 지금은 중국에 있는 삼촌이다. 삼촌이 집에 있었다면 바로 이야기를 들었겠지만 집에 없어서 다른 사람을 만나기로 했구나. 미나카미 할머니를 만난 건 잘된 일이었다. 삼촌 할아버지가 귀명사 본존불을 가지고 있어서 삼촌한테 잘 지키라고 했단다. 귀명사 신자는 폐불 정책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가즈히로 큰할아버지가 본존불을 가지고 있었다. 그 본존불은 신도들이 돌아가면서 맡았단다. 죽은 사람이 돌아오게 하는 게 좋은 것 같기는 한데, 그걸 안 좋게 이용한 사람도 있었단다. 그래서 귀신 사냥을 한 사람도 있었다.


 죽은 사람이 돌아온 걸 아는 사람이 그 사람한테 ‘너는 귀명사 님이다’ 하면 사라진단다. 돌아온 사람은 보통 사람처럼 살아가는구나. 아카리가 나타났을 때 가즈히로만 아카리를 몰랐고, 다른 사람한테는 아카리 기억이 있었다. 가즈히로는 아카리를 귀신으로 여기고 무서워했는데, 아카리가 마흔해 전 열살에 죽은 걸 알고 안됐다고 여겼다. 아카리는 어릴 때 아파서 학교에도 다니지 못하고 친구도 없었다. 다시 돌아오고 아카리는 의사가 되고 싶다고 했다. 가즈히로는 그런 아카리가 사라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집에 있던 귀명사 본존불을 미나카미 할머니가 가져간 듯했다. 가즈히로가 미나카미 할머니를 찾아가 물어도 시치미를 뗐다. 가즈히로는 아카리가 하고 싶은 걸 하게 해주려고 애쓴다.


 어릴 때 아카리는 즐겁게 읽은 동화가 있었다. 가즈히로는 그걸 찾아다 주기로 했다. 그 동화는 끝이 나지 않은 거였다. 여기엔 이 이야기와 이어진 듯한 다른 이야기 <달은 왼쪽에 있다>가 담겼다. 그걸 쓴 사람은 뜻밖에 가까이에 있었다. 바로 미나카미 할머니였다. 아카리와 가즈히로 그리고 친구인 유스케 셋은 미나카미 할머니를 찾아가 이야기를 끝까지 써달라고 한다. 가즈히로는 꽤 끈질기게 말했다. 그 모습 조금 웃기기도 했다. 미나카미 할머니는 가즈히로 마음을 알고 이야기를 끝까지 쓴다. 그렇게 쓴 건 미나카미 할머니한테도 좋은 일이었겠다.


 누구나 삶은 한번뿐이어서 잘 살아야 한다고 하는구나. 한번 더 사는 건 공평하지 않은 걸까. 일찍 죽은 사람이 다시 사는 건 봐줘도 되지 않나. 그걸 아는 사람은 거의 없겠다. 현실에선 죽으면 다시 살아나지 못한다. 그런 일은 없어도 죽을 뻔했다 살게 되는 사람은 있다. 그런 게 생각나기도 하는구나. 죽다 살아났을 때 열심히 사는 것도 좋지만, 쉬엄쉬엄 여유있게 즐겁게 사는 게 좋지 않을까. 이렇게 말하지만 나도 그러지 못하는구나. 우울함에 빠질 때가 많아서. 아카리는 살아가겠다고 한다. 어린 아카리가 더 대단하구나. 나도 살아가야지.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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