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기압 전선의 영향으로 비가 추적추적 내려
늦은 꽃샘추위를 피해 겨우내 피었던 벚꽃을
속절없이 낙화시킬 때
젖은 흙내음과 같이 아침을 맞을 때
그럴 때는 성곡미술관 석난희전을 가자
석난희의 붓놀음은 마치 산들바람 불어오듯 조용히 번지고 가물가물한 안갯결의 윤슬 속에 우리는 비 오는 날의 고요를 온전히 만끽할 수 있다.
물빛, 풀빛, 해빛이 목판의 굵은 나무결로, 에칭의 무딘 스트로크로 변해 화폭은 온숨결로 숨쉰다. 오브제가 아닌 기운생동을 전해주는 것이리니
겉치레 없는 점과 선이 사각천 위를 나풀나풀 떠다니며 오랜 가늠 끝에 마주한 자연의 숨비소리처럼 다가온다. 작가의 빛결은 화려한 불꽃이 아니라 이슬처럼 번지고 바람처럼 흩어진다. 눈에 번쩍 띄지 않으나 마음에 적적히 스며드는 그런 결결의 조화. 석난희는 붓이 아니라 숨으로 그리고 물감이 아니라 마음으로 채운다. 그윽한 생결의 울림 속에서 우리는 하늘에서 떨어지는 이슬의 코나투스, 즉 스스로 있는 존재의 속삭임과 마주하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