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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간 미술관에서 외국어 공부하기
  • 환구음초
  • 김득련
  • 31,350원 (5%1,650)
  • 2025-10-24
  • : 440


유럽어 중 라틴어의 영향이 큰 로망스어 5대장(프랑스어 이탈리아어 포르투갈어 스페인어 루마니아어)는 다양한 (과거) 시제와 풍부한 동사 활용을 받아들였다.


한편 동사쪽을 소략하고 라틴어의 6변화 명사 곡용을 수용하고 과거 시제를 소략한 쪽은 독일어(4변화)와 러시아어(6변화)다. 물론 독일어는 관사변화에서 그리스어의 영향도 있고, 러시아는 자신이 비잔틴(제2로마제국)을 이은 제3제국이라고 생각하고 그리스정교를 믿을 정도로 그리스 영향이 많지만 말이다.


어쨌든 유럽어는 술어의 비중이 높다. 법 태 시제 나아가 분사까지 동사를 이해하는 것이 큰 관건이다. 그런데 동양어는 그렇지 않다. 명사, 즉 체언을 이해하는 것이 핵심이다.


텍스트 안에서 해상도와 비중으로 증명된다. 해상도라함은 단어 자체의 밀도로, 표의문자의 경우 복잡한 획순, 용례가 많지 않아 바로 판별하기 어려우 고어를 말하고 표음문자인 경우 고대어를 활용한 경우를 말한다. 비중은 말 그대로 글자가 얼마나 많냐다.


예컨대 얼마 전 아카넷 출판사에서 규장각 시리즈로 10월에 갓 출간된 환구음초를 보자. 나는 이 시리즈 다 갖고 있는데 2020년 12월 27년 원행을묘정리의궤 이후 4년만에 28번 동학사 그리고 1년만에 29번 환구음초가 나왔다. 명맥이 겨우 붙어 숨쉬고 있다. 사서로 반복 암송해 문리를 틔고 고문진보나 역사서 등을 읽어 기초를 다지고 나면 대개 시, 산문, 근대, 유교불교, 서간간찰, 초서 등 자신의 세부 전공분야를 탐독하며 각자도생으로 공부해나가는데 선진 학자들의 번역을 해설지 삼아 보면서 공부한다. 한문 원문과 한글 해석이 병기된 좋은 번역서는 모범 답안지이자 유용한 툴이다.


이 환구음초 앞 부분을 예시 삼아 보면 한문의 관직명 등 명사가 얼마나 길고 동사는 간략한지 알 수 있다.


금(오늘) <식=정해졌다> 아신황대관즉위지기, 재어오월이십육일

궁내부특진관종일품민(영환)을 <위=삼았다> 특명전권공사


이런 부분은 사실 기계적 번역도 가능하고 해상도도 낮고 학습 영양가가 적은 반면

노란 하이라이트 친 부분이 사람의 의역이 들어가야하고 해상도가 높으며학습 영양가가 높은 자리를 고쳐앉아 집중해 공부할만한 부분이다.


그러니까 해설을 기준으로 앞의 절반은 쭉쭉 읽어내려가다가 중간 4줄만 제대로 뜯어볼 파트다. 한문을 봐도 앞의 한 120자 정도는 그냥 읽다가 


불령본이전렬멸학, 불칭시직, 중이자위풍환, 경년미류, 인자정리, 실난이측


30자가 특별히 초점을 맞춰 음미할 구절이다.


얕다 천박하다의 전(譾=謭과 동자)은 기본서 사서에 나오지 않는 특별한 자로 용례도 많지 않아 다른 서적을 찾아봐야하고 획수도 18획으로 많아서 해상도가 높다.

불령은 서간에서 "나"를 낮추어 재주가 없는 자라고 말하는 겸양표현이다.

자위는 남에게 나의 어머니를 높여 이르는 말이다.

미류는 병이 오래 낫지 않는다는 말이다.


앞의 여러 관직명은 쭉쭉 읽고 동사는 한 단어에 불과하다가

갑자기 이 구절에서 한 단어 한 단어씩 뜯어보게 된다.


유럽어와 학습방법이 다른 하나의 예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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