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 관노트
2025년6월27일/신은 미래에서 온 나?
초반에 이틀에 한 번씩 가는 연습장 횟수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줄어든다.
약 2주동안 연습장엘 가지 않았다. 대신 지난주 일요일, 스크린 골프를 쳤다.
결과는 135점, 역시 연습을 안 하면 스코어는 올라가는
건가?
스윙에 힘만 잔뜩 들어 가고, 공을 맞추는 건 고사하고 아예 헛 스윙을 몇 번이나 했는지 모르겠다.
이제 시작한지 두 달이 다 되가는데 벌써 슬럼프가 온 것인가?
연습을 해야 할 동기 부여가 없어진 것 같다.
왜일까?
이거 뭔 그냥 고민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잠시 놔둬야 될 것 같다.
그렇게 지내다 보면 다시 또 막 치고 싶은 마음이 생기겠지…
아마도 요즘 작은아이 대학입시 서류 준비한다고 온통 정신이 그쪽에 있어서 일지도 모르겠다.
대학은
애가 가는데, 애쓰는 건 부모다.
작년과 올해 연달아 고3을 치르고 있는데, 거의 다
왔다. 조금만 더 견디자.
지난주 새벽, 잠에서 깨면서 드는 생각.
불교의 목적은 부처가 되는 것이다. 기독교는 천국에 가서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다.
이들 목표점은 미래에 있다. 시간 상으로 보면 지금은 아니란 말이다.
그런데 이게 이미 전부 정해진 거라면?
예를 들어 내가 아직 읽지 않은 책 한 권이 있다고 치자.
이 책에는 이미 내용과 결과가 다 있다.
그 책을 다 읽지 않는다면 결과를 알 수가 없다. 뭐, 안 읽고도 다른 경로로 알 수도 있겠지만, 일단 보편적인 생각으로 보면 완성된 책은 읽어 보지 않고는 끝을 모른다.
그래서
읽는 과정이 있어야 한다.
내가 읽어가는 과정이 현재라면, 책의 뒤 부분 즉, 미래는
그대로 있지만 모른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 미래라는 결론은 이미 존재하지만, 현재에서는 과정이 중요할 뿐 미래는 직접 가봐야 알게 되는 것이다.
더 쉽게 보면, 책은 이미 다 나왔다. 그런데 보질
않으면 내용을 모른다.
그래서 읽는다. 읽는 것은 현재다. 미래는 알지 못하지만 이미 존재한다.
자 그러면, 우리가 미래라고 하는 시간은 과연 있는 것인가?
이미 양자 물리학에서는 시간은 과거에서 미래로 흐르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미래, 현재, 과거가 동시에 존재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보면 내가 찾는 미래는 꼭 시간상으로 지나야 오는 것이 아니게 된다.
자, 그럼 신이란, 부처란 무엇인가를 따져 보면, 불교에서는 누구나 불성이 있다고 했다.
그리고 법화경에서 부처님 께서는 ‘모든 중생들이 반드시 성불할 것이다’ 라고 수기를 주셨다.
그러면 미래의 나는 곧 ‘부처’인 것이다. 부처는 완성된 ‘나’ 가
된다.
하나님을 천국에 가서 미래에 만나는 것이 아니라.
미래에 만나는 하나님이 바로 완성된 ‘나’ 라면?
그러면 우리가 신을 찾고, 부처를 구하는 것은 결국 미래의 ‘나’가 아닐까?
그 미래의 ‘나’는 미래의 먼 시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그리고 과거에도 존재했던 것은 아닐까?
아니, 늘 존재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과거에도, 현재에도, 미래에도 항상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나를 찾아라,
나를 믿어라.
여기서 나는 ‘참 나’를 뜻한다고 선가(禪家)에서는 말한다. 그런데
그 참나라는 것이 바로 완성된 나 라면, 참나는 미래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란 말이다.
미래에도 현재에도 과거에도 늘 있어 온 존재라는 것이다.
우리가 찾는 하나님이나, 구하는 부처는 ‘미래의 나’ 이지만, 그 ‘미래의
나’ 는 현재와 과거의 나와 다른 존재가 아니란 말이 되지 않을까?
미래는 이미 완성된 책이다.
우리는 현재 그 책의 한 페이지를 읽고 있는 중이다.
그 읽는 경험이 완성을 향해 나아간다. 그래서 읽는 경험이 소중한 것이다.
나란 존재도 이미 완성된 내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말이다.
내가 찾는 신이나 구하는 부처는 바로 미래의 나 자신이자. 현재의 나라는 것이다.
부처와 신이 바로 미래에서 온 나의 모습이다.
미래의 나의 골프 실력은 어느 정도일까?
by Dharma & Maheal