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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치의 책다락
  • 밀라노, 안개의 풍경
  • 스가 아쓰코
  • 13,500원 (10%750)
  • 2017-03-06
  • : 807



원래는 이번 주에 엄마와 여동생, 나 이렇게 셋이서 홍콩 여행을 다녀올 예정이었는데, 아버지의 몸에 이상이 생기면서 급하게 병원 예약을 잡는 바람에 여행을 취소하게 되었다. 어제 아버지를 모시고 병원에 다녀 왔는데 걱정할 만한 상태는 아니라는 걸 확인한 건 다행이지만, 취소된 여행이 아쉬운 건 어쩔 수 없다. 엄마는 6월이나 7월 중에라도 다녀오자고 하셨지만 한여름의 홍콩은 감당할 자신이 없다. 삿포로나 아직 못 가본 일본의 소도시에 다녀오면 어떨까 싶은데, 삿포로는 어제 지진 소식 때문에 불안하고 소도시는 동생이 탐탁지 않아 하는 눈치다. 그냥 혼자 다녀올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읽은 책이 스가 아쓰코의 산문집 <밀라노, 안개의 풍경>이다. 이 책은 1990년에 초판이 출간되었고, 나로서는 <트리에스테의 언덕길>에 이어서 두 번째로 읽은 스가 아쓰코의 책이다. 1929년 일본 효고 현에서 태어난 저자는 유복한 가정의 딸이었으나 가톨릭 사회주의 운동에 관심이 있어서 '여자는 공부도 일도 할 필요 없고 일찍 결혼해서 가정을 꾸리는 게 최고'라는 전근대적인 생각을 거부하고 서른 살이 되기 직전에 유학길에 올랐다. 이후 파리, 로마를 거쳐 밀라노로 간 저자는 코르시카 서점을 운영하며 가톨릭 사회주의 운동가로도 활동한 주세페 리카를 만나 결혼했다.


안타깝게도 결혼 생활은 1967년 남편이 심장 마비로 급사하면서 끝이 났고, 얼마 후 저자는 13년 간의 이탈리아 생활을 정리하고 일본으로 귀국했다. 그러나 이 때의 경험은 저자에게 '지울 수 없는 궤적'을 남겼고 여러 권의 책으로 남았다. 그 중 한 권인 이 책에는 저자가 처음 유학 갔을 때 만난 친구들과 남편을 만나 밀라노에 정착해 살며 사귄 사람들, 이탈리아에서 번역가로 일하면서 만난 출판인들, 세상을 떠난 남편과의 일화 등이 실려 있다. <트리에스테의 언덕길>에 등장하는 이탈리아의 국민 시인 사바에 대한 이야기도 있고, 얼마 전에 읽은 이탈리아 소설 <표범>에 대한 언급도 있어서 반가웠다.


개인적으로 인상적이었던 대목은 저자가 아직 청소년이었던 시절에 유럽으로 출장을 간 아버지가 엽서를 보냈는데, 엽서에 인쇄된 사진 속 나폴리 베수비오 화산의 모습을 보고 미호노마쓰바라에서 바라본 후지산을 떠올렸다는 대목이다. 미호노마쓰바라는 시즈오카에 있는 해변으로 세계문화유산에도 등재된 곳인데 한국인들이 많이 찾는 관광지는 아니다. 나는 작년에 콘서트를 보려고 시즈오카에 갔다가 일정이 비어서 이곳에 다녀왔다. 아는 사람이 없어서 가봤다고 말할 기회가 없었는데, 이 대목을 읽고 내가 이걸 이해하려고 미호노마쓰바라에 가봤구나 싶었다. 이래서 부지런히 여행을 다녀야 하는가 싶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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