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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고재> 장승택전
글을매일씁니다  2025/04/24 23:47



학고재 장승택전에 다녀왔다


갔다 온 사람들은 다 동의할거다. 5분만에 휘리릭 보고 나올 수 있다. 인터넷 사진이 전부다


그렇다고 작가의 가치가 없다는 말은 아니다. 관객의 입장에서 이곳을 갈까 저곳을 갈까 동선을 전략적으로 결정해야하는데 전시장에 특별한 현장감이나 아우라가 없고 거의 차이가 없는 작품만 수십 점 있어서 이 전시만 보기엔 먼 길을 행차한 보람이 없다는 말이다. 다행이도 북촌엔 다른 전시가 많이 있다


이런 작품일수록 보고와서 다른 작가와 차이점을 생각해보며 사유를 확장해보자


같은 방식으로 제작된 수십 점의 작품군은 색의 3요소(색상, 명도, 채도)나 빛의 삼원색(RGB)에 대한 과학적 탐구같기도 시지각의 한계에 대한 실험의 결과물같기도 하다. 엘스워스 캘리가 떠오른다

장승택의 작품은 평면 색면추상의 전통 위에 직조적 자취를 남긴다. 일견 단순한 색면처럼 보이지만 화면 가장자리에서부터 안으로 밀도 있게 중첩된 색의 선들은 마치 베틀에서 실을 짜듯 쌓인다. 베틀 위 실타래처럼 가장자리에 직조적 자국을 남겨 시각적 진동을 만들어낸 결과 단순한 색면과는 차별된다. 색이 직조된 평면으로서 장승택의 작업은 조세프 알버스가 색채 간의 상호작용을 통해 감각의 착시를 실험했던 방식과 닮아있지만 장승택쪽이 더 물성적이다. 알버스가 시지각의 논리를 탐색했다면 장승택은 그 논리 위에 물리적 흔적과 시간의 결을 부여했다


장승택의 Layered Painting 연작에서 색이 정물화에서처럼 정적이지 않고 운동감이 느껴진다는 점에서 작년 여름에 예술의 전당에서 했던 크루즈 디아즈전이 떠오른다. 다양한 색이 한 방향으로 결을 이루며 반복되고 중첩될 때 시각은 그 결을 따라 자연스레 흐르고 보는 이는 그 흐름 속에서 색이 움직인다는 환시를 경험한다



솔올에서 봤던 폰타나는 캔버스를 절개해 회화의 차원을 확장해 평면을 넘어섰다. 이를 이해한 관객이라면 장승택의 작품에서는 색의 층위와 결을 통해 촉각적 환영이 느껴질 것이다. 마티에르 질감 없이도 2D 평면에서 3D 감각을 재현했다. 재료의 연금술사 장승택이 빛을 정교하게 운영하여 만들어낸 이 감각의 착각은 우리가 색을 단지 보는 것이 아니라 마치 손끝으로 더듬듯 느낄 수 있다는 점을 환기시킨다


그러한 맥락에서 색과 시간, 촉각 사이의 관계를 시각적으로 풀어내면서 회화의 물질성과 시지각 사이의 틈을 탐구하는 현대적 색면 추상의 한 진화라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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