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팬데믹이 한창일 때는 팬데믹이 언제 끝날까, 끝나기는 할까 걱정되고 초조했는데, 팬데믹이 끝난 지금은 실내에서도 마스크를 착용하고 거리두기를 실천했던 그 때가 까마득한 옛날처럼 느껴진다. 그런 줄 알았는데,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소설 <바닷가의 루시>의 도입부를 읽는 동안 그 때의 공포와 불안이 되살아나는 걸 느꼈다. 갑자기 전 지구에 전염병이 퍼지고, 감염자 수와 사망자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높아지고, 격리나 거리두기 같은 말이 일상적으로 쓰이고, 타자에 대한 배척과 혐오가 정당성을 얻기 시작했던 그 때. 그 때 우리는 무엇을 겪고 어떻게 변했을까. 정말로 '변화' 하기는 했을까.
소설은 기생충을 연구하는 학자인 루시의 전 남편 윌리엄이 남들보다 먼저 팬데믹을 예견하고 루시에게 뉴욕을 떠나 메인 주에 있는 저택에서 함께 살자고 제안하면서 시작된다. 괜찮은 척하고 있지만 사실은 두 번째 남편 데이비드의 죽음을 완전히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던 루시는 윌리엄이 하도 강력하게 권해서 져주는 느낌으로 윌리엄을 따라간다. 처음에 루시는 몇 주 아니면 몇 달 후면 뉴욕으로 돌아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예상보다 팬데믹이 훨씬 길어지자 당혹감을 느낀다. 사랑하는 두 딸조차 자유롭게 만날 수 없는 와중에 동네에선 뉴욕에서 온 두 사람을 배척하는 분위기가 느껴져 곤혹스럽다.
가벼운 산책 외에는 외출도 하기 힘들고 집필도 어려워지자 루시는 온갖 상념에 빠져든다. 어느 날엔 어린 시절을 회상하고 어느 날엔 윌리엄과의 관계를 되짚어 보는 식이다. 루시는 매우 궁핍한 어린 시절을 보냈고,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면서 부유한 생활을 하게 된 지금도 그 시절을 떠올리며 종종 괴로워 한다. 루시의 불우한 과거는 루시가 윌리엄에게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이유와도 연결된다. 스테이크에 소금과 후추를 뿌려 먹는 것도 모를 정도로 가난한 집에서 자란 루시에게 가난하지 않은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 처음 알려준 사람이 첫 번째 남편 윌리엄이다.
아마도 루시에게 윌리엄은 단순한 성애 대상이 아니라 원가족이 해주지 못한 진정한 의미의 사회화를 하게 해준, 어떻게 보면 가족보다 더 가족 같고 그래서 성애적 감정이 사라진 후에도 헤어지기 힘든 사람인 게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면 루시에게 있어서는 두 번째 남편인 데이비드야말로 다른 이득에 대한 고려 없이 그저 그 사람이 좋아서 만나고 사랑한 첫 번째 남자가 아닌가 싶고, 그래서 데이비드가 세상을 떠난 후에도 좀처럼 감정을 정리하지 못하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데이비드와 결이 비슷한 밥 버지스와 루시가 잘 되는 전개를 상상해 보기도 했지만, 일단 이 책에선 아니었다(다음 책에선 어떨지...).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소설은 하나의 세계관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으로 유명한데 이 소설도 예외가 아니다. 이 세계관에서 루시 바턴과 함께 가장 유명한 인물 중 하나인 올리브 키터리지가 팬데믹 기간을 어떻게 보내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 몇 번 나온다. 밥 버지스가 어린 시절에 잠깐 보고 스쳐간 여자와 우연히 재회하는 장면도 있다. <오! 윌리엄>에서는 아직 존재감이 미약했던 윌리엄의 이부 누나 이야기도 좀 더 전개된다. 루시의 두 딸, 베카와 트리시에게도 변화가 생긴다. 모녀 관계, 자매 관계에 상처가 있는 루시가 자신의 두 딸과의 관계에서 어려움을 느끼는 장면들도 인상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