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에 팬데믹 시기가 배경인 소설이나 에세이를 여러 권 읽었다. 팬데믹이 한창이던 시절에는 팬데믹이 언제 끝날까, 평생 마스크를 착용하고 거리두기를 실천하면서 살아야 하는 건 아닐까 걱정했는데, 한국 정부가 엔데믹을 선언한 지 벌써 2년이나 지났다니 놀랍다. 팬데믹 시기에는 매일매일이 비슷비슷하게 느껴졌다. 대면 접촉을 피해야 하기 때문에 외출을 삼가고 모임을 포기하며 날마다 집에서 비슷한 일상을 보냈으니 당연하다.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르게 지나가버린 그 시기를 섬세하고 촘촘하게 기억하고 싶어서 읽은 책이 마스다 미리의 <오늘의 인생> 3권이다.
<오늘의 인생>은 일본의 작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인 마스다 미리가 2017년부터 연재 중인 만화다. 제목 그대로 평범한 사람의 평범한 오늘, 평범한 인생을 보여주는 만화인데, 2020년 팬데믹이 창궐하면서 본의 아니게 팬데믹 시기의 일상을 기록한 만화가 되었다. 2024년에 출간된 <오늘의 인생> 3권은 엔데믹 전후의 일상이 그려져 있다. 한여름에 마스크를 쓰고 다닐 때 느낀 괴로움, 마스크를 쓰고 있어서 웃는 얼굴을 전하기 어려울 때 느낀 곤란함, 타 지역에 사는 가족이나 친구와 영상 통화할 때 느낀 반가움과 안타까움 등등 모두 불과 몇 년 전까지 '일상'이었는데 벌써 아스라하게 느껴지다니. 시간이란. 인간이란.
개인적으로 가장 좋았던 대목은 이거다. 강한 바람에 코트 자락이 펄럭인 순간, 어린 시절 연을 날렸던 기억을 떠올린 저자는 이렇게 생각한다. "그 즐거웠던 시간을 사람은 어른이 되어도 잊지 않아요. 어린 내가 최선을 다해 놀아줬으니까 지금의 내가 문득 행복을 느꼈어. 그 아이는 그 아이는 분명 지금의 나를 위해서도 놀아주었던 거예요." (114-5쪽) 좋았던 기억, 행복했던 기억은 시간이 흘렀다고 사라지는 게 아니라 내 안의 어딘가에 쌓여서 미래의 나를 즐겁게 한다는 걸 일깨워 주는 대목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책에 실린 짧은 소설에, 작년에 가본 시즈오카 아이노역의 풍경이 묘사되어 있어서 너무나 반가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