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율리 체 소설 처음인데 너무 재미있게 읽었다. 이야기의 배경은 '세상의 끝'으로 불리는 스페인의 라호라 섬. 이곳에서 파트너 안톄와 함께 살면서 잠수 강사로 일하는 스벤은 욜라와 테오라는 한 쌍의 독일인 커플에게 2주 간 잠수를 가르치기로 한다. 귀족 가문 출신으로 배우이기도 한 욜라와 그보다 열두 살 연상인 작가 테오는 겉보기엔 완벽한 커플로 보인다. 하지만 이들에게 남들이 모르는 문제가 있다는 걸 스벤이 알게 되고, 잠수 강사로서 그들을 내버려둬야 할지 아니면 개입해야 할지 고민하던 스벤은 결국 이 커플의 관계에 깊이 개입하게 된다.
줄거리만 보면 이 소설은 흔한 삼각관계 치정물로 보인다. 일차적으로 이 소설이 잠수 강사 스벤의 시점으로 서술되기 때문에 그렇게 읽기 쉽다. 하지만 스벤의 시점과 교차해서 등장하는 욜라의 일기를 읽어보면 꼭 그렇기만 한 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스벤은 스벤대로 자신에게 유리하게 이야기를 서술하고, 욜라는 욜라대로 자신에게 유리하게 일기를 썼기 때문에 무엇이 진실인지는 독자가 스스로 판단할 수밖에 없다. (나로서는 같은 여성인 욜라의 손을 들어주고 싶지만, 욜라가 완전무결하게 결백한지 잘 모르겠다. 최종 결말을 보면 더더욱 아리송하고...)
책 말미에 실린 '옮긴이의 글'도 흥미롭게 읽었다. 이 글에 따르면 저자 율리 체는 '행동하는 지식인'으로 평판이 자자한데 이 소설에서는 사회 참여적인 면모가 잘 드러나지 않는다. 하지만 <잠수 한계 시간>이라는 제목과 실패한 법학도였던 스벤이 독일을 떠나 잠수 강사로 살다가 욜라-테오 커플을 만나 일련의 사건을 겪고 더는 '잠수'하며 살 수 없다는 걸 깨닫고 독일로 돌아가는 줄거리 자체가 메시지를 담고 있다는 해석이 인상적이었다. 내 생각에는 이 소설에 여러 번 나오는 몽테스키외가 '삼(3)권분립'의 주창자인 것도 이 소설을 해석하는 하나의 키(key)가 될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