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타고난 기질이 내향적이었고 은둔형의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무려 3년 동안 아틀리에에만 틀어박혀 있을 정도로 폐쇄적인 성향의 소유자였다. 게다가 19세기 말 브뤼셀은 염세주의가 활개를 치고 비관주의가 팽배한 시기였다. 우울한 도시 분위기에서 자란 그는 여러 가지 사회문화적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가 그림을 통해 보여주려 했던 것은 자신의 불안감이 아니었다. 불안한 상태에 놓인 아이들을 통해 그림을 보는 이들에게 불안이란 거대한 흔들림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내면의 세계로 들어가는 통로이며, 때론 성장과 발전의 중요한 요소가 된다고 증언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