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ider427님의 서재
  • [전자책] 해피 엔드
  • 이주란
  • 11,200원 (560)
  • 2023-11-10
  • : 138
기주는 어느 모임에서 아버지에게 학대받았던 어린 시절을 토로하는 자신에게 공감해준 원경과 빠르게 친해진다. 서로에게 누구보다 가깝고 서로를 위해주고 이해해 준다는 믿음이 있었지만 어느날 원경의 다소 무례한 발언에 상처와 모욕을 받고 관계가 소원해졌다. 원경의 연락에 답장을 하지 못하던 기주는 자신의 회사에 다소 특이한 유튜버 장과장에게 동행을 부탁해 원경이 운영하는 카페에 찾아가기로 마음 먹는다. 하지만 원경은 카페에 없었고, 원경의 어머니와 동생을 보고온 기주는 결국 자신도 이해하지 못하는 자신의 마음을 타인에게, 원경에게 왜 이해받으려 했었는지 성찰하며 돌아온다.

기주의 주변 인물들도 기주에게 쉽게 이해되지 않는 것들이 많았다. 자신을 떠나 보내려는 어머니, 장과장에게만 친근한 가니, 옷을 전부 빨아버려 한여름에 기모바지를 입고 출근하는 장과장. 하지만 기주는 그들을 이해하지 못해 고통받지 않는다. 어쩌면 가장 친한 사람은 쉽게 자신을 이해해 준다는 착각이 문제였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우리는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그래서 기주의 마음은 나에게 정말 큰 위로가 되었다.
나는 그날 원경으로 인해 가까워진 원경의 친구들 앞에서 나를 안쓰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며 진정하라는 원경 의 말에 수치심과 모욕감을 느꼈고 갑자기,라는 말에 절망했던 것 같다. 그리고 그날 이후 1년 동안은 하루의 많은 순간에 문득 원경을 떠올렸던 것 같다. 아니, 원경이 아니라 수치심과 절망감만을 떠올렸을지도 모르겠 다.- P7
원경의 메시지에 답하지 못한 채로 1년 정도가 지나서야 나는 종종 원경의 말대로 내가 솔직하지 못했다는 것 을 인정할 때가 있었고 앞으로 나 자신이랄지 가까운 사람들에겐 더 솔직해질 필요가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는데, 내게는 누군가를 잃는 것보다 상대가 이해하지 못할 것 같은 나에 대해 솔직해야 하는 상황을 맞닥뜨리는 게 더 두려웠다. 상대가 이해해줄지 아닐지 전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사람은 얼마만큼 솔직할 수 있는 걸까.- P20
화를 낸 이유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거라는 생각에 결국 침묵을 택했던 것. 입을 꾹 다물고 네 사람의 시선을 견디며 지금 내 침묵이 원경을 더 불편하게 만들고 있다고 여기면서도 끝까지 입을 떼지 못했던 것.- P20
공존하기 어려운 것들을 바랄수록 인생은 고단해질 것이다. 나는 고단한 인생을 살고 싶지 않으므로 되도록 무엇인가를 바라고 싶지 않다.- P27
그러니까 이런 모든 생각들이 때로 무의미하다고 느껴지기도 하는 이유는, 종종 무엇도 바라는 것 없이 마음 이 좋을 땐 지난 일들과 현재의 나 사이에 별다른 연관이 없다고 생각한 적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변하지 않는 사실은 이미 일어난 일은 영원히 그때 그대로라는 것. 나는 어떤 일을 같이 경험한 사람들의 기억 이 모두 다른 걸 볼 때마다 사실이라는 것이 정말 존재하긴 하는 것인지 종종 의문이 들고는 했다.- P57
기주씨, 무슨 일인지 모르지만 잘될 거예요.
열린 방문 틈으로 장과장이 고개를 내밀고 말했다. 나는 장과장의 말을 반만 믿기로 했다. 반을 믿지 않는 것 이 아니라 반을 믿기로.- P74
나는 왜 그토록 누군가에게 이해받고 싶어했을까. 기쁨이나 슬픔은 그렇지 않은데 나조차도 이해하기 어려운 이 오래되고 깊은 마음들은 왜 꼭 누군가에게 이해받고 싶어했는지 잘 모르겠다.- P95
가장 깊은 곳에 가려둔 마음들을 곧 마주해야 할 것 같은 두려움 속에서 원경과 가짜 화해와 멀어짐을 반복하 던 그해 여름의 끝에서.- P95
하지만 어쩐지 슬픔은 나누거나 더하는 연산이 통하지 않는 신통한 모양으로 사람들이 있는 곳이라면 으레 함 께 머무르려 하는 친근한 정령 같았고, 어쩌면 한데 어울리는 동안 우리도 슬픔의 성질을 조금은 알게 된 것인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슬픔은 사람의 안과 밖 모든 것을 한순간에 무너뜨릴 수도 있지만, 또 반대 로 어떤 마법 같은 순간에 이르면 제 스스로 무너져 세상의 한겹 밖으로 감쪽같이 사라져버리기도 한다는 것 을요.- P96
타자의 행복에서 자신의 불행을 발견하는 일이 반복됩니다. 특별히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보통의 생활은 기주 가 가진 기억과 감정의 틈입으로 긴장되기도 하고 마비되기도 합니다. 기주의 현실은 기주의 마음속에서 타인 들이 모르는 모습으로 변형되고 왜곡됩니다.- P98
기주가 그토록 마주하려 하고 또 도망치려 했던 끝은 다른 어디도 아닌 기주 안에 있었습니다. 이미 일어난 그 일을 다시 마주하는 일. 스스로 고통스럽게 그 일을 다시 쓰는 일. 계속해서 멋대어진 여러겹의 엔딩이, 그 입 체적인 시공간이 소설의 여정을 동행한 우리의 엔딩입니다. 그 무엇으로도 결론지을 수 없어 맹렬히 사로잡혔 던 기억 위에 더해지는 기억. 변형되고 왜곡되어서야 겨우 제대로 마주볼 수 있게 된 우리의 약한 마음입니다.- P101

  • 댓글쓰기
  • 좋아요
  • 공유하기
  • 찜하기
로그인 l PC버전 l 전체 메뉴 l 나의 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