닐은 성인 강좌 수업에서 엘리자베스 핀치의 강의를 듣는다. 닐에게 핀치의 강의는 고무적인 지적 성장을 발돋움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나 다른 강좌생들은 그녀의 냉철한 태도 때문에 그녀를 호의적으로 평가하지 않았다. 강좌가 끝난 뒤에도 닐은 핀치를 만나 주기적으로 대화를 나누며 인연을 이어가지만, 그녀는 ‘배교자’ 율리아누스에 대한 강의를 하며 기독교 보수세력의 질타를 받고 구설수에 오른다. 엘리자베스 사후 닐은 그녀의 수업 때 완성하지 못한 에세이를 완성하고, 그녀의 오빠를 만나 엘리자베스에 대한 개인적인 행적을 참고하여 그녀의 전기를 쓰려하지만, 그녀에 관한 언론과 학계의 악평, 그리고 자신과 함께 강의를 수강했던 친구들을 마주하며 원고를 자신의 서랍에 묻어둔다.
진실에 대한 모순을 말해주는지, 아니면 결국 진실은 드러날 것이라는 낙관적인 희망을 품어주는지는 모르겠다. 나는 엘리자베스의 고상함과 우아함이 좋았다. 하지만 그녀에 대한 이미지는 닐의 시선일 뿐이니, 결국 엘리자베스는 어떤 사람이었는지 알 수 없다. 그런 면에서 카타리나블룸의 잃어버린 명예처럼 언론의 작위성에 대한 고발과는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진실에 대한 집착을 버릴 수 있는가?
"그리고 잊지 마세요. 전기나 역사책은 말할 것도 없고 소설에서도 어떤 인물이 형용사 세 개로 줄 어들어 깔끔하게 정리되는 게 보이면 그런 묘사는 늘 불신하 세요." 이것은 내가 따르려고 애를 써온 경험칙이다.- P23
"강요된 일부일처제란 강요된 행복과 마찬가지인데, 그건 우리도 알다시피 가능하지 않죠. 강 요되지 않은 일부일처제가 가능해 보일 수는 있어요. 로맨틱 한 일부일처제는 바람직해 보일 수도 있죠. 하지만 첫 번째 는 보통 강요된 일부일처제의 한 형태로 다시 주저앉고, 두 번째는 강박과 히스테리에 사로잡히기 쉽죠. 또 그렇게 해서 편집광에 가까워져요. 우리는 상호 간 열정과 공유된 편집광 을늘 구별해야 합니다."- P25
"물론 우리는 이 수업에서만이 아니라 밖에서도, 우리 자 신의 격동적이고 안달 나는 삶에서도 우연이라는 요소를 고 려해야 해요. 우리가 깊이 만나는 사람의 수는 이상하게도 적어요. 열정은 우리를 맹렬하게 현혹하기도 합니다. 이성도 똑같이 현혹할 수 있죠.- P32
그러나 나는 곧 린다가 사 실 내 의견을 듣고 싶어 하는 것은 아님을 깨달았다. 아니, 자 신이 이미 하기로 한 행동과 일치할 때만 내 의견을 들으려 했다. 어떤 사람들은 그런 식이다. 아니, 대부분이 그럴 것이 다. 그래서 나는 그녀의 기분을 좋게 해주려고 입장을 바꾸 어 그녀의 계획을 지지했다.- P36
많은 경우 "스스로 생각하는 것"은 더 진실하고 깊은 생각을 낳기보다는 하나의 통념idke reguc을 다른 통념으로 대체 하는 결과를 낳았을 뿐이라는 것- 그렇다 해도 그 과정은 그 자체로 귀중했다.- P39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는 세대에서 세대로 이어지는 영원한 오염 이라는 관념, 그와 더불어 성에 대한 누그러들지 않는 죄책 감을 인정하고 강조한 성 아우구스티누스에게 밀려났습니 다. 이런 교리 분쟁의 결과를 상상해 보고 또 아우구스티누 스가 승리하지 않았다면 세상이 어땠을지 상상해 보세요."- P46
르낭은 나라로 존재하려면 자기 역사를 잘못 알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다른 말로 하면 우리는 우리나라가 대변한다고 생각하는 것을 믿기 위해 항 상, 매일, 작은 행동과 생각, 또 큰 행동과 생각에서 우리 자 신을 속여야 해요,- P63
"역설적으로 젊은 사람일수록 자기 확신이 더 강해요. 그들의 야망은 외부인의 객관적인 눈에는 모호해 보이 지만 자신들에게는 선명하고 성취 가능해 보이죠. 반면 성인 의 경우… 일부는 그저 즉흥적으로 등록하기도 하지만 대 부분은 삶에서 결핍을 느끼기 때문에 와요. 자기가 뭔가 놓 쳤을지도 모른다는 느낌, 그런데 이제 상황을 바로잡을 기 회-어쩌면 아마도 마지막 기회-가 왔다는 느낌. 나는 그게 대단히 감동적이라고 생각해요."- P71
"정상이라는 게 좋다는 뜻은 아니죠." 그녀가 말했다.
