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간은 자유의지로 살아간다고 말들 하지만 실제로는 많은 것들의 영향을 받는데 그중 하나가 공간이다. 예를 들어 어느 나라, 어느 지역에서 태어났는지에 따라 사용하는 언어와 말투(표준어인지 방언인지)에 차이가 생기고, 같은 지역 안에서도 어느 동네(서울이면 강남인지 강북인지), 어떤 형태의 집(아파트인지 빌라인지) 또는 어떤 평수의 집에서 살았는지 등등에 따라 각자 다른 계급적, 사회적, 문화적 특성을 보일 수 있다.
전지영의 소설집 <타운하우스>에는 공간이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을 극적으로 보여주는 여덟 편의 단편이 살려 있다. 맨처음에 실린 <말의 눈>은 학교폭력 피해자인 딸 서아의 회복을 위해 낯선 섬의 타운하우스로 이사한 엄마 수연의 이야기를 그린다. 수연은 서아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는 사람들 속에서 살면 서아도 자신도 괜찮아질 거라고 생각했지만, 서아가 다니는 학교에서도 비슷한 학교 폭력 사건이 발생하고 서아가 목격자로 지목되면서 점점 불안감을 느낀다. 육지에서 떨어진 섬, 시내로부터 멀리 위치한 타운하우스의 이미지가 수연과 서아 모녀의 고립된 상황과 겹쳐지며 공포감마저 자아낸다.
이어지는 단편 <쥐>는 해군 관사로 사용되는 아파트에 거주하는 윤진의 이야기를 그린다. 윤진은 해군인 남편 몫까지 독박 육아를 하느라 육체적으로 많이 지친 데다가 경력 또한 끊어진 지 오래고, 해군 관사에서 여자들의 관계는 남편들의 계급에 따라 정해지기 때문에 엄청난 심리적 압박감을 느낀다. 이런 와중에 남편의 부대에서 무슨 일이 생긴 것 같은데 남편은 좀처럼 입을 열지 않고, 관사에 사는 여자들 사이에서 겉도는 존재인 대령의 아내가 윤진에게 아파트에 쥐가 있다고 말한다. 이 소설 또한 독자의 공포감, 불안감을 자아내는 장치로 해군 관사라는 밀폐되고 위계적인 공간을 효과적으로 사용한 점이 인상적이다.
사격장 근처에 사는 부부가 갑작스런 사고로 아들을 잃고 힘든 시간을 보내는 이야기를 그린 <난간에 부딪힌 비가 집 안으로 들이쳤지만>, 수산 시장에서 병원을 운영하는 안과의의 이야기를 그린 <맹점>, 부촌의 한 저택에서 수상한 아르바이트를 하는 여자 손님을 태운 택시 기사의 이야기를 그린 <언캐니밸리>와 같은 동네에서 하숙을 하는 예술고등학교 학생의 이야기를 그린 <소리 소문 없이>, 지역 주민 대부분이 고용되어 있었던 제철소가 문을 닫기 직전의 상황이 배경인 <남은 아이> 또한 공간의 특징이 소설의 내용과 잘 어우러진다고 느꼈다.
<뼈와 살>만은 등장 인물들이 속해 있는 공간이 아닌 등장 인물이 만드는 공간이 중요한 작품이다. 이 소설에서 예술가인 '나'는 푸른 실크로 된 아름다운 집 모형을 만들어 상업적으로도 비평적으로도 그럭저럭 성공을 거둔 상태다. '나'의 후배인 이선은 그런 '나'의 작업 스타일을 결코 좋아하지 않으며, 이 사실을 알고 있는 '나'는 이선에게 은근한 열등감을 느끼고 있다. 집이라는 공간이 단순한 생활 공간인 걸 넘어 개인의 취향과 욕망 등이 반영된 공간임을 감안할 때 이런 설정은 매우 상징적으로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