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등학생인 미주는 어릴 때부터 귀신을 보았다. 사람들은 귀신을 본다는 이유로 미주를 배척하고, 귀신들은 자신들이 보인다는 이유로 미주를 좋아해서 미주는 어디서도 오래 살지 못하고 이삼 년마다 이사를 다녀야 했다. 더는 이사할 일이 없기를 바라며 이번에 이사를 간 곳은 충청도 거천시 근처의 작은 마을인 청호리. 엄마의 고향이자 외가 식구들이 살고 있는 청호리에는 이상한 규칙이 있다. 첫째는 마을 바깥의 것을 탐내지 말 것. 둘째는 14세 이상의 남녀 청소년은 한자리에 있거나 대화하지 말 것. 셋째는 '선녀님'의 존재를 마을 외부에 절대 발설하지 말 것.
이상한 규칙들 때문에 미주는 청호리가 사이비 종교를 믿는 사람들이 단체로 거주하는 곳은 아닌지 의문을 품기도 하지만, 엄마의 고향이기도 하고 마을 사람들과 학교 친구들이 대체로 친절하게 대해줘서 비교적 어렵지 않게 적응한다. 하지만 마을에서 처음 사귄 친구인 연희가 같은 동아리에 들자고 하도 떼를 써서 들어간 오컬트 동아리 '그믐' 활동을 하면서 마을을 둘러싼 미스터리를 하나둘 알게 되고, 보기와 달리 이 마을에 엄청난 비밀이 숨겨져 있다는 것을 은연중에 느끼게 된다. 급기야 연희가 마을에서 사라지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미주가 느끼는 공포는 극에 달한다.
<이상한 마을 청호리>는 장편소설 <수상한 한의원>, 단편소설 <계화의 여름> 등을 쓰고 앤솔러지 <절망과 열정의 시대>, <영원히 행복하게, 그러나>, <괴이 학원>, <우리가 다른 귀신을 불러오나니> 등을 쓴 소설가 배명은의 신작이다. 소설 맨앞에 '변재천녀(변재선녀)'에 관한 설명이 나오는데, 처음 접하는 단어라서 뜻에 대해 좀 더 찾아보니 불교에서 모시는 최고의 여성신으로 <삼국유사>에도 언급된다고 한다. 청호리 사람들이 모시는 '선녀님'이 바로 이 변재천녀(변재선녀)이며, 소설은 선녀님이 깃들어 계시다고 여겨지는 마을의 오래된 느티나무에 문제가 생기면서 벌어진 일을 그린다.
이 소설의 장점은 평범한 오컬트 소설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모두가 현실에 적용해 볼 수 있는(봐야 하는) 문제 의식을 담고 있다는 점이다. 청호리는 이상한 규칙이 있다는 점을 제외하면 일견 평화롭고 풍족하고 큰 문제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바로 그 규칙이야말로 청호리가 안고 있는 가장 큰 문제인 동시에, 청호리 사람들이 간과하거나 무시하는 진실(혹은 비밀)을 담고 있다. 미주는 외부인의 시각과 귀신을 보는 능력, 그리고 새로 사귄 친구에 대한 애정을 토대로 청호리 사람들이 오랫동안 쉬쉬했던 문제를 밝혀낸다. 미주의 이런 끈기와 용기는 지금의 대한민국 사회에도 꼭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