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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리·버들 글숲


 

신라 승 도선이 창건한 불곡사(佛谷寺)에서 이름을 딴 산이 양주 불곡산이다. 물론 거꾸로 된 서사다. 회양목이 무성해서 겨울이면 산 전체가 붉게 물들었으므로 이를 한자로 음차해 절 이름을 지었다. 곡(谷)이 붙은 까닭은 골짜기가 많아서일 테다. 북서-남동 방향 일직선으로 늘어선 바위 봉우리 셋과 그들을 이으며 늘어선 바위 등성이가 거느린 골짜기들이 얼마나 많은지 ‘천(千)골’이라는 이름까지 있다. 사패산보다 낮은 산인데 지도에 표기된 골짜기 이름만도 3배 이상이다.

 

지난번에 걸은 사패산 인근을 살피다가 불곡산을 재발견했다. 경강(京江) 지천을 걷던 중 중랑천 발원지가 불곡산이라는 사실만 잠시 확인했는데 그땐 이렇게 다시 마주할 줄 몰랐다. 양주역에서 내려 바로 중랑천 산책로로 들어선다. 정북 방향으로 따라가다가 샘내고개 바로 앞에서 서쪽으로 꺾이는 물길로 접어든다. ‘중랑천 발원지 샘내’라는 홍보 겸 안내 기둥이 서 있다. 여기서 샘내라고 부르는 물이 흘러 중랑천이 되고 마침내 한강으로 흘러든다. 샘내 샘 찾기 출발이다.


양주에서 처음 마주한 중랑천

 


지도에 청량골이라고 되어 있는 부근에서 왼쪽으로 틀어 물소리를 들으며 더듬어간다. 자료에 따라서는 청량골 또는 청엽굴 고개를 발원지라 한 것이 있으나 확증 없이 쓴 듯하다. 내가 물 따라 들어가고 있는 이 골짜기는 임꺽정봉과 상투봉 사이 골짜기다. 이게 청량골인지, 청엽굴은 어딘지 확인이 안 된다. 나는 내 식으로 샘내골이라 부르기로 한다. 샘내골 물방울 처음 맺는 곳이 중랑천 발원지임은 분명하다. 이 깊은 골 끝에 닿을 때까지 나는 아무도 만나지 못한다.


샘내골 가장 높은 곳에서 본 물

 

등성이에 닿아 임꺽정봉을 향해 난 험한 길을 오른다. 정상 직전에서 멈춘다. 불가피한 경우가 아닌 한 나는 산 정상을 밟지 않는다. 등정(登頂) 또는 등반(登攀)은 정복자 위상 은유인 제국주의 alpinism에 복종하는 식민지 행태기 때문이다. 실제 우리 역사로 보아도 오늘날 무심코 즐기는 통속한 ‘등산’은 일제가 만들어낸 짝퉁 제국주의에 무릎 꿇는 부역 행위다. 나는 이내 되돌아와 지도에 없는 골짜기 길로 들어선다. 샘내골과 더불어 고개 이룬 여기 이름은 원심이골이다.


임꺽정봉 오르기를 멈추고 돌아본 능선

 

원심이골도 인기 좋은 경로는 아니다. 인적이 바래져 길이 설다. 물 말린 긴 너덜겅 멈춘 곳에 임꺽정 생가터 가는 자락 길 안내판이 서 있다. 이리 반가울 수가! 자락 길 걸어 골짜기 둘을 가로지르니 임꺽정 생가(터) 보존비가 나타난다. 알다시피 임꺽정은 명종조에 뜨르르했던 백정 출신 의적이다. 지배자에게는 한낱 도적일 뿐이나 피지배자에게는 보존비 표현대로 “민중의 횃불”로 기억되는 영웅이다. 어쩌면 불곡산 붉은빛이란 임꺽정 횃불 빛을 가리키는지도 모른다.

 

임꺽정 관련 자료를 읽다가 알게 된 놀라운 사실이 하나 있다. 백정은 직업에 따라 분류된 단순 천민 계층이 아니다. 고려시대 중앙아시아에서 흘러든 튀르키예 계통 유목민 타타르-달단 또는 달달-족이다. 세종조에 농경 생활로 이끌려 시도했으나 실패했다는 기록이 있다. 유목 생활을 고수하며 점차 고립되는 과정에서 불가촉천민 집단으로 내몰렸지, 싶다. 신분제 혁파로 역사에서 사라졌으나 그렇게 뿔뿔이 흩어지고 알알이 박혀 오늘 K-민주주의 불씨가 되지 않았을까.


임꺽정 생가터 보존비


높지는 않으나 언틀먼틀한 골산인 불곡산

 

불곡산은 이렇게 해서 내게 지우지 못할 기억을 남긴다. 섬세하게 따지면 중랑천과 내가 맺은 인연은 60년도 넘었다. 1965년 서울로 와 중랑천 지천 성북천을 건너다니며 20년간 살았다. 2011년 다시 중랑천 3백여m 거리에 진료소를 차려 돌아와 16년째 살고 있다. 2023년 1월 중랑천 지천 회룡천에서 마침내 생애 정점에 달하는 깨달음을 얻고 그 연장선에서 반제국주의 전사로 살아가다가 민중의 횃불 임꺽정을 중랑천 발원지 불곡산에서 기린다. 억지 서사일 수 없다.

 

지난 5년 동안 서울 안팎 해발 200m급 이상 산 30개를 걸었다. 히말라야는 언감생심이고 백두대간만 보더라도 내가 걸은 산들은 낮다. 등산이 아니니 욕심도 자부도 없다. 평일에 출퇴근하는 옷차림으로 보호 장구는 물론 상비약조차 없이 홀로 걷는다. 이렇게 하는 까닭은 내 걷기 자체가 반제 행동이기 때문이다; 그게 내 운명이기 때문이다. 운명을 천명으로 만들어주는 존재가 숲이고 물이고 땅이고 바람이고 볕이다. 연거푸 3번 20km 이상 걸었으니 좀 줄여도 될 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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