"하지만 탓할 사람이 있으면 어떻게 해볼 수가 있잖아요."
"예를 들어?"
"투표로 그 자리에서 쫓아내거나."
"정부를 바꾸면 달라지리라는 건 되풀이되는 망상이에요."
"그건 절망에서 나온 조언이죠."
"아니, 현실주의에서 나온 조언이에요. 내가 절망한다고 생각해요?"
"아니요. 하지만 선생님이 선거 때마다 투표했다는 것도 장담할 수 있습니다."
"그게 효과가 없을 것임을 분명히 알면서도 하는 거죠."
"그런데 왜 투표를 하나요?"
"시민의 의무. 그렇게 기대되고 있으니까." 그 지점에서 나는 약간 열을 받았다. "믿을 수 없을 만큼 선심 쓰는 척하는 것으로 들리는데요."
"누구한테?"
그·••· 어, 나머지 유권자한테.
"내가 그들의 희망이나 꿈과 그 이후의 실망을 완전히 공 유해야만 한다는 건가요? 정치가의 주요 기능은 실망을 주 는 거예요."
"그건 믿을 수 없을 만큼 냉소적으로 들리고요, 아시겠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나는 냉소주의자가 아니에
요"
"그럼 뭔데요?"
"나 자신에게 어떤 딱지를 붙일 만큼 허영심이 크지 않아
요.- P73
그녀를 신중하게 사랑했다는 거다. 삼가면서, 또 무겁게.- P240
현대 이슬람교 순교자들은 축복받은 변화의 순간에 불신 자를 최대한 많이 데려가려 한다. 기독교 순교자들은 설득력 이 뛰어나 순교하기 전에 다른 많은 사람을 개종시키고 그들 에게 천국으로 가는 줄에서 새치기를 하라고 촉구했다. 어느 쪽에서든 나는 "죽음을 향한 그런 욕망은 거의 육욕과 같다" 라는 EF의 말을 기억했다.- P245
이 모든 것에 처음에는 낙심했음을 고백한다. 하지만 이것 을 받아들인 뒤 두 가지 결론을 내렸다. 첫째, 신학자들은 훌 륭한 소설가도 될 수 있다. 둘째로, 종교로 존재하려면 자기 역사를 잘못 알아야 한다. 나는 또 성 우르술라의 그 뒤의 삶 에 관해서도 더 알게 되었다. 12세기 초 쾰른은 옛 도시의 성 벽 너머로까지 넓어졌는데, 이때 땅을 파는 과정에서 엄청난 해골이 묻혀 있는 거대한 매장지가 드러났다. 이 도시는 이 미 순례의 목적지 역할을 하고 있었는데, 이제 고고학(너무 앞서 나간 표현이기는 하지만)이 종교적 역사를 아름답게 확인 해 주었다. 게다가 비둘기 한 마리가 기적적으로 그 지역 주 교에게 어느 것이 성자의 유해인지 정확히 가리켜주었다. 수 많은 유골과 머리뼈 600개가 특별히 건설된 성 우르술라 교 회로 옮겨졌다. 이 위로가 되는 증거- 알프스산맥 북쪽에서 가장 큰 매장지-는 수백 년 동안 기독교 관광업의 중심이 되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DNA 검사의 시대가 왔을 때 이 뼈들은 약 2천 년이 된 것으로 드러났고, 따라서 이 유적은 옛 로마의 매장지라는 게 다수의 의견이 되었다. 그러나 방 문객들은 낙담하지 않고 여전히 순례자처럼 이 가짜 유물을 보러 온다.- P2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