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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치의 책다락
  • 내 여자친구와 여자 친구들
  • 조우리
  • 12,150원 (10%670)
  • 2020-06-26
  • : 608



조우리 작가의 첫 소설집 <내 여자친구와 여자 친구들>을 읽었다. 조우리 작가의 소설을 읽은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닌데, 이전에 읽은 <라스트 러브>, <팀플레이>, <이어달리기> 모두 좋았지만 <내 여자친구와 여자 친구들>이 특히 좋았다. 퀴어, 노동, 여성에 대한 소설을 쓴다는 조우리 작가의 포부가 가장 분명하고 확실하게 느껴지기도 했고, <라스트 러브>, <팀플레이>, <이어달리기> 등으로 세계관을 확장하기 이전에 작가가 어떤 문제에 관심이 있었고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분명히 알 수 있는 이야기들이 담겨 있어서 좋았다.


책에는 총 여덟 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초반에 실린 단편들은 여성의 노동, 노동하는 여성의 이야기를 주로 다룬다. <우리가 핸들을 잡을 때>에서 입주청소 일을 하는 엄마는 나이 든 여성이라는 이유로 남성 직원에게 하대를 당하고, 동료인 금자씨는 중국계 이민자라는 이유로 이중의 차별을 당한다. <11번 출구>의 다미는 지하철 역사 인근의 빵집에서 하루 종일 일하는데, 아르바이트이다 보니 돈도 경력도 되지 않고 이마저도 언제 잘릴지 모른다는 공포에 떤다. <미션>의 미경은 (대기업으로 보이는) 물류회사의 정직원이라는 점에서 앞의 두 소설에 나오는 여성들보다 경제적으로 더 나은 삶을 살지만, 남성 중심적인 조직의 권위에 굴복해 자신의 존엄을 희생해야 하는 상황을 늘 맞닥뜨린다는 점에서 정신적으로 평온한 삶을 산다고 보기 어렵다.


표제작 <내 여자친구와 여자 친구들>은 여성, 노동보다 퀴어 요소가 더 두드러지는 소설이다. 레즈비언인 '나'에게는 십 년 동안 연애하고 오 년 동안 동거 중인 여자친구 정윤이 있다. 정윤에게는 어릴 때부터 친하게 지낸 여자(사람)친구 네 명이 있는데, 이성애자인 이들은 자신들의 연애와 결혼, 임신, 출산, 육아 등을 자유롭게 공유하는 반면 레즈비언인 정윤은 그러지 못해서 소외감을 느낀다. 레즈비언은 아니지만 무성애자 성향의 비혼인으로서 이성애자 친구들이 연애, 결혼, 임신, 출산 이야기를 할 때 거리감을 느낀 적이 많은데(그들도 나에게 거리감을 느끼겠지...), 그런 거리감에 대한 소설이라서 반가웠다. 


<나사>는 낡은 의자의 다리를 고정하는 나사가 사라지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 다소 추상적인 내용의 소설이다. 공사 현장에서 통행 차량을 막는 일을 하는 여자가 나오는 <물물교환>과 백화점 속옷 매장에서 일하는 여자가 나오는 <블랙 제로>는 여성의 노동, 노동하는 여성의 이야기를 다룬 초반부의 소설들과 이어진다. 맨 마지막에 실린 <개 다섯 마리의 밤>은 노동하는 퀴어 여성들의 연대를 다룬다는 점에서 이 책 전체를 아우르는 내용으로 느껴졌다. 먹고 살기가 아무리 힘들고 소수자로 차별 받는 게 아무리 괴롭더라도 혼자인 것보다는 함께인 편이 낫고, 그러니 계속 같이 걷자는 말을 건네주는 듯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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