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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간 미술관에서 외국어 공부하기
<MMCA> 론 뮤익전
글을매일씁니다  2025/04/23 22:46


론 뮤익전에 다녀왔다

원래 다른 5월 전시랑 묶어가려고 했는데 내일부터 황사라서 급히 성북-북촌 돌다가 6시를 넘었는데 마침 수요일 저녁 6-9시 무료오픈시간이라 겸사겸사 고양이가 생선가게 들어가듯 MMCA 현관문을 열었다

인스타감성용 전시수요에 트렌드 얼리어답터와 기존 아트러버에 국내거주 외국인 모두 몰려들어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MMCA로는 드물게도 줄서서 차례를 기다려 입장했다

온갖 SNS에 사진으로 도배되어 있어서 기본 구도는 충분히 예습이 된 상태여서 보통 눈여겨보지 않는 부분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것은 바로 잔털과 선진국의 탄수화물 위주 식사로 인해 쌓인 복부 피하지방의 사실성이다

이에 더해 백인 특유의 콧대가 높고 눈두덩이가 파여있는 부분의 주름, 백인 남성 노인의 검버섯과 노화 및 호르몬 불균형으로 인한 처진 지방 가슴, 라파엘로처럼 광원 노출에 따라 달라지는 깊은 눈매와 매서운 턱선 같은 것이다

10대 소녀의 미래와 신체성장에 대한 불안한 눈빛은 손목의 잔털로 인해 그 두려움이 강화된다

10대 소년과 소녀의 손 꽉 쥔 데이트 조각은 전면 측면 후면에서 모두 표정이 달라 각도에 따라 어떨 땐 소년의 억압이 어떨 땐 소녀의 수긍이 어떨 땐 그 모든 상황적 폭력과 부조화가 느껴진다

엄마의 피로감과 무력감이 만연한 엄마얼굴을 바라보는 갓난아기 조각은 베이비의 두개골이 숨구멍이 아직 안 막히고 후두가 아이답게 튀어나와있는데서 리얼리티가 느껴진다

새끼발가락 제5족지가 안쪽으로 말려 있고 검지발가락 제2족지가 긴 것이 서양인의 골격이다

팔꿈치의 나이테 같은 주름진 피부도 눈에 들어 온다. 다 헤진 나무배에 타고 있는 남자는 완전한 알몸, 성기마저 드러내고 있는 취약한 상태이며 그 대각선 시선의 끝에는 파도, 혹은 유동하는 관객의 움직임이 걸린다

작가는 거의 금욕적 수도승마냥 매일 작업하는 일상이다 술에 취해 시를 음송하는 이백처럼 살아선 이정도 규모의 극사실 작품을 만들 수 없다. 조용한 삶(still life)의 루틴에서 정물화가 나온다



화제가 되고 있는 국립현대미술관 론 뮤익전

극사실적 작품사진은 얼마든지 SNS에서 접할 수 있다

가서만 할 수 있는 경험은 세 가지다


1) 하나는 지하 2층 높이에 쌓은 사십 여점의 해골더미

죽음이 거대한 질량을 가지고 매섭게 덮쳐온다

작품 이름은 호주 멜버른 빅토리아 국립미술관 소장의 <매스>(2016-2017)

전시 공간마다 다르게 구성되는데

MMCA의 전신, 옛 기무사 건물의 거대한 지하를 잘 활용해

원래 소장되어 있는 곳보다 훨.씬. 잘 배치되었다

압도감이 남다르다

아마 옛 군사정권 시절에 스파이 고문과 이름 모를 죽음이 있었을 법한

옛 보안사 건물의 지하에서 전시되는 사람보다 더 큰 사이즈의 두개골

의미심장하다


2) 또 하나는 줄 서서 한 명씩 론 뮤익과 대담하는 자리다

<어두운 장소>2018

어두운 공간에 컨트롤된 조명이 라파엘로의 그림처럼 극적인 명암대비를 부여하여 파인 광대, 매서운 턱라인, 그림자가 내려앉은 눈 두덩이에서 엄격한 수도승과 같은 작가의 자아가 느껴진다

140x90x75cm 자신의 얼굴보다는 큰 사이즈로 독대를 하게 되는데

조각과 시선교환을 했다면

한 층 아래 내려가 작가 작업과정을 다룬 다큐멘터리영상에서는

실제 작가의 익스트림 클로즈업샷으로 시선교환을 할 수 있다



3) 마지막은 스틸라이프(48분, 2013)과 치킨/맨(13분, 2019-2025) 영상이다

박효신의 <야생화> 같은 심금을 울리는 노래도 정확한 음정과 호흡을 바탕으로 부르며, 침묵에도 의도된 시간이 있듯이

즉흥성과 자유분방함을 강조하는 재즈도 선명한 큐사인, 엇박에도 엄격한 박자 계산, 패턴화된 리듬에 대한 엄밀한 이해를 기반으로 하듯이

타격이 폭발적인 액션영화나 깜짝 놀래키는 공포영화도 몇 년의 세월 동안 관객이 순간적으로 느낄 감정을 몇 년동안 되새김질하며 구상하듯이

이런 극사실적 조각을 만드는 작가의 삶은 루틴의 연속이다

시간의 흐름은 크리스마스에서 한 번 밖에 느껴지지 않는다


작업실 벽에 귀멸의칼날 도공 하가네츠카 호타루鋼鐵塚蛍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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